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우륵于勒은 대숲으로 들어섰다. 젊은 제자 니문尼文이 나무망치를 들고 뒤를 따랐다. 새벽에 비가 개어, 대숲은 연두색으로 빛났다. 숲은 헐거웠고 어둑시근했다. 숲의 성긴 틈새로 빛줄기들이 쏟아져들어왔다. 숲으로 들어온 바람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나무 사이를 스쳤다. 숲이 흔들릴 때마다 빛줄기들은 흩어지고 모였다. 젖은 댓잎들이 바람에 떨리면서 빛을 튕겨냈고 빛들은 깨어진 자리에서 다시 태어났다. 빛과 어둠은 꼬리를 붙잡고 놀면서 깔깔대는 듯했는데, 빛들은 태어나면서 어둠에 녹아들었고 빛이 녹아드는 어둠의 안쪽이 다시 빛나서, 빛들은 나무나 사람을 찌를 듯이 달려들지 않았고 대숲에서는 나무도 사람도 그림자가 없었다.
(...)
- 망치를 다오.
니문이 망치를 건넸다. 우륵은 널판들을 차례로 두들기며 귀를 기울였다.
- 나무가 소리를 먹는다. 아직도 멀었구나. 이게 다 물건이 되지는 못할 게다.
니문의 시선은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허리춤에 머물렀다. 니문이 물었다.
- 소리를 먹는다 하심은……
- 소리가 울려서 퍼지지 못하고 안으로 스민다는 말이다. 속이 아직도 습하다는 말이지.
- 마른 곳에서만 소리가 납니까?
- 그렇지 않다. 허나, 제 몸이 바싹 말라야만 남의 소리를 울려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금琴은 줄의 소리이고 통은 그 울림이다.
- 금의 소리는 줄의 것입니까?
- 북은 가죽의 소리이고 피리는 바람의 소리이다. 징은 쇠의 소리고 목탁은 나무의 소리이다. 소리의 근본은 물物을 넘어서지 못한다.
- 하오면, 물이 어찌 사람을 흔드는 것입니까?
- 울림이다. 울림에는 주객主客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울릴 때, 물과 사람은 서로 넘나들며 함께 울린다. 개 소리, 꿩 소리, 닭 소리가 다 마찬가지이고 대장간 쇠망치 소리와 다듬이 소리며, 파도 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눈길에 소달구지 미끄러지는 소리와 어린아이 울음소리와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다 이와 같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우냐?
- 하오면, 듣는 자가 여럿이면 한 소리가 여러 소리가 되어 소리는 정처 없는 것입니까?
우륵은 멈칫하면서 니문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대숲을 흔들어, 빛들은 뒤집히면서 깨어졌다. 니문의 얼굴 위로 죽고 또 태어나는 빛의 알갱이들이 스쳤다. 우륵은 그 흔들리는 얼굴을 향해 말했다.
- 니문아, 네 말이 너무 어렵구나. 이 널판이 악기가 되는 날, 아마도 알 수 있을런가.
* "제 몸이 바싹 말라야만 남의 소리를 울려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작가는 인물, 그것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물을 통해서 자기의 예술관을 드러낸다.
작가 김훈이 들여다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