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곤이 출근하자 곧바로 원성이 터져 나온다. “개새끼들 지네 놈들은 인간도 아니지 내가 그렇게도 설득을 했는데도 기어이 여기다 들어다 놓고선 지금까지 옮겨주지 않는 것 봐라. 지네들은 한 시간도 못 버틸 놈들이 해도 너무한다.” 이영곤이 경비초소를 간이화장실에 붙여 놓고 옮겨주지 않는 것을 불평하는 소리다. “형님, 나도 어제는 화가 나서 한마디 했습니다.” “못 해묵고 살겠다. 그만두든지 해야 하겠다.” “형님, 며칠만 참으면 정문 쪽으로 옮겨 준다 합디다.” “어느 세월에 그때까지 기다리겠냐? 글고 공사장에서 하는 말은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상식인거 아는가?” 이영곤은 공사장에서 빠른 시일에 경비실을 옮겨 준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아직은 많이 안 더우니 창문을 닫고 선풍기 틀고 있었더니 참을 만하데요.” “그놈들은 전부 개 코 인가보다. 개들은 똥 삭히는 냄새가 좋을 것이다. 똥 냄새 좋아하는 개 같은 놈들은 화장실 악취를 좋아하겠지만, 우리 같은 놈들이 경비원이라고 개 취급하는가 모르겠다. 경비원들의 코를 개 코로 아는가보다.” “형님도 참.” “내일모레 7월 달인데 금방 더워진다. 여름 되고 날이 더워지면 더 심해질 것이다.” 이영곤의 불평은 오래 계속되었다. “그때까지 정문 쪽 경비실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냄새 없애주는 정화제의 양을 더 많이 늘린다 하데요.” “강군아 그래, 한번 참아 보고 며칠 후에 생각해 보자. 일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강군아, 어서 퇴근해라. 냄새도 나고 하는데도 근무한다고 욕봤다.” “예, 형님 나는 갑니다. 내일 봐요.” 아직 6월 말이다. 7월의 무더운 여름도 오기 전이지만 이영곤과 강영구는 점심시간 한 시간을 쉴 때는 창문을 닫아 놓고 선풍기를 돌려야만 냄새를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야간에도 냄새를 참기가 약자의 큰 고통이었다.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로 종일 우울했다. 24시간 근무를 하고 교대를 하고 나니 퇴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샤워를 대충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언제나 버릇처럼 PC 앞에 앉는다. 영구가 카페지기로 되어 있는 ‘쌍둥이할아버지네’는 방문자도 몇 사람 없고 언제나 썰렁하다. 아파트공사현장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쓴 글들을 올리고 영구만 인정하는 시와 수필들을 써서 올리지만 카페 방문자는 없는 날이 많다. 지난밤부터 잔뜩 찌푸리던 하늘 샘이 이제야 터졌나보다. 베란다 창밖에는 빗방울이 제법 굵다. 영구아내 명례는 오르막이나 계단 오를 때는 다리를 움직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 병원에 물리치료를 다니고 있다. 명례가 설거지를 다 마쳤는가보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듬성듬성 썰어 들고 오면서 컴퓨터는 그만 좀 하고 한숨 자라며 잔소리를 한다. “쌍둥이 할아부지, 컴퓨터는 그만하고 한숨 자소.” “어이, 방금 뭐라고 불렀는가?” “쌍둥이 할아부지라고 불렀소. 왜요?” “아니, 앞에 복잡한 수식어는 다 떼어버리고 간단하게 한번 불러 보소.” “그럼, 다 떼어 버리고 영감, 영감이라고 부를까요?” “여보, 당신 같은 이런 이름으로 불러 주면 안 되겠소?” 영구 부부는 연애할 때도 지금 젊은 사람들처럼 뜨거운 연애는 하질 못했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처음 만나 사귀면서 수원에서 가까운 용인 자연농원이나 인천에 연안부두에 가기도 하며 데이트를 할 때도 거의 손도 못 잡고 다녔었다. 영구는 살며시 손이라도 잡고 싶었다. 인적이 뜸해진 틈을 타 명례의 손을 잡고 걸을 때가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명례는 얼른 손을 풀어냈다.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하면 저 앞에 걸어오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잠시 후 그 사람이 스쳐서 지나가도 아무런 인사가 없다고 말하면 아는 사람 같았다고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었다. 연애할 때 영구 부부는 극장에 갔을 때도 공원을 가도 서로 입맞춤도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 여보 당신 호칭을 사용치 않으면서도 40년을 가깝게 살고 있다. 말하자면 요즘의 사람들처럼 여보, 당신, 사랑해, 이런 뜨거운 표현을 하지 않고 살았어도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영구는 처음부터 강철 같은 아들을 낳아서 강하게 키워 보겠다는 꿈을 안고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남자아이일 것이라고 이름을 미리 철이라고 짓고 아내를 부를 때는 철이라고 불렀다. 강철처럼 강하게 키우리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냥 철아 하고 부르면 되었으나, 그의 아내는 남편을 부르는 호칭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영구가 다른 데를 보고 있다든지 멀리 있을 때는 가까이에 와서 말을 하곤 하다가, 첫아들이 아니고 딸이 태어나고부터는 민경이 아빠라고 호칭을 하더니 둘째가 태어나고부터는 작은 아이의 이름인 영미의 끝 자를 따서 미야 아빠라고 하는 호칭이 지금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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