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제목으로 본 여인의 한(恨)
지금이야 여성상위시대라 남자들이 오히려 기죽어 살지만, 불과 2, 3십년전만 해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홀대받기 일수였지요. 그러니 사내들의 서슬이 시퍼렇던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겠지요. 억눌려 살았던 여자들의 원망(怨)과 한(恨)이 한시의 제목으로도 눈에 많이 띄는데, 다만 한문을 배운 일부 사대부집 여인과 기녀(妓女)의 작품에서 엿볼수 있습니다(남자가 여자를 대변해서 쓴 경우도..). 아이러니하게도 대다수의 교육을 받은 반가(班家)의 여자들은 한문에 익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인묵객의 놀이터었던 기방(妓房)에 漢詩를 해득하고 직접 지을 수 있는 여인(解語花)이 적지 않았지요,
여자가 '한(恨)'을 품게 되는 과정은 처지와 신분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시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상함(傷)이 시름(愁)이 되고 시름이 깊어지면 원망(怨)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망이 쌓이면 마침내 한(恨)이 되는 거지요.
1. 속상함(傷)
自傷(속상해) / 梅窓(조선, 1573~1609)
一片彩雲夢 覺來萬念差(일편채운몽 각래만념차) 한조각 꽃구름 이는 꿈 깨어나면 오만 생각이 다 나네
陽臺何處是 日暮暗愁多(양대하처시 일모암수다) 임과 만날 누대는 어디런고, 날은 저물어 어둑하고 시름만
더해가는데
自傷(속상해) / 梅窓(조선, 1573~1609)
夢罷愁風雨 沈吟行路難(몽파수풍우 침음행로난) 꿈을 깨니 근심스런 비바람에 세상살이 어려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네
慇懃樑上燕 何日喚人還(은근량상연 하일환인환) 들보 위의 제비야 어느 날에나 은근히 임을 불러 돌아오려니
(*본명은 향금(香今), 매창(梅窓)은 호인데 계랑(癸娘 또는 桂娘)이라고도 부름. 詩文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는데, 특히 유희경과의 로맨스는 유명하지요. 부안(扶安)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名妓로 쌍벽을 이루는데, 미인박명이라던가, 37세에 요절하지요. 문집으로 '梅窓集')
2. 시름(愁)
離愁(이별의 시름) / 李玉峰(조선, 1550년대 후반에 출생 35세 쯤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深情容易寄 欲說更含羞(심정용이기 욕설갱함수) 속마음 쉬이 전하려 말려니 더욱 부끄럽네요
若問香閨信 殘粧獨依樓(약문향규신 잔장독의루) 만일 내 소식 묻거든 화장 안 지우고 홀로 누각에 기대있다
하소서
(*玉峰은 호이고 본병은 숙원(淑媛).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충북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입니다. 비록 첩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재주가 뛰어나 남의 첩살이를 원치 않았고 시인묵객들과 어울였다 하지요. 그러던 중 조원이라는 젊은 선비와 만나 사랑에 빠져 첩실로 들어가지요. 그러나 재주많은 게 화가되어 조원(趙瑗)으로 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春愁(봄 시름) / 錦園(1817~?, 조선 순조대) --後聯
上有黃隱啼未己(상유황은제미기) 나무 위 꾀꼬리 울음 그치지 않는 것은
不堪趣紂送人時(불감취주송인시) 임을 보내는 슬픔 이기지 못함입니다
(*錦園은 그녀의 호로 때로는 남장을 하고 금강산 등 관동지방과 의주 등 관서지방 그리고 한양 일대를 유람하면서 시를 썼다고 합니다. 여성의 신분이 신장하기 시작하던 당시, 여류시인의 모임인 삼호정(三湖亭)시단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고 하네요.)
3. 원망(怨)
閨怨(신부의 원망) / 王昌齡(698~765, 盛唐) -後聯 ☞ 閨는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방을 지칭
忽見陌頭楊柳色(홀견맥두양류색) 문득 길가의 버드나무 파랗게 잎 피어났음을 보더니만,
悔敎夫壻覓封侯(회교부서멱봉후) 높은 벼슬 구하라고 남편을 멀리 보낸 걸 못내 후회하는구나
(*왕창령은 이백과 동시대의 무인 겸 시인으로 변새시(邊塞詩)를 많이 지은 이로 알려져 있는데, 위의 시는 남편을 출세시키기 위해 변방으로 보낸 어린 신부의 뒤늦은 회한을 남자인 작가가 대신 읊은 것)
閨怨(소녀의 원망) / 林悌(1549-1587, 조선)
十五越溪女 羞人無語別(십오월계녀 수인무어별)
歸來掩重門 泣向梨花月 (귀래엄중문 읍향이화월)
열다섯 살의 아리따운 아가씨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헤어졌네.
돌아와 문닫아 걸고는 배꽃 하얀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조선조 손꼽히는 바람둥이 임제는 여인의 마음을 잘 아는 詩客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 역시 마치 여인이 직접 쓴듯하지요.)
閨怨(아내의 원망) / 許蘭雪軒(1563~1589, 조선) -後聯
瑤琴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부견) 거문고 타고 있어도 임은 보이지 않고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 연꽃은 연못 속으로 시들어 떨어지는구나.
(*허난설허은 허균의 친누나로 三唐시인 중 최고라는 이달에게서 시를 배움. 못난 남편과 시어미 구박에다 아들 딸 두 자식마저 먼저 보내고 시름속에 28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지요. 美人薄命!)
閨怨(아내의 원망) / 曺臣俊(1573~?, 조선)
金風凋碧葉 玉淚銷紅頰(금풍조벽엽 옥루소홍협)
瘦削只緣君 君歸應棄妾(수삭지연군 군귀응기첩)
가을바람에 푸르던 잎은 시들고, 옥 같은 눈물 붉은 뺨을 지우네.
여윈 것이 그대 때문이련만, 임 돌아와 보고는 산다 안 산다 하시려나
(*조신준은 선조대의 문인. 위 시는 여인의 심정을 잘 대변한 작품임.)
閨怨(一)(여자의 원망) / 梅窓(1573~1610, 조선) -前聯
離懷悄悄掩中門(이회초초엄중문) 이별의 아픔품고 소리없이 문을 닫아 거니
羅袖無香滴淚痕(나수무향적루흔) 비단 소매엔 임의 향기는 없고 떨어진 눈물자욱만
閨怨(二)(여자의 원망) / 梅窓(1573~1610, 조선) -前聯
相思都在不言裏(상사도재불언리) 서울 계신 그리운 임께 심중을 말도 못하고
一夜心懷鬢半絲(일야심회빈반사) 하룻밤 시름으로 머리는 반백이 되었네
昭君怨(왕소군의 원망) / 東方虯(동방규, 5세기 初唐)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엔 꽃과 풀이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 절로 옷과 띠가 느슨해진 것이지 이것이 몸매를 위한 것은 아니라오
(*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 동방규(東方虯)란 무명의 시인이 漢나라의 미인 왕소군을 두고 읊은 소군원삼수(昭君首) 가운데 세 번째 연에 나옵니다. 오랑캐 땅으로 끌려간 절세미인 왕소군이 향수병으로 여위어가는 가련한 모습을 그린 시로, 왕소군은 날으는 기러기 조차 그 미모에 취해 떨러졌다 하여 落雁이라는 별명이 있지요. '春來不似春'이란 명구는 이름도 없는 동방규라는 이의 시에서 나옵니다.)
秋怨(가을의 원망) / 魚玄機(843?~868? 晩唐) -前聯
自歎多情是足愁(자탄다정시족수) 정이 많은 것도 바로 시름임을 절로 탄식하나니
況當風月滿庭秋(황당풍월만정추) 하물며 바람과 달빛 가득한 가을 뜨락에서랴
(*어현기(魚玄機)는 당나라 후기의 여류시인으로, 당대의 문인 皇甫枚는 그녀를 “얼굴은 경국지색이요, 재주는 신의 경지에 이르러 책읽고 글짓는 것을 좋아하여 짓고 읊조리는 것에 정성을 다했다 (色旣傾國, 思乃入神, 喜讀書屬文, 尤致意于咏.)”고 극찬한다. 그녀는 당대의 많은 유력 인사들과 염문을 뿌렸는데, 치정관계로 연적인 녹교(綠翹)를 죽여 젊은 나이로 처형을 당한다, 佳人薄命이라던가~~)
2. 한(恨)
閨恨(여인의 한) / 李玉峰(조선, 1550년대 후반에 출생 35세 쯤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後聯
衾裏泣如氷下水(금리읍여빙하수) 이불속의 흐느낌 얼음장 밑의 물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일야장류인부지) 밤낮을 내내 흘러도 남들은 알지 못하네
(*이옥봉은 허난설헌에 비견할 재능을 지닌 여류시인으로, 졸장부 조원의 후실로 들어갔다 내침을 받고 지은 시 -_-;;
시제로는 閨情이라 붙어 있는 것도 있음)
別恨(이별의 한) / 李玉峰(조선) --後聯
鷄聲聽欲曉(계성청욕효) 닭우는 소리 들리고 새벽이 밝아오는데
雙瞼淚千行(쌍검루천행) 두 뺨에 천갈래 눈물이 흐르네
自恨(스스로 한이되어) / 梅窓(1573~1609 조선)
春冷補寒衣 紗窓日照時(춘냉보한의 사창일조시) 봄날이 차 겨울웃 꿰매는데 사창에는 햇빛 비치고
低頭信手處 珠淚滴針絲(저두신수처 주루적침사) 머리숙여 손길 가는대로 맡기는데 구슬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秋恨(가을의 한) / 許蘭雪軒(1563~1589, 조선) --後聯
霜冷玉籠鸚鵡語(상냉옥룡앵무어) 서리 차가운 새장에 앵무새는 우는데
萬階梧葉落西風(만계오엽낙서풍) 가을 바람에 떨어진 오동잎 뜰에 가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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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나 또는 즉흥적으로 시를 지은 것으로 가장
1. 우연히 읊다(偶吟)
우음(偶吟)-서거정(徐居正)
心院風恬柳影多(심원풍념류영다) : 깊은 원에 바람은 부드럽고 버들잎은 짙은데
寒塘雨足長蒲芽(한당우족장포아) : 차가운 못에 비는 흡족하여 부들이 무성하다
閑愁正與春相伴(한수정여춘상반) : 한가한 시름이 봄과 서로 친구되니
獨坐無言數落花(독좌무언삭낙화) : 혼자 앉아 말 없이 지는 꽃잎만 헤아린다
偶吟(우연히 읊다) / 曺植(1501~1572, 조선)
人之愛正士(인지애정사)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사랑하는 건
好虎皮相似(호호피상사)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네
生卽欲殺之(생즉욕살지) 살았을 땐 죽이지 못해 안달이고
死後方稱美(사후방칭미) 죽은 후엔 (호피가) 아름답다 떠들지
(*조선조 곧은 선비의 표상이라 할 수있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선생. 생의 지표로 삼았던 개혁정치가 조광조(趙光祖)의 비참한 최후를 보면서 끝내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 묻혀 후학들을 가르친 선비 중의 선비다.)
偶吟(우연히 읊다) / 宋翰弼(조선 선조대)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오늘 아침 바람에 지누나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가련하다 짧은 봄날이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비바람 속에 왔다 가누나
(*형님인 송익필과 함께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고지식한 학자가 지은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감성적이고 애틋한 내용이다.)
犬浦偶吟 (견포에서 우연히 읊다)/ 이규보(李奎報, 1168~ 1241 고려 무신정권시 )
雨晴草色連空綠(우청초색련공록) : 비 개이니 풀빛은 하늘과 같이 푸르고
風暖梅花度嶺香(풍난매화도령향) : 바람 따스하니 재 넘어 매화 향기 풍겨온다
薄宦江涯良悒悒(박환강애량읍읍) : 강가를 걷는 나의 마음 울적한데
春光何況攪離腸(춘광하황교리장) : 봄빛은 어이 애간장을 흔들어 놓는가
2. 즉흥적으로(卽事) 읊다
즉사(卽事)-두보(杜甫)
暮春三月巫峽長(모춘삼월무협장) : 늦은 봄 삼월 달, 무협은 길기도 한데
皛皛行雲浮日光(효효항운부일광) : 희고 흰 지나가는 구름이 햇빛에 떠있어라.
雷聲忽送千峯雨(뇌성홀송천봉우) : 우렛소리 홀연히 천 개의 봉에 비를 보내니
花氣渾如百和香(화기혼여백화향) : 꽃기운은 백 가지를 섞어 만든 향기 같아라.
黃鶯過水翻廻去(황앵과수번회거) : 꾀꼬리는 물을 지나 날개 치며 돌아가고
燕子銜泥濕不妨(연자함니습부방) : 제비는 흙을 물어 젖어도 꺼리지 아니한다.
飛閣卷簾圖畫裏(비각권렴도화리) : 날아갈 듯한 누각에서 주렴을 걷으니 그림 속으나
虛無只少對瀟湘(허무지소대소상) : 허무하게도 오직 소상을 상대할 것은 드물어라.
즉사 / 두보
天畔群山孤草亭 하늘 가 온 산에 풀 정자가 외롭고
江中風浪雨冥冥 강의 풍랑에 비가 어둡게 내린다
一雙白漁不受釣 한 쌍의 흰 고기도 낚이지 않고
三寸黃甘猶自靑 세치의 누런 감굴은 오히려 푸르다
多病長卿無日起 병많은 사마상여는 일어날 날이 없고
窮途阮籍幾時醒 궁핍한 길의 완적은 언제쯤 깨어나나
未聞細柳散金甲 세류영에서 무장을 풀었다는 소식 들려오지 않고
腸斷秦川流濁涇 애 끊어지는 장안에는 탁한 경수가 흐른다
草堂卽事(초당에 붙여)/ 두보
荒村建子月(황촌경자월) 때는 동지달 황폐한 촌마을
獨樹老夫家 한구루 나무가 서 있는 이 늘은이의 집이로다
독수노부가
雪裏江船渡 바라보면 눈보라속 강배가 지나가고
설리강선도
風前逕竹斜 바람에 길섭 대숲히 휩슬리도다.
풍전경죽사
寒魚依密藻 추위에 물고기들 마름풀속으로 모여들고
한어의밀조
宿鷺起圓沙 간밤에 들었든 해오라기 모래벌에서 나온다.
숙노기원사
蜀酒禁愁得 이런날 촉주 한잔이면 시름 이겨 내련만
촉주금수득
無錢何處여 돈 없으니 어디서 외상술을 먹으랴.
무전하처여
*建子月=11월 *逕=길섶
*密藻=무성한 수초 *禁=當의 뜻
*여=외상술.
두보 본가의 형국을 묘사하고 있다. 강가 한촌의 초라한 초가임을 알수있게 한다.
궁핍한 아쉬움은 있으나 개인 생활의 다른 욕심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卽事(즉흥적으로) / 王安石(北宋)
河流南苑岸西斜 風有晶光露有華
門柳故人陶令宅 井桐前日總持家
강은 남원을 흘러 언덕 서쪽으로 기우는데
바람엔 맑은 빛이 있고 이슬에는 꽃의 화려함이 있네.
문앞의 버들은 옛 도령의 집이요
우물가의 오동은 전날 총지의 집이라.
嘉招欲履盃中淥 麗唱仍添錦上花
便作武陵樽俎客 川源應未少紅霞
좋은 모임에서 술잔을 거듭 비우려 하는데
아름다운 노래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한 듯
문득 무릉의 술과 안주를 즐기는 손이 되어
내 근원에 응당 붉은 노을이 적지 않으리라.
(*왕안석(王安石)은 북송(北宋) 중엽, 군사비 팽창에 의한 경제적 파탄을 구하려고 획기적인 신법(新法)을 실시한 정치적 귀재(鬼才)일 뿐 아니라 송(宋)나라 시대의 시풍(詩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이 시는 그가 만년(晩年)에 정계를 떠나 남경(南京)의 한적한 곳에 은거하면 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初夏卽事(초하즉사)초여름 날에 짓다-王安石(왕안석)
石梁茅屋有彎碕석량모옥유만기
流水賤賤度兩陂유수천천도양피
晴日暖風生麥氣청일난풍생맥기
綠陰幽草勝花時녹음유초승화시
둥그런 기슭에 돌다리 초가집 있고
흐르는 물은 졸졸 양 언덕을 지나간다.
갠 날 따뜻한 바람에 보리 기운 나고
숲 그늘 그윽한 풀이 꽃 필 때보다 좋아라
*왕안석(王安石,1021~1086) 중국 송 때의 문필가이자 정치인 자(字)는 개보(介甫), 호(號)는 반산(半山)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으며 만년(晩年)에는 한자(漢字)의 연원과 제자(製字) 원리 등을 연구하여 자설(字說)이라는 책을 남기기도 하였다. 왕임천문집(王臨川文集), 임천집습유(臨川集拾遗) 등의 문집(文集)이 전해진다.
夏日卽事(여름날 즉흥적으로) / 李奎報(1168∼1241, 고려)
簾幕深深樹影廻(염막심심수영회) 주렴 장막 깊은 곳에 나무 그늘 돌아들고
幽人睡熟鼾聲雷(유인수숙한성뢰) 팔자좋은 이 양반 잠이 깊어 우레 같이 코를 고네
日斜庭院無人到(일사정원무인도) 해 빗겨드는 정원에 올 사람 없는데,
唯有風扉自闔開(유유풍비자합개) 오직 바람에 사립문이 저절로 여닫치는구나
*고려조의 대시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여름 날(夏日卽事)' 은 참으로 한가롭기만 합니다. 무신정권의 서슬퍼런 치하에 왜소해진 글쟁이들의 주눅든 처지가 어디에도 없고, 그의 다른 시처럼 해학과 페이소스가 넘칩니다.
途中卽事(길가다 즉흥적으로) / 金克己(김극기, 1148~1209 고려)
一逕靑苔濕馬蹄(일경청태습마제)
푸른 이끼에 말발굽 젖는 외줄기 산길
蟬聲斷續路高低(선성단속로고저)
매미소리 끊어질듯 이어지는 험한 길
窮村婦女猶多思(궁촌부녀유다사)
궁촌의 아낙네는 오히려 생각이 많아
笑整荊釵照柳溪(소정형채조류계)
웃으며 비녀 고치고 시냇물에 비춰 보네
이끼 낀 산길이라, 인적이 드문 산골이다. 끊어질듯 하면서도 한없이 이어지는 매미소리처럼 산길도 오르락내리락 하며 이어진다. 窮僻(궁벽)한 산골 마을 근처를 지나는데 한 여인네가 보인다. 마을만큼이나 여인의 행색도 누추하다. 그러나 이 시인의 따뜻한 눈길에는 번잡한 거리의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보다 더 곱게 보인다. 깨끗한 계곡 물에 머리를 감고 비록 나무 비녀일지라도 곱게 고쳐 매는 가난한 시골 여인의 순박한 미소가 너무 사랑스럽다. 버드나무 밑에서 자신의 얼굴을 시냇물에 비춰 보면서 낯선 나그네에게 곱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여자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성형 미인보다 자연 미인이 더 싱그럽다. 김극기는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에 뜻이 없이 농민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애환을 농민 편에 서서 읊었던 민중 시인
晨興卽事(새벽에 일어나 즉흥적으로) / 李穡(1328-1396 , 고려말),
湯 沸 風 爐 鵲 噪 簷 (탕비풍로작조첨)
老 妻 盥 櫛 試 梅 鹽 (노처관즐시매염)
日 高 三 丈 紬 衾 煖 (일고삼장주금난)
一 片 乾 坤 屬 黑 甛 (일편건곤속흑첨)
풍로에서는 물이 끓고 까치는 처마에서 우는 데,
늙은 아내는 세수하고 음식의 간을 맞추네.
해가 높이 오르도록 명주 이불이 따뜻하니,
한조각 하늘과 땅을 낮잠에 맡기네.
<어휘>
卽事 : 그 자리에서의 느낌으로 시를 지음.
盥櫛 : 盥은 세수, 櫛은 머리를 빗음.
試梅鹽 : 음식의 간을 맞춤
日高三丈 : 아침해가 높이 오름
黑甛 : 낮잠
卽事/吉再(1353~1419)
盥手淸泉冷 臨身茂樹高 冠童來問字 聊可與逍遙.
(관수청천냉 임신무수고 관동내문자 요가여소요)
손 씻을 맑은 샘물이 차고, 몸 붙일 무성한 나무 높구나.
어른과 아이들 와서 글을 물으니, 그런대로 더불어 소요할 만하네.
卽事 : 눈앞 사물을 즉흥으로 읊음.
盥手 : 손을 씻음.
冠童 : 관을 쓴 사람과 아이 곧 어른과 아이.
聊 : ① 애오라지[마음이 부족하나마 겨우]. 좀. 잠시. ② 즐거워하다. ③ 편안하다.
逍遙 : 한가로이 이리저리 거닐음. 산책.
즉사 /김시습 (金時習) 매월당집(梅月堂集)
張翰都忘身後名(장한도망신후명)。
卽時杯酒占平生(즉시배주점평생)。
夷齊孔跖俱塵土(이제공척구진토)。
不及柴桑醉似泥(불급시상취사니)。
장한은 죽은 뒤의 명예 따위는 모두 잊고서
그 즉시 술을 따르며 평생을 보냈네.
백이, 숙제와 공자, 도척이 모두 한줌 흙이 되었으니
곤죽이 되도록 취하여 살았던 도연명만도 못하네.
즉사(卽事)-서거정(徐居正)
小沼如盆水淺淸(소소여분수천청) : 동이 같이 작은 늪은 얕고 물은 맑아
菰蒲新長荻芽生(고포신장적아생) : 줄풀과 부들 새로 자라고 갈대는 싹이 튼다
呼兒爲引連筒去(호아위인연통거) : 아이를 불러 물 끌어 통을 이어가니
養得芭蕉聽雨聲(양득파초청우성) : 파초를 길러서 빗소리 듣고 싶어서라네
初夏卽事 /徐居正
濃陰寂寂小樓西(농음적적소루서)
細草池塘綠已齊(세초지당녹이제)
不識角巾花雨濕(불식각건화우습)
倚欄終日聽鶯啼(의란종일청앵제)
그늘 짙고 고요한 작은 누각 서쪽
고운 풀 자란 연못가엔 녹음 고르다.
절각건 꽃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서
난간에 기대어 종일 꾀꼬리 소리 듣는다.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제목은 '초여름의 즉흥시'이라는 뜻이다. 즉사(卽事)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나 겪은 일에 대한 느낌을 그자리에서 읊은 즉흥시를 의미한다. 그늘 짙고 고요한 작은 누각, 연못가에 푸르름을 뽐내는 고운 풀들, 두건이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언제까지고 꾀꼬리 우는 소리에 젖어 있는 문사, 초여름 어느날의 안온함과 여유로움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곱게 그려져 있다. 각건(角巾)은 절각건(折角巾)으로, 옛날 문사(文士)나 도인(道人)들이 쓰던 위가 구부러진 두건을 말한다.
山中卽事(산속에서 즉흥적으로) /李彦迪(1491-1553)
雨後山中石澗暄(우후산중석간훤) : 비 갠 산속에 골짜기 물 요란하고沈吟竟日獨憑軒(침음경일독빙헌) : 생각에 잠겨 시를 읊으며 종일토록 집에 있네.平生最厭紛囂地(평생최염분효지) : 평생에 가장 싫은 일 분분한 세상사惟此溪聲耳不煩(유차계성이불번) : 오직 계곡 물 소리 듣기도 좋구나.臥對前山月色新(와대전산월색신) : 누워서 앞산을 보니 달빛도 새롭고天敎是夕慰幽人(천교시석위유인) : 하늘이 오늘 저녁 숨어사는 나를 위로하신다.沈痾忽去神魂爽(침아홀거신혼상) : 묵은 지병 물러가니 정신도 상쾌하고胸次都無一點塵(흉차도무일점진) : 가슴 속에는 한 점 티끌도 없어라
幽鳥聲中午夢闌(유조성중오몽란) : 그윽한 새소리에 낮 꿈을 깨어
臥看巖上白雲閑(와간암상백운한) : 누워서 바라보니 바위 위엔 흰 구름이 한가하다.
年來世事渾無意(년래세사혼무의) : 해마다 세상일에 아무 생각 없고
吾眼猶宜對碧山(오안유의대벽산) : 내 눈은 여전히 푸른 산만 바라보노라.
山中卽事 / 曺 植(1501~1572, 조선)
從前六十天曾假[종전육십천증가] : 이 전의 60년은 하늘이 복을 더하여 주었으니
此後雲山地借之[차후운산지차지] : 이 뒤로는 구름과 산의 땅에서 빌려야 겠구려.....
猶昰窮塗還有路[유시궁도영유로] : 오히려 이 곤궁한 처지도 영위할 길이 있나니
却尋幽逕採薇歸[각심유경채미귀] : 조용한 오솔길 찾아 향초 캐어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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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卽事 2
日暮山童荷鋤長[일모산동하서장] : 해는 저무는데 산골 아이는 호미 길게 둘러메고
耘時不問種時忘[운시불문종시망] : 김 맬 때를 묻지 않아 심을 때를 잊는구나
五更鶴唳驚殘夢[오경학려경잔몽] : 새벽녘 학 울음에 놀라 꿈속을 헤매이니
始覺身兼蟻國王[시각신겸의국왕] : 이 몸이 개미 나라의 왕을 다했음을 깨우치네.
(*曺 植[조 식 : 1501-72] 조선시대의 학자, 자를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세상에 나오지 않고 두류산[頭流山]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독특한 학문을 이룸. 조정에서 수차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 함.
저서에 남명집[南冥集], 남명학기[南冥學記], 파한잡기[破閑雜記]등이 있슴.)
즉사(卽事)-정철(鄭澈)
萬竹鳴寒雨(만죽명한우) : 온갖 대잎에 차가운 비 울고
迢迢江漢心(초초강한심) : 아득히 먼곳은 한강의 강심이다
幽人自多事(유인자다사) : 묻혀 사는 사람 스스로 일이 많아
中夜獨橫琴(중야독횡금) : 한밤중 나만 홀로 거문고 타본다
즉사
병에 젖어서 병든 줄을 까맣게 잊고
늘 한가해서 한가함이 되레 싫구나.
계단을 고쳐 맑고 푸른 물을 내려다보고
나뭇가지 잘라내어 산봉우리 드러낸다.
대나무에 물을 주며 아침저녁 다 보내고
구름을 뒤쫓아서 갔다가는 돌아온다.
밤이 되면 할 일이 더는 없기에
달을 마중하러 사립문에 기대선다.
卽事/정경세
慣病渾忘病(관병혼망병)
長閑却厭閑(장한각염한)
補階臨淨綠(보계임정록)
刊樹露孱顔(간수노잔안)
灌竹晨仍夕(관죽신잉석)
尋雲往復還(심운왕부환)
淸宵更無事(청소갱무사)
邀月倚松關(요월의송관)
조선 중기의 저명한 문신이자 학자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 ~1633)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다. 긴 병을 앓다보니 무료하고 심심하여 못 견디겠다. 그래서 병자라는 것도 잊고 소일거리를 찾아본다. 계단을 고쳐 맑은 못도 내려다 보고, 무성한 가지를 쳐서 푸른 산도 후련하게 보이게 한다. 대나무에 물을 준다고 괜히 아침저녁 오락가락하고, 흰 구름을 찾아 산 아래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낮에는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문제는 밤이다. 더는 일할 거리가 없어 달을 구경한다는 핑계로 문밖을 나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 것만 같다.
卽事/이성일
明月掛天心 分明兩鄕見 浮雲亦何意 能成片時眩.
(명월괘천심 분명양향견 부운역하의 능성편시현)
밝은 달이 하늘 복판에 걸렸으니, 분명히 두 고을을 보리라.
뜬 구름은 또 무슨 뜻을 가졌길래, 잠깐 동안 달을 가려 현혹케 하는고.
天心 : ① 하늘의 중심. ② 하늘 곧 천제의 마음.
兩鄕 : 두 고을. ‘고향[또는 조선]과 여기 일본’을 말함.
片時 : 잠깐 사이. 잠시.
眩 : 어지럽다. 어둡다. 현혹되다.
卽事/이옥봉
柳外江頭五馬嘶(유외강두오마시) 버들 너머 강 머리 오마가 울어대니
半醒半醉下樓時(반성반취하누시) 반쯤 깼다 반쯤 취해 다락에서 내릴 때로세
春紅欲瘦臨鏡粧(춘홍욕수림경장) 화장이 얇을세라 경대 앞에 앉아
試畫梅窓却月眉(시화매창각월미) 시험 삼아 매화 창의 반달눈썹 그린다오
이 시에 대해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에서, “이옥봉의 「즉사(卽事)」 시에 ······라 하였고, 「규정(閨情)」 시에는, ······하였는데, 모두 멋과 운치가 있다(玉峯詩(옥봉시) 如卽事(여즉사) 柳外江頭五馬嘶(유외강두오마시) 半醒半醉下樓時(반성반취하루시, 案嘉林世稿(안가림세고) 作半醒愁醉(작반성수취)) 春江欲瘦臨粧鏡(춘강욕수림장경) 試畵樓窗却月眉(시화루창각월미) 閨情(규정) 有約郞何晩(유약랑하만)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虗盡鏡中眉(허진경중미) 皆有情致(개유정치)).”라 평하고 있다.
秋日山中卽事(가을날 산속에서 즉흥적으로) / 왕석보(조선말)
高林策策饗西風 - 나무 숲 우수수 바람 앞에 울부짖고
霜果團團霜葉紅 - 과실모두 서리 멎어 잎새 함께 붉엇구나
時有隣鷄來啄栗 - 이웃 달가 모아들어 널은서속 쪼아먹되
主人看屋臥庭中 - 주인은 모르고서 뜰위에서 잠만자네
東晉 시대 도연명의 雜詩 12수 가운데 첫번째 시에 나옴.
自遣 (스스로를 보내며) / 李白
對酒不覺瞑(대주불각명) 술잔 기울이다 보니 어두어지는 줄 몰라
落花盈我衣(낙화영아의) 꽃이 떨어져 내 옷깃을 덮었는데
醉起步溪月(취기보계월) 취한 채 일어나 달 비친 개울을 걸어 간다
鳥還人跡稀(조환인적희) 새들는 둥지로 돌아가고 인적도 끊겨
願言扃利門(원언경이문) : 바라거니 이욕의 문에 빗장 걸고
不使捐遺體(불사연유체) : 부모님께 받은 몸을 버리지 말라
爭柰探珠者(쟁내탐주자) : 어찌하여 진주 캐는 사람처럼 다투어
輕生入海底(경생입해저) : 목숨 가벼이 여기며 바다 밑에 드는가.
身榮塵易染(신영진이염) : 몸이 영화로우면 속세에 물들기 쉽고
心垢水難洗(심구수난세) : 마음의 때는 물로도 씻기 어렵다네
澹泊誰與論(담박수여론) : 단백한 삶 누구와 더블어 이야기할까
世路嗜甘醴(세로기감례) : 세상살이 달콤한 술만 즐기려 하니
당대(唐代)에는 수많은 시인들이 나와 엄청나게 많은 시를 쏟아냈지만, 그중에 거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는 맹교(孟郊, 751~814)의 '길떠나는 아들(遊子吟)' 이란 제하의 詩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자애로운 어머니 손안의 바느질 실로
遊子身上衣(유자신상의) 길 떠나는 자식의 윗옷을 꿰매신다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길 떠남에 촘촘히 기우시는 것은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혹시 더디 돌아올까 염려하신 까닭이라오
誰言寸草心(수언촌초심) 누가 말했나, 한치 풀마디같은 (자식의) 마음으로
報得三春暉(보득삼춘휘) 춘삼월 봄볕같은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고
杜牧의 양주(楊州)시절을 회상한 시(遺懷),
落魄江湖載酒行(락백강호재주행) 강호에 실의하여 술독에 삐져 지낼 때
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 가는 허리 손위에 올려 놓을 가녀린 초나라 미인들과
十年一覺楊州夢(십년일각양주몽) 양주의 십년 세월이 한가닥 꿈만 같은데
贏得靑樓薄倖命(영득청루박행명) 남은 건 靑樓(기방) 바람둥이란 소문 뿐이어라
(*楊州는 江蘇省에 위치한 고도로 중국에서는 옛부터 一楊二益 즉 제일이 양주요 두번째가 익주라 할 정도로 물산이 풍부하고, 따라서 妓女도 많아 우리나라로 보면 옛날의 평양 쯤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그래서 옛 중국인들은 양주에 관리로 가는 것을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다음은 앞서 소개한 남다른 감수성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無題'(그의 작품에는 이런 시제가 많이 붙어 있음)란 시를 감상해 보자.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나기도 어렵지만 이별 또한 힘들어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바람 힘없어도 온갖 꽃 다 시드네
春蚕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누에 죽어서야 실뽑기를 다하고
蜡炬成灰淚始乾(사거성회누시건) 촛불은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르는구나
*무딘 필자의 가슴에도 울림이 있으니 천년을 사이에 두고도 동감할 수 있음에 감탄할 수 밖에...
조선조에 끝내 출사하지 않은 고려의 마지막 충절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19)의 '내 생각을 말해보면(述志)' ,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개울가에 초가집 짓고 홀로 한가로히 사노라면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흥이 넘치리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부래산조어) 바깥 손님 오지 않아 산새와 이야기 하고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대나무 둔덕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 글을 읽으리
조선 성종, 중종대의 대학자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8) 선생의 시(讀書有感),
讀書當日志經綸(독서당일지경륜) 독서하던 당년엔 경륜에 뜻을 두었으나
歲暮還甘顔氏*貧(세모환감안씨빈) 만년에는 안빈낙도 오히려 달갑구나
富貴有爭難下手(부귀유쟁난하수) 부귀엔 시샘 많아 손대기 어렵지만
林泉無禁可安身(임천무금가안신) 산천엔 금하는 게 없어 편안하구나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공자의 수제자 안회(安回, 또는 安淵)를 일컬음
採算釣水堪充服(채산조수감충복) 나물뜯고 고기잡아 배를 채우고
詠月吟風足暢神(영월음풍족창신) 음풍영월로 족히 신기를 맑게하네
學到不疑知快闊(학도불의지쾌활) 학문이란 의혹 없어야 상쾌하나니
免敎虛作百年人(면교허작백년인) 평생의 허랑함을 면케 해주는구나
조선조 권호문(權好文, 1532(중종27)~ 1587(선조20))의 시(自詠),
簾捲野經雨(염권야경우) 주렴 드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
襟開溪滿風(금개계만풍) 옷깃 가득 안겨드는 냇바람.
淸吟無一事(청음무일사) 일없이 맑은 한 수 시를 읊조리니
句句是閑功(구구시한공) 구절구절 이렇게 한가로울 수가.
卽事(뜸금없이) / 이옥봉
柳外江頭五馬嘶(유외강두오마시) : 버드나무 너머 강 언덕에 다섯 말이 울고
半醒愁醉下樓時(반성수취하루시) : 술이 반쯤 깨자 시름에 겨워 누각을 내려올 때
春紅欲瘦臨粧鏡(춘홍욕수림장경) : 봄날 붉은 꽃들 시들어 가는데 경대 곁
試畵梅窓却月眉(시화매창각월미) : 매화 핀 창가에서 반달같은 눈썹을 그려보네
술이 반쯤 깨어도 임 오실리 없다는 걸 아는데도 부질없이 눈섭 그리고 화장을... 가엾은 여인이여~~
조선 중종 시절 우의정과 홍문관대제학을 역임했던 문신 이행(李荇, 1478~1534)의 '감회(感懷)' '
白髮非白雪(백발비백설) 흰머리는 흰눈이 아니니
豈爲春風滅(기위춘풍멸) 어찌 봄 바람에 스러지랴
春愁若春草(춘수약춘초) 봄 시름 봄날 돋는 풀과 같아서
日夜生滿地(일야생만지) 밤낮으로 생겨나 온데 가득하구나
비록 이들은 모두 서얼로 태어나 차별과 냉대를 받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이덕무는 어려운 처지에도 2만권이 넘을 책을 읽으며 때를 기다렸다는데, 아래 시에서 그의 사고의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다.
秋夜雜感(가을밤 온갖 생각에() / 이덕무
天地寧爲耕釣叟(천지녕위경조수) 세상에 태어나 어찌 밭갈이와 낚시질로 늙을 수 있나
英雄不願狗鷄曺(영웅불원구계조) 영웅은 개나 닭처럼 평범한 무리가 되길 원치 않는 법
奇男從古多韜彩(기남종고다도채) 범상찮은 남아라면 예로부터 그 광채를 숨기나니
霧豹沈林知惜毛(무표심림지석모) 깊은 숲 안개속의 표범은 털을 아낄줄 안다지
즉흥적으로 읊다/ 김삿갓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卽吟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檐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自嘆(스스로 탄식하다) / 金笠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월조(越鳥)는 남쪽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함.
평생을 떠돌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나타내고 있다.)
無題 / 金笠
四脚松盤粥一器 사각송반죽일기
天光雲影共徘徊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주인막도무안색
吾愛靑山倒水來 오애청산도수래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 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이에게 무슨 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