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법과 귀납법 이해1>
<연역법>
1. 모든 포유동물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
2. 모든 말은 포유동물이다.
∴ 모든 말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
결론은 전제를 분석하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므로 전제와 결론의 관계는 결론이 전제
속에 논리적으로 포함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Aristoteles의 편유편무의 법칙이
말하듯이 '전체에 대하여 진인 것은 부분에 대하여서도 진'이므로 만일 전제가 결론을
논리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면, 전제가 진일 경우에는 결론도 반드시 진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가 과연 진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문제 밖이다. 포유동물은 모두 심장을
가졌느냐, 또는 말이 포유동물이라는 것이 진이냐 위냐 하는 문제는 이 추론에서 상관할 바가
아니다. 또 결론의 진위도 전제와의 관계를 떠나서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결론이 진이라면
그것은 전제와의 논리적 관계에서 그런 것이지 사실에 부합하니까 그런 것은 아니다.
설혹 여기서 "모든 말은 심장을 가졌다"는 결론이 위라고 하더라도 이 추론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전제가 진이면 그것을 근거로 결론도 필연적으로 진이라는 점만 진술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전제와의 논리적 관계만으로 필연적으로 결론이 도출되는 추론을
<연역추론>이라한다. 그러므로 연역추론에 있어서, 전제는 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결론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모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연역추론과 귀납추론의 근본적 차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연역추론
I. 만일 전제가 진이면, 결론도 반드시(necessarily) 진이다.
II. 결론에서 진술되는 모든 내용은 이미 전제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귀납추론
I. 만일 전제가 진이면, 결론은 확률적으로는 진(probably true)이나 필연적으로 진은 아니다.
II. 결론의 내용이 전제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귀납추론이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반하여
연역추론은 엄밀한 논리적 규칙에만 의존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귀납법>
귀납법 (Induction) 또는 귀납추론 (inductive reasoning) 또는 귀납논리 (inductive logic) 는,
전제 (premise) 가 주어졌을 때 그 결론 (conclusion) 이 사실 일듯 하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확실하지는 않은) 추론의 과정이다. 귀납법은 특별한 특징 (tokens)의 제한적 관찰을
통해 유형 (types) 의 공통된 성질 또는 관계를 이끌어 내거나, 반복되는 현상의 패턴들의
제한적 관찰을 통해 법칙 (laws) 를 형식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귀납법은 다음과 같은 특별 (specific) 명제에서 일반 (general) 명제를 추론해 낸다.
•이 백조는 흰색이다 ........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
•당구 볼은 큐로 쳤을 때 움직인다 ........... 모든 행동에 대해, 동등한 반작용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운대로 형식논리는 귀납적이기 보다는 연역적이다
(기호 논리학 (symbolic logic) 연역법 (Deduction)). 어떤 철학자들은 귀납논리 시스템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귀납의 논리(logic of induction)가 가능한 것인지 조차 논쟁거리이다.
연역추론과 대조적으로, 귀납추론에 의해 얻어진 결론은 초기의 가정과 비교하여 같은 정도의
확신 (certainty) 을 반드시 가지는 것은 아니다. 위의 예에서 모든 백조가 희다고 하는 것은
명백히 거짓이지만, 유럽인이 Australia 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사실로 여겨졌다.
귀납추론은 구속력 (binding) 은 없지만 설득력 (cogent) 은 있을 수 있다 .
귀납추론은 연역적으로는 무효이다 (invalid).
귀납문제 (problem of induction) 를 전통철학에서 다룬 것은, 즉 귀납추론의 정당성을
탐색하려 한 것은 영국의 David Hume 가 처음이다. Hume 은 인간의 일상적인 추론이
연역적으로 유효한 추론보다는 반복되는 경험의 패턴에 따른다는 사실에 촛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면 빵이 이전에 그래왔듯이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고 믿고 있지만,
앞으로는 우리에게 적어도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모든 것에 대해 건전한 연역적 정당화 (sound deductive justifications) 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굶어 죽을 것이라고 Hume 은 말했다. 모든 것에 대해 비생산적인 급진적 회의론 (radical
skepticism) 대신에, 그는 상식에 기초한 실제적 회의론 (practical skepticism) 을 옹호했고,
거기서는 귀납법의 불가피성이 받아들여진다.
20세기의 발전은 귀납문제를 다르게 규정해 왔다. 즉 미래에 대해 어떻게 예측(Prediciton)할
것인가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관찰한 것에 대해 어떤 개념 (concepts)을 적용(fit)시킬 것인가의
선택 (예를 들면 grue), 또는 관찰된 일련의 데이터 포인트에 대해 어떤 그래프를 적용시킬
것인가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때때로 귀납법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추론(Reasoning)하는 것으로 규정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관찰된 것을 기반으로 해서 아직 관찰되지 않은 것에 대한 결론에 이르는 것을 포함한다.
현재의 증거를 가지고 과거를 추론하는 것은 (예를 들면 고고학 (archaeology)) 귀납법으로
다룬다. 귀납법은 또한 시간보다는 공간에 대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우리 은하계에서 관찰된 것을 가지고 전체 우주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귀납추론의 후보 시스템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귀납법을 위한 틀로서 확률이론을
사용하는 베이즈주의 (Bayesianism) 이다.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는 어떤 가설에 새로운
증거가 주어졌을 때 믿음의 강도 (strength of belief) 가 얼마나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계산하기
위해 사용된다. Bayesian들은 그들의 시스템을 귀납논리 (inductive logic) 라고 부를 만 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귀납논리 시스템 상에서 일련의 논리적 제약으로부터 확률을 유도하는
Cox's Theorem 때문이다. ..... (Wikipedia : Induction)
사고를 언어로 표현한 것을 언표라 하고, 그 언표가 일정한 진리 값을 가질 때 이것을 명제라
한다. 사고의 연결은 명제의 연결이기도 하다. 명제의 연결을 추론 (Reasoning) 이라 하는데,
추론에는 연역추론과 귀납추론이 있다.
연역추론이 논리적 필연성을 보증하는데 반하여
귀납추론은 개연성을 보여줄 뿐이요,
현대에 있어서는 귀납추론은 거의 확률론 (Probability) 에 수렴되고 있다.
그리하여 형식논리 특히 기호논리는 논리적 필연성을 찾아 연역추론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귀납추론은 전제의 진리성이 결론의 진리성을 보증할 수 없는 추론이다.
귀납추론에서의 결론은 전제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험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귀납추론이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반하여 연역추론 (Deduction)은
엄밀한 논리적 규칙에만 의존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연역법과 귀납법 이해2>
'연역법'이란 대전제로부터 소전제를 매개로 하여 대전제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이끌어 내는 방법입니다. '연역법'에 의해서 얻어진 결론은 대전제의 일부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예)
모든 사람은 죽는다.--대전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소전제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결론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대전제에서 끌어낸 결론이므로
대전제의 일부일 뿐이지, 새로운 지식은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연역법'은 '대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대전제가 그릇'되었을 경우 여기에서 얻어지는 '결론도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
모든 꽃은 열매를 맺는다.--대전제
봉숭아는 꽃이다.--소전제
그러므로 봉숭아도 열매를 맺는다.--결론
이 예 역시 '연역법'에 의한 추리입니다.
그러나 이 연역에서 대전제의 내용이 그릇된 것이므로,
여기에서 얻어진 결론도 옳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역법'의 경우 대전제가 진리일 경우에는 결론도 항상 진리이지만,
대전제가 그릇된 경우에는 결론도 항상 그릇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귀납법'은 많은 사실들을 관찰하여 보편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방법입니다.
예)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공자도 죽었다. 석가도 죽었다.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이처럼 부분적인 관찰 사실로부터 얻은 결론을 일반적인 진리로 여기는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례를 완전히 조사, 관찰한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례를 확인하여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결론을 얻어냈으나,
나중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검은 백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결론의 잘못을 인정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귀납법'은 진리일 가능성이 높을 뿐이지 확실한 진리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필연적인 지식이 아니라고 해서 '귀납법'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얻어진 과학적 지식들은 이 '귀납법'에 의해 얻어진 지식으로서,
그것은 거의가 진리일 가능성이 높은 경험적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연역법과 귀납법 이해2>
귀납법은 귀납에 의한 추리의 한 방법이다.
귀납추론이라고도 한다. 반대의 개념은 연역법이다.
통념상 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이나 원리로부터 그러한 사례들이 포함되는 좀 더 확장된 일반적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을 귀납(歸納, induction) 이러한 귀납적 추리의 방법과 절차를 논리적으
로 체계화한 것을 귀납법이라 하는데, 이것은 귀납 형태의 하나인 귀납적 일반화를 말하는
것뿐이다. 귀납법은 전제나 논거들로부터 결론이 100% 확실하게 도출되지 않는 추론을
말하며, 반대로 연역법은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100% 확실하게 도출되는 추론이다.
특성상 자연과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칼 포퍼의 반증주의는 귀납법이 아니다. 포퍼는 과학의 방법이 연역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경험적 검증을 귀납이 아니라 연역적 실험이라고 부를 정도.
대표적인 예는
그동안 매일 아침 해가 떴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뜰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단 하나의 반례만 나와도 그 명제는 오류가 된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추론을 했다고 하자.
A지역에 사는 고니는 희다. B지역에 사는 고니도 희다.
(중략) Z지역에 사는 고니도 희다. 조사할 수 있는 모든 지역에 고니는 흰색이었다.
따라서 모든 고니는 희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고니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저 명제는 틀린 명제다.
참고로 이 '고니'라는 새는 우리가 흔히 백조라고 부르는 새. 까만 백조(블랙 스완)
대부분의 귀납은 모든 경우에 대한 데이터[1]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추론적 한계로 결론의
확실성을 보장하지는 못하고 귀납적 비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귀납법을 사용하는 이유
가 바로 이것이다. 오류가 존재할 확률이 언제나 상존함을 감수하면서, 그 집단의 원소를
모두 다 조사할 필요 없이 일부만 조사하고서도 그 집단의 성질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
과학이란 학문 자체가 귀납법에 의해서 발전해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진리로 받아들여
졌던 명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반례가 등장하는 일들이 많고, 그 때마다 과학은 그 반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명제를 만들어 내면서 발전해 왔다. 창조론자들이 이 점을 들면서 과학을
까는 것은 그저 병크(?).
귀납적 비약의 유무에 따라 완전귀납과 불완전귀납으로 나뉘기도 한다.
<빙혼>
조직에서 사업계획 수립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참조 좀 하려고 모처럼 정리를 해 보았으나
귀납법과 연역법을 설명하고 비유를 든 것이 더 어려워 이해하려다가 더 헤깔리고 말았다,
쩝,,,공돌이가 이런 철학적인 접근을 하는 데 한계를 느끼는 것에 괜히 울적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