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3박 4일 간 제주도 여행을 합니다.
오래 전에 계획된 여행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하는 지체들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교만과 판단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본문 주해)
1~2절 : 아합이 이세벨에서 갈멜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 해준다. 그러자 이세벨이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기세가 등등하여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이를 가는 것이었다.
3~8절 : 3절의 ‘이 형편을 보고’ 라고 하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도 아합과 이세벨은 건재하다는 사실과 백성들 역시 엘리야 편에 서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래서 엘리야는 급격한 영적 침체에 빠져 자기의 생명을 위해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간다. 자기의 사환도 멀리 떼어놓고 혼자 사막으로 가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한다.
엘리야의 영적 침체의 이유는 무엇인가?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승리로 아합 왕과 아합 왕의 얘기를 들은 이세벨이 고꾸라지면 훌륭한 조상들도 못했던 이스라엘을 바로 세우는 일을 자기가 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세벨이 내일 이맘때 죽이고야 말겠다는 위협을 하자 오히려 자신이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탈진한 엘리야를 먹이고 쉬게 하신다.
그리고 40일을 걸어 호렙산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길로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다시 배우게 된다.
9~10절 :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 머물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한탄한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는 것을 보고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예언자라고는 저 하나 남았는데 그들이 저마저 죽이려고 찾고 있습니다.”(공동번역)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아합과 이세벨과 한 통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불로 응답하신 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 않으시니 그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려고 한다고 한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선지자 노릇 못하겠으니 죽여 달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어제 갈멜산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처단한 엘리야, 멋있게 허리를 동이고 아합의 마차보다 앞서 신나게 달렸던 엘리야의 그 에너지가 오늘은 어디로 갔는가?
엘리야가 이토록 탈진하고 영적으로 침체된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엘리야는, 아합을 통해 갈멜산 이야기를 들은 이세벨이 놀라거나 두려워할 것을 기대했었다. (이미 아합은 엘리야의 기세가 눌려있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달리 독하디 독한 이세벨은 기세등등하여 도리어 엘리야의 목숨을 처단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것이었다. 거기다 갈멜산의 그 위대한 승리를 본 백성들까지 엘리야 편을 들지 않는 상황이니 자신의 예상과는 완전 딴판이 된 것이다.
이것이 엘리야에게 찾아온 뜻밖의 영적 침체의 이유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승리감을 빨리 처리하지 못한 것 같다.
그 승리감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이었다. 승리가 기쁜 것은 사실이지만 내 기쁨으로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주님께서 하셨으니, 이후의 모든 일도 주님께 맡겼어야 하리라.
그러나 엘리야는 승리감을 십자가에 처리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뒷일까지를 예상하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승리감 때문에 생기는 처절한 실패감을 나도 경험했었다.
주님의 은혜로 청년부 설교 시간에 복음을 열심히 선포했으니 청년들이 반응이 뭔가 다르리라 기대했건만 결과는 너무도 무심하고 냉랭했었다. 나는 복음을 선포했으니 아이들의 반응에는 마음을 두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했으니 이러이러한 반응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결과는 내 마음의 참담함이었다.
또 영적 교제로 한 마음이던 동역자와의 관계가 참으로 기뻤었는데, 문제가 생기니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
다 승리감에 취해 있을 즈음이요, 나의 감정에 충실한 결과였다.
승리를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된 그 감정에 충실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낙심도.... 그것을 붙들지 말고,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경험이었다.
예수님께서 파송하셨던 칠십 인의 제자가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귀신들이 항복하는 경험을 제자들이 기뻐할 때(눅10:17)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하셨다.
또한 바울 역시 그 승리감에 취해 있지 않도록 경계시켰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승리 후에 찾아온 엘리야의 탈진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승리나 실패의 경험 자체에 마음을 묶어 두지 않는 것이다. 승리를 했든 실패를 했든, 그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도 장차도다만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만을 믿고 기대하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스스로가 한 것이라고는 0.0....1%도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승리가 주어지면 슬그머니 상에 숟가락을 놓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그와 같은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합니다.
승리하게 하신 주님만을 찬양하고
오직 무익한 종의 고백을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
이러저러함에도 불구하고 천사를 보내셔서 먹이고 잠재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실패 뒤에 쉬고 나면
주님의 일하심을 새롭게 배우는 엘리야가 되게 하시고 또한 저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