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문명**
페루로의 여행은 숨겨진 곳, 알 수 없는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페루는 아마존의 열대 우림과 황량한 사막, 거대한 기암절벽 아래로 펼쳐진 초원등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나라다.
자연경관으로만 따지면 칠레나 브라질에 뒤질 지 모르지만 역사의 오랜 수수께끼 잉카문명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남미 최고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남미 최대의 제국을 쌓았던 잉카문명을 비롯해 페루에는 기원전부터 몇개의 고대문명이 꽃피었다가 사라졌다. 이들 문명은 크게 프리잉카(잉카문명 이전) 와 잉카문명으로 나누어 지고 거기다 잉카제국 멸망이후 스페인 식민시대 문화까지 곁들여 다양함의 극치를 이룬다.
잉카제국 이전 페루는 해안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프리잉카시대의 유적지로는 북부의 투르 힐요와 하늘에서만 그 유적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나스카가 있다. 그러나 역시 사라진 잉카의 참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중도시 마추피추와 쿠스코가 페루 관광의 1번지다. 이들 유적지는 해발 3천m 이상에 위치한 곳으로 한때 1백만명이나 살았던 전설 속의 도시다.
쿠스코는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3천 4백m 높이에 위치한 이곳은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쿠스코 공항에 내리면 호흡의 불편이 느껴진다. 공기 부족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심한 두통이나 구토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른바 고산병 증세다. 고산병은 평소 체력과는 관계없이 생기는 병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페루사람들은 전혀 그런 증세를 느끼지 못하는 듯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첫날이 가장 힘들고 조금 지나면 적응이 되기 시작한다.
쿠스코시내 전경은 한장의 그림엽서 같다. 공해없이 청명한 하늘에 피어오른 뭉게구름 아래로 적갈색 지붕의 건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시내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삭사이와만이다. 삭사이와만은 잉카시대의 수도였던 쿠스코를 외부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쌓은 요새이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거석을 3∼4층 높이로 쌓 아 올려 만들어졌다. 이곳의 돌들은 약 3∼4km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 쌓아 올린 것들이라고 하는데 얼핏 보기에도 어마어마하게 큰 돌들을 어떻게 운반해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이 3백 60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를 6각, 12각으로 조각해 정확히 짜 맞춘 그들의 기술은 지금도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삭사이와만에서 삐삭 방면을 향해 버스로 약 10분 정도 달리면 오른쪽 길옆에 거대한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하나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이곳은 겐코라고 불리는데 잉카인들의 제단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얼핏보아 여러개의 돌이 얽혀 있는 것 같은 이곳은 마치 미로와 같다. 돌에 새겨진 모양 하나하나가 태양을 숭배한 잉카인 들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야마나 알파카(고산 지대에서 기르는 가축의 일종)를 잡아 제사를 지내던 장소가 아직도 생생히 보존돼 있다.
삭사이와만 곳곳에는 잉카의 자손으로 불리는 케추아족 사람들이 좌판을 벌이고 기념품을 파 는 모습이 보인다. 관광객을 실은 차가 정차하 면 어디선가 달려와 `원달러'를 외치며 창가로 몰려든다. 알파카와 야마를 손에 잡은 허름한 차림의 꼬마들은 기념 사진의 모델이 돼주기도 한다.
잉카 문명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마추피추는 쿠스코에서 우루밤바강을 따라서 114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른 아침 쿠스코에 있는 작은 역을 출발한 관광열차는 안데스 산맥의 허리를 가로 지르며 달려간다. 잠시 눈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쉼없이 그림같고 아름다운 풍경을 쏟아놓는다.
오른쪽으론 만년설을 이불처럼 덮어쓴 베로니카 산이, 왼쪽으론 아마존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우루밤바강이 펼쳐진다.
3시간 반이 지난후 마추피추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마추피추를 처음 발견한 미국 의 고고학자 이름을 딴 하이렘 빙험 도로라 불 리는 오솔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면 유적지 저편에 구름을 허리에 두른 높은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와이나피추(케추아어로 젊은 산이란 뜻)다. 그 앞에 약간 낮은 산이 마추피추(늙은 산). 바로 그 위에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가 건설됐다.
공중에서 본 마추피추는 악어 형상이다. 유적 주변이 5m높이의 두꺼운 성벽으로 견고하게 만 들어진 요새다. 그러나 언제, 누가, 어떻게, 왜 이 높은 산봉우리에 이러한 요새를 지었는지 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잉카인들이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추측이 있을 뿐. 그러나 그들은 왜 어느날 갑자기 이 요새를 불태우고 사라졌을까? 의문은 끝이 없 다. 피리 레이스의 지도에 의심을 품고 잃어버린 문명 탐사를 나섰던 그레이엄 행콕의 책제목 처럼 그것은 `신의 지문'이었다.
정상에는 잉카인들이 숭상하던 숫자 `3'(과거, 현재, 미래) 계단을 허리에 지른 채 야마가 올려진 제단이 놓여있다. 이 제단의 건물들도 쿠스코에서 볼 수 있었던 바위들처럼 한치의 오차 도 없이 맞물려져 있다.
잉카시대 건물들은 모두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사계를 예측하고 태양을 숭배하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높은 곳에 도시를 건설한 것도 태양과 가장 가까이 있고 싶던 그들의 염원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화살표를 따라 어지러이 헤매던 '잉카의 길'을 나서면 처음 들어온 입구로 빠져나가게 된다. 현대과학으로도 좀처럼 풀기 어려운 수학, 건축 기술의 신비를 간직한 마추피추를 뒤로하고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내려오는 동안에 도 또 한폭의 삽화가 그려진다.
버스가 굽이굽이 돌 때마다 산꼭대기부터 따라 오는 꼬마가 버스에 타고 있는 관광객들에게 손 을 흔들며 `굿-바이'를 외친다. 챠스키 (케추아 어로 전령사라는 뜻) 보이다. 처음엔 잘못 봤나 생각했는데 버스가 한 구비를 돌며내려올 때마 다 같은 꼬마가 굿바이를 외치며 따라온다. 정류장 입구에 다다르면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와 땟국물이 흐르는 손을 내민다. 챠스키 보이가 뛰어온 길은 1천 7백여개의 계단. 마추피추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람은 이들과 함께 돌계단으로 내려오는 것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