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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노장사상, 어떻게 통하고 어떤 점이 다른가?
노장사상과 선불교는 서로 통한다고 한다. 선불교는 노장老莊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노장을 알아야 선어록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 서적이 전무한 상황에서 최근 민족사가 최근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상·하)을 출간했다. 게다가 이 책은 중앙일보 종교담당 대기자로 한국불교선학연구원장을 역임한, 조금은 특별한 이력을 지닌 이은윤 선생이 퇴임 후 노장을 수차례 읽으면서 사유하며 공들여 집필한 역작이어서 더욱더 독자의 눈길을 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어렵고 모호하게만 느껴지는 노장과 선의 세계가 아주 쉽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특히 막연한 깨달음의 세계, 감히 일반인들은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던 선의 세계가 노장과 연결해 읽을 때 아주 분명해 진다는 사실이다. 본문을 살펴보자.
“노장은 저 멀리 설정해 놓은 이상을 향하지 말고 가까이에서 접촉하고 있는 자연적·일상적 직접성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이 같은 설법 속에는 본체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차이와 다양성, 즉 ‘현상계의 삼라만상’을 체용일여體用一如의 세계관으로 인정하고 수용하자는 깊은 철학이 들어 있다. 선사상도 같은 입장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푸른 대나무’와 ‘계곡물 소리’가 부처의 법신이고 설법이 되는 도리도 바로 이것이다. 선가禪家의 현성공안現成公案은 공空과 색色, 유有와 무無 양쪽 둘 다를 초월한 절대긍정의 존재론으로 두두물물의 실존을 기꺼이 수용한 것이다.”(상권 51쪽)
노장과 선불교가 서로 통하는 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러한 삶의 실존적 통찰이다. 도와 불법 진리는 어디에나 다 흩어져 있다. 선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공안들, ‘뜰 앞의 잣나무’, ‘간시궐(똥 젓는 마른 막대기)’에서 엿볼 수 있듯 삼라만상 두두물물, 심지어 오줌·똥 속에도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 선과 노장의 공통된 진리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은윤 선생은 노장으로 선어록을 읽고, 선시禪詩의 세계 또한 노장의 시선으로 읽는다. 평생을 갈고 닦은 언론인의 명쾌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는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허虛’는 불교의 공空·무심無心과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와도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선禪에서는 흔히 자성의 비유로 ‘허공’을 예시하고 노장에서는 ‘고요함[정靜]’에 허자를 덧붙여 ‘허정’이라 하여 강조의 의미를 더욱 강화시켜 주기도 한다. 무위는 바로 허다. 텅 빈 마음이 구현된 것이 ‘무위’인데 거울처럼 객관 사물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와 넓은 도량을 뜻하기도 한다. 무위는 존재의 자유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인식이며 일종의 자연사상이다. 선은 무위자연의 원시 체험을 통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증대시키는 데 모든 학습[수행修行]의 역점을 둔다. 깨달음이란 이러한 창의력이 비등점에서 자연스럽게 폭발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체험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암기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만나는 것이다.”(하권, pp.275~276)
이은윤 선생은 시종일관 “무위는 존재의 자유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무념無念과 통달에 도달한 마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진인眞人이고 지인·성인·대종사”, “불교 선종이 불성佛性 대신 흔히 쓰는 ‘자성自性’은 청정무구한 자신의 본성을 말하는데 곧 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금도 한국불교 절 집안에서는 수행을 흔히 ‘도 닦는다’고 한다”고 하면서 노장과 선불교가 궁극의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장과 불교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양쪽 다 근본적인 도道를 깨달은 수준에서는 사실상 같지만 노장이 그 도를 표면적으로 정치 철학화시킨 점은 선사상과의 현격한 차이점이다. 노자·장자가 설법의 우선 대상으로 삼는 자는 일반 백성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선가의 도가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제시, 자기 해탈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노장의 도는 만물과 하나 되는 길을 제시해 ‘우주 해방’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노장의 ‘무위’는 질서의 부정이나 해체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질서를 의미한다.”(하권, pp. 412~413)
저자는 이 책의 결론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하권 끝자락에서 약간의 지면을 빌어 위와 같이 노장과 선불교의 상이점에 대해 밝혔다. “노장은 관계와 변화, 선은 연기론과 제행무상이 존재론의 기본인식 사유인데 단어가 다를 뿐 그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선불교의 세계관은 만물의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을 전제로 한 입체론적 세계관, 즉 일체는 다양한 관계를 기초로 하여 성립되어 있는 유의 존재다. 불교는 모든 사물이 자성이 없이 연기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아 가유이지만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면서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이 같은 존재 인식은 노장과 전적으로 같은 맥락이다”(하권, pp.409~410)라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 상·하권 대부분의 지면을 노장사상을 통해서 선의 세계를 더욱 명확하게 읽을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산업의 융합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간의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 “선禪과 노장老莊은 ‘무용지용無用之用’을 통해 새로운 ‘가치 창조’를 이끈다. 선가의 해탈과 노장의 초월은 실용적 측면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쓸모없음의 큰 쓸모’가 정신적 양식이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오늘날 융합과 소통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조의 시대에 이 책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밝은 지혜를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