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국내 곳곳을 자주 돌아다녔지만 세종시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행정도시 이기도 했고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기에 내가 따로 갈 일이 있을까? 싶어 평소에도 여행지를 고심할 때 선택지에서 자연스레 배제된 도시였지만 SNS에서 본 사진 한 장이 바로 다음 날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서울에서 세종시로 가는 버스는 차고 넘쳤기에 가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숙면을 취했던 나는 세종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뒤 타야 되는 버스도 놓치며 택시를 겨우 잡아 타고 수목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여의치 않아 잔뜩 긴장했던 내 몸은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 든 사이 숨을 돌리며 추스를 수 있었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주변을 살피니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는 통유리로 만들어진 온실과 청아한 하늘이 날 향해 밝게 웃어주고 있었다.
1. 세번째 국립 수목원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포천 국립수목원에 이어 세 번째로 조성된 수목원으로 근처 호수공원과 연계해 절기에 따라 다양한 식물들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며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3가지 추천 코스를 활용해 방문자들의 선택에 따라 순간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고 다양한 문화 행사도 즐길 수 있도록 장소가 마련되어 있어 다방면에 걸쳐 섬세하게 신경을 쓴 부분들이 돋보였다.
내부 온실로 들어가기 전부터 절로 감탄사가 나올 만큼 날씨도 완벽했고 내부 수목원 전체가 통유리로 이뤄졌기 때문에 실제로 그 지역을 여행하는 듯 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쳐져있던 기분이 기대와 함께 서서히 올라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외관 구조물을 정갈하게 담기 위해 분주히 이곳저곳 움직이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라 수목원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을 거쳐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입장료 5천원을 지불한 뒤 SNS에서 봤던 모습들을 눈에 담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으면서도 한적한 평일 시간대에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저 멀리서 부터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며 자연스레 오늘 내 발걸음도 함께 늦어지겠구나 싶었다.
간단한 절차를 거친 뒤 내부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온실 안으로 들어와 각 관들을 꼼꼼히 돌아보고 있었고 덩달아 나처럼 곳곳을 카메라로 담는 사람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급할 것 없이 늦춰지는 만큼 곳곳을 좀 더 매력적으로 담아 보기로 결심한 뒤 지중해 온실에서부터 셔터를 눌러갔다.
2. 치명적인 구성이 돋보인 실내정원
과거 시기에 따라 지중해의 패권을 주름잡았던 그리스와 로마의 양식이 얼핏 보이는 듯 한 정원과 초록색과 연보라색으로 꾸며진 정원의 모습을 보자마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물론 내부의 온도 또한 후덥지근 해 상대적으로 두터웠던 옷차림 탓에 순간을 견뎌내며 걸음을 이어갔다. 금방이라도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복식을 한 사람이 나와 말을 건넬 것 같은 분위기가 주변을 감쌌다. 잠시 맑은 하늘을 떠올리며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치켜세우니 통창 밖으로 자연이 발산하는 청아한 순간들이 선물이 되어 내게 돌아오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기 전 주변을 한창 살피던 중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 지중해 온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해 바로 올라갔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매력적인 모습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주변을 돌며 한창 사진을 담고 있던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전망대에 서서 수목원의 전경과 더불어 저 멀리 보이는 세종시의 스카이 라인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직도 토목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일까? 시선을 가로막는 건물이 없어 탁 트인 전경에 절로 속도 뻥 뚫리는 듯했고, 이곳으로 현장학습을 왔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통제하에 전망대 주변을 서성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뜻밖의 선물에 온실 속 무더위로 잠시나마 지쳐 있었던 육신이 활기를 되찾는 듯했으며, 다시 숨을 가다듬은 채 온실로 들어갔다.
예전에 제주도에 자리한 '여미지 식물원'을 얘기했을 때 언급했었던 그 로마 근교의 정원 티볼리 빌라 데스테가 어렴풋이 떠오를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식물들 사이에서는 지루함을 찾아볼 수 없었고 통창 밖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식물과 만나 그 아름다움에 날개를 달아 줬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스폿에서 사진을 찍은 뒤 바로 고개를 돌리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순간을 즐겼고, SNS에서 봤던 공간보다 이곳이 더 마음에 들 정도였다.
흰색과 파란색의 조화 그리고 그 주변을 수놓는 자주색 꽃은 몇 년 전 다녀왔던 그리스의 산토리니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포카리스웨트를 촬영했던 이아마을과 더불어 우중충한 날씨에도 그 주변을 수식해주던 꽃들도 그리워졌고 남부 유럽을 여행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리워졌다. 국내 여행 당시 예정지로도 삼지 않았던 세종시였지만 실내 온실을 거닐며 애프터 코로나 이후의 활기찬 미래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근대기 유럽의 식물원으로 들어온 듯했다. 지중해 온실보다 구성이 좀 더 촘촘하게 느껴졌고, 가운데 전망대에 올라서면 실제로 내가 열대 밀림으로 둘러싸인 절벽에서 주변을 조망하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우거진 수풀들 사이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만약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진다면 흡사 라이언킹을 즐겼을 때 느꼈던 그 감동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간간히 들어오는 햇살이 주변을 더욱 포근하게 만들어 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인증 사진을 다 담은 뒤 잠시 이곳에 머무른 채 천천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식재된 수풀들 사이로 인공 폭포로부터 들리는 소리는 생생한 현장감을 증폭시켜줬고, 물속에 아련하게 잠겨 있는 이름 모를 수풀들 그 위로 떠다니는 연잎처럼 생긴 무언가가 눈길을 확 끓었다. 사람 정도는 아닐 지라도 연잎 보다 거대한 크기 때문에 견고함도 나름 장착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 아마존 강 주변을 배를 타고 돌아볼 때 물아래로는 악어와 피라니아와 같은 무시무시한 생명체들이 산다던데 이곳은 그저 맑은 하늘 아래로 평화롭게 사람들이 거닐 뿐이었다.
열대 온실을 돌아본 뒤 사계절 온실의 마지막, 특별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한창 재즈를 주제로 피아노와 트럼펫 주변을 형형색색의 식물들이 자리해 있었고 정말 어떻게 찍어도 잘 나오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뷰 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온통 그림처럼 느껴졌다. 잠시 이곳을 즐기던 아이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린 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전세라도 낸 듯 마냥 여유롭게 이곳저곳 살펴가며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표정은 감탄사를 시선은 카메라에 매몰된 채 나름의 작품들을 창조해 내는 중이었다.
4가지 콘셉트를 활용해 공간을 수놓았고 메모리 카드에 어느 정도의 사진들이 쌓이는지는 생각지도 못한 채 지속적으로 셔터를 눌러 나갔다. 살펴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의미 없는 배치가 없었으며 피사체 주변을 둘러싼 식물들의 색감 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재즈와 관련된 특별전이 이곳에서 열리기 전 수목원은 이곳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주제로 잡아 놓은 채 전시를 진행했고 SNS를 통해 실제 모델과 작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간을 100% 활용한 결과물 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롭게 태어난 세종시는 사람들로 인해 발전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3. 고궁의 후원을 만나다 "한국정원"
사계절 온실에서 예상 시간보다 훨씬 길게 머무른 뒤 밖으로 나와 다음 장소로 향했다. 한창 가을이 깊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 분재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획들이 내년을 기약하며 정리 정돈에 들어가고 있어 즐길 거리가 별론가 싶었지만 너른 호수 주변으로 조성된 길 사이로 자리한 수많은 식물들이 빈자리를 훌륭히 대체해 주고 있었으며, 그 길의 중간 지점에 창덕궁의 후원인가 싶은 모습의 누각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연못 한가운데 조그마한 인공섬이 만들어져 있었고 복층으로 구성된 한옥 스타일 건물에 올라 한국 정원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채 한창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건너편 단층 건물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문득 이곳과 관련하여 지정된 시간에 무료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해 귀가 솔깃했지만 급작스레 내린 소나기로 인해 늦춰진 시간을 만회하고자 다음을 기약하며 한국 정원 밖을 나섰다.
4. 한국을 품은 야외 식물원
국립세종수목원의 끝은 한반도 지도로 조성된 공간이었다. 그 자체로도 이 땅의 정체성을 내포한 채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대했지만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손길 따라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점에 추운 날씨에도 실내를 구경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을 제외하면 낙엽이 떨어지고 내년을 분주하게 준비하기 위한 식물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건 사람만이 아닌 듯했다.
차가운 바람은 온실에서 땀으로 샤워를 한 날 한결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곳부터 철에 따라 가득 찼다가 텅 비었다가 하는 모습들이 앞에서 언급했던 한반도의 모양의 공간과 함께 친숙하게 다가왔다. 코로나가 종식된 채 더욱 만발할 꽃과 나뭇잎을 그리며 호수 주변을 거닐어 본다.
아침 일찍 세종시에 도착해 수목원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한 뒤 시계를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수목원에서 추천하는 코스들 중 가장 긴 코스를 소화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을 찍는다고 점심도 거른 채 그 순간 자체를 즐겼다는 게 한편으론 놀랍게 느껴졌다. 다리 너머에 위치한 카트 하나가 서서히 넘어가고 있는 햇살을 받으며 기다랗게 그림자가 늘어지니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을 남겨 본다.
텅 빈 공간에 들어선 거대한 수목원은 앞으로의 방향에 따라 내재된 가능성도 무궁무진해 보인다. 사계절 식물원 앞에 위치한 행사장과 온실 내 특별 전시관 그리고 절기에 따라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 줄 수많은 식물들까지 다음에도 이곳을 보기 위해 한번 더 찾아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급한 데로 식물원 내 식당가에 들어가 음식을 시키며 이곳에 머물며 지나갔던 순간들을 사진과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큰일이다. 훌륭했던 순간들 만큼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아 그냥 머리 용량 자체를 업그레이드시켰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이곳에서의 순간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