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금요일 소공원 전도와 연주, 교회 청소, 기도회....
신나게 논 만큼 미뤄진 집안일들....
다 기쁨과 성실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상의 새벽을 맞이하니 참 좋습니다.
오염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진리이신 주님을 보고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6. 해가 바뀌니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소집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27. 이스라엘 자손도 소집되어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그들 앞에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29.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30.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33.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본문 주해)
26~28절 : 1년 전에 선지자가 예고했던 대로 아람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다.
평지로 이스라엘 군대를 끌어내서 싸우면 산의 신인 이스라엘 신은 절대로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는 엉터리 분석을 한 아람 왕이 12만 7천 명의 군대를 끌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온 것이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 군대를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라고 비교한다.
1년 전, 첫 번 전쟁 때 이스라엘 군사는 7천 명이었다. 이스라엘이 1년 만에 얼마나 되는 군사를 증원할 수 있었을까?
이때 선지자가 다시 나타나 이 두 번째 전쟁의 승리도 말한다.
이 승리는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여호와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13절에서와 같이 28절에도 똑같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29~30절 : 12만 7천의 아람 군대였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니 이스라엘이 아람을 대파하여 보병 10만 명이 죽이고 남은 자가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에 들어갔는데 그 성벽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 남은 자 2만 7천 명도 죽게 되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골방으로 들어가 숨는다.
하나님께서 일하신 결과 아람 군대가 모조리 전멸하게 된 것이다.
31~34절 :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벤하닷과 그의 신하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시 전략을 짠다.
그래서 벤하닷은 굵은 베옷을 걸치고 머리에 새끼줄을 감고 아합에게 자비를 요청한다.
그러자 아합은 적을 살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로 맞이한다.
그런데 31절에 ‘이스라엘 왕이 인자한 왕’이라 한다.
이는 아람의 신하들이 아합의 허영과 교만을 옳게 꿰뚫어 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전략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이에 벤하닷이 자기 아버지가 아합 왕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성읍을 다 돌려줄 것이며, 또 자기 아버지가 사마리아에 그 이름으로 도로를 만든 것처럼 아합 왕도 다메섹에 아합 이름의 도로를 만들라고 한다.
벤하닷이 처음에 쳐들어 왔을 때에 벌벌 떨면서 ‘나는 당신의 종이라고 하면서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한 아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붙여주신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니 여호와의 전쟁은 간 곳이 없고 자기가 잘나서 이긴 줄로 아는 것이다.
(나의 묵상)
전쟁에서 두 번이나 승리하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합은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해도 아합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거나 회개했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자신이 잘나서 이긴 것처럼 생색을 내고, 외교적인 성과를 낸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벤하닷이 굽신대며 자신에게 자비를 요청하니 그저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벤하닷을 왕의 자리에 올려 대접한다. 자신이 얼마나 그릇이 큰 자인가를 보여주듯 너털웃음까지 발하는 아합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가로챈, 가증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바로 복음을 알기 전 나의 모습이다.
아니 복음 알고 난 후에도 불쑥불쑥 솟아나는 자기의로 가득 찬 나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일들을 통해 나 자신이 한껏 높임을 받기를 원했던 모습이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빼먹지 않고 사용했지만, 그것은 나를 자랑하기 전후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오늘 아합의 모습을 보니 그 행동이 얼마나 어이없고 가증스러운 것인가를 더욱 확실히 알게 된다.
이제 복음을 알게 되니 성령께서 그와 같은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신다.
그것은 겉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겸손이 아니다.(그런 겸손들은, 역시 자기의를 깔고 있기에 진정한 겸손이라 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죄악덩어리 자체인 존재가 ‘의’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 자를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여 주시고, 그것을 믿는 나를 의인이라 칭하셨으니, 나 같은 자가 무엇을 해서 어떤 승리를 한다 해도,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난 직후에는 나는 이것이 확실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내가 10% 정도? 아니면 1~2% 라도?.....나니까 그런 일을 해내지....’ 하는 마음이 늘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나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씩 알아가니, 10% 라고 했던 입을 다물게 되고, 2%...1%....하던 것을 회개하게 되었다.
물론 육체로 사는 동안,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와 같은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주님 앞에 정결한 자로 서게 하시니 안심이 된다.
복음을 알기 전 나는 아합이 사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모든 것을 내가 잘나서 된 것으로 알고, 그것을 자랑하기에 바쁜 자로 살았던 것이다.
이제 세상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나는 더 이상 아합이 사는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니, 나의 주장이나 자기의를 내세울 여지가 없는 것이다.
전에, ‘그렇게 살면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진정한 평안인 것을 느낀다. 사탄이 나를 함부로 찝쩍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또 찝쩍댄다 하더라도 십자가에 죽는 내게는 아무 효력이 없으니 말이다.
아합이 사는 방식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100%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며, 자랑하는 자이다.
지금 만면에 웃음을 띠며 벤하닷을 마차로 끌어올리는 아합의 얼굴이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할 뿐이다.
(묵상 기도)
주님,
아합의 사는 방식으로 열심히 살던 자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주시고,
주님께로 돌이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마음 저 밑바닥에 깔린 은밀한 자기의도 주님 앞에서는 감출 수 없으니
조금도 남기지 않고 고백하며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께서 이루시는 모든 일을 놓치지 않고 보는 눈을 주셔서
주님만을 찬양하며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 어려운 일을 성령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