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에 한번 가야 된다. 바람을 크게 쐬어야지.”
희미한 백열등 아래 윤상 댁의 눈동자도 희미해진다. 내 머리 위쪽에 무엇이 보이는 모양이다. 신 내린 동네 점바치라지만 애초에 섬뜩한 분위기는 될 수 없다. 원래 엄마 친구인데다가 곱상한 얼굴에 나직한 목소리였으니까.
원인 모를 증세로 사람 구실 못하던 시절의 얘기다. 동화사 천변에서 푸닥거리도 했다. 김동리의 무녀도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아마. 하룻밤을 샐 동안 무당 칼이 내 몸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을까.
참, 그때는 정말로 동화천 물이 푸짐하고 좋았다. 물놀이가 좋지 높은 산엔 왜 가? 엄마의 바람을 외면하는 불경스런 버르장머리는 그대로 이어져서, 나에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풍경화로 남아있을 뿐이다.
굳이 등산이란 간판을 달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산과 인연을 맺는다. 지표의 약간 융기된 부분을 오르며 자연의 비경과 삶의 흔적을 힘들게 찾고, 그리고 애써 무슨 의미를 보태려 한다. 내 삶의 궤적도 등산과 얽혀있을 수밖에 없다.
‘높은 산’에도 제법 오른 것 같다.
알프스의 융프라우, 27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긴장과 흥분이 어제런 듯하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도 안데스의 3700미터 고지다. 인디오와 스페인의 비릿한 투쟁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미국 땅 요세미티에서도 서너 시간쯤 팔자 좋게 등산 흉내는 내어봤다. 하프돔 트레일에 한국산 스틱을 찍고 다닌 것은 작년의 일이니까.
중국의 산들은 아무래도 더 친근하다.
황산과 장가계는 한국인들이 많이, 너무 많이 찾는 곳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유구한 인문의 축적을 묵직하게 느낀다고 할까. 하남성 운몽산(雲蒙山), 아스라한 옛날로 이끌려 올라간다. 주인공인 귀곡자(기원전 403~221년)가 180년을 살면서 영재교육을 했다는 곳. 그 영재들이 전국시대의 스타들이니 인세비경(人世秘境)을 자랑할 만도 하다.
사천성에 갔다. 3099미터 아미산 꼭대기의 황금빛 보현보살상은 지구에서 가장 높은 노천 대불상이 아닐까. 구름 위에서 중생들이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란 걱정을 할 만큼. 민산산맥 구채구와 황룡의 비경을 돌아다니다 보면 언뜻언뜻 나타나는 설보정(雪寶頂, 5588미터). 아, 여름인데도 흰 눈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약간의 감흥이라도 살아있다면 짧은 탄성을 질러야 옳다.
산동성의 태산과 몽산(蒙山)에 오른 이력을 뺄 수 없다. 흔히들 공맹의 학도를 갇힌 공간의 샌님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공자께서 2,500년 전에 태산과 동산(오늘의 몽산)에 올라 외쳤다. 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게 보이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이는구나! 호연지기란 말은 맹자가 만들었지만 학문과 등산의 촌수가 실로 가까움을 웅변하고 있지 아니한가. 3년 전 내가 두 산에 오를 때는 짙은 안개 속에서 두 성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였다고 할까. 꼭대기의 시장바닥 못지않은 시끌벅적한 인파와 기묘하게 어울리는….
지리산 반야봉은 천왕봉에 이은 제2봉(1732미터)이다.
1976년 내 나이 서른 살의 한여름, 토끼봉 중턱 칠불암에서 심신을 의탁하고 있을 때다. 어느 날 반야봉 코 아래 무슨 암자로 ‘문수기도(文殊祈禱)’란 걸 간다는데, 남녀 열을 넘는 스님들을 보아하니 하나같이 들뜬 기분이다. 면벽이나 용맹정진보단 수월한 일이었을까. 어쨌든 반야나 문수는 무소유의 세계라, 장비라야 보릿짚 모자와 흰 고무신이 전부였다.
칠불암에서 토끼봉을 거쳐 반야봉에 이르는 코스, 산등성이를 타고 반나절은 걸었을 것 같다. 눈 아래 펼쳐지는 구름의 바다, 길섶의 이름 모를 꽃들, 온갖 생물들의 형상과 소리들…. 일일사계(一日四季)까진 아니라도 봄 여름 가을은 수시로 교차하고 있었다. 대자연의 연출 못지않게 나의 내면도 요동치고 있었고.
나른한 몸에서 등줄기의 땀이 몇 번 생멸을 거듭할 즈음 마침내 다다른 곳, 독거 스님의 법명은 ‘정행(正行)’이라 했다. 친구가 곰뿐이라는 그는 아마도 남녘 땅 최고 높이의 거주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문수보살, 보살문수…. 밤 새워 오체투지로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지혜를 주십사 소리 내어 처절하게 발원하였던 것이다.
이제 최고의 등산으로 나는 별 주저 없이 반야봉 등산을 꼽기로 한다. 일찍이 윤상 댁이 예언한 ‘높은 산’이 바로 지리산일 것이고, 그 삶의 변곡점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봉우리가 또한 반야봉이라 믿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맞물려 빠르게 돌아간다. 육신과 두뇌의 근육도 갈수록 탄력을 잃어간다. 슬픈 것인지 편한 것인지, 그조차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더 이상 괜찮은 등산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이 최고의 등산에 덧칠을 할 작정이다. 구름바다는 장엄함을 더할 것이고 꽃들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손등으로 훔친 끈적한 땀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윤상 댁과 엄마의 모습은 더욱더 아름다워질 것이다.(2018. 9.)
첫댓글 산에 얽힌 사연과 추억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체력을 잘 유지하셔서 최고의 등산에 덧칠하는 감격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