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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장 불가사의
백방생은 문득 과거 남궁검상 등과의 사건들을 뇌리에 떠올렸다. 그것
은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 지금에 이르러 착잡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
다. 남궁검상 등은 용모도 훌륭하고 또한 악독한 심사가 있었지만, 그
러나 지금에 와서 그보다 더욱 악독한 한 여자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 것
이었다. 석채릉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쨌든 저는 이제 정혼자가 없어진 것이니 된 것이 아닌가요?"
백방생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사로잡혔다. 석채릉은 다시 옷을 벗으며
말했다.
"자, 이제 방해자도 없고 하니 다시 우리의 거래를 시작하도록 해
요."
백방생은 일순 어이가 없어 하며 말했다.
"아니 지금 여기 이곳에서 그 짓을 하자는 말이오?"
석채릉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대체 뭐가 문제죠" 좀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밤중이고, 게다가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개의하지 않는 강호인들이 아
닌가요"당신, 그래 부인과 아기를 찾고 싶지 않은가 보죠?"
백방생은 확실히 자신이 이 여자에게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
인과 아기라는 말에 백방생은 말이 목에 막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백방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짐승이 아니니 이런곳에서 할수는 없지 않겠소"장소
를 다른 곳으로 옮겨 보도록 합시다."
석채릉은 기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보기보다 담이 적군요. 왜 이런 자리는 안된다는 거죠" 그건
바로 선입견이라는 거예요. 오히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런 강한 자극
을 좋아하죠. 이런 곳에서 관계를 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백방생은 말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오."
석채릉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예요. 사람들은 대개가 다 거기에서 거긴 셈이죠. 당신이라고
해서 그런 자극적인 본능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어요. 자" 어서 나를 봐
요. 내가 틀림없이 당신을 흥분하게 해 주겠어요."
말과 함께 석채릉은 자신의 의복을 빠르게 벗어 버렸다. 이번에 그녀
는 두개의 속곳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벗어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은
은한 어둠속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이 우유빛으로 빛났다. 그녀의 육
신이 그렇게 은은한 기운을 발산하는 이유는 바로 무공이 이미 최상승
의 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이었다. 무공이 그 경지에 오르게 되면 전신피
부의 불순물은 모두 제거되고 아주 맑고 투명한 광채가 은은하게 흐르
는 것이니, 자연 그 아름다움이 수십배를 더하게 되는 것이었다. 무학
을 연성한 여자가 훨씬 아름답다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치에서이다.
게다가 강렬한 유혹을 담은 요염한 기운이 그 눈빛과 전신에 서려 있어
서 보통사람은 그저 말 한마디로 목숨을 바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
다.
석채릉은 흡사 요염한 악녀(惡女)와도 같았다. 그녀는 백방생을 향해 요
염한 웃음을 지으며 일부러 두 다리를 슬쩍 벌려 보였다.
비록 지금의 상황이 참혹스럽다고는 해도 사내라면 그러한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백방생은 비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지만
솔직히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길게 탄식을 터뜨렸다.
석채릉은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그런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보이나요"정말 영웅호걸답지 않군
요. 겨우 한 여자를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다니 그게 어디 영웅호걸이
할 짓인가요?"
백방생은 말했다.
"그럼 영웅호걸은 이런 상황에서는 당신을 덮쳐야 한다는 말이오?"
석채릉은 말했다.
"적어도 자신의 본능에 솔직해져야 하는 거죠. 자신의 본능마저 속이
면서 그렇게 억지로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요. 위
선(僞善)이죠. 자, 어서 이리로 와요! 나는 사실 제법 상식이 있기는
해도전혀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은 순결한 처녀예요. 나와 같은 여자를
소유한다는 것은 행복이 아닐까요?"
석채릉은 말과 함께 오른손으로 자신의 봉긋한 젖가슴과 아랫배, 그리
고 은밀한 부위 등을 어루만졌는데 순간 정말로 백방생은 신음소리를
지를뻔 했다. 석채릉의 그러한 모습은 실로 한 남자의 영혼을 빼앗아
버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상징도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백방생은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영웅호걸이 아니오. 게다가 당신의 그 화려한 유혹이 일종의 덫이
라는 것을 알고 있지."
순간 백방생의 반응을 기다리던 석채릉은 마침내 화가 나서 소리쳤
다.
"뭐라고"이 자식이 좋게 대해주니까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구나
"분명히 말하겠어"네가 만일 처자식을 구하고 싶다면 열을 세기 전에 옷
을 모두 벗도록 해!"
말이 끝나자 이어 그녀는 직접 백방생에게 다가가서 손수 옷을 벗기려
고 했다. 이에 백방생은 문득 웃으며 말했다.
"정말 훌륭한 물건이로군. 보기좋은그림이야. 그러나 정말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으니 아쉽군."
석채릉은 그 말에 손을 멈추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백방생은 말했다.
"석낭자, 그대의 알몸은 정말 그냥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말이오. 내 다
음에 기회가 생기면 절대 놓치지 않겠소."
석채릉은 문득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갑자기 지풍을 날벼락처럼 날려
서 백방생의 전신대혈을 제압한 후에 독기가 가득한 눈초리로 말했다.
"무슨 짓을 했느냐" 죽여버리기 전에 네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어서
밝혀라."
백방생은 침상위에 앉은 채로 움직일 수 있는 입만 벙긋거렸다.
"나는 별로 한 일이 없소. 다만 나의 또 다른 마누라와 아기가 무사히
돌아왔다고 전음으로 알려 주는 구려."석채릉의 안면에 심한 경련을 일
으켰다. 당리는 지금 백귀현 등의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어서 설령 황
진의라고해도 그녀를 빼내올 수가 없다. 그런데 백방생의 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석채릉은 크게 부인하며 말하려고 했다.
그 때, 문득 방문이 열리며 입구쪽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수치심을 느
낀 석채릉은 황급히 겉옷만을 걸쳐서 간신히 알몸을 가렸다. 놀랍게도
지금 나타난 사람은 정말로 황진의와 당리였다. 백방생이 바라보니 당리
의 모습은 다소 초췌해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친 곳은하나도없는것같
았다. 석채릉은 당리가 나타난 것을 보고 내심 이를 뿌드득 갈며 생각
했다.
(이, 이것들이 감히?)
그 때 문득 황진의 등의 뒤에 나타나는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
로 죽은 남궁검상 등과 함께 왔었던 황보능파와 팽영, 팽웅이었다. 팽
영이 나타나는 즉시 포권하며 석채릉에게 말했다.
"소저께 드릴 말씀이 있소."
석채릉은 이미 그들 세 사람이 일부러 당리를 놓아줬다는 사실을 알았
다. 물론 남궁검상 등이 죽은 것에 한을 품은 것이 분명했다. 석채릉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을 하겠다는 것이냐?"
팽영 등의 표정은 무표정했고 음산하기 까지 했다. 마치 시체와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 같았다. 이미 신화제국에 반기를 들었으니 죽음마저
각오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팽영은 괴이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떠나려고 하오."
석채릉은 음산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떠나려면 떠나는 것이지 언제 누구의 허락을 받고 떠났느
냐?"
팽영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우리는 의당 그대를 따라왔으니 떠날 때도 형식을 갖추고자 하는 것
이오."
석채릉은 말했다.
"그래"그렇다면 이제 절차가 끝났으니 떠나도 되겠군?"
팽영은 포권하며 말했다.
"그럼 소저의 무운을 삼가 빌어 드리는 바이오."
말과 함께 그들은 즉각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그것을 보고 석채릉이
차갑게 불렀다.
"잠깐,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팽영 등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팽영은 포권하며 말했다.
"소저께선 혹시 다른 가르침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석채릉은 음산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가문(家門)을 돌보지 않을 셈이냐?"
팽영 등은 그 말에 흠칫하여 안색이 변했다. 황보능파가 창백한 안색으
로 소리쳤다.
"당신은 감히 우리 오빠 등을 죽이고도 우리가 따르리라고 생각했다는
말인가요"결국 우리를 모두 죽일 것이니 아무도 따르지 않을 거예요?"
석채릉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팽씨형제에게 말했다.
"알고보니 너희들은 저 계집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구나. 사실 나와 너
희들의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 자, 어떻느냐"저 하찮은 계집
하나와 너희들의 가문과 바꾸겠느냐"어서 지금 당장 그 계집을 죽여라
"그러면 너희들을 용서해 주겠다?"
석채릉의 그 말에 잠시 장내에 살벌한 침묵이 내리 깔렸다. 황보능파는
원한에 가득찬 표정으로 석채릉을 바라보았고 팽씨형제는 다소 주저하
는 기색을 지었다. 팽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포권하며 말했다.
"소저의 그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소. 우리는 대의(大義)를 따라갈
뿐이며 거기에는 두려움이 없소."
헌데 그가 마악 신형을 돌렸을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동생인 팽웅이 다
가오더니 비수로 그의 가슴을 푹, 찌르는 것이 아닌가" 힘껏 찔렀기 때
문에 비수의 끝부분은 이내 등 뒤로 흉물처럼 뾰죽 튀어 나왔다. 갑작스
런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팽영은 일순 의아해져서 고개를 들고 팽웅에게
물었다.
"왜 너는 나를 찌르는 거냐?"
팽웅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건, 그건 그녀가 시켰기 때문이야. 미안해, 형!"
팽웅은 황보능파를 가리켰으므로 팽영은 일시 그쪽을 바라보며 어리
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어 팽영은 힘없이 숨을 거두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팽웅은 팽영이 그
렇게 죽자 왠지 갑자기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비수를 던져
버리고 황보능파에게 다가갔다. 황보능파는 안색이 몹시 무표정했다.
그녀는 다가오는 팽웅을 향해 말했다.
"수고했어요. 나는 지금 피곤하니 나를 안고 떠나 주겠어요?"
팽웅은 그야말로 헤벌쭉 웃었다. 그는 즉시 좋아서 입이 찢어지며 고개
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나는 정말 그대를 사랑해!"
이어 팽웅은 황보능파를 한손으로 번쩍들어 어깨에 매고는 밖으로 걸
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석채릉은 그것을 보
자 몹시 화가 나는지 연신 거친 호흡을 했다.
백방생은 말했다.
"자, 이제 자신의 의도가 무산된 것을 알았으면 나를 풀어줘야 하지
않겠소?"
석채릉은 당리 등을 돌아보다가 일순 두 눈에서 독기(毒氣)를 강하게
일으켰다. 이어 그녀는 짐짓 입가에 부드럽고 교태스러운 미소를 떠올
리더니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죠. 비록 그녀가 돌아왔
다고 해도 당신이 저를 받아들인다면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니겠
어요?"
말과 함께 석채릉은 아예 겉옷을 벗어 버렸다. 백방생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 졌다. 그는 석채릉이 자신의 부인들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일순 그녀의 은밀한 부위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백방
생은 저도 모르게 안색이 붉어지며 말했다.
"내, 내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하오?"
백방생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는 더욱 안색을 붉혔다. 석채릉은
자신있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예요. 나의 이 몸은 사실 천하의 누구도 갖기를 원하는 거예
요. 당신이 만일 나를 부인으로 맞이한다면 그건 크게 횡재한 셈이 되는
거죠."
말과 함께 석채릉은 그가 보기 좋으라고 다리를 슬쩍 벌리며 득의하게
웃었다. 백방생은 아내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까지 붉어지자 그야말로 못
난 꼴을 보인 셈이 되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고소(苦笑)하며 말했다.
"자신의 몸에 대해서 그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오?"
석채릉은 교소를 지으며 유혹적으로 자신의 몸을 어루만졌다.
"물론이예요. 더군다나 나를 부인으로 맞이하면 우리 신화제국의 부마
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죠. 당신도 조금 전에 저를 갖고 싶다고 하지 않
았나요?"
(이러다간 정말 야단나겠군?)
백방생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사실 농담을 한 것이오. 그래 농담도 못한다는 말이오?"
석채릉은 그 말에 안색이 냉랭하게 변해서 잠시 살광이 번뜩이는 시선
으로 백방생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부득이 방법을 달리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이런 강압
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모든 것은 당신의 책임이란 걸 알
아야 할 거예요."
이어 석채릉은 서둘러 자신의 옷을 모두 입더니 밖을 향해 말했다.
"모두 들어와요!"
그러자 일단의 사람들이 다른 창문을 통째로 부수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천상오룡과 백귀현 등이었다. 그런데 백귀현의 오른손을 바라본 백
방생 등은 일순 크게 놀랐다. 그의 오른손에는 바로 조금전에 나간 팽
웅과 황보능파의 수급이 들려 있었던 것이었다. 백귀현은 아직도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두 개의 수급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한쪽에 무표정하
게 섰다. 그 뒤로 백방행 등이 차례대로 섰는데 마치 그들은 뻣뻣한 막
대기와도 같았다. 역시 가장 사람다운 사람들은 천상오룡 뿐이었다. 그들
의 눈빛은 차가왔지만 무표정하지는 않았다.
석채릉은 그들 열 명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녀들을 모두 제압해요!"
천상오룡과 백귀현 등은 이에 천천히 당리 등에게 다가갔다. 백방생은
그것을 보고 그만 놀라 소리쳤다.
"좋소! 내가 졌소! 당신들은 대체 얼마를 원하시오?"
이대신이 문득 신형을 멈추며 말했다.
"우리는 황금 백만냥을 원한다."
백방생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에게 그만한 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시오?"
이대신이 기다란 체구를 흔들며 차갑게 말했다.
"만일 그게 없다면 너의 이 계집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 되는 것이
다!"
백방생은 그 말에 가볍게 탄식하더니 돌연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렇게까지 핍박을 하니, 실로 어쩔 수가 없구려."
이어 백방생은 몸을 일으켜서 다른 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오!"
사람들은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다함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석채릉의 표정은 가장 변화가 심했다. 그녀는 경악과 의혹의 표정
으로 백방생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방생은 혈도가 제압되어
있었으며 그녀는 아직 그 혈도를 풀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백방생은 돌아와서 하나의 예금장부와 인장 등을 이대인에게
건네주었다. 그 예금장부에는 역시 백만냥의 황금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대인등은 그 예금장부를 살펴보는시선들이 매우 복잡했다.
백방생은 그들에게 말했다.
"이젠 됐소?"
이대인은 잠시 그를 주시하다가 나직하게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네. 우리는 이 금액을 상제(上帝)께 드리기로 하지. 솔직히 자네에
대해서는 우리는 할 말이 없네."
백방생은 말했다.
"가서 그를 만나는 김에 나의 이 얘기도 전해 주시오. 과연 어떤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느냐 하는 것이오. 물질이 풍족하다고 해서그사람
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오. 정말로 사명과 뜻을 가지고 널리 인간(人間)
을 이롭게 할 작정이라면, 우선은 그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이오."
이대인을 비롯한 천상오룡은 착잡한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렸다. 그 때
문득 석채릉이 소리쳤다.
"나는, 승복할 수가 없어요!"
이어 그녀는 백귀현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저 건방진 백가 녀석을 죽여 버려요!"
백귀현은 그 말에 다소 머뭇거렸다. 그는 천상오룡을 바라보더니 돌연
멍청해 져서 말했다.
"나는, 모르겠소.... 이것, 이것은 그 분의 뜻이 아니오."
석채릉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뭐가 그 분의 뜻이 아니란 말이예요"지금 내가 하라면 하는 거지. 모
두 죽기 싫으면 저 자를 죽여요?"
백방도와 백철우, 백철산은 왠지 백방생을 향해 두려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백귀현과 백방행이 마지 못해서 백방생을 향해 다가갔으나
백방행은 도중에 주춤하고 말았고, 백귀현은 다가가 백방생을 오른 주
먹으로 가격했다.
그러나 그 주먹은 반푼의 힘도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그저 퍽, 하고 백
방생의 옷의 먼지를 털어줄 뿐이었다. 이어 백귀현은 바보처럼 헤벌쭉
웃으며 돌아서서 석채릉에게 말했다.
"헤헤, 그는 죽일 수가 없소. 보다시피, 보다시피... 헤헤헤."
석채릉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닥쳐요!"
이대인이 나서서 석채릉에게 말했다.
"석소저, 상제께서는 이 일이 끝나면 바로 오라고 하셨소. 모든 일은
그 분이 주관하여 처리하실 것이오. 만일 석소저가 더이상 나서게 되면
그것은 월권을 하는 행위가 될 것이오."
석채릉은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돌아가자는 말인가요?"
이대인은 말했다.
"그렇소. 그것은 상제께서 정하신 바이오."
석채릉은 잠시 백방생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밖으
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백귀현 등이 멍청하게 그 뒤를 따르기 시
작했고 천상오룡은 맨 뒤에 나갔다. 하지만 천상오룡은 다시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내 그렇게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나자 황진의와 당리는 백방생의
옆으로 와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진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 혈도(穴道)를 풀 수가 있었죠?"
백방생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것은 그들의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오. 나는 본래 혈도에 제압당하지
않았소. 이혈대법(移穴大法)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가 있었거든."
황진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처럼 대담한 사람은 다시 없을 거예요."
백방생은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리는 당분간 안전해 지지 않았소"아
마도 그들은 당분간은 오지 않을 테니 말이오."
정말로 백방생의 말대로 신화제국에서는 다시 그들의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화제국의 활동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
다. 오히려 그들은 활동을 가속화 하여 많은 사람들이 소위 신화제궁
에 다녀왔다. 그리고 점차로 급속도로 천하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어디에
서도 분쟁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과거의 거친 습성들이 사라지고 순한 양들처럼 신화제국의
지부의 명령에 잘 복종했다. 신화제국은 더불어 각종의 사업을 그들과
함께 일으켰고, 그러한 사업이 번창해 감에 따라서 많은 보수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따라서 생활이 풍족해 지자 화평한 나날을 보내기 시
작하게 되었다. 그들중 누구도 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다. 신화제국의 사
람들은 그것을 진정한 이상제국이 도래한 것이라고했다. 그러나 다른 사
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차가운 암흑(暗黑)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평온한 강호에서 그래도 유독 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곳은 바
로 영웅회(英雄會)였다. 영웅회는 날마다 신화제국의 지부를 공격했고
가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신화제국에서는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그것은 마치 가소롭게 여기고 있는듯 하기도 했다. 아니, 그렇
게 함으로써 오히려 신화상제의 넓은 포용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이 흘렀다. 육개월여가 지나자 황진의와 당리가 각
기 아기들을 낳았고 황진의는 아들을 낳았는데 당리는 딸을 낳았다. 황
진의가 하루 먼저 아들을 낳았기에 그 녀석이 오빠가 되었고 당리가 낳
은 딸은 동생이 되었다. 당리는 자신이 낳은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에
섭섭해서 며칠동안 말도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방생이 둘 다 귀여워
해주자 두 여인들은 다시 즐겁게 어울렸으며 그 장원에 웃음꽃이 피어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백일도 다 지나고 강호에는 한가지 큰 행사가 일
어났다. 그것은 바로 석륭안과 진소유가 다가오는 설날에 혼인식을 치른
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모처럼 남창성의 신화제국
지부에서도 백방생에게 친히 초청장을 보내왔고 그 무렵에 장원에는 일
단의 사람들이 찾아 들었다. 바로 용천기 등의 사람들이었다.
그날은 모처럼 많은 눈이 내려서 사방을 온통 하얗게 만들었다. 백방생
은 황진의와 난로앞에 마주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던 당리가 돌연 소리쳤다.
"아, 여보! 그들이 왔어요."
백방생이 돌아보니 찾아온 사람들은 실로 적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낯익은 사람들이라 문득 심한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또한 그들은 모두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거기에서 가장 나이 많
은 사람들은 바로 용천기와 지공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이십대의 청춘남
녀들이었다.
우선 용천기와 지공을 비롯하여 남궁검민과 제갈승지, 제갈심의, 팽호,
팽걸 등의 오대세가의 사람들과, 과거 백방생을 괴롭혔던 화산파의 화
산옥녀(華山玉女) 채청문(蔡靑文)과 외팔이가 된 십방수재(十方秀才) 장
전상(張全詳), 그리고 청성파의 화호접(花蝴蝶) 길완청(吉婉淸)과 백방생
이 처음으로 대하는 정사중간의 인물들인 천산검문의 천산일수(天山一
秀) 을지민(乙遲民)과 무산신녀문의 빙화선(氷花仙) 이추수(李秋水), 해
남검파의 검수재(劒秀才) 주운비(朱蕓飛), 공공문의 옥수도(玉手盜) 손비
취(孫翡翠) 등이었다. 게다가 특이한 것은 당리의 동생인 당독(唐獨)이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증평(曾萍)이었다.
백방생은 그녀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몰라볼뻔 했다. 그녀는 사내 아기를 하나 안고 있었는데 이제 태어난 지
네달 정도 되었고 지공을 매우 닮았다. 그러나 그녀가 비구니가 된 것은
실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당리는 자연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반가와 했다.
당독도 겉으로는 무뚝뚝했지만 매우 반가운 눈치였고 백방생에게도 인
사를 했다. 반면에 증평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짧은 인
사를 대신했고, 과거 백방생과 유감이 많았던 채청문이나 장전상 등도
그저 형식적인 포권의 인사를 차릴 뿐이었다. 새로 나타난 천산일수 을지
민이나 빙화선 이추수 등은 다소 호기심이 깃든 시선으로 백방생 등을
바라보고 있었고, 남궁검민 등은 다소 회한이 깃든 표정으로, 그러나 반
가운 표정들을 지었다. 백방생은 용천기와 지공을 맞아 상석으로 안내했
고 이윽고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새로 들어온 하녀들이 분주하
게 차와 음식들을 마련하는 동안에 백방생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이렇게 소생을 잊지 않고 찾아 주시니 고맙소. 마치 이번에
는 거창한 송년회를 하는 듯 하오."
용천기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는 황진의와 그저 형식적인 인사만을
주고 받았을 뿐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씀드리겠소. 우리는 지금 바로
신화제궁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오. 백형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소?"
백방생은 말했다.
"아니 신화상제를 상대할 자신이라도 있단 말이오?"
용천기는 말했다.
"그의 무공은 초절하니 우리로서는 천년이 가도 그를 당해낼 수가
없소. 오직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폭약을 이용하는 것이오."
"폭약?"
백방생이 다소 놀라자 용천기는 말했다.
"그렇소. 우리는 이미 당형제의 자문을 받아서 충분한 양의 폭약을
준비했소. 마침 이번의 창립기념일에 나머지 세외오선도 모인다고 하
니, 그들 세외팔선이 제궁의 내부에 있을 때 한꺼번에 폭약으로 날려버
리는것이오. 만일 그들만 사라진다면 우리는 희망을 가질수가 있게 될
것이오."
(아니 그럼 우리도 통구이가 될 뻔한 것이 아닌가?)
백방생은 내심 놀라면서 겉으로는 미소했다.
"여러분의 뜻은 장한 바이오. 하지만 소생은 이미 폐물이나 다름이 없
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생에게 미련을 두는 것이오?"
용천기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이미 천하의 곳곳에서는 천선의 심령금제에 대한 부작용이 늘어가고
있소. 게다가 세외오선은 이미 세외오세를 휘하에 거두었다는 소문이
있소.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명분은 충분하오. 흠, 백형의
불행한 소문은 들었소. 우리는 백형을 오해하지 않소. 다만 이번에 함
께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오.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거사를 성취시
켰다면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소?"
백방생은 생각했다.
(내가 이미 능력이 있을 때도 너희와 함께 일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내가 너희들과 함께 일할 것 같은가?)
백방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점이라면 사양하겠소. 나는 별로 도움이 못 될뿐이니 차후에는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은거하려고 하오."
백방생의 말이 그토록 굳건해 보이자 용천기는 돌연 두말없이 일어섰
다. 그리고 백방생을 잠시 주시하더니 이내 말없이 떠나버리고 말았다.
지공 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그 뒤를 따라 갔다. 남궁검민등이
포권으로 작별인사를 했고, 증평과 당독이 한번 백방생을 바라보았을 뿐
이었다.
그리하여 그 많은 손님들은 갑자기 들이닥쳤다가 미처 다과를 대접할
사이도 없이 썰물처럼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당리는 망연한 표정이었고
황진의가 말했다.
"그들은 폭약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성공할까요?"
백방생은 문득 고소하고 있다가 말했다.
"만일 이 땅을 전부 없앨 수가 있다면 가능할 것이오."
당리는 동생을 생각하고 있다가 그만 눈이 휘둥그래 졌다.
"그럼 세외팔선은 불사신이라는 말인가요?"
백방생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의 이른바 원영신은 금강불괴이오. 그것은 범상한 방법으로는 파
괴시킬 수가 없소. 폭약으로는 될 수가 없고, 한 사람이 그들을 파괴할
수가 있을 것이오."
당리는 말했다
"그건 누구죠?"
백방생은 말했다.
"그건 바로 그들 자신이오."
황진의는 말했다.
"그들이 우리가 신화제궁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을까요?"
백방생은 웃으며 말했다.
"방해하지는 않을 거요. 그 용천기는 비록 나를 믿지는 못하지만 그러
나 그런 일에 나를 가로 막지는 못하오. 왜냐면 그는 호기가 가득한 영
웅호걸이기 때문이오."
백방생과 두명의 아내, 그리고 아기들은 다음날 아침 신화제궁을 향해
출발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간혹 신법을 펼치고 마차를
타곤하여 여정을 단축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설날의 아침에 그들은
신화제궁의 정문앞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정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을 맞이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대인이었
다. 오히려 서둘렀기에 일찍 도착한 듯 아직 성대한 의식은 치뤄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 출관(出關)한 석륭안의 황태자(皇太子) 책봉식도 있다고 했는데
말이야?"
"석공자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백방생은 다소 의아해 졌다.
"석륭안이"그가 혼인을 하기 전에 나와 진소유를 만나보게 해 주려는
것일까?"
백방생은 가족들을 이끌고 주저없이 이대인의 뒤를 따라갔다. 이대인은
옆길로 해서 일행을 거대한 본채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이 신화제궁
은 그간에 공들여 지은 것으로 그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과거의 정
의맹의 건물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이대인은 백방생 등을 거대한
대청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오붓하게 진소유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백방생
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 대청에는 비단 석륭안과 진소유 뿐만
아니라 나머지 천상사룡, 그리고 세외팔선까지 모두 있었던 것이었다.
석륭안은 과거보다 안색이 더욱 좋아 보였다. 두 눈에서 은은한 광채가
비치는 것이 이미 광검(光劒)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
다. 진소유의 모습은 더욱 마른듯 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모습이 더
욱 애처로운 사랑을 불러 일으켰다. 백방생은 본의 아니게 감히 진소유
등을 보지 못하고 곧장 천선을 향해 포권의 인사를 올렸다.
"다시 뵙게 되는 군요. 그동안 적조했습니다."
태사의에 앉아서 흡사 천신(天神)과도 같은 위엄을 보여주고 있는 천선
은 유심히 백방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간 자네도 무사하게 지냈으니 나는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하네."
백방생은 고개를 돌렸다. 의선과 화선이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해보인 다음에 백방생은 말했다.
"사실 저는 이번에 혼인식을 보러 온 것은 아닙니다. 소유(小柔)를 데리
러 온 것입니다."
남의 혼인식에 와서 신부를 데려가겠다니 그게 과연 말이나 될까"석
륭안은 즉시 크게 분개한 표정을 지었고 진소유도 놀라 백방생을 바라
보았다. 느닷없이 단의 뒤에서 석채릉이 튀어 나오며 소리쳤다.
"정말 미친 녀석이군! 정말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냐?"
천선이 문득 말했다.
"백방생, 그대가 그게 소원이라면 사실 불가능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전에 한가지 조건이 있다."
백방생은 그를 바라 보았다.
"그게 뭐죠?"
천선은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바로 네가 나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백방생은 천선의 그 투명한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대체 무슨 말이
냐고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천선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되는
듯 하면서 강하고 거대한 번갯불이 발출되어 백방생의 머리를 후려치
는 것이었다. 그 투명한 번갯불에 맞는 순간 백방생은 문득 아, 하고 소
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의식은 뜨거운 태양(太陽)속에 던져진 것처럼 아득해
졌고 말소리는 흘러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언젠가 한번 당한 것 같은 충
격이기도 했다. 백방생의 안색은 이내 총명했던 것이 멍청하게 풀어졌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게다가 당리와 황진의는 크
게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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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