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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에 표현된 恨과 신명
통영 오귀새남굿의 구성과 춤의 기능
정병호
우리의 풍속 중에는 악귀를 몰아내고 선신(善神)들을 맞이하여 액을 풀고 그 해의 무사를 비는 벽사진경(辟邪震慶)의 안택굿이 있다.
액을 푼다는 것은 죽은 이는 물론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관심사였으므로 액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인다. 동네 사람들은 굿판이 벌어지고 사물(四物)소리가 나면 누구나 그곳에 모여든다. 이러한 굿판은 신이 내리는 곳, 신이 노는 곳, 신과 만나는 장소, 신과 같이 노는 곳, 악신과 싸우는 곳, 악신을 몰아내는 장소, 신을 보내는 장소이며 공동체적 단합 생활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원(삶의 재생)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굿판에는 잡귀의 침범을 막는 장식과,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는 길(흰 옷감)이 마련되어 있으며, 극락세계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고문헌(ꡔ三國志ꡕ)의 기록에, “무리지어 노래하며 춤춘다”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긴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풍농을 기뻐하고 신에게 다음 해의 풍년을 빌었던 고대 부족국가들의 공통된 종교행사로, 무속의식이 얼마나 성대했고 가무가 발달했는가를 말해 준다. 이렇게 볼 때 종교와 예술은 본질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즉, 역사적으로 예술은 종교를 모태로 탄생했고, 종교는 예술의 힘을 빌어 더욱 심화될 수 있었다. 무속으로부터 파생된 정신생활의 맥락을 찾아보면 고대 제천의식(祭天儀式)의 국중대회(國中大會)를 비롯하여 신라의 화랑도, 고려 때 군신(君臣)이 융합한 팔관회(八關會)나 연등회(燃燈會), 세시풍속의 기초를 이룬 조선조에는 정과 흥이 결합된 신명의 민족문화가 구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 예술은 이런 배경으로부터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받아 발달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잔존하고 있는 무속적 예능을 정리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ꡔ한서(漢書釋義)ꡕ에서 왕씨(王氏)는 “여인들은 형제가 없는 것을 섬기는 데 능하며 춤으로 신을 내리게 하였는데, 이것을 곧 ‘巫’라 했다. 이렇듯 무녀에게는 다른 사람에 비해 예민하고 특수한 심리 상태가 있는 것이다” 라고 했다. 또 ꡔ주자어류(朱子語類)ꡕ에서는, ‘工’자의 양옆에 ‘人’자가 붙어 있는 것이 ‘巫’라 했으며, “이것은 춤추는 형용으로서 춤을 추면서 신에게 의지한다. 그러면 화기(和氣)가 돌아 신명이 통달하게 된다” 고 했다. 이와 같이 무녀는 신사(神事)를 주로 춤을 추는 것으로 사제(司祭)한다. 춤추는 것은 영혼계와 인간계를 연결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신령의 영력(靈力)을 빌어 재액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그 기능은 굿의 목적에 따라 실리적이고도 공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 목적의 제의를 연결시켜 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무의식(巫儀式)에서 무용적 표현은 한 거리마다 무가의 보조수단(발림)으로 춤추는 경우와, 반대로 무악기의 반주를 보조받아 춤추는 경우가 있으며, 때로는 제주나 그 가족 또는 구경꾼들이 합세하여 추는 경우도 있다.
한강 이북지방의 제의는 사제자와 신이 일체화하는 영력 중심의 제의이며, 남부지방 제의는 사제자와 신이 대좌관계(對坐關係)에 있는 신에 대한 형식적 의례가 중심을 이룬다. 여기서 전자는 강신무(降神巫)가 베푼 제의를 말하고, 후자는 세습무(世襲巫)가 사제한 제의를 일컫는다. 강신무의 춤은 무당이 신을 청해 접신(接神)하고, 몸에 신령이 들면 무아지경에 몰입하여(신령이 무당의 몸을 지배한다) 자기상실상태가 되는 가운데 신체(神體)로 변한다. 이때부터는 신령의 꿈틀거림으로 이른바 신무(神舞)를 추며, 사람들에게 공수를 내린다.
여기에 비해 세습무는 신을 청해 대좌하는 가운데 신에 바치는 축원적인 춤으로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전달하고, 한편으로 오신(娛神)하는 중에 신과 교감하여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복을 주는 축복적인 춤을 춘다. 이와 같이 무당의 춤은 강신무가 추는 신무와, 세습무가 추는 축원. 축복적인 춤이 복합된 것이다.
굿에서의 신명은 춤으로 발동하고 일차적으로는 접신 현상에서 느끼는 신비 경험에서 나오며, 그 밖에 무복이나 무악기 등의 주력(呪力)에서 감염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명은 무당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굿의 구경꾼들이 신주(神酒)나 제물을 음복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무의식 상태에서 잠재적인 종교적 심성과 예술적 심성(人間主義)이 교류하는 가무오신(歌舞娛神)의 과정에서 굿판은 흥이 난다. 그래서 굿판은 신성한 장에서 재생과 삶의 장으로 바뀌고, 춤은 종교적 신성도를 벗어나 유희. 오락. 예술적인 춤으로까지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무속무용은 신명으로 감정을 푸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또 무의식적인 것에서 벗어나 미의식을 가지는 예술적인 춤 (특히 세습무가 추는 춤) 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1. 통영굿의 개요
통영지방은 옛날 교방청(敎房廳)과 고취청(鼓吹廳)이 있어, 공인(工人)과 악무인(樂舞人)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따라서 지금도 통영지방의 무당들은 의식에 따른 예능적 기능이 발달되어 있다.
또 이 지방에서는 어업이 성하여 고장마다 풍어를 비는 별신굿이 크게 행해졌는데, 그 중 수사자(水死者)의 넋을 위로하는 오귀새남굿(넋굿)이 흔히 행해졌다. 또 정초에 간혹있는 도신굿, 별신굿 등이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해, 통영 굿패의 대표적인 박복개가 말한 이 지역 각종 굿의 종류와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신굿(都神굿)
집안의 안녕과 재복, 자손의 창성을 빌기 위한 굿이다.
2. 별신굿(別神굿)
부락 제의의 형식을 가진 큰굿이다. 부락 단위로 삼 년 또는 오 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마을사람들 모두가 참여한다.
3. 오귀굿
일반적으로 오귀, 진오귀 등으로 불린다. 이 밖에 큰굿, 오귀새남굿, 수륙새남굿 등의 명칭을 혼용한다.
4. 산오귀굿
불교의식에 예수재(豫修齋)와 같은 의미를 지닌 굿이다. 즉 죽은 뒤에 극락왕생하기 위해 생시에 미리 오귀굿을 해 둔다는 의미이다.
5. 신굿
강신굿이라고 한다. 강신무(降神巫)가 되기 전 무병(巫病)을 앓을 때 잡신을 쫓아내고 선생신(先生柛)또는 내림신을 한 분만 모시겠다고 하는 굿이다. 이 굿을 한 뒤 한 사람의 강신무로서 독립하는 것이다.
6. 들채굿
진도지방에서 행해지는 곽머리씻김굿과 같으며, 망자의 집 마당에서 발인제(發靷祭)를 지내기 바로 전, 이승에서의 한을 풀고 극락으로 가라고 비는 굿이다.
7. 광해굿(狂解굿)
미친 사람을 낫게 하는 굿으로, 남무(男巫)들이 백호(白虎), 청룡(靑龍), 주작(朱雀), 현무(玄武), 지신(地柛)을 그린 다음, 탈을 쓰고 사귀(邪鬼)를 쫓기 위해 한다.
8. 용굿
별신굿의 한 거리를 따로 떼어낸 것으로, 강. 소. 호수 또는 해중의 용신을 위해 한다.
9. 서낭굿
신조하거나 구입한 배를 바다에 띄울 때 재수가 있으라고 하는 굿이다.
10. 제왕굿
해산하거나 산고(産苦)로 죽은 부인을 위해 한다.
이상의 열 가지 굿 이외에도 교귀굿(蛟晷굿), 치방굿(治方굿), 재수굿 등이 필요한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행해진다.
2. 오귀새남굿의 구성
무속의례에는 개인적인 가제(家祭)와 마을 공동의 동제(洞祭)가 있다.
동제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에게 풍요를 빌고 풍어와 제액(除厄)을 위한 굿이지만, 가제는 제액초복(除厄招福). 치병(治病). 망자의 저승 천도. 가신의 평안 등을 위해 행해진다.
여기서 가제는 망자를 천도하는 사령제의(死靈祭儀)를 주로 행하는데, 이런한 사령제의를 오귀새남굿이라 한다. 이는 사령을 전환시켜 타계 혹은 극락세계로 보내는 의례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적 갈등과 계층간의 갈등 해소의 목적도 있다.
필자는 1982년 8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통용지방에서 행한 오귀새남굿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 굿은 통영 무승방의 대표격인 박복개의 삼촌 되는 박진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이보형(무악), 황루시(사설), 박진주(무가), 김정녀(무속춤), 김수남(사진)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곳은 충무시에서 버스를 타고 약 이십분 정도 걸리는 통영군(統營郡) 산양면(山陽面) 삼덕리(三德里) 원항(院項)마을로, 경사진 산비탈에 일흔여덟 호가 있는 양지 바른 어촌이다.
필자가 이 마을을 찾았을 때 박복개의 집에서는 부녀자들은 제물을 장만하고, 박복개와 박복율 형제는 굿에 쓸 장식품과 무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박씨는 아버지(박병규)가 소장한 오십삼 년 전의 점서기록(占書記錄)과 어정설법문(禦淨設法文)을 보여주며 제대로 된 오귀새남굿을 이번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박복개의 삼촌 박진규는 육이오 때 공산당에 부역을 했다 해서 억울하게 바다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후 혐의가 풀리기는 했지만, 집안의 사정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록 넋을 위로해 주지 못하다가, 이번에 그 넋을 바다 현장에서 건지고 위로하게 된 것이라 한다.
굿판은 울타리에 ‘삼한대(天王柛)’를 세워 굿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잡귀의 침범을 막고 망신이 하가하도록 한다. 또 그 옆에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걸고, 제상에는 제물과 꽃, 혼백식기, 시왕문고리, 열시왕침장, 신광주리를 놓는다. 제단 주변은 병풍으로 감싸고 망자의 옷을 건다. 즉 굿판에는 신대를 세워 저승과 이승을 왕래하게 했으며, 제물로 신을 청해 대접 하고, 화련한 꽃과 무복, 길베를 늘어놓아 극락세계를 형상화했다.
무당들이 입는 무복과 무구는 다음과 같다.
1. 무복
무복은 사제자(司祭者)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은 물론, 시각적으로 보기좋게 고안되었는데, 춤추기에 알맞은 옷이기도 하다.
통영지방의 무복은 큰머리에 큰옷으로 정장한 것과, 치마저고리의 평복 차림으로 구분된다. 큰머리는 불보살이 쓰는 화관(花冠)으로, 바리공주가 썼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으며, 큰머리뒤의 댕기는 망령이 앉는 자리(집)이고, 댕기에 드리운 영전은 망령을 씻길 때 쓴다. 그리고 옷 뒤에 새겨진 학은 을화를 상징한다.
정장은 다음의 것을 합한 것이다.
홍치마 붉은 비단으로 치마통을 만을고, 흰 무명으로 말을 달며, 끝에 흑색선을 두른다.
쾌자 통영지방 큰굿에서 승방은 큰머리를 하고 큰옷을 입는다. 이 큰옷은 홍치마와 쾌자를 말한다. 쾌자는 색동 소매가 달리고, 깃과 동정이 있으며, 등에는 한륭배가 달렸는데 쾌자라기보다 원삼에 가깝다. 소매는 위에서부터 진분홍, 녹, 황, 남, 홍, 흑색 등으로 색동을 단 것이 특징이다.
띠 띠는 길이 삼백이십 센티미터이고, 너비 십사 센티미터쯤으로, 흑공단을 두 겹 접고, 양끝은 삼각형으로 접어 잡아맸다.
한삼 한삼은 춤출 때 소매 끝에 다는 긴 명주천이다.
큰머리 통영지방에서는 머리에 쓰는 것을 ‘큰머리한다’ 또는 ‘화관을 쓴다’ 고 한다.
비네(비녀) 승방은 큰머리 할 때 긴 비녀를 낭자에 꽂는데, 이것을 통영에서는 ‘비네’라고 한다.
댕기 큰머리할 때 화관 뒤에 단다.
원정 무당이 큰머리할 때 꽂는 백동판(白銅板)을 말한다.
2. 무구
부채 부채는 신을 맞이 하거나 보낼 때 쓰는 무구로, 황(黃)명주로 만든 수건을 끈처럼 다는데, 이것을 ‘부채수건’이라 한다.
방울 방울은 놋쇠로 만들었으며 ‘신방울’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소리를 내서 신을 청하는 무구이다. 이번 굿에서 정모연 승방이 쓴 방울은 방울자루 끝에 고리를 달고 한지로 끈을 달았다.
신광주리 겉모양은 백지에 네 보살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신이 들어와 좌정하는 일종의 신의 집이라 할 수 있다.
신칼전 신칼은 잡귀를 몰아내거나 신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무구이다. 칼자루는 도대무늬로 꼬았으며, 끝에는 종이끈을 달았다.
신대 대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한다. 굿을 마친 후, 만신을 통해 영(靈)의 세계로 접신케 한다.
도시대 대나무 가지에 꽃과 종이를 걸친 도시대는 송신(送神)할 때 쓴다.
영복(靈服) 망자의 옷을 상징한다. 이것을 들고 춤추는 것은 넋을 오신하기 위함이다.
명태(대구) 명태는 조상신을 위한 굿을 할 때 제상에 올리는 제물로, 승방이 굿 중간에 부정을 씻기거나, 공사(공수)를 할 때 무구로 쓴다. 망령(亡靈)이 받은 신성한 제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혼백식기 수사자(水死者)의 넋을 저승에 천도 할 때 쓰는 무구이다. 식기 속에 쌀을 팔할 가량 담고, 망자의 신위(지방)를 넣어 뚜껑을 닫은 다음 긴 삼베로 싸고 단단히 세 번맨다.
손전 사느다란 막대리에, 흰 종이 여러 가닥으로 먼지떨이개같이 만들어 쓴다. 보통 부채와 방울을 같이 들고 춤을 춘다.
장구 손님풀이 청신(請柛)을 할 때 사용하며 장구를 들고 춤추기도 한다. 왼손으로 북판을 잡고, 오른손은 장구채를 쥐고 친다.
대금 공사(공수)할 때 어깨를 누르거나 때리기도 한다.
길베 망자를 씻긴 후,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길닦음에 사용하는 흰색의 긴 천이다.
3. 오귀새남굿의 실제
오귀새남굿은 열두 석의 절차를 가지는데, 각 거리의 내용과 그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부정굿
신을 맞기 전에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제거함으로써 신이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예비굿이다. 마당에 부정상을 차리면, 승방은 큰옷을 걸치고 손에 방울과 부채, 수건을 들고 먼저 조너리채로 무가를 부른다. 푸너리 장단에서 제석놀이 장단으로, 다시 덩덩굿이 장단으로 사서을 섞어 춤을 춘다. 이어서 승방은 무복을 벗은 평복 차림으로 사설을 하고 복주를 마신 후 마당 주변에 뿌리면서 굿을 끝낸다.
2. 넋건지기굿
육이오 때 마을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망자의 넋(혼배)을 건지기 위하여 호적과 장구를 치면서 배를 타고 떠난다. 배에는 제상을 차려 놓는다. 승방은 정장하고 ‘천수경’과 ‘환생탄일’ 등의 무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 망자가 익사한 현장에 도달하면 먼저 용왕을 청신하고, 제물로 산 닭에 무거운 돌을 매달고 꽁꽁 묶어 물 속 깊이 가라앉도록 한다. 승방은 징을 치면서 사방에 절을 하고, 이어서 부채와 신대(손대)로 회무하고, 장구통을 치면서 무가를 부른다. 그리고 전원이 “나무아미타불”을 연창하면서 이번에는 한 필의 베에 혼백식기(밥그릇)를 매달아 바다에 던진 다음 “ㅇㅇㅇ올라오라” 고 혼백을 부른다. 승방은 징을 치고 축원을 드린다. 이때 물 위로 거품이 약간 일면 혼백이 식기에 들어갔다고 보고, 제주가 눈시울을 적시는 가운데 서서히 바다 위로 끌어올린다. 이렇게 건져낸 혼백을 ‘신광주리(망자의 집)’에 좌정시킨다. 승방은 다시 평복 차림으로 제상에 차린 밥과 떡, 명태, 국물 그리고 여러과실 등을 바다에 던지며, 용신에 감사드리고 망자를 오신하는 춤을 춘다. 돌아올 때 고인들이 꽹과리, 장구, 징 북, 호적으로 굿거링 매구나리를 치면서 승방과 함께 춤을 추는 가운데 육지로 돌아온다. 육지에 닿아 승방이나 유족이 혼백식기와 신광주리를 들고 앞서면 고인들은 길군악을 치며 마을로 간다. 수사자(水死者)가 아닌 경우 이른바 ‘메 맞으러 간다’는 굿을 한다. 승방과 고인, 유족들이 신광주리에 망자의 신위를 붙이고 망자의 무덤에서 굿을 하는 것이다.
3. 당산굿
당산굿은 망령이 몇 십 년간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었다가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당산할아버지와 할미에게 고하고, 그동안 마을의 안녕을 감사드리기 위해 한다.
혼백이 마을에 당도할 때 즈음 마을 당산이 보이는 언덕에 병풍을 치고 제상을 차린다.
승방, 고인, 유족들은 당산 제상 차린 곳에 당도하여 혼백과 신광주리를 제상 앞에 놓는다.
승방이 정장 차림으로 방울, 부채, 손전을 들고 처음 부정굿과 같이 당산 부정을 친다. 승방은 고인수들의 올림채 장단에 춤을 추는데, 이 춤을 ‘쳐 올린다’고 한다. 그후 불림채로 당산 신령에게 망자를 고하는 무가를 부른다. 승방과 고인수가 “염을 준다”하면, “극락세계로 가는 길이로고나”라고 합창하고, “나무아미타불” 이라고 법창(法唱)을 한다. 그리고 고인수들은 염불 비슷한 삼현을 친다. 승방이 술잔을 들고 무가를 부르며 수부를 치고, 잡귀혼신에게 풀어 먹이는 음식을 사방에 뿌려 시석한다. 고인은 길군악을 치고, 승방은 유가족에게 길베를 집쪽으로 늘어뜨리도록 한 뒤 신광주리와 혼백식기를 길케 위에 놓아 집쪽으로 운반한다. 무녀는 엎드려 있는 제주 부부를 명태와 손대로 내려치며 오랫동안 불러주지 않은 것에 대해 호통을 친다. 동시에 맞아 주어 고맙다는 사설을 읊는다.
4. 문넘기
혼백이 집안에 도착하면 집안사람들은 대문 밖에서 안방까지 길베를 늘어뜨린다. 망자집의 한지둥(큰기둥) 옆마루에 향, 촛불, 술, 고기, 과일로 간소하게 ‘문넘기상’을 차린다. 소무(小巫)가 평복에 부채만 들고 문넘기상 앞에 서면 고인수들이 둘러앉는다. 소무가 불림채로 수문장군, 토지신령, 성극조왕에게 혼백이 집안으로 들어왔음을 알리는 중에, 망자의 부인에게 ‘신광주리’가 전달된다. 그것을 받은 부인이 울음을 터뜨려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무악가락이 빨라지면서. 부인은 남편과의 만남을 기뻐하듯 ‘신광주리’를 높이 들고 춤을 춘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신광주리를 제상에 좌정시킨다.
5. 제석굿
제주는 그의 사대조(四代祖)를 선생으로 섬기는 명당을 집안에 모시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명당 앞에서 제석굿을 한 석 한다.
6. 방안오귀(칠공주풀이)
방안 윗목에 병풍을 치고 망자옷을 걸친 뒤, 그 앞에 제상을 차린다. 상 앞에는 신광주리, 시루상. 혼백식기를 놓는다. 시루에 실꾸리를 넣고 실의 한 끝을 풀어 시루 구멍 밖으로 내놓는다. 그 앞에 승방이 장구를 놓고 앉으면, 먼저 고인수가 청신삼현을 연주한다. 무당은 왼손에는 실 끝을 당겨 감고, 오른손으로 장구를 치면서 무가를 부른다. 이때 고인수들은 장단을 치지 않고 쉰다. 먼저 천수경을 치고 칠공주풀이를 길게 읊는다. 이는 일정한 장단이 없는 자유리듬으로, 소리마디의 끝에 간간이 장구를 친다. 천천히 실을 감아가다가 칠공주풀이가 끝나면 남은 실은 끊어 버린다. 이 실을 ‘수명장’ 또는 ‘명줄’이라고 부르는데, 수명이 길어지라는 축원이 담겨 있다. 실을 손에 감는 것은 액을 푸는 행위로, 전라도 씻김굿의 오구물림과 유사하다.
7. 말미
여기서부터 마당굿으로 진행된다. 칠대조(七代祖)이하 조상들을 청해 제물을 바치고 집안의 안녕을 비는 이 굿은, 마당에 병풍을 치고 그날 방위(方位)에 걸리지 않는 방향에 제상을 차린다. 제상 앞에는 향탁을 놓고, 퇴주잔과 제주병(술병), 신광주리, 혼백식기를 놓는다. 제상의 양편에는 병풍 가까이 지화를 놓는다. 향탁 앞에 ‘열시왕침장(十三王寢帳)’을 매는데, 양옆에 말뚝을 박아 끝에 줄을 매고, 열세 이름을 각각 쓴 종이를 열 개 붙인다. 제상에 술을 올릴 때에만 침장을 걷어 올리고, 그 외에는 내려 놓는다. 뒤에 ‘열시왕탄일’을 아뢸때는 이것을 다시 걷어 올린다. 병풍에는 망자 신위와 조상 신위를 붙이고 망자옷을 걸치는데, 만일 사대(四代) 가운데 천도하지 않은 조상이 있으면 함께 천도(薦度)시키기 위해 그 조상옷도 걸친다.
승방이 큰옷에 큰머리를 하고, 손에 부채와 방울, 손전을 들고 굿상에 서면, 젓대잡이가 청배삼현을 친다. 승방은 사방의 제신에게 허배(虛拜)를 하고 춤을 춘다. 이때 올림채 장단으로 쳐 올린다. 고인수는 장구, 징, 북의 반주에, “먼날은 후리치고 가까운 날 댕겨받아”하고 푸너리 비슷한 장단으로 넋노래를 잠깐 부른다. 다시 승방이 서서 불림 장단으로 “거리로다 거리로다 앞도 당산거리로다 뒤도 주산거리로다 골매기 스님 날매기 되야 동헌천지 거리로다. 서경백이 거리올시다. 아번적시 거리로다” 라고 무가를 부른다. 그리고 대모가 “울러나고 울러든다” 고 노래를 부른면서 춤을 춘다. 다시 승방은 천근을 치고 “신아 허어히이요 어허어허어 천하 손님이야” 하고 육자배기토리의 자유리듬으로 길게 소리한다. 이때 장구잡이는 장구를 친다. 이를 손님굿으로 들어가는 천근이라 하여 ‘손천근’이라 부른다. 이것을 마치면 징잡이가 징을 치고, 고인수들은 그것을 받아 손천근을 그대로 부른다. 승방과 고인수들은 손천근을 교대로 한번 더 한다.
8. 손풀이
승방은 부채와 신칼 또는 부채와 손대를 들고 회무하면서, 마마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곰보가 되지 않도록 삼신 제왕님께 부탁하는 내용의 무가를 부른다. 이어서 자유리듬으로 “손님네 소시린다 오늘날에 손님네 앞날에 손님네 귀양국시 손님네가 오실적에 앉아 상천서서 구만리 면경 만리를 하고시고 두루바신 손님 장군 손님 부인 손님 호반 손님 세인 손님”하고 읊어가며 가끔 장구를 친다. 손님풀이를 마치면 고인수들은 올림채를 치고, 승방이 부채, 방울, 손전을 들고 춤을 춘다. 고인수들이 음악을 그치면, 승방이 “초년 석수 이년 석수채 푸너리지게 놀자”고 말한다. 이어서 고인수가 마을자심채로 “아 에헤헤 난니 마하 허허어 에헤나니 이히요” 소리하면, 승방이 “아황 임금아 공심은 절아주요 남산은 본이로다 남산은 본이로 에헤야 에헤나니 마하 허어허 나는 이히요” 라고 하는데, 이것을 고인수가 그대로 받는다. 이렇게 승방과 고인수가 소리를 주고 받다가 끝에는 푸너리로 넘기고 조너리로 넘겨 소리한다.
9. 영둑굿
마당에 조그만 상을 놓고 그 위에 촛불과 향을 피우고, 향물과 쑥물, 정화수 등을 진설한다. 그리고 자루를 벌려 그곳에 망자의 옷을 말아(영둑말이) 막대기 기둥에 붙여 세운다. 그 위에 쌀과 위패가 담긴 혼백그릇을 얹고, 백지로 덮어 솥뚜껑을 씌운다. 이 굿을 전라도에서는 ‘영돈말이’라 하는데, 이는 한스럽게 죽은 넋을 깨끗이 씻겨서 극락으로 천도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승방은 큰옷에 큰머리하고, 손에는 신칼을 들고, 영둑 옆에 서서 초에 불을 붙인다. 촛불로 솥뚜껑에 꽂힌 소지종이를 태워 불로 씻기고, 덩덕궁이 장단으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하고 천수를 친다. 이때 소모나 유족이 빗물. 향물. 쑥물. 청수로 솥뚜껑을 씻으며, “할마씨 몸을 씻습니다. 몸을 씻으니 잘 받아 가지고 극락세계로 가이소”라고 말한다. 유족들은 수건을 가져와서 자리와 솥뚜껑을 정하게 닦는다. 천수를치고 더 염불한 필요가 있으면, 반야심경. 사십팔원. 황천문답. 아미타불을 하고, 법성을 하기도 하며, 유족들에게 목욕채라 하여 돈을 걷기도 한다. 이것이 끝나면 승방은 신칼로 솥뚜껑을 세 번 딱딱딱 친다. 그리고 자유리듬으로 느릿느릿하게 “신아어허 어열신 기밀망제 망망령 기둥은 문지매 열시없이 쟁겼더니 열어주자 열어주자” 면서 청근을 친다. 솥뚜껑을 들어 혼백식기를 내려 놓고, 자루 안의 옷을 풀고, 다시 자루에 말아 시왕문고리 옆에 세운다. 시왕문고리를 사이에 두고, 먼저 승방이 혼백식기를 시왕문 동쪽에서 시왕문 사이로 넣어 준다. 유족이 서쪽에서 받아 이것을 다시 북쪽으로 넣어 주면, 승방은 남쪽에서 받아 제자리에 놓는다. 이것을 사방칠문(四方七門)을 통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승방이 망자옷을 말아 묶은 자루를 혼백식기의 경우와 같은 방법으로 받아서 자루를 땅에 세워 놓고 청근을친다. 그리고 시왕문에 걸어 놓았던 활을 꺼내 동쪽, 서쪽, 남쪽, 북쪽, 중앙에 쏜다. 그런 다음 땅에 꽂아 놓은 시왕문고리를 뽑아 들고 자리를 양손에 받쳐 든다. 제상 앞에 세 번 절한 뒤 축원하고 덩덕궁이 장단에 춤춘다. 그리고 이것을 유족에게 건네 주면, 유족들은 자루를 풀고 옷을 개어 병풍에 건다. 동시에 승방은 청근을 친다.
10. 길닦기
길닦기는 망자를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송신굿이다. 칠팔 미터 가야 되는 길베(흰무명)를 큰방쪽의 한 사람이 양손으로 길베 끝을 잡고, 또 다른 사랆이 다른 끝을 잡아당겨 대문쪽에서 늘어뜨린다. 승방이 큰옷에 큰머리를 하고 제상 앞에 서면, 유족들은 옆에 서서 망자의 옷 중 바지를 접어 저고리 속에 넣고, 길베 위에 얹는다. 그런 다음 혼백식기와 신광주리도 얹어 놓는다. 승방이 “아가 산존에”라고 부르면 고인이 “예”하고 대답한다. 다시 승방이 “이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어른네들 여러 망제 다 청춘 망제 수사혼신하여 여러 망제 선후 조상이명 저저이 모시고 상좌는 상좌대로 중좌는 중좌대로 하좌는 하좌대로 말석은 말석대로 차례차례 죄차례로 선후선영을 저저이 다 모시리고 한 옆도 길을 닦아 보렴물 인도기킬 적에 선후성 구성육각 염불을 닦아갑시다” 라고 말하면, 고인은 “예”하고, 염불채로 “나모 정구업진언 은안이라 나모에게 극락세계로 나나헤”하고 뒷소리를 미리 낸다. 그러면 승방은 염불채로 “정구업 일페는 애완하 갔거니와 정구업 이페 애완하 가소사”라고 앞소리를 메기는데, 고인들은 앞에서처럼 뒷소리를 받는다. 이때 유족들은 그 자리에서 혼백식기, 망자옷, 신광주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길베를 따라, “나무아미타불”을 연창하면서 오르내린다. 이것을 ‘길닦는다’고 한다.
승방은 불림채 “일세동방경도량”이라고 염불사설을 한 뒤, 부채를 들고 춤춘다. 그리고 망령옷을 양손에 든 채 춤추다가, 그것을 제청(祭廳) 병풍에 걸친다. 다시 “고맙다”는 신의 말을 전하면서 신광주리를 높이 들고 춤을 추는데, 구경꾼들도 함께 춤을 춘다. 이때 고인들은 반굿거리 장단으로 굿거리 삼현을 친다. 승방은 다시 길베를 팔자형으로 말아 들고 춤을 춘다. 이제는 노인들도 나와서 덩실덩실 허튼춤을 추는데, 승방에게 “나 죽으면 굿을 해달라” 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승방은 길베를 고인 앞으로 가져가서 천근을 말미로 부친다. 고인이 장구를 치는 가운데, 승방이 길베를 들고 서서 자유리듬으로 “신아ㅡ허ㅡ 허열신 어느 지지든 망자 아흑도 잠간 신우 부친 제천을 모시노라 천근이야” 한다. 그러면 고인은 징을 치고 “천근아 나지야하 허” 하고 다시 징과 장구를 친다. 승방은 제천 앞에 가서 길베를 쳐들고 세 번 큰절한 뒤, 제상의 병풍에 길베를 걸어 놓는다. 유족들은 제상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11. 연불굿
승방은 큰옷에 큰머리를 하고 부채, 방울, 손전을 들고 제상에 서서 “나무로다 나무상조십왕불 나무상조십왕법” 하고 불림장단 천수를 친다. 제주는 큰절을 하고, 승방은 극락왕생하는 망령에게 염블을 들려 주며 제석신의 가호가 있기를 축원하다. 이때 고인은 굿판에 걸린 시왕침장을 하나씩 떼어 마당에 쌓아 놓는다. 승방이 자유리듬으로 이른바 황천문답, 환생탄일, 시왕탄일, 열두축문 등을 외면, 유족을은 제상의 잔을 갈아 올린다. 다음에는 고인들이 염불채로 법성을 한다.
12. 시석굿
여러잡신을 대접하여 배송하는 굿이다. 마당에 세웠던 반야용선, 허가, 서낭대를 떼고, 병풍에 붙였던 신위는 반야용선에 담는다. 신광주리, 망자옷, 반야용선, 지화, 열세 침장, 허가 따위를 마당에 늘어뜨린 길베 위에 얹어 놓는다. 승방은 평복으로 손에 부채와 방울과 손전을 들고, 길베 위에 있던 것을 문 밖으로 옮긴다. 동시에 유족들은 제청의 음식을 덜어 대문쪽에 간단하게 시석상을 차려 놓는다. 시석상 앞에서 승방은 덩덕궁이채로, “어라만소 어라대신이야 만고 혼신들아 만고 영신들아 수부사자들아 불쌍하고 애달아 수살수부 수살사자야 이정수부야 이정사자야 영절수부 열절사자” 이렇게 한참 소리를 하다가 고인에게, “여봅소” 하고 부르면, 고인이“예”한다. 그러면 승방은 “아무리 만고혼신을 청해도 그래도 빠지는 영혼이 있는데 배 안에 든 아도 생일육갑 참례를 하는데 육갑을 다 외아서 잘 풀어 주자”고 말하고, 덩덕궁이채로 “초제황에 상가본에 경오생이 상경인데 경어신미임 신계유 갑술을해생 만일 혼신아 왔거든 많이 먹고 돌아가소”라고 육십갑자풀이를 한다. 이어서 천수를 다르르 몰아친다.
이제 모든 굿이 끝났으므로 승방과 고인들은 사물(四物)을 치면서 집안의 마루와 부엌, 장독대, 변소, 곳간 등을 다닌다. 그래서 잡귀를 집 밖으로 몰아내고, 유족들은 지화, 허가, 반야용선, 신광주리, 시왕침장 등을 불로 태운다.
4. 무당
통영지방에서는 무당을 ‘승방’이라 하고, 악무(樂巫)를 ‘고인’이라 한다. 이번 오귀새남굿에 참여한 정모연 승방과 박복율 고인의 무기(巫技) 솜씨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굿에 참여 한 모든 무당들의 약력을 살펴봄으로써 보다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하기로 한다.
정모연(鄭模連,여, 1982년 현재68세) :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읍에서 출생했고, 현재 충무시도천동 이백이십오 번지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는 정주(鄭柱)이고, 어머니는 유밤선이다. 어머니에게 굿을 배웠고, 열여덟 살에 통영에 사는 김성오(金成吾)에게 시집왔다. 정모연 무녀는 통영으로 출가한 후부터 지금까지 무업에 종사하고 있다.
임필선(林必先 여, 1983년 현재68세) : 경상남도 통영군 산양면 새받이에서 출생했고, 거제군 한산면 대모리로 출가해서 지금까지 거기서 살고 있다. 정모연과 함께 거제, 통영지방에서 큰굿을 하며 정모연의 조무(助巫)역을 한다.
박복률(朴福律, 남, 1982년 현재48세) : 경상남도 거제군 일운면 고현리에서 출생했고, 충무시 정양동 일백칠십삼 번지에 살고 있으며, 박복개의 친아우이다. 열세 살에 통영으로 이사해 열일곱 살 때부터 선친 박경규(朴景奎)와 박재술(朴在述)에게서 피리, 삼현, 시나위 풍류, 징, 장구, 무악을 배웠다. 주봉진(朱奉珍)에게는 젓대, 삼현, 시나위를 배웠다. 열아홉 살 때부터 선친을 따라 굿을 익혔고, 지금은 승전무의 피리 악사로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배중렬(裵仲烈, 남, 1982년 현재61세) :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단양리에서 출생했고, 마산시 상남동 일백칠십팔 번지에 살고 있다. 열세 살에 충무로 이사하여 서른 살에 신순구(申純九)에게 농악을 배웠고, 서른여덟 살 때 박경구(朴景求)에게서 무악 장구를 배웠다. 그 뒤 마산에 이사해 사는 동안 충무와 거제지방의 큰굿에서 장구를 치고 있다.
박복개(朴福開, 남, 1982년 현재50세) : 경상남도 거제군 일운면 고현리에서 출생했고, 통영군 산양면 삼덕리 팔백구십칠 번지에서 살았다. 그는 이발업, 어업 등에 종사하다가 무업으로 되돌아왔는데, 젊어서 선친 박경규(朴景奎)에게 지화와 무구 만드는 솜씨를 익혔고, 한편 무악도 배웠다. 그래서 큰굿을 하면 지화나 무구를 제작하기도 하고, 굿판에서는 악무로 북을 친다. 그러나 그는 1985년 작고했다.
이들 외에도 고인에 유동주(柳東柱), 대잡이 백정자(白貞子)등이 참여 했다.
5. 오귀새남굿의 의식
통용 오귀새남굿의 악기는 피리, 젓대, 해금, 장구, 징, 북으로 편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은 해금, 젓대나 피리잡이가 없으면 시나위를 칠 줄 아는 호적잡이를 쓴다. 그래서 승방이 무가를 부르고, 고인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춤의 반주로는 피리, 대금, 장구, 징, 북으로 편성하는 경우가 많다. 오귀풀이와 같은 거리에서는 무당이 손수 장구를 치며, 무가를 부르기도 하고, 작은 굿에서는 무당이 징을 치는 수도 있다. 통영지방의 피리는 ‘향피리’라 하며 ‘젓대’는 시나위 대금으로 삼현과 시나위를 연주한다. 장구는 풍류에 쓰이는 장구보다 삼분의 이쯤 작고, 징은 농악에서 쓰는 것과 같으며, 북은 판소리 장단에 쓰는 것과 같다.
악기의 연주는 청신삼현(請柛三絃), 길군악, 삼현굿거리, 시나위 등과 올림채 타악 합주가 있다. ‘청신삼현’은 오귀새남의 넋건지기, 방안오귀, 말미와 같은 거리에서 연주한다. 또 굿을 시작하기 전에 고인들은 삼현육각을 치며 연주한다. ‘시나위’는 무가의 반주로 쓰고, 춤에는 반굿거리삼현을 쓰는데 전라도 굿거리와 비슷하다. 또란 행락에는 길군악을 연주한다.
이 굿에 쓰이는 장단으로 불림, 조너리, 푸너리, 대너리, 제만수, 덩덕궁이, 맘자심, 올림채,넋소리채, 제석놀이채 등이 있다. 여기서 불림 장단은 당산굿 말미굿 등의 무가장단 가운데하나가 되어 있다. 제석놀이채 가락은 부정굿에서 “놓고 가자 오날이요”라 처음에 소리하고 치는 장단이다. 대너리 장단은 부정굿과 손굿, 영둑굿 등에서 쳐올리는 춤의 장단으로 쓰고, 푸너리 장단은 부정굿을 비롯하여 손님풀이에서 연주된다. 덩덕궁이 장단은 부정굿, 넋건지지, 영둑 시석 거리에서 쓰고, 그 가락이 흥겹기에 무가나 춤 장단으로도 쓴다. 이 장단은 우리나라 어느 고장에서나 쓰이는 장단으로, 특히 시나위권에서 많이 쓰인다.
무속춤의 구성은 부정굿에서 잡귀를 몰아내는 축귀무(逐鬼舞), 넋건지기에서 청신무(請柛舞)와 오신무(娛柛舞)를 한다. 당산굿에서 축귀무, 문너기굿에서는 오신무, 방안오귀에서 오신무, 말미굿에서 청신무. 축귀무. 오신무. 영둑굿에서 축귀무. 오신무. 길닦기굿에서 오신무. 송신무(送柛舞), 염불굿에서 청신무. 오신무, 시석굿에서 오신무와 송신무가 있다.
춤의 종류로는 사설을 보조하기 위한 발림춤과 삼현육각에 맞추어 본격적으로 추는 긴 춤들이 있다. 이런 춤에는 부채와 수건을 들고 추는 춤, 길메를 들고 추는 춤, 영복(靈服)을 가지고 추는 춤, 명태를 들고 추는 춤, 메와 명태를 들고 추는 춤, 도시대 들고 추는 춤, 신대를 가지고 추는 춤. 신칼을 들고 추는 춤, 부채. 방울. 손전을 들고 추는 춤, 손전 꽂은 장구춤, 장군칼 들고 추는 춤, 쾌자 자락 들고 추는 춤, 혼백 들고 추는 춤 등이 있다.
통영 오귀새남굿의 춤은 일정한 규칙은 없으나, 주된 춤사위는 있다. 그 예로 춤사위를 보면, 팔을 좌우상하로 흔드는 형,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형, 팔을 몸 앞에서 옆이나 위로 휘젓는 형, 팔을 어느 방향으로 뿌리는 형, 팔을 교대로 겨드랑이에 가져가는 형, 팔을 머리위에서 돌리는 형, 옆걸음치기 형 등이 있다. 이 굿의 춤은 망자가 한스럽게 죽었기에 넋을 씻겨 위로하고 극락으로 인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춤은 주술적인 성격보다 신에 대한 축원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기본적인 춤사위는 맺고 얼렀다 푸는 정중동(靜中動)의 삼요소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전라도 굿의 춤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무수한 곡선을 형성한다. 또한 굿을 할 때는 먼저 춤으로 청신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무속에 나타난 세계관
서대석
무속은 오랫동안 민간에 습속(習俗)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외래 사조를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특히 불교나 도교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본다. 그래서 무속의 세계관 또한 본래 무속 고유의 관념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상의 영향으로 달라진 모습인지는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조사된 무속 자료에서 검출된 세계관은 그것이 고유의 것이든지 어느 역사시대 이후에 변모된 것이든지 우리 민족의 관념과는 무관할 수 없기에 그 나름대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무가의 내용을 조사해 보면,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섞여 있기도 하고 구별되어 있기도 하다. 성주풀이에서는 성주신의 본향이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으로 나타난다. 제비원에 뿌린 솔씨가 자라 집을 짓는 재목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집을 관장하는 신의 본향이 그 집의 자재가 되는 소나무의 산지로 설정된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경상도 안동은 현실계에 실재하는 세속적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곳에 솔씨를 뿌리고 소나무를 키운 존재는 세속의 인간이다. 또한 성주신의 거주처는 집의 대청, 천장이나 상기둥으로 인간이 생활하는 집안이다. 이처럼 성주신의 본향이 평범한 세속의 공간이고, 신의 거주처가 인간의 거주 공간과 일치한다는 것은 무속의 신이 인간과 함께 있으면서 인간 생활을 지켜본다는 무속신앙의 신관(柛觀)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예가 된다. 터주신은 집터의 신으로서, 신의 본향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거주처는 집 뒤 후원이다. 뒤뜰안 장독대 부근에 터주 항아리를 놓는 곳이 바로 터주신의 거주처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을 수호신인 서낭신이나 당산신은 당산나무가 있고 당집이 있는 마을의 어느 한 곳에 거주한다. 이처럼 집안의 수호신이나 마을 수호신의 거주처는 인간이 생활하는 현실계의 세속공간이다. 단지 제전을 거행할 때만 신의 거주처는 신성한 공간으로 의식된다.
이와는 달리 신의 세계가 인간계의 수평적 연장 위에 별도로 존재하고, 제일(祭日)을 당해서 제의(祭儀)장소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손님신은 강남국이 본래의 거주처로 무가에 나타난다. 강남국의 구체적 위치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우리나라가 아니 먼 나라임음 확실하다. 강남국을 출발한 쉰 세 분의 손님신 중에서 단지 세 분의 신만이 우리나라로 들어온다. 이들이 이동하는 모습은 인간이 여행하는 것과 같아서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과정이 흥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조상신의 본은 ‘하계영산’으로, 저승 지부왕의 통제를 받고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하계영산이란 저승 세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저승세계가 어느 방향에 위치해 있는가는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조상신이 인간 세계를 나오는 과정을 검토해 보면, 조상신의 거주처인 하계영산은 인간계의 수평 연장상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아모성 아모댁 조상님네 굿 받어 잡수러 오실제
젊은이 혼신 봇짐을 지고
늙은이 혼신 주량 짚고
등 밀거니 배 밀거니 청산을 넘느리고
백옥산 넘느리여 오실 적에
울어 넘든 청산고개 씨러쳐 넘어 오고
씨러 넘든 청산고개 우러 넘어 오실때에
이처럼 조상신은 인간이 여행하면서 산 넘고 물 건너 길을 가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인간계에 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조상신의 거주처가 인간계의 수직 상방인 천상계나 수직 하방인 지하세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승 세계의 성격을 비교적 상세하게 말해 주는 자료로 ‘바리공주’ ‘차사본풀이’ ‘장자풀이’ 등의 무속신화를 들 수 있다.
‘바리공주’는 약수를 구하려고 무상신선이 있는 곳을 찾아가다가 저승세계를 지나게 된다. 바리공주에 나타나는 저승은 인간계에서 삼천리나 떨어진 곳이고, 가시성과 쇠로 된 성이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 있는 곳이다. 또 각 지옥은 팔 없는 귀신, 다리 없는 귀신 등 온갖 귀신들이 들끊는 곳이며 조상신의 거주처가 아니라, 이승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죽은 후에 벌을 받는 곳이다. 즉 저승은 지옥을 말하며, 서방 정토 극락 세계와는 대립되는 곳이다. 이런 저승의 모습이 무속 고유의 사고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계에서 행한 선(善)과 악(堊)의 심판 결과에 따라 극락과 지옥을 간다는 관념은 불교에서 유래한 세계관의 영향일 것이다. 무속은 내세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고, 인간 생활에서의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도 분명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 또, 현세적 삶만 중시되고 내세를 위해 현세를 소홀리 하는 삶은 강조되지 않는다. 그리고 신을 지성껏 공경하고 신에게 복종하는 자가 복을 받고, 신의 뜻을 거역하거나 신을 모멸하는 자는 재앙을 입게 된다고 믿는다. 복이나 재앙은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보답과 응징일 뿐, 내세에 나타나는 현세 생활 심판 결과는 아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바리공주에서의 지옥의 세계는 불교 사상이 무속에 수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해도 무속사상으로 용해된 이후에는 무속의 관념으로 불 수밖에 없다.
저승 세계와 인간 세계와의 공간적 연결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차사
본폴이와 장자풀이이다.
‘차사본풀이’에서 강임은 김치 원님의 명령을 받고 그 부인의 도움으로 저승가는 방법을 알아낸 뒤 염라대왕을 잡으러 저승 세계에 들어간다. 강임이 저승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면, 저승과 이승 사이의 관문은 ‘헹기못’ 이란 연못임을 알 수 있다. 강임은 이원사제에게 길 안내를 받으며 눈을 질끈 감고 ‘헹기못’에 빠지는데, 바로 저승의 대문인 연주문이 나타난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나올 때도 강임은 헹기복을 통과한다. 염라대왕이 내 주는 흰 강아지를 따라 헹기못까지 이르른 강임은 강아지가 목을 풀어서 연못 속에 빠졌는데, 그가 눈을 떴을때는 이미 이승세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처럼 이승과 저승사이에는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넘나들 수 없는 단층이 존재하는데, 이 단층이 물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물을 경계로 나뉘어져 있고, 물 속을 통과하면서 왕래할 수 있다는 관념은 물의 상징적 의미와도 관련을 가진다. 물은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이미지와 생의 마지막으로의 죽음의 이미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행(五行)을 물의 방위와 연결시키면 북방이 되고, 다시 이를 계절과 연결시키면 겨울이 된다. 겨울은 가을이 지난 뒤에 오며 만물의 죽음을 의미하는 계절이면서, 다시 봄으로 이어지기에 만물의 소생을 예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지구는 바다와 육지로 되어 있는데, 인간의 생활 공간인 육지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렇기에 육지의 끝은 물에 닿아 있다. 그러나 물을 건너면 새로운 육지가 나타난다. 그래서 땅과 물의 접합점은 끝인 동시에 시작의 의미를 갖는다. 이승과 저승에 대한 관념도 이와 유사하다. 이승에서의 죽음은 저승에서의 탄생을 의미하고, 저승 세계를 탈출한다는 것은 곧 이승에서의 재생을 뜻한다. 강임이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 헹기못에 빠지는 순간은 이승에서 강임이 죽는 순간이다. 강임은 육신을 이승에 둔 채 그의 영혼만이 저승에 도달했던 것이며, 저승에서 강임이 활동하는 시간은 이승에서 강임이 죽어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상임이 저승 세계를 떠나 이승에 도달했다는 것은 강임의 회생(回生)을 말한다.
저승 세계만이 아니라 신선이 산다는 선계(仙界), 또는 부처가 있다는 서천(西天) 극락 세계 등도 인간계의 수평적 연장 위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바리공주는 부친의 병을 고치려고 약수를 구하러 여행길에 오른다. 약수가 있는 곳은 무상신선이 사는 신선 세계로, 이곳은 육로로 삼천리, 수로로 삼천리나 떨어진 멀고 먼 지역이다. 그러나 아무리 멀고 가기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라도 그곳은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이지 날아 오르거나 땅 밑으로 내려가서 다다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생명의 꽃을 가꾼다는 서천 꽃밭의 이야기가 ‘이공본풀이’에 등장하는데, 서천이란 공도 역시 인간계의 수평적 연장상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무가에 설정된 이계(異界)는 대체로 인간계와 수평적 분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수직적 분포를 보이는 이계가 있는데, 바로 천상계이다. 천상계는 인간계의 수직 상방에 위치한 세계로, 천신이 거주하는 신의 세계이다. ‘창세가’에서 하늘과 땅을 분리시킨 미륵님은 인류를 지상에 퍼뜨리려고 금쟁반과 은쟁반을 두 손에 받쳐 들고 하늘에 축원하여 금벌레와 은벌레를 얻는다. 하늘에서부터 금쟁반 은쟁반에 담겨 내려온 다섯 마리의 금벌레 은벌레는 자라서 여자와 남자로 변했으며, 다섯 쌍의 부부가 되어 인류를 번식시켰다. 여기 설정된 하늘나라는 인류의 근원을 의미하는 세계로서 상징적 의미를 가질 뿐 인간이 오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실체는 아니다.
그런데 무속의 국조신화라고 할 수 있는 ‘시루말’이나 ‘천지왕본풀이’에서는 천상계의 신이 인간 세계에 내려와 활동하다가 다시 돌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천상계가 나타난다. ‘시루말’에서는 천상계에 살던 당칠성이 지상계로 내려와 매화 부인과 인연을 맺은 뒤에 다시 천상계로 올라가서 당칠성을 만나본 뒤 다시 지상계로 돌아온다. ‘천지왕본풀이’에서도 천지왕도 본래 천상계의 존재이면서 지상계를 왕래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 대별왕 소별왕은 지상 세계에서 출생했으면서도 천상계를 왕래한다. 이렇듯 천상 세계는 인간계의 수직 상방에 위치한 인간 세계를 관장하는 신의 거주처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신들은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천상계에 거주하는 신은 남성신이고 이들이 여성신을 만나기 위해 지상에 내려왔던 점에서, 천상계는 시조신의 아버지 나라의 의미를 가지다.
한편 중부지방에 전승되는 성주신 신화에서는 천상계가 별도의 왕국으로 설정되어 있다.
황우양 씨는 지상 세계에서 이름난 목수였다. 그는 황우뜰이라는 곳에서 아름다운 부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사자가 전하기를, 하늘나라의 궁궐이 쇠동풍에 모두 쓰러졌으니 빨리 올라와서 궁궐을 다시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황우양씨는 부인이 새로 만들어 준 연장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서 쓰러진 궁궐을 다시 축조하고 지상세계로 귀환한다. 이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나라는 지상세계와 마찬가지로 임금이 있고, 궁궐에서 나라 일을 보는 별계의 왕국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은 지상 세계에 있는 목수도 없고,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도구도 구비되지 않은 곳이다. 지상계의 목수인 황우양씨의 힘을 빌어 쓰러진 궁궐을 다시 지을 수 있었다는 천상계의 설정은, 지상계를 통제하는 신이 있는 곳으로서의 천상계의 의미나 지상적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천상계의 이미지와는 다른 관념에서 형성된 것으로 본다.
호남지역 일대에 전승되는 ‘칠성본풀이’에서는 천상의 세계가 지상 세계와 같은 세속적 삶의 터전으로 나타난다. 칠성님과 매화 부인은 지상 세계에서 결혼하는데, 매화 부인은 한 배에 아들 일곱을 출산한다. 칠성님은 사람이 짐승처럼 한 번에 새끼 일곱을 낳았으니 징그러워 못 살겠다며 매화 부인을 소박하고, 천상으로 후실 장가를 간다. 한편 지상 세계에서 장성한 일곱 형제는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방석을 타고 천상계에 도달한다. 일곱 형제가 천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 당시여 줄이 내려올적으 하날의 줄이 덧없이 내릴 때 충충충 내려와 일곱아기 이름이 낱낱이 적어 있거늘, 오마니하고 하직하고 그 방석을 탈 때 눈물로 하직을 하고 올라갈 때 충충충 올라가니 반개로 올라가 매화 부인 눈물 씻고 발 동동 구르며 가슴을 뚜다리고 올라갈 때 한참 눈물 씻고 쳐다보니 간치만큼 뵈다가 또 한참 울며 불며 눈물 씻고 쳐다보니 새만큼 뵈다가 또 한참 눈물 씻고 봉당 그리며 쳐다보니 아주 아니 뵈는구나.
(전주 최문순 구술본)
여기서 우리는 천상계가 인간세계의 수직 상방에 존재하는 공간이며, 천상계로 가는 길은 공중으로 솟아 올라가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늘나라에 도착한 일곱 아들은 칠성님의 거처를 겨우 찾아낸다. 그러나 칠성님의 집은 탱자성이 첩첩 둘러 있고, 철문이 굳게 잠겨져 있는 기와집이었다. 일곱 아들은 문지기에게 사정을 해 아버지를 만났으나. 아버지는 송대 부인과 재혼을 해서 살고 있었다. 송대 부인은 전실 아들이 미워서 모해를 하려고 꾀병을 앓고는 복술가에게 부탁해서 산 사람의 애 일곱을 먹어야 낳겠다고 칠성님에게 말하도록 한다. 그래서 일곱 아들은 죽게 되었지만, 별안간 금사금이 나타나서 자신의 일곱 아기를 대신 내어주어 죽음을 모면한다. 송대 부인은 애 일곱을 받아 요강에 넣어 변소 잿더미에 묻어버리고, 입술에 피를 칠해 먹은 모양을 짓는다. 그리고 앞 노적 뒷 노적을 헐어서 큰 잔치를 벌인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일곱 형제가 그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데, 송대 부인은 일곱 형제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병이 재발했다며 발악을 한다. 그때 하늘에서 번개와 불칼이 내려와 송대 부인의 몸을 세 토막으로 잘라 놓는다. 칠형제는 이 광경을 목격한 뒤 천상계를 하직하고 지상 세계로 돌아온다.
‘칠성본풀이’에 설정된 천상 세계는 인간계의 모습 그대로이다. 사람이 사는 기와집이 있고, 문지기가 있으며, 복술가도 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사람을 모아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또한 천상계의 송대 부인을 질투가 많고 간특한 꾀도 부릴 줄 아는 인간 세계에서의 못된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천상 세계는 위치만 수직 상방일 뿐 사회의 성격은 인간 세계와 별다른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무가에 설정된 천상계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상계를 통어(統御)하는 신의 세계 또는 인류의 근원이 되는 곳으로서 천상계가 있는가 하면, 인간계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모해(謀害)를 일삼는 곳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은 곧 무속에서의 천상 세계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성한 세계 그리고 근원적인 초월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천상계가 공간적 위치나 세계의 모습만 구체화 했을 뿐, 세계에 대한 관념은 범속한 세속 사회로 변모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관의 변화는 곧 무속신앙의 변천과 관련을 가진다. 현재 무속의식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독립된 굿거리가 없다. 마을굿에서는 마을 수호신인 서낭, 당산, 골매기신에 대한 굿거리의 비중이 가장 크고, 가정의 기복굿에서는 성주, 조상, 제석 등 수명과 복록(福祿)을 관장하는 가정신에 대한 굿거리에 가장 많은 정성을 쏟는다. 이러한 무속의 신들은 거주 공간이 천상계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인간이 생활하는 세속 공간에서 인간 가까이 있으면서 인간이 현세 생활을 보살펴 주고 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신이 가장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무속의 실리주의적 성격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무속의 현세중심적이고 실리우선적인 성격 때문에 보다 근원적 신인, 천신의 숭앙은 퇴조하게 되었고, 천신이 거주한다는 천상계의 성격도 달라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속에 설정된 신의 세계는 그 세계의 모습이 구체화한 것일수록 더욱 인간이 세속 세계와 닮아 있는데, 이러한 이계(異界)는 바로 인간계의 투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인간계에서의 다양한 모습이 인간계의 수평적 수직적 연장상의 공간 곳곳에 굴절되어 새로운 신의 세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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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고맙습니다.
한가한 시간에 천천히 읽어 보면서 공부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공부 많이 했습니다.
좋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에그머니나 넘 길고 많아서 건너 뜁니다 미안합니다
굿중에 광해굿은 처음 들어보는거 같습니다.
미친 사람을 위해 하는굿을 미친굿이라 하던데
또 다른 말이 있었군요.
공부합니다.
문화인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