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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목포 산정동 성당...
조희경2 추천 49 조회 4,113 16.04.09 23:11 댓글 4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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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04.09 23:12

    첫댓글 모나간 신부가 체포된 후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 박문규(朴文奎, 미카엘) 신부,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 등이 차례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1945년 5월 28일에는 성당이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되면서 남교동에 있는 건물을 임시로 빌려 미사를 봉헌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광복이 되면서 총독부에 징발당했던 성당을 되찾고 이듬해 8월 24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이 처음으로 본당에 파견되었으나 이후 6·25 한국 전쟁으로 인해 본당은 다시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 16.04.09 23:24

    광복이 되면서 총독부에 징발당했던 성당을 되찾고 이듬해 8월 24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이 처음으로 본당에 파견되었으나 이후 6·25 한국 전쟁으로...

  • 16.04.10 10:18

    모나간 신부가 체포된 후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
    박문규(朴文奎, 미카엘) 신부,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 등이 차례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 16.04.10 14:10

    언제나 아름다운 성전을 이렇게 소개해 주시니...

  • 16.04.09 23:24

    뮈텔 주교는 1897년 12월에 서품되었으나 병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던 완주군 동상면 출신 이내수(李迺秀,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요양차 데예 신부의 보좌로 임명하였다. 이 신부는 8개월후 우적동 성당 신부가 되었으나 1900년에 다시 병이 악화되어 목포로 돌아가야만 하였으며, 데예 신부의 간호를 받다가 12월 20일에 선종하고 말았다. 잘 도착하셨지요. 안산의 밤은 우리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더구나 광주동아리님들의 성원에 진심으로...

  • 16.04.10 09:46

    이 신부는 8개월후 우적동 성당 신부가 되었으나 1900년에 다시 병이 악화되어..
    목포로 돌아가야만 하였으며, 데예 신부의 간호를 받다가 12월 20일에 선종하고 말았다....

  • 16.04.10 10:18

    뮈텔 주교는 1897년 12월에 서품되었으나 병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던..
    완주군 동상면 출신 이내수(李迺秀,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요양차 데예 신부의 보좌로 임명하였다...

  • 16.04.10 09:45

    브라질 신부 재임기인 1968년 3월 14일에 ‘연동 본당’이, 21대 주임 캐롤란(Carolan, 車) 신부 재임기인 1971년 10월 25일에는 ‘대성동 본당’이 분리되면서 동시에 압해도 · 비금도가 본당에서 분리되었다. 이로 인해 신자수가 크게 줄어 1972년에는 2,254명을 기록하였고 주변 신시가지로 신자들이 이전하면서 1979년에는 2,00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가 이후 10여 년이 지나서야 다시 2,00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 16.04.10 10:17

    브라질 신부 재임기인 1968년 3월 14일에 ‘연동 본당’이, 21대 주임 캐롤란(Carolan, 車) 부 재임기인..
    1971년 10월 25일에는 ‘대성동 본당’이 분리되면서 동시에 압해도 · 비금도가 본당에서 분리되었다...

  • 16.04.10 10:17

    1994년에는 산정동 본당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그 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11월 15일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기공식을 가졌으며, 1년 6개월 동안의 공사 기간을 거쳐 전시관이 포함된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31평 규모의 기념관을 완공하고 1998년 5월 23일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 16.04.10 14:10

    1998년 5월 23일..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 16.04.10 14:09

    17대 주임 둔(Dunne, 도) 신부는 또다시 본당 분할을 계획하여 북교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그 해 5월 성당을 완공한 뒤 9월 3일자로 ‘북교동(北橋洞) 본당’을 두 번째 자 본당으로 분할하였다. 한편 1957년에는 흑산도 진리에 새 부지를 매입하여 사제관을 건립하였고, 다음해에는 그 이웃에 10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11월 11일 봉헌식을 갖는 동시에 세 번째 자 본당으로 ‘흑산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 16.04.10 15:06

    다음해에는 그 이웃에 10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11월 11일 봉헌식을 갖는 동시에 세 번째 자 본당으로 ‘흑산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 16.04.10 18:28

    10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11월 11일 봉헌식을 갖는 동시에 세 번째 자 본당으로...

  • 16.04.10 15:08

    전남지역 주님의 못자리라 할 수 있는 목포 산정동 성당 성지를가..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 레지오 마리애가 설립된 곳이라니 놀랍습니다...

  • 16.04.10 18:27

    한국레지오마리애가 여기에서 시작이라네요...

  • 16.04.10 18:27

    목포라는 도시와 잘 어울리는 성전입니다...

  • 16.04.11 08:06

    1998년 5월 23일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언덕받이에 우뚝선 양팔을 벌린 주님이 보이는 곳 산정동 성당, 지금은 다소 교세가 약화 되었지만 광주.전남지역에 주님의 믿음의 씨를 내린 최초의 본당으로 그 역사를 간직한 성지이다...

  • 16.04.11 10:32

    신안군 도서 지역에는 여러 공소들이 설립되었는데, 18대 주임 휴그(Hughes, 유) 신부 때에는 신안군 안좌읍 공소, 19대 주임 모리시(Morrissey, 牟) 신부 때에는 안좌 대리 공소, 20대 주임 브라질(Brazil, 진) 신부 때에는 도초면 도락 공소가 각각 설립되었다. 흑산도 본당 재임 시절에 이미 도초 외남 공소를 설립하기도 한 브라질 신부는, 산정동 본당에 부임한 뒤에도 신축 성당 건립을 추진하여...

  • 16.04.11 18:19

    목포로 순례를 가도록 하겠습니다...

  • 16.04.11 18:19

    청담성당에서도 성지순례를 다닙니다..
    목포의 이 성당도 목포의 유일한 성지이고 성당이지요...

  • 16.04.12 08:51

    저도 다니고 싶은데...

  • 16.04.11 20:07

    1945년 5월 28일에는 성당이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되면서 남교동에 있는 건물을 임시로 빌려 미사를 봉헌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광복이 되면서 총독부에 징발당했던 성당을 되찾고 이듬해 8월 24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이 처음으로 본당에 파견되었으나 이후 6·25 한국 전쟁으로 인해 본당은 다시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 16.04.11 21:10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이..
    처음으로 본당에 파견되었으나 이후 6·25 한국 전쟁으로 인해 본당은 다시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 16.04.12 08:50

    1945년 5월 28일에는 성당이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되면서..
    남교동에 있는 건물을 임시로 빌려 미사를 봉헌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 16.04.11 21:09

    모나간 신부는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 발발과 동시에 총독부에 의해 체포 · 감금되기까지 7년여 동안 재임하면서 무엇보다도 전교에 노력하였다. 그 결과 신자수는 1,800여 명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성체회 · 청년회 · 학생회 등의 활동도 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1935년에는 산정동 97번지에 400평의 강당 겸 교리실을 신축하였고 가톨릭 문고도 설치하였다. 꼭 가보겠습니다...

  • 16.04.12 08:23

    1935년에는 산정동 97번지에..
    400평의 강당 겸 교리실을 신축하였고 가톨릭 문고도 설치하였다...

  • 16.04.12 08:50

    모나간 신부는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 발발과 동시에..
    총독부에 의해 체포 · 감금되기까지 7년여 동안 재임하면서 무엇보다도 전교에 노력하였다...

  • 16.04.12 08:22

    언덕받이에 우뚝선 양팔을 벌린 주님이 보이는 곳 산정동 성당, 지금은 다소 교세가 약화 되었지만..
    광주.전남지역에 주님의 믿음의 씨를 내린 최초의 본당으로 그 역사를 간직한 성지이다. 유서 깊은 성당입니다...

  • 16.04.12 08:49

    유서 깊은 성당입니다...

  • 16.04.12 08:31

    이처럼 목포 본당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던 데예 신부가 1909년 5월 1일 뮈텔 주교를 돕기 위해 서울 주교관으로 전임되면서 나주 계량 본당에 재임하던 투르뇌 신부가 목포 본당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계량 본당 주임으로는 카다스(Cadars, 姜達淳) 신부가 임명되었다. 당시 전라남도 지역 중에서 목포 인근과 도서 지역은 목포 본당(18개 공소, 916명), 장성과 나주 일대는 계량 본당(9개 공소, 291명), 그리고 장성과 순창 일부 지역은 정읍의 신성리(新城里) 본당과 수류 본당에 속해 있었다...

  • 16.04.12 08:49

    목포 인근과 도서 지역은 목포 본당(18개 공소, 916명), 장성과 나주 일대는 계량 본당(9개 공소, 291명)..
    그리고 장성과 순창 일부 지역은 정읍의 신성리(新城里) 본당과 수류 본당에 속해 있었다...

  • 16.04.12 19:27

    이처럼 목포 본당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던 데예 신부가 1909년 5월 1일 뮈텔 주교를 돕기 위해 서울 주교관으로 전임되면서 나주 계량 본당에 재임하던 투르뇌 신부가 목포 본당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계량 본당 주임으로는 카다스(Cadars, 姜達淳) 신부가 임명되었다...

  • 16.04.12 08:49

    전북 순창군 쌍치면 아천리(阿川里, 현 五龍村)에서 이듬해 7월 2일 목포로 이전하였으며 주보는 대천사 성 미카엘이다. 전라남도 지역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온 다른 지역의 교우들이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이들은 1872년의 ‘나주 무학당(武學堂) 사건’으로 새로운 순교자를 탄생시키면서도 꾸준히 복음 전파에 노력하여 그 결과 1882년 이후에는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에 의해 장성 · 순창 · 담양의 20여 개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 16.04.12 19:27

    1882년 이후에는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에 의해..
    장성 · 순창 · 담양의 20여 개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 16.04.12 19:27

    1957년에는 흑산도 진리에 새 부지를 매입하여 사제관을 건립하였고, 다음해에는 그 이웃에 10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11월 11일 봉헌식을 갖는 동시에 세 번째 자 본당으로 ‘흑산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이로써 산정동 본당의 신자수는 1959년 7월 5일에는 본당 이웃에 ‘성 골롬반 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57년 1월 21일에는 광주 지목구가 대목구(초대 교구장 : 헨리 주교)로 승격되었다...

  • 16.04.13 09:00

    1957년에는..
    흑산도 진리에 새 부지를 매입하여 사제관을 건립...

  • 16.04.13 09:00

    경동 본당을 분할하기 이전의 본당 신자수는 4,262명이었지만 본당 분할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1958년 초에는 6,264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17대 주임 둔(Dunne, 도) 신부는 또다시 본당 분할을 계획하여 북교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그 해 5월 성당을 완공한 뒤 9월 3일자로 ‘북교동(北橋洞) 본당’을 두 번째 자 본당으로 분할하였다...

  • 16.04.13 09:24

    ‘북교동(北橋洞) 본당’을..
    두 번째 자 본당으로 분할하였다...

  • 16.04.13 09:23

    다음해에는 그 이웃에 10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11월 11일 봉헌식을 갖는 동시에 세 번째 자 본당으로 ‘흑산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이로써 산정동 본당의 신자수는 1959년 7월 5일에는 본당 이웃에 ‘성 골롬반 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57년 1월 21일에는 광주 지목구가 대목구(초대 교구장 : 헨리 주교)로 승격되었다...

  • 16.04.17 12:37

    산정동 본당의 신자수는 1959년 7월 5일에는 본당 이웃에..
    ‘성 골롬반 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57년 1월 21일에는 광주 지목구가 대목구(초대 교구장 : 헨리 주교)로...

  • 16.04.15 09:54

    25대 주임 박영웅(朴英雄, 가브리엘) 신부는 1984년 1월 1일자로 신안군의 안좌 공소를 용당동 본당으로 이관하였고, 26대 주임 김성용(金成鏞, 프란치스코) 신부는 1989년 11월 18일에 양로원을 개원하였다. 1986년 10월 19일에는 본당의 ‘매괴의 모후’ 꾸리아가 꼬미시움으로 승격되었고, 1988년 4월 5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한국 도입 기념비 축성식이 본당에서 거행되었다...

  • 16.04.17 12:36

    1986년 10월 19일에는 본당의 ‘매괴의 모후’ 꾸리아가 꼬미시움으로 승격되었고..
    1988년 4월 5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한국 도입 기념비 축성식이 본당에서 거행되었다...

  • 16.04.17 12:36

    25대 주임 박영웅(朴英雄, 가브리엘) 신부는 1984년 1월 1일자로 신안군의 안좌 공소를 용당동 본당으로 이관하였고, 26대 주임 김성용(金成鏞, 프란치스코) 신부는 1989년 11월 18일에 양로원을 개원하였다. 1986년 10월 19일에는 본당의 ‘매괴의 모후’ 꾸리아가 꼬미시움으로 승격되었고, 1988년 4월 5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한국 도입 기념비 축성식이 본당에서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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