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소경을 보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세상의 탐욕이 가득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전파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권세와 재물이 넘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소설 속 주인공일 뿐입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간혹 이러한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천국에 가려면 당신이나 가, 나는 죽지않고 영원히 살고싶은 사람이니까"이렇게 반문합니다. 이는 곧 이 세상의 지상천국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23:25-26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세상에 대한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기독교의 목사들과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니,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의 목사들과 교인들은 마음속의 탐욕을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비웃으며,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절대로 버리려고 하지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신약)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육체의 탐욕을 물리쳐라) 곧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이니, 그 중에서도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시는 복음은 마음속의 탐심을 물리치려 노력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파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19: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였습니다. 따라서 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에대해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나의 외가가 6.25전란을 피하지 않게 하신것도 감사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비록 그 충격으로 부모님들께서는 한때기독교신앙을 거부했던 전례가 있긴 합니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답니다. 이렇듯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부자가 되면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나에게 부자는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께서는 화려했던 과거를 기억속에서 지우지못했기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린시절의 어머니는 먹어보지 않은 것 없고 가보지 않은 곳 없고 타보지 않은 것 없고 입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던 때가 있었기에 그러한 맛에 깃들여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부자가 부러워 죽을 정도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프라 원프리의 사연과 이명박 대통령의 학창시절을 보았을 때 정말 가난이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져 수 년간 누워지내고 있는 목회자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이제는 가난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너나 할것 없이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였는데도, 기독교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믿는 자들은 불신자들보다 더 잘사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을 부정하며 가르치는 것은, 세상의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탐욕 때문이며,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버리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권세를 누리는 자는 그 끝이 없고 심지어 대를 잇습니다. 김일성은 말년에 자신의 아들을 권좌를 물려주었고 그 아들은 또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계모인 김성애와 삼촌 김영주까지 숙청하였다. 이러한 권력암투는 지나친 과욕에서 비롯된다.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권력암투를 위한 가족간의 다툼이 많았으나 북한처럼 천륜을 저버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4대 욕(정욕,음욕,식욕,자녀욕)을 버려야 할 성직자들 가운데서도 이 모든 욕을 두루 즐기는 사례를 접하곤 한다. 과거 권력자들 중에서도 이같은 욕들로 나라말아먹은 치욕의 역사가 많습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후였던 서태후는 식단만 무려 120가지가 넘었다고 합니다. 비교적 근대인 우리와 이웃해 있는 북방의 종신 지도자도 서태후가 부럽지않을 정도의 식욕을 보였다고 합니다. 밥반찬도 네 가지면 충분합니다. 필리핀의 빈민가에서는 부촌사람들이 먹고버린 음식 찌꺼기를 먹고살아간다고 합니다. 그처럼 성직자의 탐욕이 이단종교를 낳았고 자신이 하나님 위치에까지 서게 된 것이랍니다. 죽은 후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세상의 재물을 사랑하여 많이 가지고 싶은 마음속의 탐욕 때문에, 기독교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라고 가르쳐 자신들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였는데도, 기독교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다가 지옥에 들어가라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부자들이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록펠러,링컨,김형직,워너메이커,카네기 등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많은 자산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한 부자도 있기마련입니다. 내가 인형극 활동을 하던 때였습니다. 한 번은 서울의 모 호텔에서 공연을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생일잔치에 인형극단을 초청하여 호텔에서 벌인 것입니다. 거의 교회와 어린이집,문화센터 등지에서 공연을 했던 것을 볼때 호텔에서의 공연은 이때 단 한 차례였습니다. 언론에서 수 백만원대의 호화생일잔치로 지목되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생일파티였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지배인으로 보이는 분이 저들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있었다며 옹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수성가하여 지위에 오른 것에대해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사회적 공헌과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재물은 신기루일 뿐입니다. 우리는 평생 농사만 짓다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일컬어 매우 안된, 실패한 삼류인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계시를 가장 신실하게 이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부자들 중에는 지나친 탐심으로 공산주의 사상 따위를 만들고 순박한 농민들을 선동하여 기피대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농민들은 주어진 일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여 인류가 먹을 식량을 공급해주는 진정한 선구자들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인류가 다시 농사만 짓고 살 수는 없습니다. 농사를 위해 그것을 지도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농림부가 있고 농협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흔히 농업은 경쟁력이 없다고 합니다.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경쟁을 강조하시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누구나 평등하기때문에 자신도 지극히 낮은자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기름지지않아 외국에 비해 농사환경이 뒤떨어져 있기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땀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땀에는 기름성분이 있어 벼나 논마다 상당량의 땀을 흘려야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이처럼 고된 일을 기피하고있기 때문에 식량부족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돌이키기에 인류는 너무도 많은 바벨탑을 쌓았기때문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농사를 짓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1960~70년대 우리 부모님들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도시에 정착했어도 공돌이라 불리는 생활로 빈민의 삶을 살았으나 농사일보다는 낫다고 말합니다. 80년대 이후 장래희망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하는 세태가 점차 증가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땅을 개간해야 그 소산(곡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기독교인들 조차 편한 일을 좇아 소산을 먹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구원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실인 즉, 농민들에 비해 농림부 장관이 맛있는거 더 많이 먹습니다. 농민들이 맨땅에 쭈그리고 앉아 숙주나물에 밥 비벼먹고 있을 때 이들은 특급 호텔레스토랑에서 사슴고기 뜯고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도시의 활달한 사람들은 대체 농민들은 무슨 낙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필자는 도시토박이라 농촌의 일상을 아는 바 없지만 친익척 중에는 포천에 거주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동란 직후 줄곧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터라 실상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모부님께서는 어린시절 그곳에서 성장하셨기때문에 그나마 정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랍니다. 이처럼 그들 나름대로 농사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하여 농사일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성장한 사람들 가운데 귀농에 실패한 사람들이 99%가 된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농부출신이거나 농촌에서 어린시절은 보낸 사람들은 그런데로 성공을 거두지만 도시에서 평생을 살던 사람들은 농촌정착이 불가능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을때 적응을 하지 못해 다양한 꾀를 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가인은 목축업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죽어서 천국에 갈 때에도 이 세상의 것들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줄로 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단, 너무 없어 거시기만 가리고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먹을것이 없어 흙으로 미숫가루를 만들어 먹는다거나 배설물로 커피를 만들어 먹거나 파리를 번데기 삼아 먹을 만큼의 궁핍함이 아니라면 강남의 특급호텔에서 안심스테이크 썰고 보르도 와인으로 점심을 때우지는 못하더라도 스낵면(젤루 저렴한 라면)에 겨란풀고 밥말아 먹을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스낵면이 예전에는 안매웠는데 경기가 불황이다보니 그럴수록 매운맛을 선호하는 풍조때문인지 스낵면도 매워졌다는 것이 부담이지만 말입니다. 필자는 태어날때부터 서구식에만 길들여졌기때문에 매운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적응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유하게 살던 사람이 전쟁이나 경기침체로 인해 거덜나삔 사람들은 좀처럼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온실속에서만 자란 화초는 냉해가 오면 그대로 시들어버립니다. 작은 풍랑에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우리국민들이 미래에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에 대한 우려때문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김정운의 사망하면 그것이 복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탈레반의 동진작전이 실패하여 해체되는것이 복음인가요? 연간 7%이상의 고성장을 하고있다는것이 복음인가요. 고용률이 증가하고있는것이 복음인가요. 코스피지수가 2천선을 회복하는것이 복음인가요. 하지만 이와 같은것들은 세상적인 복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이상 세상것들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코스피가 다시 2천선에 도달했다고 그 지수가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내외 정세에따라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훌륭한 위인의 비보를 접해도 주가가 흔들립니다. 지난해 10월의 주식시세를 상기하면 알 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면 믿는자들의 복음은 세상것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응답받아야 합니다. 본인은 매일아침마다 5분씩 기도를 하는데 간혹 집중을 하지못할때가 많습니다. 나의 기도제목이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동일하기때문입니다. 이유는 여태까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학생때부터 줄곧 이 한가지 주제로만 기도해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허황된 것을 바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물론 정부에서 복지수당을 지급하기때문에 끼니걱정은 덜었다고 볼 수 있지만 창세기의 한 구절을 보면서 인류가 죄를 법한 이후의 그 계시를 따르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일을 나가시는데 젊은 필자는 국가에서 나오는 생계비로 생활하는 것이 성경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대학졸업 후 일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전문직에서부터 천대시하는 직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해 오셨습니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병약하여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고 이때문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불렸습니다. 때문에 중산층의 삶을 유지했던 어린시절은 지출이 많아 부모님은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아파트에 거주한 나의 식구들은 이웃집에 나를 맡기셨다고 회고하십니다. 그래도 자라서 나는 존 칼빈의생애를 보면서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역시 성장기때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나 저처럼 책벌레였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는 길은 독서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성경외에도 위인전이나 소설 등 다양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래서 한때 나도 훗날 위인전에 이름 석자가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이되겠노라고 다짐을 하기도 했답니다. 영적인 업적보다는 육적인 업적을 먼저 떠올린 셈입니다. 그리고 진로를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껍데기만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날나리신지이거나 교회를 갓 출석하기 시작한 초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앞서 개재한 바와 같이 6대가 기독교신앙을 가졌으며 나 또한 동네교회(당시 화곡동 거주)에서 유,초등부 주일학교에 다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천성 장애인으로 그러한특징때문에 걸림돌이 많았습니다. 신학3년동안 아무 직분이 주어지지않은 것은 그러한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장애인들끼리 모이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장애인목사가 교회를개척하여 장애인들만이 모인 장애인교회를 만든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선천성 소아마비 장애인 이계윤 목사는신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개척에 뛰어든 사례입니다. 그분은 20대 중반의 나이로 노방전도를 거쳐 나이 30이되어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교인 수 1000명의 중형교회를 섬겼지만 장애인이라고 동역자 대상에서 재외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스스로 개척하신 것이었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이 목사님의 말씀에 나약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대출 이자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힘들게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이 목사님의굳건한 의지를 보면서 이것이 믿음이요,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 자체가 그 무엇도 부럽지않은 진정한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경제불황이 우리의 앞날을 막막하게 하고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죽은 후에 천국에 갈 때에는, 이 세상에 있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바르게 하나님의 일을 한 분량을 가지고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갑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자신의 뜻(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일을 한 분량을 가지고 천국으로 가는 것이며, 이 세상의 재물과 권세는 죽는 순간 이 세상에 다 벗어놓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하게 생각하고, 각 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천국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믿음의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도와주는 사람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한 사람에게 거한다는 것입니다. 말과 글로만 사랑하지 아니하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기독교인들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저가 자신의 재물을 흩어 가난한 믿음의 형제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의를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있게 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욕심을 버린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니, 이 사람들이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로 세우시기 위하여 부르신 특별한 사명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베드로)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하시니, 저희가 모든 것(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레위(마태)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좇으라”하시니, 모든 것(직업)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로 세우시기 위하여 부르신 자들은 모든 것(직업과 재산과 부모)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일반 성도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르게 하지 않았지만, 사도로 부르신 사명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마12:49-50)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복을 백배나 받지만 반드시 이 세상에서 핍박을 겸하여 받고, 천국의 보좌에 앉게 하여 주십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여 주신다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심히 번성케 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말미암아 나라들을 일으키게 하고 그 나라들의 왕들로 하나님께서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IMF이후 고기먹다 라면먹고있다는 사연을 가진 사람이 엄청시리 많습니다. 이는 시대를 망각한 채 맘몬의 대주주가 되어버린 탕자들에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또다시 과거를 망각하고 과소비를 하고있습니다. 개미와 배장이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이 현실에 맞추어 패러디되곤 합니다. 개미는 여름내내 일만 할때 배짱이는 노래만 부르다 음반사의 눈에 띄어 인기가수가 됩니다. 그렇게 배장이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어 온돌방이 딸린 저택에서 등따시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개미들은 아무소득이 없고 고유가로 인해 매우 추운겨울을 보냅니다. 수확한 곡식들은 모두 주인의 식탁위로 올려졌고 물건을 만들어 팔아도 주인이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풍자한 내용이지만 이렇게 끝난다면 정말 인생은 무의미 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음반수입이 현저히 줄기 시작하면서 배짱이 수중에 들어오는 수익이 빠져나간 것입니다. 개미가 생산한 것은 바로 mp3였습니다. 인터넷시대가 되어 그 수요가 급증했고 개미들은 일한 보람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노래밖에 할 줄 아는것이 없는 배짱이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러나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마음에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였으나(마23:25-26),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비웃었습니다.(눅16:13-14)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예수님께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심령이 가난한 자와(마5:3)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와(마5:10)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눅18:16)의 마음 안에,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임하였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마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듣지 않고 사람의 계명을 더 잘 듣는 교파의 기독교인들이 가라지인데, 가라지는 먼저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성경의 모든 말씀을 바르게 풀어서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알곡이 되어 하나님의 곳간(천국)에 들어갑니다(마3:12,13:30).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모든 족속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인 복음을 바르게 전하여 가라지(성경을 듣지 않는 자)와 알곡(성경을 듣고 지키는 자)을 가려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며, 생로병사가 존재하는 지금의 이 세상이 끝나고,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버린 영생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그 나라를 위하여』 즉,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전 세계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의 항일독립 투쟁과,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과, 우리나라의 노동 운동과, 우리나라의 남북 통일 등의 이 세상 나라의 일을 하며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은 다 이 세상에 속한, 세상과 벗된 기독교들이 하는 『이 세상 나라를 위하여』 받는 헛된 고난일 뿐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대적하는 무리들에 맞서는 것은 거룩한 일이긴 합니다. 마귀들과 싸워 죄악을 벗어버려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너무 세상 것만을 좇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목사들과 교인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고난을 받아야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나라(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재림하여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인간들이 권세를 잡고 다스리는 지금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의 나라는 끝이 나고,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재림하여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나라인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성도들이 지혜롭고 복된 자들입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하여 부자가 된 목사들은 실패한 목회입니다. 성경인물 중에도 실패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그 가운데 한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망한다." 고 외쳤습니다. 그는 실재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길 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회개치 않고 죄를 범하는 자신의 민족들을 바라보며 망하고 끌려가는 우울한 상황을 보았고 괴로워 하였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의 외침은 실패한 외침이며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한 결과는 초라하고 비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만일 이사야가 한국 교회에 목회를 담당하였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봅니다. 아마도 그는 무시를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편으로서는 비난 받았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며 명령에 불순종한 죄인으로 취급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이사야가 너무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충성하기에 이 바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압박도 들어 올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예배를 만들지 않았다고 비난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하나님께서 대놓고 부르시고 이끄신 이사야는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성도가 많고 위세가 큰 대형교회 목회자들만이 능력 있는 자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뛰어난 종이라고 불리는 이 때에 이사야, 에스겔, 디모데 등 실패한 목회자로 평가될 것입니다. 어느 평신도가 목회자를 비판하다 출교된 교회의 사례를 증언한 일이 있습니다. 수요예배 한 가운데 한 영성이 깊다는 선교사님께서 나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다. 그는 힘차게 외친다. "제가 호주에서 그 교회 담임 목사님과 목회를 하고 있는데 교회에 점점 사람이 줄어 갑니다. 망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교회 사람 없으면 이제 우리교회 건데.하나님 편에서는 좋지 않지요."
이것이 과연 사람이 할 소리인지요! 이렇듯 오늘날의 교회는 성공주의, 기복주의에 빠져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며 예배는 현대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모 교회는 나이트 클럽을 통째로 빌려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유럽도 과거 그러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교회당이 나이트 클럽이 되어삣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교회건물이 없는 개척자들이 임대받은 장소가 하필 나이트 클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면 가장 타락한 곳을 거룩한 장소로 변화시키기 위해 나이트 클럽을 예배장소로 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목적이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현실의 예를 들어본 것으로 그 자리에서 본질을 벗어난 교회와 예배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단순하게 작은 일에 충성하고 능력있는 자와 부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성공적 목회 방법이 아닌 충성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닌 충성된 종, 세상의 권세와 제물이 두려운 것이 아닌 성공과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닌 단 한 분계신 하나님을 누리고 충성되이 순종하는 자 바로 그것이 믿는 자의 근본이며 그리스도인의 명예인 것입니다.
첫댓글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복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