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하면서 한 이야기(14)
서장(書狀) 8강- 2 ( 2023. 4. 25. 부산 해운대 포교원)
不見가 昔日에 灌谿和尚이 初參臨濟할새 濟見來코 便下繩床하
불견 석일 관계화상 초참임제 제견래 편하승상
야 驀胸擒住한대 灌谿便云
맥흉금주 관계편운
驀(맥) 맥연히, 곧장, 지체없이.
보지 못했는가? 옛적에 관계화상이 처음 임제선사를 참례하였을 때 임제선사께서 관계화상이 오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승상(繩床 : 法床)에서 내려와 갑자기 멱살을 움켜쥐니 관계화상이 바로 말하기를,
不見 : 灌谿和尚(관계화상)의 일화를 소개한다
灌谿和尚(관계화상)은 臨濟(임제)스님의 제자 지한(志閑)
臨濟 : 臨濟義玄(임제의현)스님. 臨濟宗(임제종)을 세운 조사스님이다. 우리나라 조계종은 臨濟(임제)의 후손이다. 선사들도 대부분 臨濟(임제)의 후손임을 내세운다. 이렇듯 臨濟(임제)가 워낙 유명한데 그의 어록인 『臨濟錄(임제록)』은‘어록의 왕’으로 불린다. 어록 가운데 가장 뛰어난 어록이라는 말이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 키타로(西田幾多郞)는 2차대전 당시 『臨濟錄(임제록)』을 읽고 감동을 한 나머지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불에 타 없어져도 『臨濟錄(임제록)』만 남아 있으면 된다.”는 말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프로이드라든지 에리히 프롬 등의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이 일본의 선학자 스즈끼 다이세쯔(鈴木大拙)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 니시타 키타로(西田幾多郞)는 스즈끼 다이세쯔와 동창이다. 스즈끼 다이세쯔가 서양, 특히 미국에 선불교를 전했다. 부인이 미국인이었다. 미국의 여러 명문 대학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많이 하였다. 그 후, 달라이라마가 서양에 티벳불교를 소개했다. 서구 사회에 불교를 전한 큰 공로가 있는 분이 스즈끼 다이세쯔와 달라이라마이다.
初參臨濟 : 처음에 灌谿和尚(관계화상)이 臨濟(임제)를 참례했을 때에
濟見來 : 臨濟(임제)선사가 灌谿和尚(관계화상)이 오는 것을 보고
臨濟(임제)선사가 법상에 앉아 있는데, 灌谿和尚(관계화상)이 들어왔다.
便下繩床
立繩(입승)이란 줄을 세운다라는 뜻으로 禪房(선방)이나 講院(강원)에서 절 안의 규칙이나 대중(大衆)의 기강을 바로잡는 소임. 또는, 그런 일을 맡은 스님을 말한다.
繩床은 法床(법상)
領領커이다
영령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라고 하니,
臨濟(임제)선사가 법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았는데, 보통 우리 같으면 기분 나빠하고 싸우기도 할 것인데 灌谿和尚(관계화상)은 알겠다고 하였다. 그 순간에 깨달았다는 이야기이다. 德山宣鑑(덕산 선감)선사는 방망이(棒: 음이 봉이나 방으로 읽는다)으로 때린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禪(선)공부가 사람에게 뭔가 엉뚱한 행동을 하여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灌谿和尚(관계화상)이 들어온 것을 보고 법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으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라고 한 것은 그 순간에 한 소식했다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기상천외의 이야기이다.
濟知其已徹하고 即便推出하야 更無言句로 與之商量하니
제지기이철 즉변추출 갱무언구 여지상량
임제선사께서 그가 이미 깨달았음을 아시고 문득 떠밀어내고, 다시는 언구(말)로써 그와 함께 상량하지 않았다고 한다.
濟知其已徹
濟 : 臨濟(임제)선사
其 : 灌谿和尚(관계화상)
徹 : 한 소식함, 깨달음
即便推出
推出 : 밀쳐내었다
無與之商量 : 灌谿和尚(관계화상)과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 灌谿和尚(관계화상)을 인정하고 인가했다는 뜻.
當恁麼時하야 灌谿如何思量計較로 祗對得이리오 古來에 幸有如
당임마시 관계여하사량계교 기대득 고래 행유여
此牓樣이어늘 如今人은 總不將爲事하고 只爲麤心이로다
차방양 여금인 총부장위사 지위추심
이러한 때를 당하여 관계화상이 어떻게 사량계교로써 응대하였겠는가? 고래로 다행히 이와 같은 모범(牓樣)이 있었는데도, 요즘 사람들은 모두 다들 가져서 일로 삼지 아니함은 다만 거친 마음 때문이다.
當恁麼時 : 이러한 때를 당하여 --- 臨濟(임제)선사와 그의 제자 灌谿和尚(관계화상)이 처음 만난 일화
灌谿如何思量計較로 祗對得
灌谿和尚(관계화상)이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라고 할 때 생각을 궁리하여 “領領”이라 대답한 것이 아니다.
對는 待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통도사에는 『書狀(서장)』 장경판이 있는데 비교적 誤字(오자)가 없다. 이 판에는 待로 되어 있다. 『金剛經五家解(금강경오가해)』『능엄경』등의 경판이 있는데, 50년 전에 내가 직접 경판에 먹물을 묻히고 한지에 찍어 책을 엮은 것이 있는데 이 책들이 비교적 誤字(오자)가 없이 정확하다. 여기에도 對로 되어 있다.
깨달음은 생각으로 알아 맞추는 게 아니고 直觀(직관)을 얻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절에 와서 계를 받고 講院(강원)에 들어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극락암이라는 암자에 역대 조사 33인 - 돌아가신 고승들의 초상화를 모셔놓았다. ‘卅三祖師殿(삽삼조사전)’이라 하는데 ‘33 祖師(조사)’란 인도에서 달마 스님까지 28 祖師(조사), 달마가 중국에 건너와 1조가 되고, 중국의 6祖스님까지 합한 숫자이다. 법을 이은 조사들의 33분이므로 ‘33 祖師(조사)’라 한다. 서른삽자(卅)자 있어 한자로 卅三(삽삼)이라 한다. 제사 지내는 날을 ‘影祀日(영사일)’라 하는데 음력 9월 일이다. 경봉스님께서 시작하여 극락암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선종의 법맥을 계승한 서른 세분의 조사 스님들을 기리는 삽삼조사 제사를 해마다 모시고 있다. 그때에는 禪房(선방)과 講院(강원)의 대중이 전부 참석한다. 나개 막 講院(강원)에 들어갔던 때인데 그때는 큰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려 다니기도 하던 시절이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책이나 TV, 컴퓨터를 통해 보려고 하는 경향이 많지만 그때는 영상매체 등이 보급되지 않아 직접 육성을 들어야 했다.
그때 경봉 노스님께서 하신 법문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노스님께서는 법문을 하시면서 “종사(경봉스님)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이미 법문은 다 해 마쳤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 사찰 법당에는 부처님을 모신 上壇(상단)과 신중(神衆을 모신 中壇(중단), 그리고 영가 위패를 놓고 제사를 지내는 下壇(하단)인 영단(靈壇)이 있다. 靈壇(영단 : 영가를 위해 음식을 차려놓은 단)이 마을에서 제사지내는 제사상인 셈이다. 경봉스님께서는 이미 법문을 마쳤다고 하시며 그리고는 “오늘 법문은 ‘맷밥은 희고, 김은 검다.’”라는 한 마디를 더 남기시더니, 주장자를 탕! 탕! 탕! 세 번 치시고는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나는 그 당시 젊은 학인이었기 때문에 법문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당시의 여운이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아 그 법문의 신비함이 아직도 느껴진다.
古來 : 예로부터 오는 것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시간 경과를 이르는 말
幸有如此牓樣
幸 : 다행히
牓樣 : 모범이 되는 사례, 모범 — 여기에서는 臨濟(임제)선사와 제자 灌谿和尚(관계화상)이 처음 만난 일화를 가르킨다.
如今人 : 요즘 사람들
總不將爲事
總 : 모두 다
不將爲事 : 가져서 일을 삼지 않고, 공부하는 데 이런 것을 중요한 일을 삼지 않고 --- 문제의식이랄까 공부하는 일을 삼지 않고
爲 : 삼다
只爲麤心
麤는 細(세 : 가늘다)의 반대말, 성글다. 거칠다.
麤心 : 법을 정확하게 알려는 마음이 아닌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버리는 마음
灌谿當初에 若有一點이나 待悟待證待休歇底心이 在前이런들 時
관계당초 약유일점 대오대증대휴헐저심 재전 시
에 莫道被擒住便悟하라 便是縛却手脚하고 遶四天下하야 拕一遭
막도피금주편오 변시박각수각 요사천하 타일조
라도 也不能得悟하며 也不能得休歇하리라
야불능득오 야불능득휴헐
拕(타) 끌다
莫道被擒住便悟의 道(도)는 ‘말하다’의 뜻
관계화상이 애초에 만약 한 군데라도 깨달음을 기다리거나 증득하기를 기다리며 쉬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바로 앞에 있었더라면, (멱살을) 잡힘을 당하고 문득 깨달았다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곧 손발을 묶고 사천하를 한 바퀴 돌아서 한 번 만나더라도, 또한 깨달을 수 없으며, 또한 쉴 수가 없을 것이다.拕(타) 끌다
若有一點 : 만약 한 점이라도, 조금만이라도 있었던들.
待悟待證待休歇底心이 在前
灌谿和尚(관계화상)이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라고 할 때 직관적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 마음을 앞세워 깨닫기를 기다리거나 증득하기를 기다리거나 쉬기를 기다린 것은 없었다. 본래 사람 마음은 무심한 것이 진심이다. 牛頭法融(우두법융)선사의 ‘無心合道(무심합도)’, 同安常察(동안상찰)선사『十玄談(십현담)』의 ‘莫謂無心云是道(막위무심운시도) 無心猶隔一重關(무심유격일중관)’을 소개했었다.
時 : 灌谿和尚(관계화상)이 멱살잡이를 당하고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莫道被擒住便悟
道 : 말하다
莫道 : 말하지 말라
깨달음이란 계기에 의해 얻는 것이지만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즉, 멱살잡이를 해서 깨달은 것은 아니다
擒住 : 멱살잡다
被擒住 : 멱살 잡히다
縛却手脚 : 손발을 묶다.
遶四天下 사천하를 한바퀴 돌다
也不能得悟 也不能得休歇
원래 알음알이 – 지식이 많은 것은 깨달음을 방해한다고 한다. 요즘은 사람의 의식 속에 많은 생각들이 들어 있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자기 경계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가 나름대로의 생각에 빠져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고 거기에 스스로 묶여버리는 것이다.
休歇 : 깨달은 다음에는 할 일이 없이 모든 것을 푹 쉬어버린다는 뜻
尋常에 計較安排底도 是識情이며 隨生死遷流底도 亦是識情이며
심상 계교안배저 시식정 수생사천류저 역시식정
怕怖慞惶底도 亦是識情이어늘 而今參學之人은 不知是病하고 只
파포장황저 역시식정 이금참학지인 부지시병 지
管在裏許하야 頭出頭沒하나니 教中에
관재리허 두출두몰 교중
所謂隨識而行不隨智라
소위수식이행불수지
평상시에 계교(계산하여 비교)하여 꿰어 맞춤(安排)도 식정이며, 생사를 따라서 흘러 다님(遷流)도 역시 식정이며, 두려워 무서워하며 어쩔 줄 모름(怕怖慞惶)도 역시 식정이거늘, 요즘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參學) 사람들이 이와 같은 병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만 있어서 머리를 출몰하나니, 교 가운데에는
“식을 따르고 행(수행)은 지혜를 따르지 말라.”고 하였다.
尋常 : 평상, 평소
計較安排底
計較 : 계산하여 비교함
安排 : 위치를 정해서 자리를 배치함
計較安排 : 따지는 마음. 옳은가 그른가 따지는 마음
默契菩提大道心(묵계보리대도심), 즉 묵묵히 깨달음에 계합해야 하는 것이다.
識情 : 識(식)이 일어나는 정. 情識(정식)을 나타낸다.
隨生死遷流底 : 생사를 따라 흘러다니는 것
遷流 : 물이 흘러 오고 가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전부 識情(식정)인 것이다. 受想行識(수상행식)의 識(식)은 ‘알다’라는 뜻도 있다.
怕怖慞惶底 : 두려워 어쩔 줄 모르는 것
識情(식정)으로 공부를 하려고 하면 안된다. 지식을 앞세워서 하는 공부는 禪(선)에서 볼 때에는 모두 識情(식정)이다. 물론 지식도 중요하긴 하나, 지식을 앞세워 사량 분별하는 것은 禪(선)에서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今參學之人 : 요즘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參學) 사람들
大慧(대혜)스님은 看話禪(간화선)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분이다. 圓悟克勤 (원오극근) 선사가 기틀을 만들고 大慧宗杲(대혜종고)선사가 看話禪(간화선)을 완성했다고 禪宗史(선종사)에서 평가받는 분들이다.
물론 여러 종파가 있어서 화두를 들고 하는 禪(선)인 看話禪(간화선)도 있고, 화두를 들지 않고 하는 黙照禪(묵조선)도 있다. 宋(송)에 들어와서는 臨濟宗(임제종)이 다른 종파들을 흡수하여 지금까지 禪(선)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계종이 臨濟宗(임제종)의 계보를 이어온 종단이다. ‘曹溪(조계)’라는 말은 6조 혜능 스님을 두고 쓴 말이지만 臨濟宗(임제종) 선맥(禪脈)이다. 물론 선종 5종이 모두 육조로부터 전해져 내려와 후대에 와서 갈래가 나눠진 것이다.
不知是病 : 알음알이로 알려는 이것이 병인 줄 알지 못하고
只管在裏許 단지 그대로 속에 있게 놔두고
只管 : 단지
在裏許 : 알음알이 속에 있어서, 알음알이 속에 빠져서, 알음알이 병에 빠져서
頭出頭沒 : 고개가 한번 들어갔다가 솟아났다 하는 것
중생이 윤회하는 것도 頭出頭沒하는 것이다.
隨識而行不隨智 : 識(식)을 따라 행하고 지혜를 따르지는 못한다.
以故로 昧却本地風光과 本來面目하나니 若或一時나 放得下하야
이고 매각본지풍광 본래면목 약혹일시 방득하
百不思量計較하면 忽然失脚하야 蹋着鼻孔하리니
백불사량계교 홀연실각 답착비공
그러므로 ‘본지풍광’과 ‘본래면목’을 어둡게 하나니, 만약 혹 한때나마 놓아버려서(放得下), 온갖(百) 것을 사량하거나 계교하지 않는다면 홀연히 (識情의) 자리를 잊어 콧구멍(핵심)을 밟게 되리니(蹋着鼻孔 : 깨우치게 되리니)
本地風光과 本來面目은 같은 뜻
本來面目 : 본래 그대로의 모습
당나라 때 寶樹(보수) 스님이란 분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유명한 스님을 찾아 도(道)를 구하러 가게 되었다. 요즘도 그러한데 오는 대로 다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만 방부를 받아준다. 寶樹(보수)선사가 큰스님의 회상에 가게 되었을 때 큰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寶樹(보수)선사가 “남쪽의 00에서 왔습니다.”라 대답하니, “00이 자네 고향인가?”라고 다시 물었다. 寶樹(보수)스님이 “예, 제 고향입니다.”라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큰스님이 “자네는 고향에 태어나기 전에 어디 있었는가? ”라고 물었다. 이처럼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것을 묻는 것이 禪問(선문)이다. 전생에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 질문이지만 이런 물음은 그대로 화두(話頭)가 되는 물음이다. 寶樹(보수)선사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미안하네, 여기 방부를 들이려면 그것을 알고 와야 하네. 사정이 그러하니 다른 곳에 가서 공부하도록 하게”라고 큰스님이 말씀하시었다. 寶樹(보수) 스님이 할 수 없이 방부를 못 들이고 나와서, ‘태어나기 전에 어디 있었는가?’라는 화두가 머리에 박혀서 行脚(행각)을 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저잣거리(요즘 말로는 시장통)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떤 사람이 푸줏간이 있어서 들어가서 “좋은 고기 주시오”라고 하니 정육점 주인이 “똑같은 고기인데 좋은 고기가 어디 있소?”라 하였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에 태어나기 전에 어디 있었느냐는 화두가 탁 터지더라는 것이다.
‘如何是本來面目(여하시본래면목)’이라는 공안도 있다.
放得下 놓아버리다
엄양존자(嚴陽尊者)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소문을 들으니 조주선사에게 가서 뭐든지 물으면 “放下着(놓아버리게)” 이 말 한마디를 해준다고 하였다. 그는 조주선사를 찾아갔다. 그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가져온 사람은 무엇을 놓아버립니까?”
그 물음에도 조주선사는 또
“放下着(놓아버리게).” 하였다.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져온 것이다.
엄양이 다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놓아버립니까?”
“그럼 짊어지고 가게나.”
“?....”
이 말에 엄양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百不思量計較 : 속 뜻은 생각이 모두 끊어져 버린다는 뜻. 생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
百 : 온갖 것, 모든 것
忽然失脚
失脚 : 자리를 잃음
蹋着鼻孔 : 깨우치는 경계
鼻孔 : 핵심
即此識情이 便是眞空妙智라 更無別智可得이어니와 若別有所得
즉차식정 변시진공묘지 갱무별지가득 약별유소득
하며 別有所證則又却不是也니라 如人이 迷時에 喚東作西라가
별유소증즉우각불시야 여인 미시 환동작서
及至悟時하야는 即西便是東이라 無別有東이니라
급지오시 즉서변시동 무별유동
곧 이 식이 만들어내는 정(識情)이 바로 ‘진공묘지’라. (그밖에) 다시 별도로 지혜를 얻을 것이 없거니와, 만약 달리 얻은 바가 있고 달리 증득한 바가 있다고 하면, 또한 도리어 옳지 않다. 마치 어떤 사람이 깨닫지 못할 때는 동쪽을 불러서 서쪽이라 하지만, 깨달음의 때에 이르러서는 곧 서쪽이 문득 동쪽이라, (그밖에) 달리 동쪽이 있지 않은 것과 같다.
此識情 : 이 識(식)이 만들어내는 情(정)
此識情이 便是眞空妙智 : 번뇌가 곧 보리라는 말.
깨닫고 보면 번뇌가 곧 보리라는 뜻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말이란 논리의 함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證道歌(증도가)>에는 ‘幻化空身卽法身(환화공신즉법신 : 허깨비 같은 헛된 몸이 곧 법신이다)’라는 말도 나오고 ‘無明實性卽佛性(무명실성즉불성 : 무명의 실제 성품이 곧 불성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깨닫기 전에 無明(무명)이었던 것이 보리로 바뀌어진다는 것이다. 곧 識情(식정)이 바로 眞空妙智(진공묘지)라는 것이다. 眞空妙智(진공묘지)란 眞空妙有(진공묘유)를 터득한 지혜이다.
眞空妙有(진공묘유)란 『金剛經(금강경)』 4구게 중 凡所有相 皆是虛妄(범소유상 개시허망)의 앞 두 구는 眞空(진공)을 말한 것으로 보고,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의 뒤의 두 구는 妙有(묘유)를 설파한 것으로 본다. 공을 통하여 부처를 본다는 이 말은 공이 공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서 부처를 보니까 眞空妙有(진공묘유)라는 것이다.
更無別智可得
更 : 더 이상, 다시
別 : 달리. 별도로
깨닫지 못했을 때 번뇌였던 것이 깨닫고 나면 眞空妙有(진공묘유)가 된다는 말
若別有所得 別有所證則 : 달리 얻을 바가 있다고 보고, 증득할 바가 있다고 본다면
又却不是也
却 : 도리어
迷時
迷는 방향을 착각하는 것
喚東作西 : 방향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
及至悟時 : 깨달음의 때에 이르러서는
即西便是東이라 無別有東이니라
미혹할 때 잘못 알았던 동서를 반대로 봤던 것이 깨닫고 나면 똑같은 것이다.
此眞空妙智與太虛空으로 齊壽하니 只遮太虛空中에 還有一物이
차진공묘지여태허공 제수 지차태허공중 환유일물
礙得佗否아 雖不受一物礙나 而不妨諸物이 於空中往來하나니
애득타부 수불수일물애 이불방제물 어공중왕래
佗(타) 저, 그것
遮(차) 막다, 이
이 진공묘지는 태허공과 더불어 그 수명을 같이 하니, 태허공 중에 도리어 한 물건이 그것(허공)을 장애할 수 있겠는가? 비록 한 물건의 장애를 (태허공이) 받지 않는다고는 하나, 모든 물건들도 허공 가운데서 오고 감을 방해하지 않나니
眞空妙智 : 참으로 공해졌을 때 드러나는 미묘한 지혜. 眞空妙有(진공묘유)의 지혜
太虛空 : 우주의 무한한 공간
齊壽 : 수명이 가지런하다, 즉 수명이 같다
眞空妙智(진공묘지)가 太虛空(태허공)은 생겨난 때고 없고 끝나는 때도 없다. 그야말로 無始無終(무시무종)인데 이런 太虛空(태허공)과 眞空妙智(진공묘지)가 수명이 같다는 것이다.
還有一物 : 도리어 한 물건이
還 : 도리어
礙得佗否 : 허공을 장애할 물건이 있겠는가? 허공을 장애할 물건이 없다는 뜻.
허공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허공을 부술 수는 없다. 그러나 禪語錄(선어록)에는 ‘허공을 추린다.’라는 말도 있긴 하다.
此眞空妙智도 亦然하야 生死凡聖垢染이 着一點不得이니 雖着不
차진공묘지 역연 생사범성구염 착일점부득 수착부
得이나 而不礙生死凡聖於中往來라
득 이불애생사범성어중왕래
이 진공묘지도 역시 그러하여 죽고․살고․범부․성인․때․물듦(生死凡聖垢染)이 한 점이라도 붙이려고 해도 붙일 수 없으니, 비록 붙일 수 없으나 죽고․ 살고․ 범부․ 성인․ 때․ 물듦(生死凡聖垢染)이그 가운데서 오고 감이 장애를 받지 않는다.
此眞空妙智도 亦然하야 生死凡聖垢染이 着一點不得
眞空妙智에는 그 어떤 것도 붙을 것이 없다.
雖着不得 : 붙임을 얻지 못하다 — 아무 것도 붙일 수 없다, 즉 眞空妙智(진공묘지)를 뜻하는 말
如此信得及見得徹하면 方是箇出生入死에 得大自在底漢이라
여차신득급견득철 방시개출생입사 득대자재저한
始與趙州放下着과 雲門須彌山으로 有少分相應이어니와 若信不
시여조주방하착 운문수미산 유소분상응 약신불
及放不下인댄 却請擔取一座須彌山하야 到處行脚하야 遇明眼人
급방불하 각청담취일좌수미산 도처행각 우명안인
하야 分明舉似하라
분명거사
一笑하노라
일소
이와 같이 믿어 미치고 보아 사무칠 수 있다면 비로소 생사의 출입(出生入死)에 크게 자재로움을 얻은 사람이라.
(대자재를 얻은 사람은) 비로소 조주의 방하착과 운문의 수미산과 더불어 조금 서로 응함이 있거니와, 만약 믿어 미치지 못하며 놓아 버릴 수도 없다면, 도리어 청하니 한 더미의 수미산(一座須彌山)을 짊어지고 가는 곳마다(到處) 행각하여 눈 밝은 사람을 만나서 분명하게 들어 바쳐 보기를.
한 번 웃노라.
如此信得及見得徹 : 이와 같이 확실하게 믿고 그걸 투철하게 보면
方是箇出生入死
方 : 바야흐로
出生入死 : 생을 벗어나 죽음에 들어감 → 생사에 드나듦. 살다가 죽는 것
得大自在底漢 : 큰 자재를 얻은 사람
漢 : 사람
始與趙州放下着 雲門須彌山
대자재를 얻은 사람은 비로소 조주의 방하착과 운문의 수미산과 더불어
有少分相應 : 조금 서로 응함이 있거니와
放下着과 須彌山이 조금 들어맞는 것이 있을 것이다
若信不及放不下 : 아직도 의심을 가지고 긴가 민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却請擔取一座須彌山
却 : 도리어, 오히려
却請 ; 오히려 청하오니
擔取一座須彌山 : 수미산을 짊어지고
行脚 : 스님들이 이리저리 다니는 것
舉似 : 들어 바치다. 생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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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이 제일이다라는 탄허스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임제록을 천천히 읽어보고 싶습니다.
"종사(경봉스님)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이미 법문은 다 해 마쳤다."
“오늘 법문은 ‘맷밥은 희고, 김은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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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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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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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