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존재와 융합하는 ‘그리움’의 해법 --김영일 시집 『미워하기보다』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 회장) 1. 삶의 유한성과 생명 예찬 현대시의 발상이나 상황 전개는 시인의 독자적인 체험의 산물(産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 시인이 살아온 생애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다양한 체험들이 내면에서 곰삭아서 이제사 자신만의 진실을 토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운명의 좁은 길을 헤쳐나온 인생의 굴곡이 있다. 그 중에서도 불망의 인생으로 남아있는 경험들은 기억하게 되고 그것이 시인의 진실로 승화할 때 한 편의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의 원류는 대체로 시간과 공간 개념에서 발생하는 삶의 한 줄기 근원으로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단면들이 적나라하게 내포되어 있어서 어느 시대에 어떤 생활 근거지에서 무슨 일이 발생-혹은 생멸(生滅)의 존재 의식 같은-했느냐 하는 생존의 기록일 것이다. 일찍이 하이덱거의 실존철학에서는 존재는 근원적인 시간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 근원적인 시간이란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함께 들어있는 전체적인 상황을 말하는데 이것을 그는 시간성이라고 말했다. 여기 김영일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미워하기보다』는 이와 같은 존재에서 추출한 체험이 존재의식과 동화하거나 투영하면서 삶의 문제를 통한 현실적인 가치를 탐색하려는 그의 시적 경향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삶의 유한성에 깊이 천착하면서 그 시간성에서 탐지한 체험들이 차원 높게 형상화함으로써 그의 시학을 다시 정립시키고 있다. 김영일 시인은 지금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통해서 그가 구현하려는 시적 진실을 심도 있게 현현한 중견 시인으로서 그의 철학이나 인생관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데 특히 시집 『무얼하고 계시나』에서도 필자는 이미 ‘우리들이 현재를 살아가면서 가장 고뇌하는 인생(혹은 생명)에 관한 시적 화두가 그의 정서에 큰 축을 형성하고 있어서 우리 현대시가 바로 자신을 인식하고 성찰하면서 상상력을 확충하는 다양한 시법(詩法)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적시하여 공감을 피력한 바가 있다. 이 시집에서는 이러한 존재의 문제와 생명성의 융합을 외적인 자연 상황에서 탐색하는 특징을 읽을 수가 있는데 이는 그가 당면하는 삶의 근원이 바로 자연사물과의 그 중심에서 투영된 이미지가 시적 상황이나 주제로 연결되는 시법을 현현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 흐르는 소리는 흥겨운 춤입니다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만물의 근원이라는 물은 자연 속 모든 생명을 이어 줍니다 그러나 시냇가 푸른 이파리가 지난해의 것이 아니듯 흘러가는 시냇물 또한 어제의 물이 아닙니다 나무도 그렇고 냇물도 그렇듯 어제의 사람 가고 없어도 새로운 사람은 태어나 이어집니다 삶이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기에 오늘은 더욱 소중하고 거룩합니다. --「물소리」전문 우선 이 ‘물소리’에서 들려주는 청각적인 감정은 외적 사물에서 취택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가 열망하는 ‘생명’과 ‘삶’의 현실성이 그의 심저(心底)에서 분출하는 시적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는 ‘물’과 ‘생명’의 상관성에서 ‘만물의 근원이라는 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설정하고 ‘흘러가는 시냇물’과 ‘어제의 물’이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시간성을 시적인 발상으로 도입하고 있다. 또한 그는 ‘어제의 사람’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탄생하는 만고의 진리를 그의 생명에 대입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삶이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그의 진정한 삶과 생명의 의미를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물=생명’이라는 보편적인 원리보다는 ‘물소리’라는 어떤 탄생의 이미지와 흘러간다는 시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융합시킴으로써 유한한 삶(생명)의 진실을 투영해서 시적인 구성의 묘미를 접근하게 하고 있다. 잡목이 울창한 고요한 숲 계곡에 운무가 내려앉네 생명의 기백이 넘치는 물소리에 산새 소리도 힘을 보태네 산은 생명을 주고 묵묵히 지혜도 가르쳐 주네 --「지름길」중에서 그렇다. 김영일 시인은 여기에서도 ‘숲’, ‘계곡’, ‘산새 소리’, ‘물소리’ 등 ‘산’에서 ‘생명’에 대한 환희를 만끽하고 있다. 이 산에서 터득하는 ‘지혜’가 바로 그가 탐구하려는 존재의 한 단편을 발흥(發興)시키고 있는 시법이다. 그는 이 밖에도 ‘바람소리도 낙엽 구르는 소리도 / 징징거리는 넋두리도 아닌 / 생명을 잉태하려 울부짖는 소리(「백목련」중에서)’라거나 ‘새 생명 피운 잎 언저리에 / 싱그럽게 자라난 풋과일 / 오가는 눈빛에 정이 익네(「고행길」중에서)’ 그리고 ‘생명이 있는 것들은 반드시 떠난다는 / 이 허무한 법칙을 피할 수 없다(「부초 같은」중에서)’는 어조는 결국 ‘소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우주의 순환을 위한 순응(「귀뚜라미」중에서)’이라는 대진리를 감응(感應)하게 된다. 2. 떠난 ‘님’과 ‘메아리쳐 오는 회한’ 김영일 시인의 시적 레퍼토리는 대체로 존재문제에서 파생하는 삶의 지엽인 내면적인 요소로 축약(縮約)되는 한 경향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회한(悔恨)의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리움의 이미지는 그가 지금까지 출간한 시집 상당수에서 탐색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간직한 심성(心性)의 저변(底邊)에는 잊을 수 없는 대상이 상존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이 누구인지를 소상하게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작중 상황이나 화자 또는 그 어조가 ‘님’이거나 ‘당신’ 그리고 ‘떠난 사람’ 등으로 그의 뇌리에 잠재되어 있어서 그가 분사(噴射)하고자 하는 진실은 바로 그 대상에서 통감(痛感)하려는 심저를 이해하게 된다. 새가 되어 날아갑니다 어디론가 끝없이 가물가물 노을 너머로 달 밝은 산자락 졸졸거리는 냇가에 앉아 그날의 기억을 띄워 보냅니다 님은 떠나고 냇물은 혼자서 흘러갑니다 메아리쳐 오는 회한에 가슴을 쓸어안습니다. --「그리움」전문 김영일 시인의 ‘그날의 기억’에는 이미 떠나버린 ‘님’에 대해서 ‘메아리쳐 오는 회한’으로 ‘가슴을 쓸어안’는 ‘그리움’이 형상화 하고 있다. 대체로 보편적인 시법에서 자주 회자(膾炙)되는 바와 같이 작품 제재(題材)가 관념일 경우에는 내용이 바로 사물언어로 구성하여 전개하는 특성을 잘 살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서는 지난 번 발간된 시집에서도 ‘심리적 저변에는 그리움이라는 정한(情恨)이 각인(刻印)되어 있다. 대체로 이 그리움의 정체는 사랑과 연결되는데 그 사랑 자체가 현실적으로 해지(解止)되었거나 성취할 수 없는 비련(悲戀)의 현상으로 작용하는 경우’라는 필자의 견해를 피력한 바가 있다. 당신은 떠나갔습니다 강물 지키는 나룻배 타고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해 저문 나루터에 앉아 하늘을 바라봅니다 임자 잃은 나룻배도 강물처럼 소리내어 울고 있습니다 강물도 서러워 여울에 기댑니다 나룻배 타고 떠나간 당신이 마냥 그립습니다. --「그리움은 먼 곳에」전문 그렇다. 여기에서도 ‘당신은 떠나갔’다는 시적 상황에서 감득(感得)할 수 있듯이 아직도 그의 심중에서 서성이는 ‘그리움’은 ‘나룻배 타고 떠나간 당신이 / 마냥 그립습니다.’라는 어조로 결론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움’의 승화는 상당 부분의 작품에서 현현되고 있는데 ‘기억 속 청야(聽野)의 목소리 / 들리지 않습니다(「그 목소리」중에서)’, ‘별빛을 보며 그 모습 그려봅니다(「그 모습 그려봅니다」중에서)’, ‘허공에 흩어진 그리움이 / 창문에 방울방울 맺힙니다(「이슬꽃」중에서)’, ‘심상(心想)에 깊은 시름하니 / 베갯가 그리움이 치근거리네(「고백」중에서)’, ‘끝없이 메아리치는 그리움에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라.(「돌아가고 싶어라」중에서)’, ‘정처 없이 지나간 수많은 시간 / 그리움이 머릿속에 아른아른(「천성산」중에서)’, 그리고 ‘서산마루에 걸린 애처로운 하현달 / 그리움으로 다가오네(「흘라긴 세월」중에서)’ 등으로 애잔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슬픔은 언제나 산사람의 몫입니다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며 슬픔을 눌러야 합니다 안으로 다지고 다진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풀 수 없는 그리움만 자라게 합니다. --「머풀러」중에서 그에게서 회한과 그리움의 메시지는 위와 같은 어조로 대미(大尾)를 전해주고 있어서 우리들의 시 읽기는 더욱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3. ‘행복’과 ‘영혼의 갈등’ 그리고 성찰 김영일 시인은 다시 삶에서 탐구하는 인생론이 우선 ‘행복’에 그 초점을 겨냥하지만 현실적인 그 과정이나 영위에는 많은 갈등이 동반하게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인생을 반추하고’ 있다. 인생은 다시 살 수도 없고 다시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포기는 좌절과 탄식의 늪 꿈은 썩고 절망만 싹틉니다 --중략-- 인생을 살면서 죽는 순간까지 순간마다 자신의 일을 선택합니다 행복이란 행복을 느끼는 마음속에서 커지고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소유인 것 같지만 기술과 지혜의 문제랍니다. --「행복의 기준」전문 어찌보면 아주 평범한 언술로 보이지만 그가 설정한 인생의 가치와 목적은 ‘행복’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는 어조에서 ‘포기’, ‘좌절’, ‘탄식’, ‘절망’, ‘시련’ 등등의 인생의 고행(苦行)이 적시되고 있으나 이의 극복을 위해서 ‘인내’와 ‘선택’과 ‘꿈’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과 지혜’를 인생의 중심축으로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올바른 정행(正行)에는 다변적인 사유의 갈등도 동반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내적인 진실이 상호 융합을 위한 과정이며 존재의 지표를 구현하는 일일 것이다. 숨 고를 수 없을 만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눈빛 어제 떠난 사람 헛되이 보내는 오늘 갈망하는 내일 영원한 환상 묻고 추억으로 펼칠까 구름 밀치고 얼굴 붉힌 상현달 그 가슴에 고백할까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말보다 강한 것은 내면으로 쌓이는 속 깊은 심사(心事)여라. --「영혼의 갈등」전문 그는 ‘영원한 환상 묻고 / 추억으로 펼칠까’라는 의문형 어조로 지금까지의 삶과 삶에서 추구해온 행복의 실행들(‘헛되이 보내는 오늘 / 갈망하는 내일’)을 단순한 ‘추억’으로만 치부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할 것인지의 중대한 문제가 그의 갈등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그의 사유(思惟)의 결단이 바로 그가 궁극적으로 정립해야 할 인생론이며 가치관의 창출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 「무아경」중에서는 ‘타오르는 울화를 삭히려고 / 무아경(無我境)에 노니는 구름 / 환상의 꿈을 꾸며 마음을 비운다.’ 는 그의 내면의 의식을 이해하게 된다. 이 ‘무아경(無我境)’은 ‘마음이 한곳으로 쏠려 자신의 존재를 잊는 경지’라는 그가 붙인 주(註)와 같이 존재를 잠시 망각하는 참선의 경지에서 성찰하거나 존재 이유를 새롭게 탐색하는 시법으로 발현되고 있다. 그는 다시 작품 「참송」중에서도 ‘세상사 잊은 듯한 / 능(陵)의 표정처럼 / 무아경(無我境)에 빠지네’라거나 ‘시련과 행복을 안고 온 질곡의 늪에서 / 달팽이 봇짐 지고 부채춤 추며 가네.’라는 확고한 인생론이 ‘참송’이라는 사물에서 감득하는 ‘무아경’을 엿보게 하고 있다. 이러한 김영일 시인이 교감하고 동화하려는 어조는 영혼의 진상은 ‘심혼(心魂)이 띄워 낸 순백 / 귀의(歸依)하는 영혼인가요(「연꽃」중에서)’, ‘오랜 세월 그윽한 영혼의 소리를 / 잔잔한 나목 밭에 앉히면 / 약동하는 심장 소리가 / 새싹을 틔웁니다(「그 모습 그려 봅니다」중에서)’, ‘마음속 주인이 없다면 / 빈껍데기일 뿐 / 침묵은 무관심이 아닌 / 채워지지 않은 영혼의 갈등(「마른 잎」중에서)’ 등의 어조가 더욱 그가 갈구하는 삶의 목적에 대한 최대치의 해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 누군가에게 미움과 질투를 느낀다면 그것은 내 욕구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네 --중략-- 지금 누군가의 도움과 희생으로 여기 와 있다고 생각하네 서로 미워하기보다 감사할 일이네. --「미워하기보다」중에서 김영일 시인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이 작품에서 그가 명징(明澄)하게 표출하는 그의 순정적인 주제가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그가 지향하는 현실적 갈등을 해소(‘서로 미워하기보다 감사할 일이네.’)하고 영혼과의 소통을 위한 성찰로 부상(浮上)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앞에서 인생의 기준(‘행복의 기준’)에서 적시한 모든 시련이나 고행들을 무조건 미워하거나 배척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의 지적인 혜안으로 응시하면서 이를 포용하고 수금하면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통섭의 진정한 진실을 탐색하는 시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자연 감응과 서정시의 시법 김영일 시인은 자연과 교통하면서 자신의 심리적인 평정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자연 섭리의 순응에서부터 자연이 우리 인간들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에 대한 경건한 경의를 시적으로 그 환경이나 구도를 설정함으로써 서정시의 시법을 확고하게 정리하는 특성을 엿보게 한다. 우리 문학 특히 시에 있어서 자연에 대한 문제는 결코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자연은 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초자연적 존재와 그 관계 속에서 문학의 중요한 제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는 자연의 모방이며 자연의 현상이라는 정의처럼 자연은 문학의 진실성을 기준으로 하는 시학의 개념이기도 하다. 꽃 피는 시절이 있었네 그 세월을 붙잡고 그려 보네 그 세월이 영원한 줄만 알았는데 그 세월도 바람 따라 가고 없네 소쩍다 소쩍다 울면 풍년이고 부엉새가 양식 없어 어쩔꼬 울면 흉년이 온다고 하던 새소리 물소리 가득한 산촌 일순간의 충동이 숨을 멎게 하듯 방천(防川) 버들강아지는 움을 트고 잔설 듬성듬성한 구미산 기슭에는 산노루 발길만이 무성하네. --「산촌 풍경」전문 보라. 김영일 시인은 우선 ‘산촌’이라는 자연에서 감응하는 정서의 순정성을 읽게 되는데 이는 그가 항상 대하면서 교감하는 자연에서 당연히 이미지나 소재 그리고 테마까지도 취택하는 필연이 상존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안온한 자연의 품속을 그리워하고 그 품속을 노래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품속이 어느덧 ‘세월’이라는 무형의 시간성에서 갈등하게 된다. 이러한 서정적 원류에서 자아를 동화하거나 투사하는 시법으로 자연을 순응(‘새소리 물소리 가득한 산촌’)하고 있어서 그의 심중(心中)에는 지금까지도 고향을 포함한 그 ‘산촌’을 잊지 못하는 정경(情景)에 우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다시 이러한 고즈넉한 풍경에서도 ‘그 세월을 붙잡고 그려 보네 / 그 세월이 영원한 줄만 알았는데 / 그 세월도 바람 따라 가고 없네’라는 허무의 일단을 적시하면서 무한의 시간성과 결부하여 인생의 소회(素懷)를 담담하게 그리고 서정적으로 현현하고 있다. 산새 지저귀는 숲속 그 시절 그리워 멀리서 날아든 참새 한 쌍이 감나무 위에서 지저귀네 재채기와 사랑은 감출 수 없다던가 앵두꽃이 심사를 위로하네 눈길 닿으면 얼굴 붉히는 사람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떠나는가 길섶 보랏빛 제비꽃도 동풍에 몸을 떨며 슬피 우는 것 같네. --「제비꽃」전문 역시 자연과의 정적인 감응이다. ‘제비꽃’이라는 사물에서 애련(哀戀)의 이미지를 추출하고 있다. 이것이 김영일 서정시학의 정점이다. 이는 동화(assimilation-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내적으로 인격화하는 원리)의 시법이다. 그는 ‘제비꽃’을 직접 보거나 상상력을 재생하면서 ‘산새 지저귀는 숲속 / 그 시절 그리워’라는 자신에게 내재된 심원(心願)의 일단을 발현하고 있다. 김영일 시인이 이러하듯이 자연서정과 동화는 ‘달맞이꽃’, ‘복사꽃’, ‘진달래꽃’, ‘다래꽃’, 등 지천으로 널려서 피는 꽃들에서 흡인하는 이미지들이 그의 서경적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의 인간화는 시학에서 감상적 오류라는 말로 우리 시인들이 즐겨 상용(常用)하는 시법이다. 또한 김영일 시인은 작품 「연둣빛」전문에서 ‘위대한 소생인가 / 동장군 칼춤도 이겨낸 전사들 // 약동하는 신천지에 깃발 꽂고 / 푸른 꿈 펄럭이며 / 나목 가지마다 파란 움 틔우고 // 진달래 꽃동산에 / 새들도 깃털 다듬어 재잘재잘 / 뻐꾸기, 소쩍새가 연둣빛을 지저귀고 // 분주한 생각이 오가는 설렌 가슴 / 밤잠을 뒤척인다.’는 소박하고 순정적인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한편 그는 ‘봄맞이’, ‘봄의 정기’, ‘봄소식’, ‘봄비’, ‘가을바람’, ‘겨울꽃’, 등 계절적인 시간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맥(詩脈)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작품 「사계절」중에서 ‘봄에는 연둣빛 새순을 틔우고 / 여름에는 푸른 숲을 이룬다 / 가을에는 오색 단풍으로 장식하다가 / 어느새 눈 덮인 겨울 산’이라는 어조에서 시간과 계절의 신비로운 조화를 명징하게 적시하는 시법으로 자연과 시간과의 화해를 통한 서정성을 흡인시키고 있다. 5. 결- ‘인생길’의 화해 일찍이 비평가 M. 아놀드가 말했듯이 시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 김영일 시집 『미워하기보다』를 일별하면서 이처럼 인생론과 아주 밀착된 그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소중한 체험들이 상상력으로 재생되면서 우리 인간들의 생명을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이미 그의 소회를 밝혔듯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할 수 있는, 가슴을 울리고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다는 진솔한 시적 사유의 근간(根幹)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는 대체로 이 시집을 통해서 삶과 생명의 예찬에서 획득하는 가치관의 재확인과 보편적인 삶에서 투영하는 인생 회한의 그리움 그리고 한생을 영위하면서 감내(堪耐)해야 하는 행복의 열망에서도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와중에는 영혼을 위한 순수 지향점이 갈등으로 변환하는 과정 등이 그의 지적자양을 가미한 하나의 이정표를 설정하고 이제 인생의 결실을 수확하는 고차원의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즐거움과 행복은 잠깐 머물고 질곡의 시련은 거칠고 깁니다 한 송이 목련꽃을 피우기 위해 한 겨울 견뎌낸 숱한 시련 꽃과 잎을 틔울 대장전입니다 시련 없이 맺는 열매 어디 있나요 고난 없는 영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눈물 없는 행복도 그냥 오지 않습니다 칠월칠석 견우성과 직녀성의 재회도 갈등과 애증이 피운 선물인가요 은하수가 기립박수하는 환희의 잔칫날도 다시 만남을 위한 여정 이별의 아픔도 만남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인생길」전문 김영일 시인은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여정이 ‘시련 없이 맺는 열매’와 ‘고난 없는 영광’과 ‘눈물 없는 행복’을 자성(自省)하는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인생철학으로 서서히 결승점을 향하고 있어서 동시에 그의 시적 진실도 그의 ‘인생길’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떼뉴는 그의『수상록』에서 ‘인생의 효용은 그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사용하기에 달려 있다. 짧게 살고도 오래 산 자가 있다.’ 그리고 ‘인생은 본시 선도 악도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선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악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는 명언과 같이 이 작품「인생길」에서는 인생의 생명 유한(有限)이 영원을 갈구(渴求)하는 최후의 여망으로 생몰(生沒)이라는 인생의 대명제를 시로서 승화하는 지혜가 바로 김영일 시학의 원류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