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제사밥 / 노병철
요즘 이혼율이 늘어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늘 생각했던 답이 나왔다. 여자들에게 부담되는 제사 때문 아니냐고. 그러자 답변은 주 5일제 때문이란다. 부부는 같이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싸움이 자주 있다는 이야기다. 쓴웃음이 난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 안에 있는 날이 늘어남에 따라 이혼율이 높아졌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코로나 영향으로 제사가 엄청나게 줄었다. 친척들이 모일 수 없으니 당연히 음식이 줄었다. 그리고 제사 대신 산소를 다녀오는 것으로 바뀌기도 했다. 2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도 특별하게 병명이 나오지도 않는데 시름시름 아픈 사람을 보고 우리는 제사 잘못 지냈다고 한다. 조상신이 노했다는 것이다. 제사 지내고 애가 갑자기 아프면 십중팔구 그 집 제사상에 머리카락 들어갔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호롱불 아래서 제사 음식에 머리카락 빠뜨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셨을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오는 것이리라.
밤에 손발톱을 자르면 딸딸 귀신이 온다고 배웠다. 그래서 밤에 손톱 다듬는 딸에게 이야기했더니 날 보는 눈초리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제사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면 뱀이 있다고 해서 귀신이 안 오고 제사상을 차린 후손에게 해코지한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데 기회가 없지 싶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집구석은 분명 상놈이 족보 산 집이야.”
제사는 양반만 지냈다. 조선 초기 양반은 20% 남짓이었다고 한다. 후에는 많이 늘어났지만. 해방 후 김이박최 성씨가 50% 가까이 되고 전 국민이 제사를 지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 성씨가 500여 개 밖에 안 되는 이유가 전부 양반 성씨 하나씩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놈이란 티를 안 내려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제사상을 차리고 그 집 부녀자들 허리가 부실하게 만든 이유가 되기도 했다.
“새서방님, 상 좀 봐주소.”
묘제를 지낼 때 제사 순서를 적은 홀기 속에 ‘점시진설’이란 말이 나온다. 차려진 제사상이 제대로 맞는지를 초헌관이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 집안 제사상은 내가 살펴본다. 젊은 아낙들이 나물 순서를 뒤바꿔 놓는 경우가 있고 나이 많은 형수들은 실수를 자주 해서 내게 점검을 부탁한다. 그래서 집안에 제사가 있는 날은 필히 참석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한 달에 많으면 열 번도 불려 다닐 판이었다. 누군가 나서야 할 때가 왔고 고양이 목에 달 방울은 내 손에 쥐어졌다.
일 년에 열두 번도 넘는 제사를 줄이기 위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고 여러 문중을 찾아다녀 자료를 수집해 집안 어른들을 설득했다. 난 놀랐다. 남정네들보다 할머니나 형수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제사 지낸다고 고생고생해서 반길 줄 알았는데 나 죽고 나서 그렇게 하란다. 집안 젊은 여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눈치 보던 집안 남자를 쥐어 잡았는지 결국은 당대 제사를 제외한 모든 제사를 한식날 몰아서 지내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 때는 이조차 없어졌다. 과연 다시 제사가 지내게 될 것인지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난 제사 음식이 그렇게 맛이 있다. 밥을 나물에 비벼서 먹는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제사 찌짐과 떡을 먹으면서 친척들과 웃고 즐기는 시간이 마냥 좋다. 하지만 그 과정이 문제가 많아 더는 지낼 수 없다는 게 대세인 듯하다. 그래서 추석만 남겨놓고 모든 제사를 각자 집에서 알아서 하라고 통지했다. 이번에는 집안 어른들의 반발도 없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사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사라질 것 같다. 안동 헛제삿밥 집에서 제사 음식을 먹으며 온갖 생각이 다 난다. 엄마나 형수들이 만든 우리 집안 제사 음식 맛은 아니다. 조상신에게는 면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