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9: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9: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9: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9: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9: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 주해
1. 사도들과 스데반,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교회가 세워졌다.
1) 교회를 없애려던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알았고, 즉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2) 아나니아를 통하여 성령충만함을 받고 세례를 받은 바울은 다메섹의 성도들과 교제하고, 바나바를 통하여 사도들과 예루살렘 성도들과 교제한다.
2.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알게 된 복음과 성도와의 교제를 통해 알게 된 복음으로 처음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증거하였다.
1)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내가 전해 받은 것”을 전하였고, “나나 다른 사도들이나 같은 복음을 전했다”고 하였다.
2) 바울은 사도행전 28:23과 롬 1:2-3절에서 말한 대로 구약성경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했을 것이다.
3)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일어난 큰 박해로 인하여 도리어 교회들이 든든히 세워졌다.
행 9:31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3.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워갔던 베드로는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전한 후에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간다.
1)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룻다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지금의 텔아비브에 해당하는 욥바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2) 베드로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세워진 교회를 돌아보며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굳건하게 하면서, 사마리아에서처럼 기회가 되는대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4. 룻다에서 8년 동안 중풍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난다(33절).
1) 애니아는 “찬양하다”라는 뜻이며, 룻다 교회의 성도로 추측된다.
2) 베드로는 그에게 “애니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서, 자리를 정돈하시오”라고 말하였다. 애니아는 즉시 고침을 받는다(34절).
3)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중풍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한다(마 9:1-8; 막 2:1-12; 눅 5:17-26).
5.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표적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이다(요 20:30-31).
1) 표적의 목적대로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고친 일들을 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된다.
행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6. 지중해의 항구가 있는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1)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여제자였는데 병들어 죽게 된다(36절).
2) 욥바에 있는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것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에게 와 달라고 간청한다. 두 도시는 약 16km 정도 떨어진 곳이며 걸어서 3시간 정도 걸린다.
3) 베드로가 그곳에 도착하자, 과부들이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지낼 때 만들어 둔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여 주었다(39절).
7.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1) 기도를 마친 베드로는 시신을 향하여 “다비다여, 일어나시오!”하고 말하였다. 다비다가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서 앉았다.
2) 죽은 다비다가 살아난 것은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표적과 병행한다(마 9:18-26; 막 5:21-43; 눅 8:40-56).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었다(왕하 4장).
3)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서 그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서 그 여자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41절).
8. 중풍병이 걸린 애니아가 치유됨으로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듯이,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 온 욥바에 알려짐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었다.
행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행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1)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표적을 행한 후에, 그 열매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였다.
2) 중풍병이 낫고, 죽은 자가 살아났지만 사람들이 베드로를 따르거나 칭찬하거나 높였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사도들은 표적을 행한 후에 혹시 자신들이 행한 것처럼 사람들이 착각하면 적극적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 아니므로 우리를 주목하지 말라고 하였다.
9. 사도들은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신 목적, 예수님이 자신들을 통하여 표적을 나타내시는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였다.
1)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 표적이 나타난다.
2) 죄의 세력은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으로 인하여 사람이 높임을 받고, 사람을 따르게 한다.
3) 죄의 세력은 선한 일을 행할 때 즉시 역사한다. 특히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을 행한 후에 강력하게 역사하여 자기를 주장하게 함으로 죄의 포로가 되게 한다.
4) 하나님의 표적을 나타내는 많은 사람들이 죄의 세력에 속아 사망에 거하고 있다.
10.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때에 죄의 세력은 즉시 활동하여 속인다.
1) 주님이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한 것인데, 내가 했다는 탐심을 자극하여 교만하게 하고, 하나님 노릇하게 하며, 인정받으라고 하며 자기를 주장하여 관철시키라고 한다.
2) 일상적인 선행도 이렇게 속이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표적이 나타나면 이런 속임은 극에 달한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 이들도 지속적인 죄의 세력의 속임에 의하여 탐심에 취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11. 기독교 역사와 오늘날에 사도들과 달리 죄의 세력에 속는 일들이 속출하자,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과 표적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1) 교회에 문제가 있다하여서 가나안 성도가 되고, 권위자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여 반권위가 되고, 신학의 부작용으로 비신학적이 되고, 능력 사역자들의 문제로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지 않아야 한다.
2) 죄의 세력에 속아 자기를 주장하는 일들이 많다고 하여서 “선한 일을 행하지 말라”고 할 수 없듯이, 부작용이 크다고 하여서 “주의 이름으로 표적을 행하지 말라”고 해서는 않된다.
3)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선을 행하고, 즉시 주님이 하셨다고 함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하듯이, 더욱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표적을 행하는 사역을 해야 하고, 표적이 나타난다면 오직 주님이 하셨음을 알고 더욱 겸비해야 한다.
12. 사도행전은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통하여 “예수 생명으로 행하는 성도”가 어떠해야 함을 보여준다.
1) 물론 죄의 세력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시몬처럼 끊임없이 교회와 성도에게 탐심을 자극하여 사망에 이르게 함으로 죄의 포로가 되게 함도 보여준다.
2) 베드로를 비롯한 사역자들은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행할 때” 성령께서 함께 역사함을 보여준다.
3) 내 안에 사시는 예수 생명으로 행할 때, 예수님이 행하신 복음전파와 표적이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모방하려고 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자연스럽게 그들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표적을 행하게 하신다.
13. 사도들은 예수생명이 행하시는 대로 복음을 전하고, 표적을 행하고, 고난을 받으며, 말씀을 가르치고, 책망하기도 한다.
1) 그러기에 베드로가 드러나지 않고, 베드로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드러난다.
2) 그리기에 베드로가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전하던, 표적을 행하던, 무엇을 행하던지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믿어 생명 얻는 자들이 더하여졌다.
14.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욥바에서 시몬이라는 무두장이(피장이)의 집에서 묵었다(43절).
1) 무두장이는 짐승의 가죽에서 털이나 기름을 제거하여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일이다.
- 짐승의 사체를 접촉하는 일은 유대법상 부정한 일이다.
2) 예수님이 세리 삭개오의 집에 찾아가신 것처럼 베드로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문다.
3)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할뿐 아니라, 율법주의의 틀과 유대교의 틀을 벗어나도록 인도하신다.
4) 유대 정결법의 틀을 넘어서게 하시고 10장에서는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전한 복음, 즉 그의 씨를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는 일로 이끄신다.
15. 예수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모든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을 포함한다.
1) 성령이 임하자 사도들은 즉각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표적을 행하고 고난을 받았다.
2)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오랫동안 복음을 통하여 싸운 것은 그들의 고정관념이었다.
-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의 눈으로 성경을 보고 행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싸움이 필요했다.
3) 믿는 자들에게도 이 싸움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복음을 알고 생명을 얻어 감격한 성도들일지라도 세상 가치관과 율법적인 틀로 인하여 갈등하는 일이 많다.
4) 자기주장과 함께 만물 위 하나님이 시선으로 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하다.
◈ 나의 묵상
홀로 종횡무진 행하셨던 예수님이 사도행전에는 여기저기 나타난다. 베드로도 스데반도 빌립도 바울도...예수님을 보는듯하다.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다르지 않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피조물이요 먼지와 안개와 같은 인생이 하나님의 아들처럼 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니, 그리스도가 보이고, 그리스도처럼 행한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복음의 능력은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는 것이다. 복음은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 있음을 알게 하여 예수 생명으로 행하게 한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한다.
사도행전에도 죄의 세력이 역사하지만 성령께서, 그리고 예수 생명으로 행하는 성도들로 인하여 차단된다. 하지만 교회 역사와 오늘날에는 죄의 세력의 속임으로 인하여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이 모독을 받는다. 많은 선을 행한 후에 도리어 자기를 주장하는 일이 당연시하게 되었고,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행하고 성과를 낸 후에 자기를 드러내고 높임받으며 대우받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차라리 봉사를 하지 말고, 차라리 표적을 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많은 기여를 하고 도리어 그보다 더 많은 파괴를 한다.
그 속에 나도 있다. 복음을 전한 일, 헌신하여 섬긴 일, 표적을 행한 일... 그 모든 일을 통하여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며, 그 품속에 거했어야 했다. 그러나 주님이 행하신 일로 인하여 도리어 주님의 품을 떠나 독립적으로 높아지고 자였다.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는 말라져 태워질 뿐인데 말이다. 죄의 세력의 속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한국 교회와 사역자들, 성도들 그리고 나를 주님의 긍휼에 맡긴다. 표적의 목적이 생명이면, 표적을 행한 후에 얼마나 더 생명을 얻어야 하는가? 복음의 목적이 생명이면 복음을 전하고 나눈 후에 더욱 생명의 교제에 거해야 한다. 그런데 간교한 사단은 표적을 행하고, 선을 행하고, 복음을 행한 후에 “내가 했고, 내가 행한 만큼 보상을 받아도 된다”는 속임으로 나를 속인다.
사기 수법이 하두 지능적이어서 아무리 조심해도 사기를 당하는 뉴스를 보았다. 직접 만나서 물건을 확인하고 송금을 했는데도 사기를 당하고, 안심결제를 통해서 해도 사기를 당한다. 죄의 세력이 탐심을 통하여 속임을 알고도 당하는 나의 처지와 같다. 그러나 성삼위 하나님은 지금도 함께하시며 성령님은 나를 도우신다. 성령의 도움으로 죄의 세력을 이기고 생명을 드러내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간구한다. 죄의 세력이 역사할 때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생명으로 역사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알면서도 당하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십자가의 능력과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기에 보혈을 힘입고 십자가로 나아간다. 그 십자가에서 주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품어 주셨다. 십자가에서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모든 탐심과 교만을 제하셨다. 육신으로 행하는 자기주장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리고 내 안에 들어오신 주님은 내 안에 생명이 되신다. 복음으로 그 생명이 부활의 주님이 더욱 밝히 드러나고 나타나게 하신다.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다. 그분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며 사단을 이기신 부활의 생명이다. 삼위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하여 죄의 세력을 뒤로하고 주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바라본다.
◈ 묵상 기도
주님 저 또한 죄의 세력의 속임에 넘어가 자기를 주장함으로 생명의 역사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보면 너무나 심각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헌신하고,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후, 사도들처럼 그리스도만 드러내는 이들이 너무나 작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주님, 만물보다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을 새롭게 하사, 사도행전의 사도들처럼 십자가 복음과 장사복음과 부활복음에 연합되어 그리스도로 살게 하옵소서. 표적을 행하던, 선한 일을 하던, 무엇을 하던지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생명얻게 하는 복음을 증거하여 주사, 우리 안에 생명있음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부활의 주님이 우리 마음과 인격의 주되심이 당연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교회의 주인되심은 마땅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온 만물의 주관자로 나타내심이 마땅합니다. 옛사람과 육신을 이기게 하시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복음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옵소서. 다음세대와 주님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생명 있음을 아는 자들은 삼위 하나님의 영광의 교제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연약한 영혼육을 주님께 드리오니 치유하여 주시고 주님 품속에 거하에 하여 주십시오. 청년들과 다음세대가 영으로 주님을 알게 하시고, 항존직과 원형셀이 주님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옵소서.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을 예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