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고족을 동기부여시킨 웅대한 Vision
- 예부터 몽고족은 초원의 유목민이었고, 부족(씨족)단위로 흩어져 부족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형국이었습니다.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서로 좋은 초지를 빼앗기 위에 싸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요. 징기스칸은 이래서는 몽고인의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언젠가는 통일 이루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징기스칸은 부족간의 전쟁와중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쫒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복수를 위해 이를 갈고, 기어이 살아남아 결국은 힘과 전략을 바탕으로 몽고부족을 통일했습니다.
2.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한 점
- 사실, 이점은 제가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 다만, 정복지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였습니다. 이슬람제국을 정복하였지만 이슬람사원을 파괴한 적은 없습니다.
(단, 항복하지 않고 게길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겠죠)
3. 권한위임
- 출정하는 장수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였습니다. (요즘말로 Empowerment)
- 몽골제국이 출정하는 경우에는 국지전보다는 전면전이 많았습니다. 말그대로 하나의 왕국을 상대로 싸우는 거죠. 한개의 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과정과 정복후 작업들을 장수에게 위임하였습니다. (니맘대로 해라!!)
- 징기스칸은 몽골권역 외로 벗어나질 않았다고 합니다.
4. 흙벽돌집에 살지마라. 그날이 몽고의 마지막 날이다!
- 징기스칸의 교훈 중 하나가 절대 정착을 금하는 것입니다. 몽골제국(원나라)이 망하게 된 것도 유목민의 상무정신을 버리고 궁궐을 짓고 그속에서 정권싸움이나 한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 정착은 곧 혁신의 멈춤을 의미하는 것이고, 더이상 움직이지 않은 공룡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 몽고에는 성(城)이 없습니다. 물론, 몽골초원에 계획도시(카라코룸)를 건설하긴 했습니다만, 정착의 의미라기 보다는 광활해진 영토를 효과적을 다스리기 위한 축의 역할을 하기 위해 세운 거였지요.
- 지금은 그 성터마저 완전히 무너지고 터만 남아있습니다.
5. 스피드를 중시한 전략
- 막강한 기동력을 중심으로 가벼운 갑옷과 날렵한 활솜씨를 가졋습니다.
- 구잡스런 쌀,김치 등 군량을 싣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육포는 몽고가 원조입니다. 군사들은 말안장 밑에 소두마리분의 육포를 넣고 전쟁터를 휘젓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말은 훌륭한 운송수단인 동시에 식량이었습니다.
- 이점에 대해서는 유목민과 요즘의 Mobile경영의 유사성에 대한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6. 열린경영
- 殲殆滅盡전법의 구사 : 일단 항복하면 개별국가 차원의 자치권(왕권, 재산, 종교 등)을 인정했지만 게기면 그 성(나라)의 씨를 말리는 전법을 구사했습니다.-혹은 屠城이라고도 함
- 즉 몽고군이 쳐들어 온다는 첩보가 들어오면 목숨을 바쳐싸울 것이냐(어차피 죽을 목숨), 아니면 백성의안위를 생각해 성문을 열어야 하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 하지만 몽고군은 백전무패의 부대였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항전의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스스로 성문을 열었습니다.
7. 모계중심의 성개방의식
- 일단, 몽고족의 결혼 풍습은 남다름니다. 결혼하고자 하는 여자를 다른부족으로 부터 납치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징기스칸의 모친도 아버지가 납치한 여인입니다. 물론, 그때문에 징기스칸의 부인이 상대부족의 아이를 가지는 불운을 겪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족내 결혼은 근친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수한 자손을 낳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많습니다.
- 징기스칸이 통일을 해나가는 초기, 상대방 부족의 군사를 빌리는 조건으로 그의 부인을 "담보"로 두고 가게 됩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그에게는 배부른 아내였습니다. 물론 징기스칸의 씨는 아니었습니다.
징기스칸이 가장 번민하던 시기라고 역사책은 기술합니다.
결국,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게 됩니다만, 적자로서의 정통성은 없었기에 다른 형제들에게 배척당하여 머나먼 러시아땅(지금의 카스피해 근처)에서 조용히 지내게 됩니다.-후에 킵착한국의 뿌리가 됨
- 몽골사에 보면 우리 고려여인의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공녀 위씨입니다. 후에 원나라의 마지막왕의 태후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 사라진 여인입니다.
8. 효율적 조직구성
- 다른 장에서 논의합니다.(천호제)
9. 과학기술과 교역의 장려
- 쿠빌라이칸 시절 마르코폴로가 다녀갑니다. 마르코폴로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쓰게 되는데 이책에 근거하여 많은 탐험가들이 동방탐험을 떠나게 됩니다. 콜롬부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아시겠지만, 콜롬부스는 미국땅을 찾아간게 아닙니다. 황금의 땅 아시아로 떠난 겁니다.)
- 대원제국의 사통팔달 교역루트를 따라 동서의 문화가 자유롭게 왕래되었습니다.
10. 유능한 참모
- 거 당연한 이야기(이 이야기도 별도로 논하기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