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에 다녀 오려고 하는데..." 창수와 미정은 부모님이 살고 계신곳을 잠실이라고 말했다.
창수의 답변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정의 모습에서 불편한 기색이 눈에 띄게 보였다.
"이번 주말에 무슨 일 있어?" 미정의 눈치를 살피며 창수가 말했다.
"이제는 주말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가는 건가?"
미정의 차분한 말 소리에 왠지모를 차가움이 느껴졌다. 미정은 아무 대꾸없이 쇼파에 기대어 TV를 보고있는 창수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대답없는 창수가 미워서가 아니라 시부모님과 미정의 중간에서 이도저도 할 수없는 창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정은 1940년 대를 살아오신 시부모님 의 삶을 존경하고 또한 이해하는 한편 수백번을 생각해봐도 두 분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창수와 미정에게 강요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창수가 몇 해전 조기 축구회에서 개최하는 축구시합에 출전했다가 발목골절과 무릎관절 파열로 인해 큰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1년간 집에서 병가를 한적이 있었다. 그 무렵 창수는 6급 신체장애등급을 인정 받았었다.
두 달전쯤 일이었다. 시부모님이 집에 찾아오셔서 지금 타고 있는 자동차가 너무 오래되어 차를 바꾸려고 하는데 창수의 이름으로 차량을 구입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차량은 장애인용으로 구입해서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가지 혜택을 보면 좋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아버님 그건 안되죠..그건 불법이기도 하고 정당하지 않은 일이에요.."
미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얘도 참 고지식하긴 아니 식구들끼리 그게 무슨 대수라고 불법이니 아니니 하고 따지니!!"
시어머니가 미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끼어들며 말했다.
"상준애비가 말해봐라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이니?"
"아니 다른집 식구들은 서로 그런일이 있으면 못해줘서 안달이더구만 어찌된게 니 식구는 저렇게 기분 나쁜 소릴 하는구나..나 참 원~"
시어머니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며 분을 못참겠다는듯 창수에게 말했다.
창수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정의 말이 백번 옳은 말이나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뜻대로 해도 별 문제는 없을 듯 해보였다. 한 참을 횡설수설하며 중재를하던 창수가 말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어요. 제가 한번 생각해 볼께요..."
"그래라 한번 생각해보구 말해줘라. 여보 갑시다." 시아버지가 일어서며 말했다.
"나참 이게 무슨 큰 일이라구 정색을 하고 불법이니 어쩌니 하는지 모르겠구나"
시어머니가 대문을 나서며 미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시부모님이 집으로 돌아 가시고 거실의 찻잔을 정리하던 미정이 창수에게 말을 건넸다.
"상준아빠 내가 어른들께 실수 한거야?"
미정이 말했다. 창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미정은 아들인 상준에게는 바르게 살아야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자신들의 삶은 불법과 타협하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않고 살며 아들인 상준의 눈을 볼수는 없을것 같았다.
정의롭고 바르게 산다는것이 배움이 많고 돈이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적어도 자신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일 이외의 문제라면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삶이 당연 하다고 생각했고 남편인 창수도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창수는 시부모님댁을 주말마다 다녀왔다.
다녀와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미정이 또한 아무런 말도 묻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미정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 나야" "상준이 학원 다녀왔어?"
창수의 전화였다.
"어...다녀와서 방에 있어." 갑작스런 창수의 전화에 미정은 당황했다.
"미정아 오랜만에 우리 자주가던 카페에서 차 한잔 할래?"
창수의 목소리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푸근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였다.
"그래" "그럼 상준이 간식 준비하던거 마저하고 나갈께" "굴레방다리 옆에 찻집이지?"
미정은 장소를 제차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찻집은 그대로였다. 창수와 미정은 이 카페를 좋아했다. 특히 미정이 이 카페를 더 좋아했었다.
요란하지 않은 실내 인테리어 약간 어두운 실내 조명은 마치 꺼질듯 말듯하는 촛불처럼 애잔해 보였으며 그런 카페의 분위기는 미정의 감성적 본능을 자극 시켰다.
창수는 미정과 옛 얘기를하며 잠시 지난 날들을 회상했다. 그리고 창수는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미정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버지 집에 오셨을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고 미안해." "아마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절하지 못했을거야"
창수는 미정이 매 순간 특별하진 않으나 자신에게 당면한 삶에 대해 진실하고 그 삶을 소중히 지켜나가려는 모습에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미정의 두 눈은 이미 촉촉해져 금방이라도 그렁그렁 눈물이 뺨 위로 흘러 내리려 하고 있었다.
정의를 말하면 따돌림과 놀림을 감수해야했고 양보를하고 차례를 지키면 반드시 손해를 봐야만했던 암울하고 억울했던 1940년대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부모님들의 시대 그리고 2024년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