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신이, 당신이 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되라.”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무슨 의미인가. 입으로는 백날 떠들어 봤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진정한 변화를 만들려면, 변화를 원하는 자신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간디가 그렇게 했듯이, 그리고 역사상 수많은 개혁자들이 그랬듯이. 한번 우리 야구계를 돌아보자.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람은 많다. 야구 인프라, 프로야구 발전, 구장 건설, 유소년 야구 활성화 등의 당위를 주장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직접 나서서 자신이 말한 ‘변화’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이는 드물다. 왜냐.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위를 계속 누리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게 제일 좋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언가를 바꿔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종종 공적(公敵)으로 여겨지곤 한다. 인프라 구축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허구연 해설위원을 사람들은 ‘허프라’라며 비아냥댔고, 야구박물관 건립에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이광환 전 LG 감독은 ‘쓸데없는 짓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변화를 원하기는 쉽지만, 정작 변화가 되기는 쉽지 않은 이유다. 여기 대학야구의 변화를 위해, 자신이 꿈꾸는 변화가 된 사람이 있다. 대학야구에 만연한 폭력과 성적지상주의를 바꾸기 위해, 프로에서의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대학야구에 뛰어든 이가 있다. 두산 베어스 선수와 코치, LG 트윈스 수석코치와 감독대행을 거쳐 2007년부터 모교 감독으로 재직 중인 양승호 고려대 감독이다. LG 트윈스, 미완의 변화 2006년 6월 5일. LG 트윈스 이순철 감독이 팀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LG는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을 맴돌며 창단 첫 ‘꼴찌’가 유력한 상황. 희망을 잃은 팬들은 야구장에서 등을 돌렸고, 선수단 분위기는 침몰한 전함보다 무겁게 가라앉은 상태였다. 이 감독의 사임 뒤 LG는 수석코치인 양승호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 잔여 시즌을 치른다고 발표했다. 감독 대행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남은 기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팀 성적을 바짝 끌어올려 정식 감독이 되는 것. 다른 하나는 팀의 체질을 개선하고 전력을 재건해서 다음 시즌 이후를 도모하는 것이다. 전자는 쉽고, 후자는 어렵다. 전자는 차기 감독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인 반면, 후자는 ‘죽쒀서 남주기’ 딱 좋은 방법이다. 양승호는 후자를 택했다. 최하위인 팀 성적을 감안하면 단시간에 성적부터 끌어올리고 싶을 만도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양승호는 대행 임명과 동시에 “꼴찌 탈출이 목표가 아니다. 이름값으로 선수기용을 하지 않겠다. 성실한 플레이를 보이지 않으면 가차 없이 2군으로 보내겠다. 대신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시즌 초 KIA에서 데려온 노장 마해영과 최상덕이 2군으로 내려가고, 서용빈과 진필중 등 노장들도 자리를 잃었다. 대신 2군 홈런왕 출신 최길성과 거포 유망주 박병호가 주전으로 중용됐다. 심수창은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10승 투수로 올라섰고, 우규민은 LG 마무리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실력에 따라 선수를 기용하니 자연히 팀 분위기도 좋아졌다. 무기력하던 선수들의 눈에 ‘해보자’는 의지가 되살아났다. 경기 끝나면 머리 손질하기 바쁘던 선수들이 자진해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웃음이 덕아웃에 다시 돌아왔다. 비록 시즌을 최하위로 마감하긴 했지만, 분명 LG에는 ‘희망’이 있었다. 시즌 종료 뒤 LG는 양승호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느냐, 외부 감독을 영입하느냐를 두고 한참을 고민한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의 김재박 감독 영입. 참을성을 갖고 팀을 리빌딩하기 보다는 ‘우승’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노장들을 정리하려던 당초 계획도 전면 수정됐다. 그 이후 3년간 LG가 거둔 성적은, 당시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소리 없이 증언한다. 양승호가 꿈꾸던 LG의 변화는, 그렇게 미완에 그쳤다. 이후 LG는 양승호를 LG 2군 감독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자신과 감독직 경쟁을 한 상대를 1군 감독이 껄끄럽게 여기는 건 당연한 일. 이에 양승호는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미련 없이 프로를 떠난다. 그리고 모교인 고려대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학야구 감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7년 1월, ‘변화’는 그렇게 고려대학교 야구부를 찾아왔다. 사라진 폭력 고대 감독이 된 직후, 양승호는 고등학생 야구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가장 가고 싶은 학교와 가기 싫은 학교는 어디입니까?’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전통의 명문 고대가 뜻밖에도 ‘가장 가기 싫은 학교’로 선정된 것. “가장 가고 싶은 학교는 D대였다. 이유는 선배들이 구타를 하지 않고, 머리도 기를 수 있어서다. 반면 고대는 가장 가기 싫은 학교로 꼽혔다. 많이 맞는 게 이유라는 거다. 결과를 보면서, 정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양 감독의 말이다. 사실 고대 야구부의 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양 감독 본인도 대학교 1학년 때 경기 중 저지른 실수 때문에 “인천에서 버스로 돌아오는데 뒤에서부터 앞까지 굴러가며 맞았다”고 할 정도. 야구공을 강하게 때리라고 만든 배트가 고대 야구부에서는 사람을 때리는 용도로 애용됐다. 어찌나 선배들이 야무지게 잘 패는지, 소문은 고교 선수들에까지 쫙 퍼졌고 ‘고대 기피증’증을 만연하게 했다. 그로부터 2년 반 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된다. 같은 설문조사를 다시 한 결과, 가장 ‘가기 싫은’ 학교였던 고대는 어느새 가장 ‘가고 싶은’ 학교가 되어 있었다. 이런 경향은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도 나타났다. 2009년 프로야구 드래프트 지명자 중 김경도, 문상철, 조윤성, 이정윤, 김건효 등 무려 5명이나 되는 선수가 프로 대신 고대를 선택했다. 김연아라도 보기 위해서일까. 그게 아니었다. “부임해서 선수들에게 ‘3년 안에 팀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애들이 먼저 운동장에 나와서 연습하고 싶을 만큼, 즐거운 야구부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무엇보다 구타를 없애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비장의 카드를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비장의 카드라. 문득 ‘구타 발생시 책임자 퇴출’과 같은 강압적인 해결책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양 감독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구타가 발생하면 때리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도 그만둔다고 약속했다. 때린 사람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감독이 지도를 잘못해서 그러니 나도 그만두겠다고 했다.” 처음엔 고학년들 사이에서 ‘후배들 기강 잡기가 힘들다’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양 감독의 소신은 확고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리를 잡았다고 자부한다. 내가 볼 때 더 이상 야구부에 구타는 없다.” 양승호 감독의 말이다. 구타가 사라지자 이른바 ‘빠삐용’. 구타와 힘든 훈련을 못 견디고 팀에서 무단이탈하는 선수도 사라졌다. “선수들에게 힘들면 도망가지 말고 감독한테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 휴가를 주겠다고.” 재미있는 건 선수들이 휴가를 도망 대신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마치 직장인의 월차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수들한테 ‘너희들 휴가 안가냐’ 했더니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쓰려고 안 간다’고 하더라.”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지, 양승호 감독이 웃으면서 말한다. “고연전 끝나고 선수들한테 소원수리를 받았는데, 글쎄 누가 ‘우리도 주 5일 연습하자’고 의견을 써낸 거다. 그래서 고연전 뒤 진짜로 주 5일 연습했다. 토요일 일요일을 쉬고.” ‘야신’ 이전에 ‘공신’으로 사실 한국사회에서 고려대학교는 ‘알아주는’ 명문대로 통한다. 드라마 [공부의 신] 주인공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고려대 정도면 공부를 아주 잘 해야 갈 수 있는 학교로 여겨지는 게 사실. 하지만 같은 고대라도 운동부의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양승호 감독만 해도 “대학 입학 후에 공부한 기억은 없고, 온통 맞은 기억과 훈련한 기억밖에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러다보니 졸업 뒤 프로에 지명되지 못하면 ‘고학력 실업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양승호 감독은 결심했다. 선수들을 야구하는 기계로 만들지 않겠다고. 당장의 성적을 위해 선수들에게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훈련만 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고. 졸업 뒤에 실업자 되는 제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변화가 시작됐다. “무조건 오전 학교 수업을 들어가게 했다. 내가 온 뒤 방학 때 제외하곤 오전 연습을 해본 적이 없다. 교수들과 상의해서 강의시간을 11시 반에 끝나게끔 조정했다. 그리고 수업 끝나면 학교 버스를 타고 곧장 이곳 송추 연습장으로 와서 밥 먹고 오후 2시부터 훈련을 받는 거다.” 양 감독의 말이다. 물론 고교 시절까지 공부와는 펜스를 쌓고 지내던 선수들에게, 대학에서 갑자기 공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학교 측의, 그리고 선수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교수들한테는 가급적 선수들은 수업 참여도를 봐서 학점을 주십사 하고 부탁했다. 부모님들에게도 평일날 선수가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자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수업 땡땡이 쳤다간 조교에게 바로 연락이 온다. 그러면 운동장 도는 벌을 준다.” 이러니 선수들이 공부를 하지 않을래야 안 할 도리가 없다. 양승호 감독은 선수들에게 학과 공부 외에 외국어 공부와 자격증 취득도 독려하고 있다. “졸업 뒤에 프로구단에 가는 비율은 10퍼센트도 안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학교 측에 운동선수들이 자격증 딸 수 있게 강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트레이너, 스포츠댄스, 심판 등의 자격을 취득해서 졸업한 뒤에도 먹고살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초빙교수가 와서 강의하는데, 일주일에 네 시간 정도 수업을 받고 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양 감독 부임 뒤 3년 동안 야구부가 배출한 졸업생은 21명. 그 중 실업자는 단 한 명도 없다. 16명은 프로야구에서 자기 길을 찾았고, 세 명은 코치로 진로를 정했다. 나머지 두 명도 하나는 일반 기업체에 다니고, 다른 하나는 군에 입대한 상태. 고대 졸업생의 취업률이 50%도 안 되는 실정에서 야구부만 100% 취업을 달성했으니 총장이 깜짝 놀란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양승호 감독의 변화는 선수들을 ‘공신’으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내 대학 시절을 돌이켜 보면 추억이랄 게 없다. 캠퍼스의 낭만이나 그 나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친구를 많이 사귀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학 와서 만날 운동만 하면 그게 무슨 대학생인가.” 야구도 중요하지만 대학 생활을 즐겨야 한다는 게 양 감독의 지론이다. 때문에 양 감독은 선수들의 이성교제나 음주 등에 자율을 허용하는 편이다. 심지어 운동장에 친구를 데리고 오면 ‘용돈’을 줄 정도. 용돈의 액수는 친구가 ‘이성’일 경우에는 두 배로 늘어난다. “다양한 친구를 사귀라는 의미다. 학생들에게 대학야구에 관심을 갖게 하는 면도 있고. 여자친구의 경우엔 자기 남자친구가 얼마나 힘들게 운동하는지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두발 역시 비시즌 기간인 9월부터 12월 사이에는 자율에 맡긴다. 다만 동계훈련을 하는 1월 이후에는 짧게 깎는 것이 원칙이라고. 자율과 방임은 자칫하면 종이 한 장 차이가 되기 쉬운 법이다. 양승호 감독도 “무조건 다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 하는 틀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고대 학생으로서 자제할 건 자제하도록 자주 당부한다. 또 야구적인 틀보다는 학교 내에서의 틀을 강조하는 편이다. 수업 안 들어가면 혼내고, 거짓말하는 일 없게 하고. 예를 들어 술 먹고 다음날 연습에 늦었으면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얘기하라는 거다.” 진정한 자율을 위해서 감독과 선수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필수다. 감독과 선수, 선수와 선수 간의 의사소통이 단절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양승호 감독은 LG 시절 생생하게 체험한 바 있다. 그가 감독실 문을 선수들에게 활짝 열어놓은 이유다.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얘기하도록 당부하는 까닭이다. 지난해는 4학년 선수들의 휴대폰을 전부 스마트폰으로 바꿔줬다. 왜냐. 선수들과 화상으로 통화하기 위해서다. “녀석들이 술 먹고 있을 때는 바로 안 받는다. 몇 분 있으면 다시 전화가 와서 어디야? 하면 안암골 뒷골목인 게 뻔히 보인다. 하하.” 변화는 계속된다 양승호 감독 역시 성적에 대한 고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 부임 뒤 2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자 동문 사이에서 “고대 정신이 약해졌다”는 소리가 나왔다. “예전처럼 때려야 된다. 그래야 기강이 살고 성적이 나온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아직도 많다. 다행히 고려대는 지난해 대통령기에서 3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학교 측에서는 전국대회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고연전에서도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양 감독으로선 성적 부담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들한테 밥만 먹고 운동만 시키면 근육 좋아지고 성적 내는 건 일도 아니다. 당장 여기서 혹사시키면 한 두 경기는 쉽게 이긴다. 하지만 그건 좋은 감독이 아니다. 애들이 졸업하고 프로에 진출해서 프로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감독 입장에서 좋은 거지. 총장님에게도 얘기했다. 성적이 우선이 아니라고. 고학년들이 경기에 많이 뛰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프로에 많이 갈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양 감독의 말이다. 그래서 양승호 감독은 “춘계리그는 성적에 상관없이 4학년 위주로 기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남들은 춘계리그에 전력 풀가동해서 우승한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다. 고학년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준다. 프로 스카우트들에게 장점을 보여줄 기회를 주는 거다. 그래서 안 되면, 본인도 납득하고 그때부터 진로를 바꾸면 된다. 대신 7월 이후에는 우승을 목표로 전력으로 간다. 나도 살아야 되니까. 하하하.” 그 뿐만이 아니다. 양승호 감독은 대학 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투수 혹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지난해 정기전 당시 고려대는 5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계투 작전으로 나성범 혼자 던진 연세대를 제압했다. “다른 팀들은 투수가 없어서 한 명만 던지게 한다는데, 이해할 수 없는 얘기다.” 양 감독은 고교 투수들이 대학 진학을 기피하는 제일 큰 원인이 “학교 잘못 갔다가 혹사당할까 하는 두려움”이라고 믿는다. “나는 한계투구수를 110개로 정해놓고 그걸 넘기면 무조건 바꾼다. 한 이닝 더 갔어야 되는데 바꿨다가 역전패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원칙대로 간다.” 양 감독의 지론이다. 우승 횟수와는 별개로 프로에서 고려대 출신 선수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해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고려대는 1라운드 지명선수를 두 명(신정락, 임진우)이나 배출했다. 만약 두 선수가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했다면 1라운드에 거액을 받고 입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많은 고교 선수들이 고대에 진학하길 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 청소년 대표 출신의 김경도와 문상철 같은 경우, 프로 구단이 상위 지명을 약속했는데도 고대행을 선택했을 정도. 양승호 감독 본인도 프로야구에서는 항상 차기 지도자 1순위로 통한다. 감독 교체 시기가 되면 신문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8년과 2009년에도 부산과 서울의 구단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다고. 그의 지도력이 프로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양승호에겐 프로 감독 못지않게 고대 감독도 명예로운 자리다. “학교에서 받는 연봉은 프로에서의 절반도 안 된다. 게다가 워낙 쟁쟁한 동문들이 많다보니 자칫 어려운 일을 겪지 않을까 해서, 아내가 처음에는 만류했다. 하지만 학교를 택했던 건 몇 년은 모교에서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일중, 신일고를 맡았던 것도 그래서였고, 이제 고대에서 감독을 하고 있으니 다 된 셈이다.” 올해 양승호 감독의 대외적인 목표는 전국대회 우승과 고연전 승리다. 하지만 정작 그가 진짜 목표로 삼는 바는 따로 있다. 4학년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서 프로에 많이 진출하는 것, 그리고 선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야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성적도 따라오게 된다고 양 감독은 믿는다. 고려대가 ‘가고 싶은 학교’가 되리라 확신한다. 변화를 말하는 대신, 스스로가 보고 싶은 변화가 된 양승호 감독. 그의 지도하에 고려대 야구부 역시 모두가 꿈꾸는 변화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변화는 머지않아 대학야구 전체를, 그리고 한국 야구를 변화시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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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 당최 너무 많아서리....저...25년째 운동 하고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안맞지만...ㅎ
행당인 이시군요^^
전 법대 97입니다. 반갑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제가 1994년 5월 고3 시절에 인하대학교의 스카웃제의를 받고는 어머니께서 피해 다니셨었죠.. 타 대학의 감독들의 제안도 뿌리 치고 제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헌데 중3때 부터 저희 부모를 쫓아 다니던 사람이 인하대 감독(현kbs해설위원)이었습니다.. 정말 매너있는 행동과 훤칠한 외모에 다들 속아() 넘어 갔던거 였습니다.. 제안서에 도장 찍고 얼마 되지 않아서 스포츠신문에 대서특필 된 내용인즉.... "인하대 배구부 구타설." , "인하대 배구부 해체설."........ 정말 계약 취소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팀에 들어가보니....... 3학년때까지 맞은 휫수가 죽기전까지 밥먹을 횟수보다 많을듯 하네요
제가 좀 덜 맞고 대학 생활을 했더라면 저의 인생은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 합니다... 국내 엘리트 체육의 지도자들... 뭐 배운대로 가르친다고 하지만..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어쩌겠습니까.. 배운대로 하는 무지함을..... 암튼 글 대로라면 양승호 감독님 존경 스럽습니다요....
변화 정말 어려운 일이죠.. 이 분을 스카웃 해볼까 싶습니다 ^^
제 자랑 같지만 저도 군생활 3년 후임들 한대도 때리지 않고 제대 했습1니다. 군대 입대 할때 내가 맞는건 어쩔수 없지만 내가 때리지는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군대에 갔었습니다.
전 딱한번....^^
저도 때린적은 없습니다만. 얼차레가 아마 죽고 싶었을 겁니다. 이제와서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전 때리지는 않았지만 상상력을 뛰어 넘는 얼차려로 혼을 빼놓았던... 고참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저는 못되서리...ㅋㅋ
사실 체육계의 문제때문에 퍼왔다기보단..... 지도자란 어떠해야하는가....... 뭐 이런얘기....^^
저도 한번도 손댄적 없습니다. 나중에 후임한테 맞을까봐요.(싸움을 못해서리.)
음.....어찌보면 힘든일인데..감독 코치님들 인식만 바뀌면 쉬울수도있고 ... 아 어렵다... 난 다시운동하라면 않해요^^
진정한 리더쉽이라고 해야 하나용?? 암튼 대단하신분 이네요 ^^
취업준비만 하느라 운동부에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했네요,,, 멋진분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ㅎㅎ
전 제가 윗사람이였을 때는... 한번도 구타를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그래도 양감독님과 같은 ..저런 것을 바루히해야 하는데요..
그렇다니 참 다행이구나..... 그런데 널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걸 믿을까??ㅎㅎ
30층일세...50층이 아니라.. -_-; 난 짐승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