이하언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무한의 오로라』(푸른사상 소설선 57). 2024년 6월 15일 간행.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시간을 넘나드는 이 소설집에는 소외되고 고통받은 인물들에 대한 책임감이 등장한다. 타자에 대한 책임감은 궁핍하고 억압당하는 얼굴뿐만 아니라 우리가 수호해야 할 민족, 국가, 조상의 땅에까지 나타난다. 타자의 윤리학을 실천하는 이하언의 작품들은 주체를 타자에게 개방함으로써 삶의 장을 무한하게 확대하고 있다.
■ 작가 소개
2007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장을 역임했다. 소설집으로 『검은 호수』, 공저로 『버터플라이 허그』 『코로나 19 기침소리』 『카페인 랩소디』 『내 이야기 어떻게 쓸까』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혼자 괜찮아』 『거짓말 삽니다』 등이 있다. 평사리 문학대상을 수상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집 속의 시간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넘나든다. 등장인물들은 존재했고, 혹은 존재했을 법하고, 앞으로 존재할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만들어내었을, 하지만 알려지지 못한 이야기들의 가치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새삼 깨닫는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를 추구했고 얼마나 생명을 소중히 여겼는지,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부단한 노력들도.
나는 그것들에 대해 계속 써보고 싶다.
■ 작품 세계
“나의 욕망은 타자를 통해서만 활동하고 타자를 통해서만 대상을 포착한다”는 레비나스의 말처럼 타자 없이는 어떤 것도 욕망할 수 없다는 그 타자의 개입은 주체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즉 타자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의식이며 가능 세계의 표현이며, 작가가 가야 할 세계의 무한자가 현시하는 지평이다. 『무한의 오로라』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주체는 이기적인 자신을 떠나서 신에게 받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윤리학, 타자 윤리학의 실천의 장이다.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일상 소쇄사(小瑣事)를 중심으로 서사가 이루어진다. 그에 비해 이하언 작가는 일상 소쇄사를 떠난 다양한 소재, 역사물조차 고대사, 현대사를 가리지 않고 서사화하는 노회(老獪)한 작가이다. 타자 윤리학을 실천하는 장으로서의 이하언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주체들은 타자에게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삶의 장을 확대하고 있다.
― 이덕화, 「『무한의 오로라』에 나타난 타자 윤리학」 중에서
■ 작품 속으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나 혜진이 그토록 갈구하던 것들이 무한한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강에 몸을 던지기 전에 핸드폰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이름, 혜령과 나는 그 공간에 없었다. 혜진은 나와 혜령을 초대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라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잠든 혜진을 돌아보았다. 혜진은 무한한 속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병실을 나서기 전 헤드셋을 벗겼다. 혜진의 행복한 꿈을 빼앗는 듯해서 미안했다.
(「무한의 오로라」,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