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雜草)인생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산길을 가다가 아래 과수원 원두막에서 구성지게 울려 나오는 유행가 노래 소리를 들었다. 라듸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가수 라훈아의 ‘잡초’라는 노래였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나는 그 노래를 예전에 처음으로 접하면서 거물급 가수인 그가 왜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인가? 하고 의아한 생각도 들었었다. 흔히 잡초라고 하면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거나 하찮게 여겨져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가수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라고 생각을 하였었는데, 한편으론 기구하게 이어지는 그의 삶을 생각해 보면서 정말 잡초처럼 생명력이 긴 가수라는 것을 실감했었다.
‘잡초론(雜草論)’이란 말이 있다.
‘잡초론’이란 중국 문화대혁명 시대에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함께 중국식 사회주의의 이념으로 크게 유행한 말로서,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寧要社會主義的草, 不要資本主義的苗)’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극단적인 이념의 하나였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개혁의 발목을 잡는,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는,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을 잡초’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물리쳐야 한다.‘라고 하여 정치권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었다.
이렇듯 잡초란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만 여겨졌었고, 그땐 나의 생각도 그랬었다. 그러나 막상 잡초들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그것들은 작지만 아름다운 꽃도 피우고, 어떤 것들은 약용식물로서 그 평가를 달리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출장을 다녀 올 때면 값비싼 난이나 분재를 사다 길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싸기만 하였지 막상 집에서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결국엔 죽고 말았다. 내가 잡초를 좋아해서인가? 언제 부터인가 우리고유의 산들 꽃들이 좋아졌다. 그리고 잡초도 좋아했다. 그래서 등산을 다닐 때나 여행을 갈 때면 지나치며 야생화나 잡초들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었다.
아래는 잡초에 관한 이야기로서 일본의 작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풀들의 전략’ 중에서 나오는 글이다.
「잡초의 삶의 환경은 주로 밟히거나, 차이거나, 뽑히거나, 베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잡초는 아무리 좋지 않은 환경이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마쳐야 한다. ..... 그런 숙명을 안고 잡초는 살아간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도인처럼 잡초는 살아간다.
‘이름 없는 풀’ 이라며 사람들은 잡초를 멸시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풀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잡초는 자기만의 이름과 아름다움과 특성을 갖고 있다. 다양하고 또 생기에 차있다.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큰 야망을 품은 잡초가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작은 크기로 살기를 꿈꾸는 잡초가 있다.
경쟁이 싫어서 사람의 발에 밟히는 고생을 참아가면서 홀로 사는 잡초도 있다. ..... 무엇보다도 역경에 끊임없이 마주 서는 강인함이다. ....
네잎 클로버는 길가나 운동장 같이 사람에게 자주 밟히는 곳에 많이 난다. ......길경이도 사람이나 동물이 다니는 길에 많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밟히거나 차의 바퀴에 묻어 종족번식을 하기 때문이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일) ‘풀들의 전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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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유유상종이란 소릴 듣기 원했던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려드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자녀 교육문제도 있지만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의 주변에 살면 자연히 자신의 신분도 상승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착시현상 때문일 것이다. 흔히 정치인들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정권을 옮겨다니며 자리를 유지하는 것을 두고 양지론(陽地論)이나 기생론(寄生論)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서울에 사는 친구가 있었었다. 그 친구의 말이 자기 집이 모 장관의 집 근처에 있었는데 쓰레기 처리, 상수도 문제 등 불편사항이 발생하면 장관님 댁이라고 전화를 하면 시에서 즉시 해결해 주어서 참 편리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 왈 ‘사람은 좋은 동네서 살아야지 자신이 가난하다고 가난한 동네에 살면 업신여김을 받는다.’고 말하곤 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면 정작 마음이 편할까? 나라면 그렇게 살지 않을 텐데 하는 식상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나는 작년 봄에 처음으로 과수원을 밭으로 만들어 감자며 고구마 등 여러 작물들을 야심차게 심어놓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 하었었다. 그런데 제초제와 비닐피복을 치지 않아 잡초가 너무나 무성하여 생육기간 내내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고 나니 허무한 마음도 들었었다.
뽑고 돌아서면 또 자라나고, 수 없이 뽑아내도 자라나는 것이 잡초였다. 정말 그 끈질긴 생명력 앞에 두 손발을 다 들고 말 정도였다.
잡초는 지구의 상처를 고치는 치유력을 가졌다고 하였다. 곧 죽은 지구의 생명력을 회생시키는 역할을 잡초가 하기 때문에 건강한 흙에는 나지 않고, 농약이나 비료로 지력을 약화시켜 사경에 들어간 흙에 무성하게 자라나서 땅을 잘게 부수고 미생물이 생기게 하는 것 이란다.
어느 이는 잡초가 지구의 상처를 고치기 위해 창조된 식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남은여생을 잡초인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자 한다하였다.
비록 자신도 이름 없이 태어 낳지만 고생을 낙으로 알고 살아가면서, 이른바 사회의 저층을 이룬 한 계층, 즉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말없이 뛰어들어 뿌리를 내리고 땀 흘려 살아가는 잡초인생이 이 땅을 살리는 주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잡초는 남들이 인정주거나 고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요즘은 잡초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들을 여러 종류 채집하여 하분에다 고이 길러내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있다.
그러나 어차피 잡초는 잡초일 뿐이다. 잡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나도 잡초를 좋아한다. 잡초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사회엔 처음부터 잡초라 불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잡초라고 생각되면 잡초인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 민주주의를 말할 때 풀뿌리에 비유하고, 국민(백성)을 민초(民草)라 일컫는다. 잡초는 풀뿌리 중에서는 강하기로 으뜸이다. 민초는 권리를 누리기 보다는 맡은 바 의무에 더 충실하다. 그렇다고 여기서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일반 국민들을 잡초라는 이름에 연상되어 불려지기를 결코 원하지는 않는다.
지금 아프리카나 중동에선 힘없는 그 풀뿌리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생명이 사라짐을 마다않고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까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나도 문득 그 의무를 다하며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끝끝내 버텨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잡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첫댓글 부평초님의 잡초 예찬론에 끈끈한 정을 느키면서 잡초보다도 못한 세상사.인간들.그리고 권력의 똥물도 더많이
뒤집어 쓰겠다고 서로 싸우는 양반들...부평초님 이도광은 민초들에게 거름이라도 좀 주어야곘소....
지금도 우리주변엔 자기가 무슨 점령군 행세하며 크게 하는 일 없이 권력의 끄나풀이라고 우쭐대는 사람들도 있지요.
사회통합이 안되면 국가발전이 힘들고 선진국 소릴 듣긴 어렵다는데 정말 큰일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라가 제대로 서려면 도광님과 같은 선각자의 지혜를 가진 분들이 많아야 겠죠.
점령군들처럼 사리사욕을 차리는 수거도 하지 않을 폐자재 같은 사람들 보단...
잡초보다는 못한 우리네 삶이 우짜다가 요리 되었는지 한사람 한사람 각성하다 보며는 그래도 잡초 근처까지는 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