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3일 (화) 촬영.
충북도청입니다. 오후 일정도 이 곳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도청 앞에 대형 까치 조형물이 세워져 있네요. 알아보니 충청북도와 청주시의 상징 새가 까치라고 하는군요.
까치는 우리나라의 상징새로도 삼았지만, 서울시, 대전시, 전북도도 상징새로 삼았습니다.
경기도, 광주시는 비둘기, 전남은 산비둘기, 대구는 독수리, 인천은 두루미, 울산은 백로고요,
<강원>뻐꾸기, <충남>원앙새, <경북>왜가리, <경남>고니, <제주>큰오색딱따구리, <부산>갈매기 등입니다
충북도청 입구에는 특이하게 생긴 서수도 있는데요.
해치인지 사자인지 알 수가 없네요.
도청입구 벽에는 도청 본관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 제55호란 알림판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도청 본관 중앙계단.
1층의 우측 복도.
도청에는 현관은 물론 복도에도 많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좌측의 계단.
2층 도지사 비서실.
충북도청 본관 / 등록문화재 제 55호.
이 건물은 충북도청으로 지어져 현재까지 충북지역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해온 역사적인 곳입니다.
전체적으로 중앙의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이며, 현관의 포치는 단순한 사각 형태로 화강석 마감이고,
건물 전면은 당시에 유행했던 갈색 스크래치타일로 마감되었습니다.
우리예능원(문화동 일,양 절충식가옥)의 뒷 모습입니다.
빨간 뾰족지붕이 특별한 우리예능원은,
1924년에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충북지부장 사택으로 건립되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청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된 명예가 깃든 집입니다.
특히 1920년대에 소개된 방갈로 풍의 외관이 인상적인 이 집은 등록문화재 제 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맞은편 하얀 철문으로 들어 가면,
현관 벽에 등록문화재 표찰이 있는 뾰족지붕의 우리예능원 본채가 나옵니다.
지금봐도 이국적인 참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본채옆에 있는 별채 건물입니다.
본채와 별채.
별채건물의 내부입니다. 아이들의 학습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것 같군요.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 등록문화재 제 9 호 / 1924년 건립.
이 건물은 1924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충북 지부장의 사택으로 건립되었으나
지금은 마린바(멕시코 중부 및 남아메리카 지역의 민속악기) 연주자를 배출하는 예능원으로 사용하고 있습
니다. 지붕 형태는 박공지붕을 십자형으로 각각 교차시켜 구성하였고, 박공면 아래쪽 2층에 접객 용도의
방을 두어 조망을 확보하는 등 1920년대에 소개된 방갈로풍의 이국적 외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문화동 일양절충식 가옥을 나와서,
조금 위에 있는 청주향교로 갔습니다.
향교 입구의 홍살문입니다.
긴 계단 위에 청주향교의 외삼문이 있네요.
외삼문으로 들어서니 바로 강학공간의 강당인 명륜당이 있습니다. 유생들의 거처인 동, 서재는 없네요
명륜당 뒤로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있는데 가파른 계단을 한 참 올라 가야 합니다.
내삼문도 일곱칸이나 되는군요.
내삼문에서 본 명륜당의 후면.
대성전 양편에는 동무와 서무가 있습니다.
청주향교 대성전에는 공자와 4성, 송조 6현, 우리나라의 성현 18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내삼문의 우측면.
향교를 나와서
찾은 곳은 충북문화관입니다.옛 충북도지사의 관사지요.
청주 충청북도지사 구 관사 / 등록문화재 제 353호 / 1939년 건립.
이 건물은 1937년에 충북 도청 본관이 건립됨에 따라 인접 지역에 지어진 조지사 관사입니다.
중복도를 기준으로 건물 전면은 양식으로 후면은 일식으로 구성하고 외부 접견실과 주 생활 공간을 구분
했습니다. 접객 공간의 외부에는 서양식 창호가 설치되었고, 생활 공간에는 다다미, 미닫이 창호가
설치되었습니다. 지붕은 각각 처마 높이가 다른 모임지붕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현재는 충북문화관으로 변신 했는데요. 문화의 집으로 들어가 봅니다.
문화의 집엔 충청북도의 대표문인 12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증평군> 김득신, <제천시> 권 섭, <괴산군> 홍명희, <진천군> 조명희, <보은군> 오장환, <음성군> 염재만.
<영동군> 권구현, <단양군> 우 탁, <옥천군> 정지용, <충주시> 권태웅, <청주시> 신채호, 신동문,
1층 전시실입니다.
중복도에는 관사의 이력이 전시되어 있고요..
천정도 개방해 놓았습니다.
일본식 가옥의 복도입니다.
창밖으로 정원이 보이네요.
다다미 방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다미 방입니다.
누구라도 들어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더라구요.
복도에서도 열심히 해설을 해주던 멋쟁이 문화해설사입니다.
천정에 있는 상량판.
외부 뒷모습입니다.
한 눈에 일본식 주택임을 알 수 있는 구조네요.
그럼에도 왠지 정감이 가네요.
정원에 여러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다영의 LOVE
외부 모습입니다.
문화원을 나와
벽화거리를 거처
성공회 성당으로 갔습니다.
성공회 성당의 정면입니다. 남녀가 따로 드나들 수 있게 문을 양쪽으로 만들었습니다.
청주 성공회 성당 / 충북 유형문화재 제 149호(1985,12,28 지정)
한옥과 서구 건축양식이 조화된 청주 성공회성당은 1935년 세실 쿠퍼 주교에 의하여 건립된 성당입니다.
청주에 성공회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22년 영국인 선교사 홀렛 신부가 대성동에서 가정 예배를가진 후부터
입니다. 성당은 32칸 규모입니다. (백과사전)
성당의 전면과 측면 모습입니다.
내부
삼랑식 양식의 천장.
성수대.
삼랑식의 실내 모습.
성공회 성당의 후면 모습.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여러 곳을 답사하다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더라구요.
김치짜글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밥상이었지만 맛이 괜찮았습니다.
식사후 성안길로 나가,
드디어 국보를 만났습니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 국보 제 41호.
철당간이 서있는 곳은 고려시대 청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자리입니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사찰의 건립과 함께 많은 수의 당간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대부분 당간을 받치고 있던
지주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당간은 화강석으로 지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둥근 철통 30개를 연결하여 세운 것인데, 현재는 20개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중 밑에서 세번째의 철통에 <용두사 철당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철당기에는 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과 건립연대, 그리고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관직명이 적혀 있어, 당시 지방경영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철당기의 끝에는 962년에 주성하였다고 하여, 고려 광종때 사용했던 독자 연호를
실물로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아울러 이곳은 1990년대"용두사지 철당간 보전 시민운동"의 전개로 시민들의 광장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내용)
세번째 철통에 새겨진 <용두사 철당기> 모든 사진들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중앙공원입니다.
중앙공원에 있는 청주압각수(충청북도 기념물 제 5 호)
고려시대 청주목의 객사문 앞에 있었던 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나무입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 5월에 이색, 권근 등 10여명이 이성계의 반대파로 지목되어 청주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때 큰 장마로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이 나무에 올라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청주 객사의 마당이었는데, 일제시대 충청북도 도청이 이곳에 있다가 이전하면서 공원이
되었습니다. 나무는 축대를 둘러 보호하고 있으며 안내판 옆에 청주 압각수 시비가 있습니다.
압각수라는 이름은 나뭇잎 혹은 그 뿌리의 모양이 오리발 모양에 가깝다고 하여 붙여진 별칭입니다.
높이는 약 30m, 밑둘레는 8.6m이고 수령은 900여년입니다.
압각수 시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청주 충청도 병마절도사영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5 호.
이 건물은 청주읍성 안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사영(兵營)의 출입문입니다. 이곳 안쪽의 병영에서 종2품의
병마절도사가 충청도의 군사 업무를 주관하였습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청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자 1651년(효종 2) 해미에서 병영을 옮겨 왔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가운데에 대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습니다.
기둥은 네모진 화강석 주초 위에 세워 대문의 장중함과 안정감을 주었으며, 기둥 아래쪽이 비에 젖어
썩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2층은 우물마루를 깔아 누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으며, 계자난간을 설치하여
아름답게 장식하였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병영의 출입문 형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며, 나무를 다듬은 방법,
지붕의 추녀곡선 등이 아주 정교하고 세련되어 아름다운 전통 목조건축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청병영 순교자 현양비.
청주 망선루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10 호
이 건물은 고려시대 청주관아의 객사 동쪽에 있던 누각 건물로 취경루라 하였습니다.
청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궁궐로 돌아가다 청주에 머무른 기념으로 과거시험을 치렀는데,
이때 합격자의 방을 취경루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461년(세조 7)에 목사 이백상이 중수하고 , 한명회가 누각의 이름을 고쳐 망선루라 하였고
그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유지되다가 일제때 철거되었습니다.
이에 김태희가 중심이 되어 1923년 남문로 제일교회 뒤로 옮겨 교육 및 집회 장소로 활용하였습니다.
그 후 기둥이 심하게 부식되어 붕괴의 위험이 있어 2000년 12월
현재의 자리에 옛 모습인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팔작지붕으로 이전 복원되었습니다. (안내문)
망선루
중앙공원을 나와 청주시 제2청사로 가는 길에 청주읍성 서문터도 만났습니다.
서문시장입니다.
청주시 제2청사는 조선시대 관아터로 관아 건물인 청령각이 남아 있습니다.
청주 청령각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09호.
청녕각은 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건물입니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서원현감 이병정이 10칸 규모로 창건하고 근민헌이라 하였는데,
후에 청주목사 이덕수가 28칸 규모로 크게 중창하고 이름을 청녕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건물의 처마에
장식된 암막새 기와에 "도광5년을유5월일, 청주아사개건 와조작,瓦造作"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1825년(순조 25)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벽과 내부를 개조하여 청주군청과 청원군청의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2008년에
해체 보수를 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안내문)
청녕각의 측면 모습입니다.
끝.
첫댓글 못 가서 아쉽습니다.
50년전에 필동 이모댁이 일본식 집 이었는데 2층이 다다미 방 이었어요.
후기로 역사공부를 합니다.
선약이있어 갈 수 없었는데
후기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빡세고도 알찬 탐방! 청주시내를 거의 다 휘젓고 다녔나요?
용주사지 철당간! 국보 41호
정말 귀한 국보를 만나 감격스러웠습니다.
당일 탐방으론 꽤 힘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네요 각 지역에서 출발하여 청주로 모이는것은 잼 있는 작전(?) 같았구요 돌아 갈 때도 각자 지역으로 거의 동시에 출발하여 비슷한 시각에 빽홈은 첩보 작전을 방불케하는 특별한 탐방였슴다..ㅎㅎ
계획에서 마칠때까지 수고 많이 하셨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