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의 태동과 한국의 역사
사이코드라마는 Moreno로부터 시작되었다. Moreno는 1889년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의 흑해 부근을 지나던 배 안에서 태어났다. 사이코드라마는 Moreno가 아동기에 동네 친구들을 모아놓고 천사 놀이를 하면서 싹이 텄다고 알려져 있다.
최초로 공식적으로 사이코드라마가 상연된 것은 1921년이다. 이때의 사이코드라마는 무대 장치가 전혀 없이 안락의자와 도금한 왕관 하나가 전부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였지만 역사적으로 암울했던 비엔나 시민들에게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21-23년 사이에는 ‘자발성 극장(Das Stegrif Theatre)’이 세워졌고, 1925년 Moreno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본격적으로 사이코드라마는 시작되었다.
Moreno는 개인, 결혼, 소집단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극적 기법을 사용하였고, 정서 장애 입원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여 사이코드라마를 하는 등 이 ‘자발성극장’을 현대 즉흥연극의 선구자적 도구로 삼아 사이코드라마의 신념(religion), 집단치료(group psychotherapy), 사회측정학(sociometry)의 개념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1936년 뉴욕주에 비이콘 연구소(Beacon Moreno Institute)라는 극장이 세워 졌는데 이 극장에는 Moreno에 의해 특별히 설계된 4차원 무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이코드라마와 사이코드라마 연출가1) 전문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 병원 등에 사이코드라마 극장이 세워졌고, Moreno를 회장으로 하는 사이코드라마 집단치료학회가 발족되었다. 2차 대전 중에는 군과 재향 군인들을 치료해줄 수 있는 치료 유형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재 사이코드라마는 교육, 의료, 심리 치료, 상담, 재활 등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고 있고, 다방면의 연구와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사이코드라마의 한국적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9년에 사이코드라마가 한국에 소개된 이래 30여 년이 지났다. 사이코드라마의 한국적 역사를 살펴보면, 1969년 문헌상 최초의 사이코드라마가 한동세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1973년 이화여대병원에서 개최된 정신의학회 월례학술집담회에서 강준상에 의해 첫 사이코드라마 발표가 있었다.2) 1974년부터 정신치료의 치료적 기법으로 정신과 병원에서 오영진의 의료용 각본 실연형식으로, 유석진, 이근후 등에 의해서 최초로 사이코드라마가 실시되었다.3) 1983년 이후부터는 몇몇 대학에서 사이코드라마를 치료, 교육적 형태의 집단 상담으로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1997년 대전에서는 한국 사이코드라마・소시오드라마 학회가 발족되었고 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 및 원광대학교 예술치료학과 등이 창설되어 사이코드라마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이후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실천가4)들의 관심과 적용이 점차 증가되어 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Director의 번역은 연출자, 연출가 등으로 해석된다. 실연과정을 촉진하는 자로서 대개는 집단리더이거나 환자의 치료자이다. 이 논문에서는 ‘연출가’로 하기로 한다. 사례 축어록을 발췌한 경우는 원문에서 사용한 용어 그대로 사용한다.
2) 유채영,앞의 논문,p.2
3) 대한의학협회,『정신의학』(1974),P.13
4) 김유광, 김정일, 최헌진, 김수동, 박희석, 선원필 등과 국립 서울병원, 용인 정신병원, 계요병원, 고대부속 구로병원, 고대 부속 안암병원, 보호 관찰소, 강남 상담 및 심리치료 연구소, 별자리 예술 치료센터, 대학로극장 등에서 일반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이코드라마를 실시하고 있으며 몇몇 대학 학생생활연구소와 청소년센터 등에서도 사이코드라마가 집단 상담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