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한 점으로 왈칵 꺼지네
유정이
전원을 넣으면 슬픔이 환해지네 제 빛깔과 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구형 TV, 돋보기 쓴
슬픔이네 채널을 이리저리 오래 조절해드리면 생각 한 면 빼꼼히 틀어주시네 한 때
우리는 그녀가 방영하는 프로 앞에 빙, 둘러앉아 그녀의 통치 제국 영원한 신민 임을
맹세하곤 했네 직립의 시간들 꿇어앉히곤 했네 키가 자라고 하나 둘 국경을 넘어 각각의
다른 TV에 빠졌네 때로 돌아오지 않았네 그런 밤이면 어둠 속에서 지지직 자신의 몸을
긁고 있던, 한 번도 스스로 끄지 않으셨네. 구석의 엄마다리 힘 잃은 수동 재봉틀처럼
조용히 덮여 잠 오지 않는 밤마다 종영된 꿈들 천천히 돌려보네 깊숙이 넣어두었던
색바랜 생각들 개켰다 펴고 다시 개키네 맹세 잊은 신민들 건너와 한 번씩 그녀를
켜 보는 날 오래된 연속극처럼 웃으시네 쑴벅쑴벅 거뭇한 生 앞에 반반한 시절 다
잘리었네 얼룩이 환하게 피네. 윗목의 TV 전원을 뽑으면, 슬픔 환한 엄마가 한 점으로
왈칵 꺼지네
1963년 천안 출생
1986년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3년 월간 《현대시학》등단
1997년까지 태광중. 종합고등학교 재직
1999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시집 <내가 사랑한 도둑>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