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윤희웅 외
꽝수반점 / 윤희웅
나는 지금 글을 쓰려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소설 창작 기법을 알려주는 책을 읽었다. 그 책들의 주된 이야기는 ‘소설은 분명 허구이며,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말은 소설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자, 그럼 시작 합니다. 내 직업은 동네 중국집 주방장이다. 이 말을 먼저 하는 것은 나는 글을 써야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쓰려는 이 글이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바라건대 지금 내가 쓰려고 하는 이 글이 사실인지, 아니면 소설인지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확인을 못 했지만 본인 스스로 나름 유명하다고 함) 소설가는 항상 짬뽕 국물에 고량주를 먹었다. 만 오천 원짜리 짬뽕 국물을 꼭 만 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소설가는 짬뽕 국물보다 단무지와 양파를 더 많이 사랑했다. 오천 원짜리 작은 고량주 두 병을 다 먹으면 이 만 원을 컵 밑에 묻어 놓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어느 비 오는 늦은 저녁이었다. 비에 흠뻑 젖은 소설가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카락에서, 눈썹에서, 코끝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영업시간이 끝나 신문을 뒤적이며 쉬고 있던 나는 잠깐 망설였다. 비에 젖은 소설가를 바라보다 나는 목에 걸린 수건을 그에게 건네줬다. 소설가는 빗물을 닦는 것인지, 눈물을 닦는 것인지, 수건에 한참 얼굴을 박고 있었다. 간혹 어깨를 들썩이던 소설가는 내 수건에서 쉰내를 맡았는지 이내 헛구역질을 했다. 소설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눈빛에서 많은 말들이 굴비 엮듯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소설가가 건네준 수건을 받아 다시 목에 걸었다. 그리고 버릇처럼 수건으로 겨드랑이를 닦았다. 내 모습을 바라보던 소설가는 한 번 더 헛구역질을 했다. 소설가는 그날 역시 만 원짜리 짬뽕 국물에 오천 원짜리 고량주 두 병을 시켰다. 소설가는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량주를 마셨다. 안주로는 짬뽕 국물과 가끔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먹었다. 여전히 단무지와 양파를 사랑했다. 나는 컵에 이 만 원을 깔고 일어서는 소설가에게 탕수육과 삼만 원짜리 고량주를 서비스로 줬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고 재미있으면 소설로 써 봐.
오늘부로 소설 쓰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나름 유명한 소설가라고 하지 않았어?
나름 유명한 소설가도 소설을 그만 쓸 수 있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술 한 잔 하면서 편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혹시나 생각이 있으면 소설로 써 봐. 나는 어릴 때부터 다리 한 쪽이 좀 길어서 잘 걷지를 못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던 어느 날이었지. 나를 잘 아는, 하지만 나는 잘 모르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꽤 유명한 중국집 막내로 취직을 했어. 취직을 시켜준 아저씨에게 싫다고 말하기도 귀찮고, 사실 아저씨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거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 나이에는 다 그렇잖아. 그래서 그냥 시키는 대로 취직을 했지. 아침에 출근하면 양파 까고, 계란 깨고, 양파 썰고, 양배추 썰고, 그러다 배달 나간 그릇이 들어오면 그릇을 닦는 게 내 일이었지. 일 년 정도 하다 보니 나름 요리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생각해보니 주방장이 되면 내 가게도 낼 수 있을 것 같았어. 세완에서 면판으로 한 이 년, 면판에서 조리장이 되려면 또 한 이 년 걸리지. 그리고 요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한 가게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이 년 정도 일을 배우다 가게를 옮겨야 해. 옮긴 가게에서 배울 만큼 배웠으면 또 옮기고 그러면서 슬슬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주방장이 되는 거지. 먼저 동네 중국집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지. 주방에 주방장 한 명 (보통 사장이 주방장), 면판 한 명, 잘나가는 집이면 세완 한 명. 홀에 한 명 (보통 사모님)이 있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배달이 두 명 정도, 그러면 동네에서 꽤 잘나가는 중국집이라고 볼 수 있어. 중국집은 음식 장사 중에서도 꽤 많이 남는 장사지만 항상 배달이 문제야. 동네 중국집에서 배달을 안 할 수도 없고, 배달을 구하면 두 달이 지나면 반은 도망가고, 여섯 달이 지나면 백 퍼센트 다 도망가. 이놈들이 도망갈 때는 월급 받은 돈, 외상 수금한 돈, 음식값, 거스름돈, 심지어 배달하는 오토바이까지 타고 튀는데 그러면 그 날은 아니 배달하는 사람과 오토바이도 없으니 며칠은 장사를 자연스럽게 공치는 거지.
그런데 왜 자꾸 반말로 이야기하십니까?
기분이 나쁜가봐?
조금 나쁩니다. 저와 비슷하게 보이는데 말입니다.
나는 나이를 떠나서 친한 사람에게는 친구처럼 반말을 해.
나이는 비슷해도 우리는 친구가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몇 년을 봤는데 섭섭하게 선을 긋네. 어쩔 수 없지, 본인이 기분 나쁘시다니 그럼, 여기서 그만하지.
소설가는 이제 몇 잔 안 먹은 삼만 원짜리 고량주와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탕수육 접시를 들고 일어서는 나를 잡았다.
기분이 조금 나쁠 뿐이지 전반적으로 괜찮습니다.
십 년 전쯤 됐나? 나는 안산 반월공단 근처 중국집에서 면판으로 일하던 중이었지. 그날 저녁 배달하는 놈이 내 눈치를 보며 슬슬 짐을 꾸리는 거야.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월급도 받았겠다. 그림이 딱 나오는 거지. 내일 아침이면 이놈이 튀겠구나 싶어 배달 눈치 보며 밖으로 나가 주방장(사장)에게 전화했지. 내일 튈 것 같다고. 주방장은 배달이 아들 친구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아니나 달라? 새벽녘에 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이 층 창문을 열어보니 아들 친구라는 배달이 아직 할부도 안 끝난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네. 아침에 출근한 주방장이 아들에게 전화해서 욕에 욕을 하고, 사모님은 부서진 금고 앞에서 아연실색하고 난리가 났지. 그나마 사모님이 먼저 정신을 차렸지.
일당 배달 좀 구해 봐요. 오늘 장사는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 놈들은 치킨이나 배달할 줄 알지, 중국 음식은 안 돼. 다 엎어버린다고.
그럼 어떻게 해요?
배달 구할 때까지는 내가 직접 해야지, 별 수 있나?
주방장은 요리하다 말고 배달 가고, 사모님은 배달원 구하느라 쉼 없이 전화하고, 분위기는 싸하고, 배달나간 주방장 대신 간단한 음식은 내가 하고, 배달이 도망가는 바람에 괜히 나만 바빠졌지. 그러다 사고가 난 거야. 아침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는 날이었어. 비가 오는 날이면 배달이 부쩍 늘지. 점심시간 전부터 전화가 불이 나는데 배달 나간 주방장이 들어올 때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안 들어오는 거야. 배달은 계속 쌓이고 있지, 독촉 전화는 계속 오지, 나중에 사모님이 전화기를 내려놓더라고. 그때였어. 주방장이 절뚝거리며 꽝하고 같이 들어왔어. 꽝이 누구냐면 베트남 사람인데 이름이 뭐라 뭐라 길더라고 그냥 이름이 콴으로 끝나서 그냥 우리는 쉽게 꽝이라고 불렀어.
어떻게 된 거예요?
보면 몰라?
주방장은 건네받은 수건을 꽝에 주며 의자에 앉으라고 했어. 머리를 말리고 차를 한 잔 마신 주방장은 꽝을 쳐다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배달이 밀려 마음이 급해진 주방장이 골목에서 큰 길로 나오다 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차에 놀라서 넘어진 거야. 보통 비가 오는 날에 안전모를 쓰면 앞이 잘 안보여서 보통 챙이 긴 야구 모자를 쓰고 운전을 하지. 그 날 역시 주방장은 안전모 대신 야구 모자를 썼어. 주방장은 물웅덩이에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혀 잠깐 정신을 잃었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주방장을 지나가는 꽝이 발견하고 오토바이에 다친 주방장을 태웠지. 하지만 주방장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어, 오토바이 뒤에 앉기는 했는데 자꾸 넘어지려고 하는 거야. 꽝은 한 손으로 넘어지려는 주방장의 허리를 잡고, 다리 사이에는 철가방을 끼우고, 나머지 한 손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해서 비 오는 거리를 쏜살같이 달려 온 거지. 주방장은 꽝의 운전솜씨에 반했다고 했어. 거짓말 조금 보태면 뒤에 앉아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실 수도 있을 정도라고 했지. 나 역시 몇 번 꽝의 오토바이 뒤에 타보니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더라고. 베트남 사람들은 걸음마보다 오토바이 운전을 먼저 배운다고 하잖아. 눈치 빠른 사모님이 그날 장사를 접고 우리 모두는 늦은 점심을 함께했지.
어디서 왔어?
베트남입니다.
한국말 잘하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습니다.
어쩐지... 그런데 왜?
꽝에게 우리는 깜짝 놀란 말을 들은 거야. 보름 정도 전에 공단 끝에 있는 미원상사에서 큰불이 났거든.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불이었어. 그때 사람도 한 명 죽었으니까. 그런데 그 죽은 사람이 바로 꽝이었어. 꽝은 새벽에 불이 시작된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어. 그 불이 담뱃불로 시작됐는지 어쩐지는 아무도 몰라. 소방서 화재조사 발표는 누전이었으니까. 꽝은 불이 나자 정신없이 불을 끄기 시작했지. 아마 꽝은 자기 담뱃불 때문에 불이 시작됐다고 생각했겠지. 불은 점점 거세지고 같이 불을 끄던 사람들은 한 명씩, 한 명씩 자리를 피할 때도 꽝은 마지막까지 불을 껐어. 불은 점점 거세지고, 물류창고는 다 타버리고, 꽝은 무서워졌지. 그래서 마지막까지 불을 끄다 끝내는 도망을 쳤어. 사람들은 불이 다 꺼졌는데도 꽝이 안 보이자 불에 타 죽은 거로 생각을 한 거야. 마지막까지 꽝을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꽝의 죽음을 이야기했으니까. 나도 뉴스를 통해 봤어. CCTV 화면에 불을 끄고 있는 꽝의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거든. 갑자기 불이 폭발하고, 그 이후로 꽝의 모습이 CCTV에서 사라졌어. 불난 회사를 끝까지 살리려다 죽은 외국인 노동자의 사연은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서 살아 난 거지. 시청 앞 광장에 꽝의 분향소가 차려졌지. 베트남에서 온 꽝의 가족들이 오열하다 쓰러지는 모습이 뉴스를 탔을 때는 더욱 난리가 났어. 전국에서 성금이 모이고, 국무총리를 포함해서 많은 정, 재계 인사들과 일반 국민들의 추모 행렬이 밤새도록 이어졌어. 서로 다른 이유들이 있었겠지. 정부는 베트남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그 자리에 섰을 테고, 재계 인사들은 이런 모습을 좀 본받으라는 메시지를 사원들에게 주려고 섰을 테고, 시민들은 젊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 그 자리에 섰을 거야. 꽝은 국민 모두가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일해 준 고맙고 미안한 노동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자랑스럽고, 안타까운 동료가 되고 말았지. 꽝이 베트남에서 자란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고생한 이야기, 그동안 꽝의 모든 평범한 이야기가 숨겨진 미담이 되어 특집방송으로 나왔어. 나 역시 방송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분향소를 찾았다니까. 그런데 꽝이 죽지 않고 산속에 숨어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 파장은 누가 감당을 해야 하지. 거기다 만약 담배를 피우다 불이 났다면? 우리는 고민을 했어. 간첩이 아니니 신고를 할 수도, 그렇다고 갈 곳 없는 꽝을 다시 산속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됐지. 그래도 우리는 인정이 넘치는 한국인이잖아. 길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주방장을 살려준 공덕도 있으니 이 모든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아니, 비밀로 하고 일단은 우리와 같이 지내기로 했지. 그렇게 꽝은 다음날부터 주방에서 내가 했던 일인 양파와 양배추를 썰고, 계란을 깨고, 그릇을 닦기 시작했어.
꽝, 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봐. 무엇이 보여?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그 모습이 앞으로 너의 모습이야. 너의 인생은 이름대로 꽝이 된 거야. 이번 생은 틀렸다 생각하고 이 어두컴컴한 주방에서 나와 잘 지내보자구나. 혹시 아니 다음 생에서는 꽝이 아닌 1등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이제 양파 까라.
소설가는 내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빈 술병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빈 잔을 만지작거리던 소설가는 이내 잔을 탁자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때 꽝은 나와 동갑이었지만, 주방은 내가 선배이니까 이것저것 많이 챙겨 줬지. 그런데 왜 일어섰지?
제가 지금까지 주방장님에게 짬뽕국물도 만원어치만 시켜서 눈치도 받고, 단무지도 많이 먹는다고 알게 모르게 괄시도 받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저도 나름 소설가입니다. 제가 아무리 소설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 말 같아야 듣지 이건 말도 안 되고, 됐습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비도 많이 오는데 조금만 더 듣다 가지?
됐습니다.
그러면 이건 어때? 이 술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술이야. 병만 봐도 기품이 있어 보이지.
소설가는 자리에 다시 앉아 두 손을 무릎에 공손히 모으며 이야기했다.
그 술에 걸맞은 안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술에 어울리는 안주를 금방 준비해오지. 잠깐만 기다려.
꽝하고 나는 형제같이 지냈어. 한 방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일했지. 영업을 마친 밤이면 꽝은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다녔어. 어느 날은 밤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지. 아무도 없는 대부도 방아머리 해변에 앉아 철썩거리는 바닷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그림 있잖아. 잔잔한 파도가 넘실거리고, 수평선 끝에 달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바닷가 해변. 그 해변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두 남자. 그 둘은 맥주 캔을 들고, 홀짝홀짝 마시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지. 첫사랑 이야기부터 자질구레한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웃기도 하고, 남 몰래 슬쩍 눈물을 훔치는 그림. 우리는 그렇게 여름밤이면 대부도 방아머리 해변에서 캔 맥주를 홀짝이며 많은 이야기를 했어. 보다시피 나는 한쪽 다리가 길어서 어디를 잘 다니지 못했거든. 그리고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친구도 없었어. 그런데 꽝이 나의 발이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줬어. 꽝은 나에게 한 명밖에 없는, 정말 고마운 친구였어. 다시 식당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보통 주방 생활이라는 것이 한 이 년 정도 가게에서 일하면 옮기거든. 이쪽 일은 가게를 자주 옮겨야 월급이 올라. 그만큼 많이 배웠다는 거지. 나 역시 가게를 옮겨야 하는데 꽝을 혼자 두고 가기가 좀 그렇더라고. 그렇다고 같이 갈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그 가게에서 오 년 넘게 일을 했지. 꽝하고는 사 년을 함께했지. 주방장은 어느 순간 주방에서 나가고, 내가 자연스럽게 주방장이 되고, 꽝은 어느 순간 면장이 되었지. 모든 월급쟁이 주방장들이 꿈꾸는 게 하나 있다면, 변두리 동네라도 좋으니까 조그만 중국집을 하나 차리는 것이지. 나는 요리보다는 면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 중국집이 꿈이었지. 사실 동네에서 누가 요리를 배달시켜 먹어? 먹어봤자 탕수육이지. 나는 자장면이 맛있는 중국집이 꿈이었지. 내가 수타로 뽑은 면을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어. 사실 중국집이 배달로 먹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수타면은 없어졌지. ‘빨리 좀 부탁드려요.’, ‘왜 안 와요?’ 전화해서 이러는데 누가 고되게 반죽 두들겨가며 면을 뽑겠어? 그냥 기계에 넣고 스위치만 올리면 면이 주르륵 나오는데 말이야. 수타면이라고 해서 백 원이라도 더 받으면 비싸다고 난리고. 하지만 면은 수타가 진리야. 그 쫀득한 면발은 기계면이 결코 따라올 수가 없지. 수많은 동네 중국집에서 살아남으려면 면은 수타로 뽑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어. 그래서 수타의 고수를 찾으러 얼마나 다녔는지, 지금 주방장도 예전에 수타로 방귀 좀 뀐 사람이었어. 하지만 수타가 힘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오기 전에는 주방장도 기계로 면을 뽑았어. 내가 와서 주방장에게 기술 전수도 받고, 수타로 면을 뽑으니까 매상이 세배로 오른 거야. 사람은 간사해도 입맛은 거짓말 못 하지. 맛있는 것은 맛있는 거니까. 그런 비법을 나는 꽝에게 전수해 줬지. 내가 십 년을 넘게 이 바닥에 있으면서 배운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르쳐 줬지. 우리 집 자장면 먹어봤지?
맛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수타면은 다른 집 수타면과는 확연하게 다르지. 나는 수타면을 미리 만들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면을 뽑아. 그래야 내가 만든 수타면은 씹지 않고 바로 삼켜도 될 정도로 아주 부드럽지. 그리고 또 하나, 면에서 가장 중요한 밀가루 풋내를 없애고 쫄깃함을 살리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법이 있어. 바로 반죽 물이야. 계절에 따라 반죽 물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은 상식일 테고, 나는 반죽 물로 가지 삶은 물과 단호박을 쓰지. 그러면 면에서 자연의 감칠맛과 부드러운 단맛이 확 올라오지.
꽝 이야기나 하십시오.
아, 미안. 꽝 이야기를 해야지. 꽝하고 사 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도 둘이 쌍둥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중국집 밑에 있는 미용실을 같이 다니니 머리 모양도 같고, 까무잡잡한 피부도 비슷하고, 사실 꽝이 그 전보다 피부 톤이 많이 밝아졌지. 여기 생활이 햇빛을 보지 못하니 더욱 그럴 거야. 이제 말투도 한국사람 다 됐어.
꽝, 전화 좀 받아봐?
동방불패입니다.
자장면 하나, 매운 짬뽕 하나, 덜 매운 짬뽕 하나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형, 짜 하나, 뽕 둘, 배달.
꽝이 수타로 면도 뽑고, 전화도 받고, 간혹 배달이 밀리면 배달도 나가고, 가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된 거야.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생긴 거야. 문제는 역시 돈이었지. 항상 돈이 문제였어. 꽝이 일을 시작할 때 사모님이 월급은 백삼십만 원으로 하고 백만 원은 사모님이 계를 넣어서 목돈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지. 그리고 용돈으로 한 달에 삼십만 원만 줬어. 사모님은 매월 백만 원씩 계를 사 년 넣으면 오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어. 사실 꽝은 돈을 쓸 일도, 보낼 곳도 없고, 그렇다고 본인이 어디 가서 적금을 들 것도 아니니 나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사모님 말을 거들기도 했지. 그렇게 사 년이 흘러 오천만 원을 받아야 하는 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거지. 꽝은 나에게 이것, 저것 묻기도 많이 했고, 그 돈으로 뭘 할지 매일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우연히 사장님과 사모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야.
꽝에게 줄 돈으로 우리 가게 리모델링하면 좋겠는데.
쓸데없는 소리.
그러면 좋겠다는 말이지. 왜 성질이야? 사실 꽝은 돈이 생겨도 쓸 곳이 없잖아.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안 돼.
그럼, 당신이 꽝한테 돈을 빌려 달라고 해봐. 이자 쳐준다고.
얼마나?
한 십 프로.
십 프로씩이나?
생각해봐. 꽝이 돈 받고 가게를 나가면?
하긴 꽝 같이 성실한 아이를 어디서 구해.
월급하고 이자하고 다시 계를 넣어서 삼 년 후에 다시 오천만 원을 만들어 준다고 하는 거야. 그럼 앞으로 삼 년은 말없이 있겠지.
그럼 삼 년 후에는 일억 원을 줘야 하는데 줄 수 있겠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로 신고를 해야겠지.
우리 사모님을 나쁜 사람으로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우리 사모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홈쇼핑을 보다가 우리에게 어울릴 것 같다고 옷도 사주고, 꽝 먹으라고 안산역에서 베트남 음식도 사다 주고 자식까지는 아니어도 조카처럼 잘 해줬지. 하지만 사모님은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일원으로 사람보다는 돈이 더 좋았던 거야. 그 일 이후로 꽝은 굉장히 힘들어했어. 사모님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사모님을 슬슬 피하기까지 했지. 나를 포함한 식당 가족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어. 자다 일어나보면 홀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꽝을 몇 번이나 봤지. 며칠 후면 곗돈 오천만 원을 받는 날이었거든. 그래서 더욱 잠에 못 드는 것 같았지. 그날 밤도 꽝은 새벽에 일어나 단무지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지. 나는 주방에 들어가 간단하게 안주를 만들어서 꽝 옆으로 갔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할 말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그냥 서로 홀 천장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셨어. 슬쩍 쳐다본 꽝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거야. 그때 난 결심을 했지.
꽝,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없었어. 처음부터 아빠가 없었으니 나는 아빠가 없다는 것이 불편한지도 모르고 컸지. 내가 열네 살 쯤 됐을까? 어느 날 아빠가 생긴 거야. 엄마와 어디서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살짝 나를 닮은 듯 한 무뚝뚝한 아저씨였어. 무뚝뚝한 아저씨가 엄마는 뭐가 좋은지 아저씨 앞에서 웃고 떠들고, 집안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 나 역시 표현은 안했지만 엄마의 웃는 얼굴이 좋았어. 그 아저씨와 한 일 년 같이 살았지. 가끔 주말에는 여행이라는 것도 가봤고, 엄마의 웃는 얼굴, 가끔 미소 짓는 아저씨를 뒷좌석에 앉아 슬쩍 슬쩍 훔쳐보곤 했어.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아빠가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아.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무리가 집에 쳐들어 와서 단체로 엄마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 그 아줌마들은 엄마의 머리를 반쯤 뽑아놓고 이내 보이는대로 집 세간을 부숴버렸지. 아주 깔끔하게 부셔놓고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졌어. 엄마는 그날 이후 며칠을 누워 울기만 했지. 엄마가 재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어. 아저씨는 더 이상 집에 오지 않았고, 엄마와 나는 전처럼 단둘로 돌아갔지. 하지만 엄마는 아저씨를 계속 기다리는 것 같았어. 밥도 꼭 한 공기를 더 하고, 현관문도 열어 놓았지. 나는 엄마가 잠이 들면 현관문을 잠그고, 남겨놓은 밥 한 공기를 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고 잠을 잤어. 내가 그 밥을 안 먹으면 엄마는 내일 아침 찬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엄마는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어. 유방암이었어. 아저씨가 돌아가고 그렇게 매일 가슴을 움켜잡고, 가슴을 쳐대니 유방암에 걸리지. 엄마는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병실 문만 바라보다 돌아가셨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때 아저씨가 다시 나타난 거야. 엄마 영정 사진 앞에서 한동안 울더라. 나는 울고 있는 아저씨의 뒤통수를 갈겨 버렸어. 아저씨는 더 슬프게 울기만 할 뿐, 가만있더라. 아저씨와 나는 엄마를 집근처 작은 절에 모셨어. 엄마를 모시고 내려온 아저씨는 나에게 통장을 하나 주고 갔어. 그 통장으로 매달 오십만 원씩 입금이 됐지. 세상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았어, 아니 변할 게 없었어. 나에게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저 시계불알마냥 학교와 집을 오갔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을 때,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지. 아저씨는 누워만 있는 나를 한 참 바라보더니 말없이 나갔어.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나타나 나를 중국집에 취직시켜놓고 갔어. 나는 그 이후로 아저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 아저씨의 이름도 몰라, 엄마와 어떻게, 어디서 만났는지, 어떤 사이였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조금 살아보니까 세상에는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더라. 나는 요즘 그 아저씨와 엄마를 조금은 알 것 같아. 꽝, 사람들은 다 똑같아. 다들 말 못할 사정이라는 것이 있을 뿐이야.
형, 나도 알아. 나는 다 이해해. 다 이해가 되니까 힘든 거야. 그것보다 나 사실 베트남에 너무 가고 싶어. 벌써 십 년이 넘었어. 형도 좋고, 여기 생활도 다 좋은데 베트남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고향이잖아, 그냥 고향에 가고 싶어.
꽝, 몇 번을 말하니? 네 마음은 알겠는데 방법이 없다고. 미안하지만 넌 유령이야. 벌써 오 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고. 위조여권? 전에도 말했지 위조여권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야. 영화에서도 위조여권을 만들려면 사람을 죽이는데, 너는 누굴 죽일 거야? 아니, 누가 너를 위해 대신 죽어 줄 수 있을까? 아무리 고향에 가고 싶어도 그렇게 하는 것은 진심 아니야. 다 포기하고 그냥 여기서 나랑 살자. 유령처럼 낮에 주방에 있고, 밤에 돌아다니면 돼. 그러지 말고 우리 아무도 모르는 시골에 가서 작은 중국집 하나 하자. 내가 주방에서 요리하고 너는 배달하고 그렇게 살자. 가게이름은 꽝과 강수의 중국집, 꽝수반점. 우리 다른 생각하지 말고, 지금처럼 재미나게 살자.
그럼, 중국으로 밀항할 수 있게 형이 도와줘. 중국만 가면 어떻게든지 베트남으로 갈 수 있어.
그렇게 베트남 가면 무슨 수가 생겨? 베트남에서도 너는 유령이야. 벌써 오 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고.
그래도 난 갈 거야. 헤엄쳐서라도 중국으로 가고, 걸어서라도 베트남으로 갈 거야.
그래서 헤엄쳐서 중국으로 갔습니까?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언제가 끝입니까?
이제 슬슬 시작했는데 이야기의 끝을 묻다니, 무척이나 당황스럽군.
그럼 지금까지가 서론이었습니까?
안 바쁜 거 다 아는데..., 그럼 중간은 건너뛰고 결론만 이야기할 게.
그날 밤 우리는 술을 엄청나게 먹었지. 다음날 일을 못 할 정도로 마셨어. 아침에 출근을 한 사장 내외는 난리가 났지만, 꽝은 오히려 강하게 나갔지. 오늘부로 그만둔다며 곗돈을 달라고 했어. 곁에서 구경하던 나 역시 얼떨결에 그만둔다고 했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우리는 일단 근처 사우나를 갔지.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한숨 자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어. 우리는 쌍둥이처럼 머리도 똑같이 다듬고, 똑같은 옷도 사 입고, 똑같은 포즈로 사진도 찍었지.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그래, 나는 꽝 대신 내가 유령이 되기로 했어. 그래서 꽝의 사진으로 내 여권을 만들었지. 시청 직원이 사진과 나를 대조하며 힐끔 쳐다보고 바로 사진 위에 도장을 꾹 눌러 찍더군. 지문? 주방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지문 따위는 없어. 매일 물과 불을 만지고 사는데 지문이 남아날 것 같아? 그렇게 나는 꽝이 되고, 꽝은 허강수가 되었지. 며칠 후 나는 따끈따끈한 여권과 베트남 비행기 표를 꽝에 줬지. 꽝은 여권을 열어보고 손을 벌벌 떨었어.
젠장, 이럴 줄 알았어, 어떻게 내 인생은 언제나 꽝일까? 하지만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잠깐이나마 허강수 내 인생의 최고의 봄날이었어. 이제는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지만, 베트남 허강수, 고향 가서 잘 살아라. 그리고 서비스로 주민등록증까지 새로 만들었어. 이것도 가지고 가. 넌 나를 잘 알잖아. 우리 엄마 이름도 알고, 내가 어디서 살았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느 가게에서 일했는지... 모든 걸 알고 있잖아. 베트남에서 허강수로 사는데 하나도 문제될 것 없어. 이제 고향에서 꽝이 아닌 멋지고 잘생긴 베트남 허강수로 살아.
형은?
너도 알다시피 나는 주방에서 나갈 일이 없어. 너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주방의 유령이었어. 내 걱정은 하지 마.
소설가는 더 못 참겠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깜짝 놀라 소설가를 쳐다봤다. 소설가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설가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시원하게 욕을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소설가는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꽝은 허강수가 되어 고향으로 갔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잘 들었습니다. 제가 소설가로서 충고 한마디 해도 될까요? 심심하시면 면을 더 뽑으시든지 아니면 요리 연구를 하세요. 쓸데없이 망상이나 하지 마시고요. 소설이란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이야기를 쓰는 겁니다. 아저씨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부르지도 쓰지도 않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 저를 얼마나 무시했는지 이제야 정확히 알 것 같네요. 돈이 없어 단무지만 축내는 저 같은 놈이 소설을 쓴다니까 소설이 장난인줄 아세요? 아닙니다. 소설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쓰고, 수정하고, 또 쓰고, 온 몸의 피가 말라가는 정성을 들이는 작업입니다. 아저씨처럼 말도 안 되는 것을, 그저 일하다 생각나서, 비오니 심심해서, 마구 지껄인다고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제가 유명하지도 않고, 돈을 잘 벌지도 못한다고 제가 쓰는 소설을, 제가 하는 직업을 더 이상 조롱하지 마세요.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누가 소설가를 무시했다고 그렇게 성을 내나? 나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했을 뿐인데.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결코 재미있는 소설 거리도 아니고, 제가 듣기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저를 놀리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 가겠습니다.
비는 아직 오고, 이야기도 아직 남았는데...
소설가는 일어나 가게 문 앞에 섰다. 가게 문을 여니 비가 서슴없이 들이쳤다. 그냥 나가기에는 망설여지는 비였다.
굳이 간다면 잡을 수도 없고, 가게에 우산은 없고, 아쉬운 대로 신문지라도 쓰고 가던지?
나는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신문을 소설가에게 건넸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봐. 사실 조금은 구미가 당기지?
이 사람이 정말 좋게, 좋게 이야기 하니까 내가 호구로 보이나? 내가 그렇게 우습냐고? 나 같은 놈이 소설가라니까 소설이 무척 쉬워 보이지? 소설이 장난인 줄 알아? 아무 이야기나 막 쓰면 소설이 되는 줄 알아? 그렇게 쓰고 싶으면 당신이 직접 써, 내가 주방에서 면을 뽑을 테니까?
뭐 그렇게까지...
불끈하던 소설가는 내리는 비에 기세가 눌렸는지, 잠깐의 망설임 끝에 탁자 위에 있던 신문을 들었다. 가게 문 앞에서 신문을 머리 위로 올리려던 순간, 소설가의 눈에 신문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얼굴 없는 베트남 기부 천사 알고 보니 한국인 사업가 허강수.
매년 베트남 사회복지 기관에 이름 없이 거액을 기탁한 얼굴 없는 기부 천사는 한국인 사업가 허광수로 밝혀졌다. 그는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식 전통 수타 자장면인 꽝수반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 – 베트남 우정사업의 하나인 한국어 교실의 실질적인 운영자였음도 밝혀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사업가 허강수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 수여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꽝수반점의 지배인이 대리 수상을 하였다. 사업가 허강수는 지금도 얼굴을 철저히 숨기며 소리 없이 선행을 이어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윤정 기자)
소설가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가게에 오지 않았다. 나는 소설가를 친구로 생각했는데 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그 소설가를 나는 텔레비전에서 봤다. 어느 날처럼 일을 마치고,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였다. 문화초대석 ‘올해의 소설, 작가 김형수를 만나다’ 였다. 사회자는 오랜 무명작가 생활 속에서도 소설을 놓지 않고 정진하여 끝내는 일억 원 상금의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고 한다. 수상작품은 베트남 청년의 이야기, ‘꽝수반점’이었다.
꿈 / 손창현 / 당선취소
[알립니다]‘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취소 결정
‘제2회 글로리 시니어 신춘문예’에 참여해 주신 시니어 문인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공모에는 시, 단편소설, 수필, 동화 등 4개 부문에 약 800여 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습니다. 본사는 작년 12월 31일까지 응모작 접수를 마감하고 2021년 1월 1일부터 10일까지 심사위원회를 통해 당선작 선정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1월 11일(월) 오전 시, 단편소설, 수필 부문의 당선작을 ‘글로벌경제신문’ 홈페이지에 게재하였습니다.
이후 1월 14일 소설 부문에 당선된 손창현 씨의 ‘꿈’이라는 작품이 남의 작품을 도용했다는 제보를 받고 자체 조사를 통해 응모 규정 위반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본사는 1월 14일 즉각 긴급 심사위원회 회의를 열어 손창현 씨 작품의 당선 취소를 결정, 1월 15일 당사자에게 ‘당선 취소 통보’를 하였고 본인도 사실을 인정하고 수긍하였습니다. 이어 홈페이지에 게재된 당선작과 단편소설 부문 심사평, 당선작 게재 기사 등도 수정·삭제(포털 포함) 하였습니다.
본사는 또 이번 공모를 통해 당선된 모든 작품들에 대해서도 응모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검증을 진행, 위반 행위가 적발될 경우 추가 조치를 할 방침입니다.
본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시니어 신춘문예’와 관련한 공모와 당선작 선정, 심사 과정에서 문학의 발전을 해치는 도용 및 표절 문제를 보다 정밀하게 걸러 낼 수 있는 조치를 준비하겠습니다.
아울러, 도용 작품으로 본사의 업무 등을 방해한 손창현 씨에 대한 법적 조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일로 상처를 입으신 많은 분들과 관련 업계에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공모전을 진행함에 있어 보다 강화된 검증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https://www.g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0499
가진 공간이라곤 자신의 몸뚱이 밖에는 없었던 K씨는 결국 식물을 몸 안에 심기로 결정했다. K씨는 언젠가 흉부외과 방사선 사진에서 보았던 자신의 흉강을 생각하며 과연 식물을 몸속 어디에 심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를 생각했다. 아이, 괜히 이런 걸 주워서. 중얼거리면서도, K씨는 식물을 심을 곳을 몇십 분째 고민하고 있다. 위장은 위산 때문에 위험할 것 같다. 폐는 그가 가끔 얻어 피는 한 개비의 사치 때문에 식물이 말라죽을 것이다. 그러면 어디가? 발 속은 어쩐지 냄새가 날 것만 같다. 그럼 양쪽 허벅다리? 슬쩍 허벅지를 내려다보자 IMF이후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주는 밥만 먹고 살아온 부실한 허벅지는 앙상하게도 말라 있다. 다 낡아빠진 등산 바지가 헐렁하다. 충분하지 않은 공간이다. K씨는 줄어들지 않는 무료급식 줄에 서서 골똘히 다음 장소를 생각했다. 척추에 매달아 놓기에는 척추는 너무 딱딱하고 굽어 있었다. 잘 치료받지 못한 디스크는 가끔씩 온종일을 공원 벤치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머릿속에 식물을 넣어두기엔 가끔 자신이 아닌 식물에 의해 조종당하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아 불쾌했다. 아니, 불쾌할 것까지 있나. 뇌보다는 덜 중요하면서도 몸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는 부분이 없을까.
그러다 K씨는 까마득히 멀어진, 삼십 년 전의 고등학생 시절, 생물 시간에 배웠던 케케묵은 내용을 들춰내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와 떨어지는 먼지. 잔뜩 누렇게 변색 된 그 시절의 교과서 위에 있는 것은 척수를 그려 놓은 그림이다. 그리고 그 밑에 적힌 설명은, 척수란 척추 내에 위치하는 중추신경의 일부분으로 감각, 운동신경들을 모두 포함한다. 목에서부터 목척수, 등척수, 허리척수, 엉치척수로 구분되며…
여기까지 기억해내고 K씨는 식물을 척수 끝에 매달아 놓기로 결정했다. 다른 장기들이 쓸모없게 되더라도 척수에 담긴 신경은 끝까지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K씨는 그렇게 생각하며 철제 식판을 움켜쥐었다. 어디에 심을지가 정해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K씨는 잠시 눈을 감고 어제 처음 보았던 그 식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몸 안으로 들여보냈다. 식물이 척수에 가 닿았다 생각할 때 K씨는 눈을 떴다. 무료급식소의 한가운데서 식물을 척수에 심는 것이 끝났다. 아, 빨리 좀 안 가요, 뒤에 서 있는 노숙자들이 한두 마디씩 할 때쯤이었다.
K씨는 자신이 내린 이런 결론이 어딘가 만족스러워,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저녁을 먹으면서도 일면식이 있는 노숙자들에게 화분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역시 K씨는 괴짜라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혀로 빼서 먹었다. 척수에 식물을 심었다는 대목에서는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래서 형씨는, 그러니까 몸 어딘가에 그 화분인지 뭔지가 있다는 거지?”
“드디어 미쳤어. 쯧쯧.”
같은 말들이 K씨의 이야기 뒤로 딸려 왔지만 그런 반응쯤이야 상관이 없었다. 미친 것이든 미치지 않은 것이든 식물은 분명히 척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것을 K씨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거의 벗겨져 번들거리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젓가락으로 꽁치 등허리를 두 동강 냈다. 한쪽을 들어 올리자 같이 끌려 나온 꽁치의 부드러운 뼈와 신경이 흐물거렸다. 국물이 하나도 없는 꽁치는 비리다. 매콤한 맛이 하나도 없다. K씨는 그래도 오늘은 먹을 것 없는 꼬리 부분이 아닌 등허리 부분이 자그마치 두 개나 있어서 정말 운수가 좋은 날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식판에 코를 처박고 밥을 먹던 사람들 몇몇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배식하는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니, 학생. 꽁치는 됐고, 국물 달라고 국물. 반찬 통 말고 밥 위에.”
그리고 잠시 후에,
“아니, 넘칠 정도로 가득 부어달라고요. 넘쳐도 되니까. 그런 거는 안 중요해.”
성내는 목소리를 듣자 하니 김 씨다. 이 급식소는 주말이면 원래 있던 봉사자가 아닌 일회성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배식을 담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만 되면 자원봉사자들의 미숙함으로 저런 큰 소리가 나기 마련이었다. K씨는 뭘 넣고 끓인 건지 아무 맛도 안 나는 밍밍한 국을 한 입 퍼먹었다. 주린 배를 이끌고 무료급식 밥만 꼬박꼬박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겨울이면 얼큰한 국물 하나가 그렇게 그리웠다. 꽁치가 나오는 날은 사람들은 두 파로 갈렸다. 무조건 꽁치를 많이 먹는 사람이 있는 한편 꽁치엔 관심이 없고 그 얼큰한 꽁치조림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겨울에는 특히 후자가 많아졌다. 그런 자세한 사정을 꽁치 국물로 한 끼를 때워 본 적이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알 리가 없었다.
봉사자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다들 어렸다. 어느 대학에서 수를 맞춰 온 듯했다. 실수를 한 봉사자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꽁치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 김 씨는 꽁치는 됐다고 분명 말을 했는데 - K씨는 만약 자식이 있다면 저 정도 나이이겠거니, 생각하다, 태어난 적도 없는 자식 나이를 세는 것도 웃기고 해서 다시 식판으로 고개를 돌려 남은 국물을 쭉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
화분을 줍게 된 것은 지난 새벽 세 시 즈음이었다. K씨는 유난히 잠이 안 와 노숙자 무료급식소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점심시간과 저녁 식사 때만 갔던 무료급식소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고 따뜻한 국물과 고소한 생선 냄새가 진동했었는데. 이런 새벽에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길쭉한 흰 탁자는 온통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다. 모두 낡아빠진 자재들이다. 노숙자가 되어 이런 생활을 하는 자신의 신세에 K씨는 문득 울컥, 화가 올라왔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오래 이끌고 가는 것은 좋지 않았다. 최대한 단순하게 사는 것, 그것이 K씨가 오랜 노숙 생활 끝에 얻은,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만 했던 생각들이었다.
길쭉한 테이블 여러 개를 지나갈 때마다 그동안의 식사들이 떠올랐다. 이 급식소에서 먹는 밥은 체하지 않았다. 원체 위장이, 그리고 소장 대장 등등 장이란 장은 약해 다른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는 툭하면 체를 하곤 했다. 밥을 먹었다 하면, 먹은 것은 잔뜩 마른 멸치볶음과 밍밍한 감자조림 두어 개에 불과해도, 화장실에 가 한참을 기도하는 사람 마냥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앉아있다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오곤 했다. 그렇지만 이 급식소는 이유는 무엇인지 몰라도 속을 편하게 했다. 아무튼, 좋은 곳이었다.
막 그런 생각을 하며 모퉁이를 도는데, 온갖 악취가 나는 쓰레기봉투 더미 옆에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는 작은 화분과 그 안에 담긴 식물이 보였다. 작은 컵 정도 크기의 화분이었다. 그냥 황토색이라든가 검정 화분이면 몰라, 조그마한 식물을 품고 있는 그 화분은 쨍한 핑크색이었고 ‘아무개와 아무개 1년 기념’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1년을 기념하고 이젠 어찌 되었든 필요가 없어져서 버려졌구나.
K씨는 ‘버려졌구나’를 생각하는 순간 어딘가 욱, 그동안 누르고 살았던 특유의 감성이 올라와 버렸다. 그동안 K씨가 순탄하지 못한 인생을 살게 만들었던 것은 딱딱한 복숭아라기보다는 물렁물렁한 복숭아에 가까운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물렁복숭아 같은 그 마음이 다시 고개를 쳐들자 K씨는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 주울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죽은 새아버지의 음성이 K씨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누가 버린 물건은 주워가는 게 아니다.
한창 사춘기 무렵일 때부터 들어온 지긋지긋한 말이었다. 그 케케묵은 말이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새아버지를 생각하면 숨 막히는 침묵으로 가득 찬 집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새아버지는 K씨를 한 번도 물렁해 본 적이 없는 딱딱한 복숭아로 기억할 유일한 사람이었다. K씨는 새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마음을 연 적이 없었고 그랬기에 K씨는 물건을 가져오지 말라는 말을 듣든 말든 꾸준히 물건을 주워 오곤 했었다.
‘어차피 그동안 물건 같은 것들 잘 줍고 살았지. 뭐 어때.’
지금 내 나이가 남들 말 들을 나이인가? K씨는 잘 나가던 회사원이었다가 노숙자가 된 자신의 신세를 떠올리며 그 순간 화분을 슬쩍 집어 올린 것이었다. 입에서는 하얀 김이 나오는 어느 십이월의 새벽이었다.
공원 수돗가에 가 쓰레기봉투에서 나온 진물들로 찐득해진 화분의 겉면을 문질러 씻었다. 그 안에 담긴 흙이 많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해 본 것이 근래 처음이었기 때문에 K씨는 이질감에 사로잡혔다. 소중한 무언가가 생기는 기분은 묘한 흥분과 불쾌감을 함께 자아냈다. 동정심으로 거둬 오긴 했지만 그 이후에 이어져야 할 식물의 관리를 생각하면 아득해졌다. K씨는 예전부터 살아 있는 무언가를 기르는 데에는 젬병이었다.
K씨는 매일 들고 다니는, 땟국물에 절은 검정 가방 안에 화분을 넣고 지퍼를 닫았다. 가방을 다시 들쳐메고 공원 벤치로 향했다. 그것이 어제 새벽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침에 가방을 열어 보자 식물은 힘이 하나도 없이 말라 죽어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싱싱한 이파리로 찰랑거리던 녀석이었다. K씨는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안타까움과 섭섭함을 느끼며,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노숙자 신세에 뭔가를 기르고 신경 쓴다는 것은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차라리 영양제 약값 정도는 굳었다 생각하며 공원 벤치 근처 흙을 파 그 밑에 식물을 묻어두고 화분은 풀숲 어딘가로 멀리멀리 던져버렸다.
그러고 무료급식소에서 비린 꽁치를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인연이라는 것이 정말 이상한 것이 – 식물이 사람인 것은 아니지만 – 지나고 난 뒤에 생각해 보니 자꾸만 그 작은 것이 눈에 밟혔다. 물렁물렁하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식물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가 버리고 K씨에 의해 한 번 더 버려진 식물이 자신의 신세와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시 코끝이 찡해졌다. 그렇게 K씨는 철제 식판을 부여잡으며, 식물을 척수에 키우기로 다짐한 것이었다.
*
그 날 밤부터 K씨의 별 내용 없던 꿈에서는 유난히 죽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죽은 어릴 때 친구부터 시작해서 여러 어렴풋해져만 가는 얼굴들을 지나 어머니에 이르렀다. K씨는 매일같이 K씨를 아무도 없는 집에 방치하던 그녀를 떠올리며 과연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긴 했었는지 묻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억눌렀다. 어머니는 사랑이 결여된 회반죽 같은 얼굴로 K씨를 멍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K씨의 새아버지였다. 그 후로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K씨는 꿈만 꿨다 하면 강에 빠져 죽은 새아버지가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하고 정물화 안에 담긴 사과처럼 가만히 의자에 앉아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꿈을 꿨다. K씨는 그럴 때마다 다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 그래도 뒤를 돌아보면 새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꿈속에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다 아침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형씨, 요즘 왜 이렇게 수척해졌어. 맛대가리 없는 마늘종 같은 것을 씹어먹으며 점심이고 저녁이고 노숙자들은 그렇게 물었다. 혹시 그, 몸속에 심었다던 풀때기 때문인가? 누군가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주변에 앉아있던 노숙자들은 입김을 내뿜으며 피식, K씨를 제외하고 웃음이 터지다 가라앉곤 했다.
다섯 번째 그 꿈을 꾸자 K씨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K씨는 새아버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새아버지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새아버지가 우린 다 죽었는데 넌 왜 안 죽었냐, 하며 목을 조르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K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도리어 불안해졌다. 막 새아버지의 귀 근처에서 무어라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데, 그 순간 새아버지가 K씨를 바라보았다.
왜 지금까지 나를 피한 거냐.
… 보기가 싫었으니까요.
…
제 꿈에 왜 자꾸 나오시는 거예요. …아버지.
죽고 나니까 아버지라고 불러주는구만.
그렇게 말하는 새아버지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밭고랑처럼 패여 있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K씨는 문득 이런 좋지 않은 꿈을 꾸는 이유가 새아버지의 금기를 어겨서인가 싶은 생각이 스쳤다.
제가 아버지 말씀 안 들어서 그런 건가요?
무슨?
누가 버린 물건은 주워가는 게 아니라는 말이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네.
아버지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했으니까요.
그만큼 네가 길거리에서…
K씨는 공원 벤치에서 벌떡 깨어났다. 한겨울인데도 식은땀이 목덜미에서부터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새아버지와 이렇게 대화를 해 본 적이 있었던가. 둘 사이에는 이런 별 것 아닌 대화조차 없었다. K씨가 철저히 새아버지를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 그렇지만 K씨는 그것을 새아버지가 자신을 버려서, 라고 생각하고 있다 – 죽은 이후에 시작되는 대화라니. K씨는 삼십 년도 더 된, 십 대 때의 기억을 좇으며 새아버지의 문장을 완성했다.
길거리에서 이상한 물건들 자주 주워 왔었으니까.
그 생각에 이르면 K씨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없던 텅 빈 집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K씨는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길에서 주워온 상자를 잘게 잘라 이어붙여 미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주워온 돌멩이라든가 누가 버린 몽당연필, 깨진 안경, 낡은 인형 같은 것들을 넣어두었다. K씨가 만든 미로에는 출구가 없다. 또한, 물건들은 서로를 만날 수 없다. 아무리 미로를 헤매어도 서로의 방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외로운 물건들을 신이 된 것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며 K씨는 조금이라도 덜 외로워질 수 있었다.
새아버지는 아무렇게나 물건을 주워 오는 K씨의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아버지도 든 적이 없던 회초리를 들고 혼을 냈다. 온갖 무서운 이야기를 새아버지는 애써 지어내 들려주었지만 이미 사춘기가 지나고 있던 K씨에게 그런 말들이 약효가 있을 리가 없었다. K씨는 그런 새아버지의 서툰 모습을 비웃었다. 역시 어수룩하다니까. 낄낄거렸다. 새아버지가 하는 말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은
―누가 뭐래도 너는 내가 낳은 자식이다.
라는 말이었다. 마음으로 낳으면 낳았지 어떻게 당신이 낳았겠어요, 라고 밥상머리에서 이야기하면 새아버지는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K씨는 그런 말에 더 짜증이 났다.
새아버지를 향한 짜증과 배척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은 새아버지가 마치 무엇이라도 된 듯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열일곱 살이었던 K씨가 새아버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새아버지가 K씨를 선택한 것만 같은 느낌에 K씨는 분해졌다. 게다가 자꾸만 내가 낳은 자식 운운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심지어 죽어서까지도 새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은 듯했다. 죽은 새아버지가 나온 꿈을 열 번째 꾸었을 때 K씨는 이제 결론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K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영락없는 물귀신 꼴로 쇼파에 앉아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에겐 가짜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제가 어머니와 함께 만들었어요. 어머니가 사랑하는 새 남자와 가정을 합치는 것이 어머니와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K씨는 어머니와 그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었다. 항상 자기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었던 어머니는 K씨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실이야 어떻든, K씨의 말에 새아버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저는 당신에겐 자연의 방식대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출발은 중요하지 않다. 넌 내가 내 몸에 심어놓은 자식이야.
심어놓았다고요.
그래.
어디요?
그 말에 새아버지는 조금 망설이다 자신의 배 부분을 가리켰다. 자세히 다가가 들여다보자 동그랗고 검은 공간이 새아버지의 배에 뻥 뚫려 있었다. 그것은 K의 새아버지가 전쟁에서 얻은 평생 지우지 못할 훈장 같은 것이었다. 수류탄 파편이 지나가고 열악하게 꿰매진 새아버지의 배는 온통 흉터투성이였는데, 그래서 못 쓰게 된 장기를 이리저리 이어붙이는 바람에 배꼽 아래쪽, 본디 소장이 구불구불 라면 면발처럼 가지런히 접혀 있어야 할 곳은 정말 뻥 뚫려 있다고 새아버지는 말하곤 했었다.
이 뱃구렁에서 너를 키웠다.
새아버지는 정물화 속의 사과 같이 동요 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깨고 보니 별 해괴한 꿈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다 하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만 더 듣고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새아버지는 K의 꿈에 나오지 않았다.
*
지하철이 너무 빠르구나.
K씨는 그 말을 기억한다. 그 말은 K씨의 새아버지가 영영 실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K씨에게 이야기했던 문장이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밖에서 길을 헤매다 돌아온 새아버지는 다음 날 아침, 식탁 의자에 배를 부여잡고 힘겹게 걸터앉으며 이야기했었다. 그때 K씨는 새아버지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으므로,
그러네요.
하고 회사에 일을 하러 나갔었다. 그때 새아버지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K씨는 생각나지 않았다. 표정 없는 마리오네트 같던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전형적인 ‘할아버지’가 되어가던 새아버지는 휴대폰 지도 어플을 사용할 줄도 모르고 오로지 감에만 의존해 길거리를 다녔다. 그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고 경찰서의 도움으로 집에 겨우 돌아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혹은 기어코 그 골목을 찾아가 과거의 추억이 담긴 점포들이 지금은 자취도 남지 않은 채 사라졌다는 것을 전쟁이 관통한 텅 빈 배를 부여잡고 두 눈으로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낡아빠진 국가유공자 모자를 새아버지는 외출할 때마다 쓰고 다녔다. 가끔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할아버지 두세 명과 함께 아파트 앞 화단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K씨는 그런 새아버지가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좀 쉬세요.
나는 나가고 싶다.
이 짧은 대화 이후로 다시 침묵의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동안 어머니라는 연결고리로 겨우겨우 이어 붙여져 있던 가정은 어머니가 없어지자 가족이라 하기에도 뭐한, 동거인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어버렸다. 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가 새아버지가 결국 집을 나가 실종된 후 강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이유였는지. K씨는 새아버지의 조끼에서 나온 유서에서 그 답을 찾아보려 했었다. 하지만 유서엔 그런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찬장 구석에 돈을 모아놨으니 잘 뒤져 보아라는 것이 내용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찬장 구석을 쥐잡듯이 살펴 그는 접시와 접시 사이, 교묘하게 가려진 봉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봉투 안엔 통장이 들어 있었고 K씨는 그 금액을 보고 놀랐지만 그런 것과 새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철저히 별개였다.
K씨는 새아버지가 죽은 후, 집에 돌아오면 느껴지는 적막의 무게가 달라진 것을 느꼈었다. 안쪽 방에서 귀찮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없어지자, 집에 오면 온통 어둠이었던 십 대의 겨울로 돌아가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만든 박스로 만든 미로들…. 혼자 했던 외로운 싸움.
여섯 번째 꿈에서였나 일곱 번째 꿈에서였나. 새아버지는 매일을 미로를 삼키는 기분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배에 이미 사라지고 없는 소장 대신 미로가 한가득 쌓이는 기분으로 살다 보니 한평생이 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에요. 죽은 새아버지와 대화를 하다 보니 새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진부한 스토리는 K씨에게 통하지 않았다. 무료급식소에서 꽁치 등허리를 쇠젓가락으로 갈랐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하루들이 일렬종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새아버지가 죽은 시점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직장도 잃고 떠돌이 노숙자가 되니 이젠 새아버지를 왜 미워하기 시작했는지도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았다.
*
꿈에 온통 가시가 돋친 덩굴식물로 뒤덮인 미로가 나왔을 때 K씨는 척수에 심은 식물이 드디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K씨는 그 미로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어릴 적의 미로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K씨는 머릿속으로 미로의 지도를 만들며 미로를 답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다니기를 두 시간. K씨는 이 꿈의 미로는 출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만든 미로와 같은 구조였다. 그렇게 식물들로 뒤덮인 출구 없는 미로를 걷는 꿈에 K씨는 갇혀버렸다.
오늘의 주메뉴는 냉동 고기 경단 세 개. K씨는 육즙이 흘러나오는 고기 경단을 잘게 씹었다. 이런 고기의 맛을 느껴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그러면서도 삼겹살이나 갈비 같은 ‘진짜 고기’들을 먹고 싶었다.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일 밥엔 삼겹살이 나온대.”
맞은편에 앉은 박 씨가 이야기했다. 그 옆의 김 씨가 말을 보탰다.
“여기 창립일이라나 뭐라나…”
“내일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겠네.”
일찍 와야겠어.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다시 자기 앞에 놓인 밥을 마지막 밥알 한 톨까지 싹싹 긁어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다란 흰 테이블마다 가스버너가 올려지고 그 위에 고기 굽는 판이 깔렸다.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을 할 수 있는 날이다 보니 점심시간 한참 전부터 노숙자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K씨도 그사이에 끼어 있었다. 어제도 꿈에는 미로가 나왔다. 미로를 걷다가 미로 벽면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의 비정상적으로 큰 가시에 팔목을 꿰뚫려 버렸다. 바싹 마른 K씨의 손목에 굵은 주삿바늘 정도의 굵기의 가시가 푹 들어갔다. 가시가 얇은 살을 뚫고 들어갈 때 나는 소리는 퍽이 아니라 투둑, 이었다. 모직 옷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와 흡사했다. K씨는 손목에 박힌 가시를 바라보며 이걸 뽑아야 하나, 그대로 있어야 하나, 평생 가시가 박힌 채로 사는 게 나으려나 고민하다, 심호흡을 하고 굵은 가시를 혈관에서 드드득, 돌려 뺐다.
막힌 곳이 터지며 피가 왈칵 터져 나왔을 때 K씨는 뜻밖에도 아픔과 함께 약간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오줌을 참다 겨우 화장실에 갔을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했다. K씨는 상처에서 느끼는 이 낯선 쾌락에 젖어있다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막았다. 그러다 번뜩 눈을 뜨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꿰뚫린 손목을 보자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역시 꿈이란.
잔뜩 달궈진 불판에서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고 있다. K씨는 집게를 쥐고 고기를 뒤집으며 입맛을 다셨다. 잘 익은 삼겹살을 자를 때마다 둘러앉은 노숙자들의 눈빛은 저것을 곧 먹겠다는 기대감으로 이글거렸다. 고기 한 점을 씹자 고소한 육즙이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삼겹살의 맛이 K씨는 못내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쌈 여섯 개째를 싸 먹고 있는데 K씨의 앞에 몸에 쫙 달라붙는 얇은 패딩을 걸친 청년 한 명이 다가왔다. 바람에 날려갈 것 같은 몸에 껄렁한 포즈, 영락없는 날라리 고등학생이다.
“화분 훔쳐간 거, 아저씨죠?”
청년은 대뜸 그렇게 이야기했다. 훔쳤다는 단어에 주변 노숙자들이 입 안에 쌈을 한가득 싸 넣어 우물거리는 채 이쪽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K씨는 명백히 버려져 있던 것도 가져가면 훔쳐간 것이 되는지 의문이 드는 한편 아무도 없는 새벽에 화분을 주워 간 것을 어떻게 저 청년이 알고 있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그런 생각의 결과는
“무슨 화분…?”
이라는 누가 봐도 좀도둑처럼 보이는 대답이었다.
“이미 CCTV 다 돌려봤고, 여기 센터에서 도둑질 이력이 가장 많은 사람이 아저씨라고 센터 사람이 이야기했어요.”
아니다. 도둑질이라는 것은 모함이다. K씨는 이 급식소에서 도둑질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었다. 급식실 한쪽 구석에 일주일 정도 방치된 쿠키 상자가 있길래 그걸 들고 와 먹은 적은 있었지만 그런 것이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무 신경도 쓰고 있지 않다가 없어지고 나서야 그걸 찾기 시작하는 오만함이 K씨는 싫었다. 정말 큰 도둑질 사건이 하나 있긴 했다. 사무실 서랍 안에 있던 돈다발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지금은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없는 다른 노숙자가 한 일이었다. 다만 그저 K씨가 가장 물렁해서, 물렁한 대응으로 인해 가짜 도둑으로 몰린 것일 뿐이었다. 오래전 회사에서 해고당할 때처럼.
K씨가 이런 생각에 잠겨 본의 아니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사이에 청년은 무어라 더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K씨에게
아니 아저씨, 빨리 화분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라며 억지로 꾸며 낸 듯한 화를 내가며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어린 게 어디서 반말이야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K씨는 그저 멀뚱히 듣고 있었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듯 몽롱하다. 아, 이것도 꿈인가. 왜 화분을 가져갔냐고 이 노숙자 새끼야, 하며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가 새파랗게 화난 표정으로 K씨를 몰아세웠다. 그것 때문에 싸우고 재회한 여자친구와 또다시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일 년 기념으로 함께 키우는 반려식물을 선물했었다나 뭐라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화분이라 새로 살 수도 없어요, 제발요. 어느새 다시 존댓말. 그런 시시콜콜한 연애사가 뭐 그리 중요하나 싶지만 K씨는 그 말들에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그래도 쓰레기봉투 옆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걸 가져간 건데 그게 무슨 잘못인가. K씨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혼자 화내고 혼자 흥분을 가라앉힌 청년이
그래서 화분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이 새끼야.
라고 말할 때 – 청년은 뇌 어딘가가 아무 무늬 없는 회백질로 변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 K씨는 식물을 척수에 심어놓은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렁물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은 ‘역시 못 배워먹어서’라는 말을 시작으로 K씨를 까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못 배워먹었나? K씨는 억울하다. 대학도 나오고 번듯한 회사도 다녔는데 시대에 휩쓸리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아니 IMF 이후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 내 잘못인가?
K씨가 여전히 대답이 없자 무슨무슨 새끼야, 하며 말끝마다 욕이 시작됐다. 요지는 화분 도둑놈이 왜 이렇게 뻔뻔하냐, 빨리 화분 뱉어내라는 것이었다. K씨는 거기서 자신은 과연 누구의 새끼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머니의 새끼인 것은 확실했지만 그건 반쪽짜리였다. 남은 반쪽이 확실치 않았다.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아버지가 정말 아버지이긴 한가, 라는 또 다른 질문에 부딪혔다. 새아버지는 K씨를 열심히 키워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새아버지의 아랫도리에서 K씨가 시작되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저씨 애비가 그렇게 가르쳤어?”
그 말에 별안간 K씨는 눈앞이 온통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청년이 이야기하는 ‘애비’ 라는 말에 K씨는 자신의 아버지는 누군지 몰라도 애비는 확실히, 새아버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 누가 버린 물건은 주워가는 게 아니라며 허구한 날마다 혀를 끌끌 차며 말하고 K씨가 가져온 잡동사니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던 사람. 새아버지는 도둑질을 하라고 K씨에게 가르친 적이 없다. 저 사람은 아무것도 몰라. 화분을 척수에서 빼내 버리면 텅 빈 공허가 평생 척수 끝에 매달려 있을 것이었다. 평생 텅 빈 것을 몸 안에 품고 사는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 화분은 나의 것이다. 그 누구도 빼내 갈 수 없다. –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다 K씨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청년의 손을 붙잡고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에 무턱대고 꾹 눌러 지져버렸다. 그것은 정말이지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라 고기를 먹고 있던 노숙자들 중 아무도 K씨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당연하게도,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K씨는 청년의 손바닥을 지지더니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잔뜩 휘둥그레진 노숙자들의 눈이 좇고 있었다. K씨는 미로같이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따라 아무 곳으로나 달렸다. 그저 막다른 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곳이 그가 그렸던 출구 없는 미로를 그대로 옮겨놓은 세상이 아니길 바라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며 K씨는 그 청년의 손을 왜 불판에 지졌는지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
그 날도 K씨는 꿈을 꿨다. K씨는 미로를 달리다 그동안 본 적이 없는, 미로 한가운데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덩굴식물들을 보게 되었다. 식물들은 구(球) 모양으로 둥글게 모여 있었고 K씨의 키보다 두 배나 되는 높이에 비현실적인 부피였다. K씨는 그 안에 들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집채만 하게 자라난 덩굴식물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칼을 쓰지 않아 자연의 방식대로, 덩굴식물의 커다란 가시 때문에 온몸이 상처로 이리저리 찢겨나갔다. K씨는 어쩐지 침입자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놓을 수 없었다. 끝끝내 K씨는 덩굴식물의 한 가운데에 들어갈 수 있었다. 투두둑 소리를 내며 손인지 덩굴인지 모를 것이 뜯겨 나가고, K씨는 아직도 시야를 빼곡히 가리고 있는 덩굴 사이로, 덩굴들이 그렇게도 간절히 그 속에 붙잡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붉고 둥글며 한없이 빛나는 것이었다. 태양일 것이다. K씨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그 뒤로 들리는, 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땅을 긁는 소리, 머리를 온통 회백질로 만들어 버리는 아찔한 초록빛 냄새. 식물을 척수에 심는 게 아니라 팔뚝에 심어버릴 걸 그랬어. K씨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으면서도 그 둥근 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덩굴을 헤쳐 나아갔다. 그러다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덩굴들이 흔들리고 미로가 벽을 부르르 떨었다. 한번 시작된 진동은 곧 차분하고 부드러운 리듬으로 바뀌었다. 그 리듬은 누구의 음성을 닮았나. 문득 K씨는 이곳이 새아버지의 뱃구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아버지의 뻥 뚫린 배. 미로를 삼키며 살아왔다는 새아버지의 배는 이렇게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정말… 죽어서까지. 붉어진 눈시울로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새아버지의 시뻘건 자궁이 거기에 있었다.
홀로세(稅) 부부세(稅) / 김해수
국회는 2025년 새해 벽두부터 ‘홀로세’와 ‘부부세’라는 세법을 제정하고 가결시켰다. ‘홀로세’는 35세 이상인 독신 남녀들이 대상이었고, ‘부부세’는 결혼 후 4년 차 이상인 무자녀 부부들이 대상이었다. 바야흐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은 사람들의 사적이 은밀한 부분까지 공권력의 잣대를 들이대려 했다.
유예기간이 2년이며 2027년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공포했다.
2019년 말, 대한민국 인구는 5,185만 명의 정점을 찍고 출산율의 저하로 인해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4년 상반기에 5,000만 명이 무너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계몽을 하며 지원금 지급을 약속했지만, 독신자들과 젊은 부부들은 시큰둥했다.
혼자 사는 젊은 남녀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로망이 아니었고 필수와 선택에서 제외되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데에 자신들의 젊음과 노후를 담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특히 수도권에 살고 있는 젊은 남녀들의 이러한 생각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갔고,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도 찰흙이 음지에서 말라가듯 견고해져 갔다. 자유로운 영혼이 감금되지 않을까 하는 추상적인 생각이 구체적인 생각으로 자리 잡아 젊은이들의 저변에 깔려있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삶의 질이 궁핍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까닭이었다.
굳어진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꿔놓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결혼과 자녀 낳기를 독려해도 젊은이들에겐 자신들과 무관한 독려로 치부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골머리를 앓고는 있었지만 골머리를 치유해줄 답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책이 없었던 터였다. 부동산과 교육 정책, 두 가지만이라도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다면, 이렇게까지 결혼과 자녀 낳기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초원에서 날뛰는 두 마리의 야생마를 순치시키기 위해 조련사를 수시로 바꿔가며 갖은 노력을 해왔지만, 야생마들의 날뛰는 기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정책의 얄팍한 대처는 젊은이들의 기민함과 영악함에 뒤처져 있었기에 인구 감소의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어두운 창고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법의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냈다. 그 법의 칼은 양날이 섬뜩한 장검이었다.
국회 앞과 광화문 광장에서는 전국의 젊은 남녀들이 집회를 열어 악법 폐지를 외치며 성토했지만, 세상에 나온 법의 칼은 양날을 번득이며 젊은 남녀들을 겨누고 있었다.
2년 후의 법의 칼은 더욱 날카로워져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른여섯 살인 형소와 서른다섯 살인 민사는 홀로세가 국회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고, 세금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홀로세라는 당치도 않는 법이 날을 세우며 달려들 것만 같았다.
형소는 서른한 살의 늦은 나이에 법원에 들어왔다. 2020년 1월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단독1과 27단독 실무관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만 5년이 지나고 있는 터였다. 코트 깃을 여미며 동관으로 들어섰던 5년 전의 형소는 법원공무원으로서의 자긍심이랄까, 국민의 봉사자라로서 처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었다. 늦은 나이에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배어 있었고, 나른함이 스며들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5년간의 서울 생활은 그야말로 살기 위한 분투였다. 허름한 고시원을 떠돌면서 편의점, 식당, 엑스트라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 네 시부터 일을 하는 동대문 시장에서는 갖가지 옷들을 도매상으로 넘겨야 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일이 끝나고 고시원에 들어서면 공무원 수험서를 펴놓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 치열한 삶이었다.
법원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던 하얀 날, 머릿속에 차오르는 건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고시원 비용과 밥값, 책값을 벌기 위해 애면글면 서울 거리를 오갔던 지난날들을 손바닥으로 훑으면 조각조각 흩어질 것만 같았다. 오로지 합격을 위해 책상에 수험서를 펴 놓고 공부하는 자신만이 남아 있으리라 여겼다. 돈을 벌기 위한 치열함에 이골이 난 터였다.
그러한 터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을 들어서는 형소가 자긍심이 어떻고, 국민의 봉사자로서의 공무원이 어떻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달이 나오는 돈을 생각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너무나 속물적이라 일컬어도 어쩔 수 없었다. 형소에게는 돈이 우선이었다.
5년 동안의 서울살이는 결코 녹록지 않다는 걸 체득한 형소였다. 대학 생활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연애라는 걸 해볼 새가 없었다. 몸뚱어리에 의지해야 했고, 그 몸뚱어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배를 곯아야 했다.
2020년부터 다달이 지급되는 돈은 아끼고 아껴서 힘겹게 놀렸던 몸뚱어리 하나 누울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야 했다. 주위에서 결혼 할 여자를 소개시켜준다 해도 코로 들었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좋아하네, 사랑하네 하면서 여자 앞에서 깝죽거리는 게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5년 동안 아껴온 돈은 마이너스 대출을 끼고 서울에서 원룸을 얻을 수 있었다. 고시원에서 가방과 보따리 대 여섯 개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한가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가방과 보따리가 사람이 서 있을 세 자리는 차지하고 있었으니, 여기저기에서 눈알에 힘을 주고 형소를 쳐다보는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주르륵 흘려내려 엉덩이 골을 따라 미끄러졌다.
지하철에서 내린 형소는 가방은 앞뒤로 메고 보따리는 양 손에 쥔 채, 양 발을 끌다시피 하며 기신기신 걸어갔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들떠 있었다. 원룸에 들어선 형소는 가방과 보따리를 한쪽 구석에 모아놓고 대(大)자로 누웠다. 서울에서 팔자 좋게 대(大)자로 누워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런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꿈처럼 오고야 말았다.
같은 법원 같은 과 민사37단독에는 민사가 하루 종일 재판 참여를 하고, 오후 다섯 시나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이 있는 날 민사는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그게 사법부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고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자긍심에 흠집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민사는 서울 태생이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014년도에 법원에 들어왔다. 12년 차인 민사는 2년 전에 계장으로 승진을 하고 재판참여를 하고 있었다. 서울엔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었고 자신은 부모님이 보태준 돈으로 투룸에서 독립하여 살고 있었다. 결혼은 인연이 없어서인지 여태껏 혼자였다. 혼자라 하더라도 외롭다거나 끼니를 거르거나 심심할 틈이 없었다. 퇴근해서는 요가를 비롯하여 어학 학원, 독서 클럽을 다녔고, 쉬는 날에는 등산이나 1박으로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이 괜찮은 남자가 있으니 선을 보라 해도 뜨뜻미지근하게 대답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혼자 사는 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즐거움을 주고 있었으니 굳이 남자를 만나 사랑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2025년 1월 1일부터 서울행정법원 행정과 제3부 재판부에서 실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형소는 가당치도 않은 세법 제정에 울적한 심사가 백중(百中)사리처럼 밀려오다 쓸려가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빠개지도록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결혼을 세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국가의 법치가 던적스러웠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걸걸한 욕지거리가 명치 아래에서부터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욕지거리 몇 마디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소리를 무심결에 문가을 계장이 들었다.
“실무관님, 무슨 일 있어요? 오전부터 기분이 별로인거 같은데요.”
문가을 계장은 어제 재판을 한 행정사건들의 조서를 작성하다 말고 물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과 딸, 남편이 있는 그녀였다.
“그렇게 보여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요. 국가의 간섭이, 계장님이 나를 보는 바와 같이 기분을 별로로 느껴지게 하니까요.”
형소는 다음 주 재판 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니터에 전자소송기록뷰어만 잔뜩 띄워 놓고 일의 진척이 없었다. 더군다나 문가을 계장이 출근 후부터 모니터를 보며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마뜩잖게 들려왔다. 가진 거 다 가지고, 할 거 다 하는 문가을 계장에 대한 시기심이 소리와 한데 섞여 귓가를 울리고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간섭? 무슨 간섭이지?”
문가을 계장의 눈이 화등잔처럼 떠졌다. 대한민국이 실무관에게 무슨 간섭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설사 있다 해도 요즘과 같은 시대에 국가가 한 개인에게 간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한 눈빛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라고 돼 있는데, 설마 이를 어기고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리는 없다고 문가을 계장은 생각했다.
“계장님, 뉴스 안 봤어요? 며칠 전에 국회에서 희한한 세법을 제정했잖아요. 독신자들을 옭아매는 홀로세와 자식을 낳을 수 있는데도 낳지 않는 부부들에게 억지로 자식을 낳으라고 강요하는 세법요. 그 세법이 제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간섭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법치만능주의로 치닫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소는 시쁘둥하게 말을 했다.
“아, 그 세법 때문에 그렇구나.”
문가을 계장은 당연히 그 세법을 알고 있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프게 다가오지 않기에 한 번 듣고 생각할만한 뉴스거리가 되질 않아 금방 뇌리에서 사라진 터였다. 발이 바람에 차랑차랑 흔들리듯 법원 실무관의 기분은 재판부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 세법이 실무관님이 말한 대로 좀 그렇기는 하지. 인구 감소를 억제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라지만 무조건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최하급의 대응방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법보다는 정부나 정당의 정책이 우선시 돼야 하는데 말이야. 실무관님 기분, 알만 하겠네.”
문가을 계장은 자판소리를 한동안 멈추고 형소의 우울한 기분을 맞춰주었다.
“실무관님! 오늘 퇴근하고 기분도 꿀꿀한데 술이나 한 잔 할까요?”
계장은 술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형소에게 물었다.
“좋지요. 오늘 계장님 괜찮은데요. 기분도 맞춰주고.”
문가을 계장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고, 형소 또한 모니터에 띄워 놓은 전자소송기록뷰어들로 눈길을 돌렸다.
퇴근 후 문가을 계장과 형소는 양재역 8번 출구로 나와 참치회 식당으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을 해 둔 터라 종업원은 룸으로 안내를 했다. 때깔 좋은 참치가 큰 접시에 담겨 나오고 변두리 음식이 참치를 에워쌌다. 문가을 계장은 소주와 맥주를 시켜 소맥을 제조하고 형소에게 잔을 권했다.
“실무관님! 홀로세라는 세법도 제정되고 했으니까 이제 독신을 벗어나야지요. 비록 실무관님의 의지와는 무관하다지만 어찌 보면 법이라는 것도 상식을 따라가기 마련이잖아요. 국가만 탓할게 아니라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실무관님에게도 적지 않게 문제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자, 실무관님의 독신 탈출을 위해서 쭈욱 들이켜요.”
얼떨결이었다. 문가을 계장의 독신 탈출이라는 말이 뼛속 깊이 파고들 줄은 미처 몰랐다. 형소와 문가을 계장은 잔을 마주치고 소맥으로 입안을 적시고 내장에 내리부었다. 짜릿한 맛이었고 감칠맛이 돌았다. 늦가을 산수유 열매가 익어가듯 붉은 빛이 선연한 참치회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소맥과 참치회는 일품이었다.
소맥이 두 순배 돌자 에코백을 어깨에 멘 여자 한 명이 여닫이문을 밀치고 문지방을 넘어섰다.
“민사야, 어서와, 이리와 앉아.”
문가을 계장은 옆자리를 가리키며 등받이 좌식의자를 뺐다.
“다른 분도 계셨네!”
블랙 누빔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친 민사는 형소를 곁눈질로 훔치며 미소를 머금고 앉았다. 형소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민사에겐 아랑곳하지 않고 참치회에 집중 했다. 그런 형소를 민사는 거만하면서도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미리 얘기 안 해서 미안. 민사야, 인사해. 이쪽은 나하고 같은 재판부에 있는 실무관님이고 여기는 나하고 대학 친구이자 법원동기.”
문가을 계장은 형소와 민사에게 미안함을 만회하려는지 처연함을 가장했지만 그 처연함이 둘에겐 음흉함으로 다가왔다. 형소와 민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같은 법원직원으로서 술 한 잔 한다고 여기면 전혀 어색할 필요는 없었다. 모르는 직원들과 술자리가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언젠가는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술자리가 깊어지면서 형소는 법원에 들어오기 전의 서울생활을 늘어놓았고 친구이자 법원동기인 둘은 측은한 눈빛을 하고 형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사와 문가을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신 형소는 얼굴이 불콰해졌고, 혀는 의지를 따라주지 않아 자음과 모음이 뒤섞였다.
“그럼 실무관님은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산다는 거예요?”
문가을 계장은 형소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민사를 바라보았다. 민사의 눈자위는 핏발이 서 있었다. 형소는 잠시 표정을 묘하게 찡그리다가 정색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보지 못했고 주위의 유혹과 권유에 못 이겨 한 결혼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결혼이라는 설렘과 신선함이 사라진 후엔 혼자만의 자유를 갈망하는 그런 사람들을 여럿 봐왔습니다. 굳이 결혼을 해서 책임을 짊어져야 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험한 세상에 자식을 낳아 놓고 전전긍긍하기가 나한테는 버겁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 간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없는 자가 가진 자를 넘어설 수 없고 가진 자는 없는 자를 억누르고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나는 가진 게 없습니다. 두 분께서 나를 너무 나약하고 앞날에 지레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가 봐온 현실은 극단적으로 냉정하고 다가올 앞날은 가진 자에 의해 좌지우지 될 것입니다. 국가도,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민사와 문가을 계장은 술잔을 내려놓은 채 형소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겪어온 바였기에 침묵의 동의를 하고 있던 터였다.
“민사 너도 실무관님하고 같은 생각이야?”
문가을 계장의 눈총이 민사를 향했다. 민사는 왜 나에게, 라는 생각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다.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난 그냥 혼자가 좋아. 남편한테 잔소리하기도 싫고 잔소리 받기도 싫고 자식 낳아서 학교, 학원, 성적 등등 신경 쓰는 게 싫어. 가족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게 나한테는 자격이 없는 거 같아. 가을이 너같이 할 수가 없을 거 같아. 그래서 나한테는 결혼이 체질이랄까, 적성이랄까, 아무튼 맞지가 않아.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는다는 건 아무래도 불편해. 그러니 초장부터 하지를 말아야지.”
문가을 계장은 형소와 민사를 쳐다보고, 그래 니들 잘 낫다, 잘 낫어. 눈으로 질책을 했다. 그러곤 칼자루를 휘둘렀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홀로세를 내야겠네. 소득의 5%라고 하던데, 그것도 원천징수고, 그 세금이 적은 돈이 아닐 텐데 말야.”
형소와 민사는 문가을 계장의 칼날에 똑 부러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술자리를 파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11시까지 늘어지게 잔 형소는 일어나자마자 토마토 주스를 마시고 에어프라이어로 피자토스트를 요리해서 먹었다. 숙취는 없었고 개운했지만 홀로세가 끈질기게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 오후엔 광화문광장 언저리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볼 참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들러 책 쇼핑을 하는 곳이었다. 혼자 살면서 자유로운 사상을 머리에 담고 남의 생각을 훔칠 수 있을 만한 것이 있다면, 책 이상이 없었다. 교보문고에 들어선 시각이 오후 세 시였다. 책을 사들고 계산하거나 나가는 사람보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서서도 읽었고 바닥에 절퍼덕 주저앉아 읽기도 했다. 형소는 교보문고에 들어서면 우선 한 바퀴 죽 둘러본다. 한 달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보는 것이고, 사람들이 주로 무슨 책을 읽나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로 가서 꼼꼼히 훑어본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민사가 책을 보고 있었다. 형소는 거침없이 민사에게 다가갔다.
“계장님! 안녕하세요? 어제 술이 과했는데 괜찮으세요?”
민사는 훑어보던 책을 덮고 형소 쪽으로 고갤 돌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어제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간만에 과음은 했지만 거뜬합니다. 책 사러 오셨나 보네요?”
민사는 덮었던 책을 손에 쥐었다.
“오늘이 책 쇼핑하는 날입니다.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이곳에서 사갑니다.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지요. 책은 현재의 무료한 삶을 여유와 당당함으로 무장시켜 주는 친구라 할 수 있지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살아내기 위해선 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이제껏 홀로 버티고 있는 것도 곁에 항상 책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혼자 있고 싶고 온전히 내 삶에 충실하고 싶을 때에는 책을 손에 듭니다.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유충인 애벌레가 서서히 성충으로 변하듯 안이 채워지고 몸이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고 나면 혼자라는 사실에 꿋꿋함을 느끼지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곳에 들릅니다.”
형소는 민사가 손에 쥐고 있는 책을 넌지시 보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 감성이 메마르고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히다보니 사랑을 줄 줄도 모르고 받을 줄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 돼 있었나 보다.
“나도 가끔 들르긴 해요. 실무관님처럼 거창하게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도움닫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인해 나를 변화시켜보자는 그런 류의 정신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하루의 삶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행동하려는 계획적이기 보다는 단기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살아가는 삶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지요. 큰 것은 머리에 담아두고 이변이 없는 한 변하지 않아요. 작은 것은 가슴에 담아두고 기분에 따라 변하기도 하면서 가급적이면 머리의 통제를 받으려 하지 않지요. 가슴으로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정신 이상자로 보는 사람도 더러 있더라고요.”
형소는 민사의 얘기를 듣는 중에도 쌓여 있는 책들을 눈으로 만지고 한 권을 손에 쥐었다. 젊은 작가들이 쓴 소설집이었다. 형소와 민사는 어색함이 없이 자리를 옮겨 손님들이 뜸한 법률서적 코너로 가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계장님도 혼자 사는 게 편하지요? 계장님 미모에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니고, 안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형소는 ‘계장님은’이 아니라 ‘계장님도’ 라며 주어에 자신을 끼워 넣었다.
“물론 편합니다.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 시간을 남에게 내어주지 않고 나만이 쪼개서 쓸 수 있으니까요. 결혼이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습니다. 나한테는 태초부터 남녀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감각이 없었어요. 왜 굳이 같이 살아야 하나? 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이 있었지요. 실무관님하고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얘기도하고 참 좋잖아요. 왜? 꼭 세상의 의지가 나에게도 적용이 되어 남녀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냐고요. 내가 이상한가요?”
민사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세상에 맞춰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입술을 한 자는 내밀다시피 했다.
“이상할거까지야 없지요. 제가끔 저마다의 생각과 행동이 있고 그 생각과 행동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삶이 만족하다면야 나름대로 삶을 누리면서 살면 되잖아요. 근데 그거 알아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간다는 게 지금에 이르러 국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거. 즉 우리가 국가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거지요. 대한민국 인구 감소에 우리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가는 피해를 입히는 자에게 홀로세를 거둬들이려고 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소는 홀로세에 대한 생각을 대한민국의 피해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어렴풋하게 규정하며 민사의 생각을 물었다. 같은 처지로써 사뭇 궁금했다.
“그 세법이 제정됐다는 사실에 세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세법이 폐지가 되지 않는 이상 악법도 법이니까 따라야 한다는 게 첫째고, 절이 싫으면 중이 그 절을 떠나야 한다는 게 둘째고, 홀로세를 내기 싫고 대한민국을 떠나기 싫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셋째예요. 셋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은 세 번째예요. 결혼을 하고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서류상 결혼신고만 하는 거지요. 그럼 일단 홀로세는 면할 수 있잖아요. 실사를 한다 해도 부부의 속내를 무슨 수로 알겠어요.”
형소는 민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세는 그렇다 치고 4년 후의 부부세는 어떻게 할 거예요?”
부부세에 대한 대응도 민사는 생각을 해뒀을 거라 믿었다.
“그거야 간단하잖아요. 부부세의 법 조항을 보면 예외 조항이 있잖아요. 그 조항에 내가 해당되게끔 만들면 되잖아요.”
민사가 노회하다고 할까 영민하다고 할까, 민사는 국가든 개인이든 간섭의 빌미를 주지 않았다. 형소와 민사는 책 한 권씩을 계산하고 교보문고를 나와 헤어졌다. 민사가 했던 말이 황탄한 것만은 아니라 생각했다. 민사는 국회의 성급한 세법 제정과 법치의 미욱함이 허점 투정이라는 걸 단호히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국가는 영토와 국민, 주권이 있어야 한다. 주권과 영토를 빼앗기면 지난 날 36년 동안의 고통이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제는 다른 문제에 봉착돼 있다. 인구 감소가 그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개인의 선택권에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국가와 개인 중 중요한 건 무엇일까? 형소는 내내 생각을 했지만 자신이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순 없었다. 다만 국가는 개인을 파괴할 수 있을지언정 개인은 국가를 상대로 호소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그 호소는 명명백백한 피해사실이어야 한다는 것. 두루뭉술한 호소는 국가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기에 호소한 자를 위태롭게 할 소이가 있다는 것. 형소가 알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형소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 세 캔을 사들고 원룸으로 들어갔다. 별일이 생기지 않는 한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자고 자신과 약속을 했지만, 오늘 저녁만큼은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일 기분이 아니었다.
갈고리 모양의 의문표 하나가 식도에 걸려 빼낼 수가 없었다. 의문표는 식도를 자꾸만 파고들었다.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다는 민사의 말이 식도에 박힌 물음표 주위에서 뱅뱅 돌았다.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결혼이었지만 민사와 말을 섞고는 결혼과 아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 자신은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 극단적인 이분법은 식도를 파고드는 갈고리와 갈고리에 찍힌 식도였고 형소의 답은 어느 쪽도 아닌 기도에 멈춰서 있었다. 먹지는 못하더라도 우선 숨은 쉬어야 했다. 벽을 기대고 앉아 맥주 캔을 따고 들이켰다. 거푸 캔을 따고 식도에 들이부었지만 갈고리는 빠질 줄을 몰라 했다. 의문표 하나가 식도에 박힌 의문표 옆에서 깐족댔다. 형소 넌 결혼을 안 하는 것이냐? 못 하는 것이냐? 깐족대는 의문표가 식도를 파고드는 의문표보다 더 밉살스러웠다.
그러나 두 의문표는 야릇하게 연결이 되었다. 혼자서 사는 즐거운 삶은 결혼은 안 하는 것이었고, 고통스러운 삶은 결혼을 못 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형소는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다. 그 의미는 형소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창조였다. 맥주 세 캔을 다 마신 형소는 뚜렷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LED 조명빛이 왁자한 밝은 밤이었다. 새벽 네 시에 깬 형소는 가로등만이 비추는 어두운 밤으로 들어섰다. 그 어둠 속에는 민사가 다소곳이 벤치에 앉아 형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소 씨! 헤매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요. 형소 씨 혼자서 씨근대봤자 형소 씨만 힘들뿐이에요. 나 봐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국가와 개인 중 무엇이 중요할까? 개인이 모여 우리가 되고 사회를 이룹니다. 사회는 곧 국가를 형성하지요. 국가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에요. 일차적으로 국가는 개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국가의 간섭은 그 다음 일이지요. 그러니 우선은 형소 씨 자신을 돌보고 사랑해야 되지 않나요? 국가가 개인을 위해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부여해 줄 때 개인은 국가의 통치권에 저항을 하지 않고 국가에 흡수될 수 있어요. 홀로세와 부부세는 개인에게 의무만을 부여하고 권리는 나몰라라 하는 비굴한 짓이지요. 난 그 세법에 순응할 수 없기에 허점을 찾았고 보았어요.
형소 씨가 살아가는 삶은 즐거운 삶일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삶일 수도 있어요.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다르니까요. 때에 따라 감정에 휘말려 결혼을 못 한다, 안 한다, 할 순 없잖아요. 앞날은 자신이 개척하는 것이지요. 결혼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심오한 것이에요. 순간의 감정에 흔들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지요.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미래의 삶은 현재의 삶을 건너야 하는 크고 작은 삶이지요. 아직 다가오지 않는 삶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현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삶이 뿌연 안개 속에서 드러나는 나무와도 같잖아요. 그 나무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나무의 크기는 현재의 삶과 비례된다고 봐요.
형소 씨! 내가 홀로세를 면하기 위해 서류상 결혼신고를 한다고 했지요. 그 상대방이 형소 씨가 될 수도 있어요. 동의만 해준다면 그렇다는 거예요. 형소 씨를 두 번 봤지만 같이 살 만큼의 남자는 안 돼도 서류상 남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하고 결혼할래요.’
헛것을 본 것일까. 생각 속의 민사였지만 느닷없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벤치엔 아무도 없었다. 짙은 어둠이 서서히 옅은 어둠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동쪽 하늘에 동살이 잡혀오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국가는 삽상한 바람을 일으켜야 하고, 따뜻한 햇볕이 잘 들게 해야 하고, 푸른 하늘 맑은 강을 볼 수 있도록 나라 안을 다독여야 한다. 또한 신뢰할 만한 입법과 정책을 내놓아야 하고, 정의로운 집행을 해야 한다. 남녀는 그러한 국가를 반기며 산과 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 따가운 햇볕에 매서운 바람만 몰아치면 개인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 개인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만약 형소가 그 기대에 응한다면 민사와 법적 결혼을 할 것이다.
남용하고 오용하는 법치가 아닌, 대한민국 헌법 제10조가 개울물처럼 차란차란 흘러가는 법치를 소원해 본다. 이틀간의 휴일이 지나갔다.
전쟁과도 같은 월요일이지만, 형소는 컴퓨터를 켜고 할 일을 체크했다. 서두르며 할 일은 없었다. 메일 창을 열고 민사에게 글을 남겼다.
‘계장님! 저와 결혼해주실래요? 홀로세와 부부세를 빙자한 결혼 말고 사랑이 쌓인 결혼요. 사랑하면서 계장님과 늘 함께하고 싶어요.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계장님과 같이 우산을 들고 걷고 싶지는 않습니다. 계장님 손을 잡고 장대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걷고 싶습니다.’
심사평
1. 윤희웅 작가의 <꽝수반점>
오랜만에 시원한 독서를 했다. 소설의 미학은 ‘재미’에 있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잘 읽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편은 성공한 셈이다.
첫 문단에서 “소설은 분명 허구이며,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이 글이 소설인지를 판단해 달라는 너스레를 떤다.
습작 기간이 꽤 오래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호흡이 일정하고 침착하며, 필요 없는 개인적 감정이나 사족이 없이 바로 다음 이야기로 건너뛴다. 그러나 그 행간이 오히려 빛이 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음식점에서의 일이다. “세완에서 면판으로 한 이 년, 면판에서 조리장이 되려면 또 한 이 년이 걸리지. 그리고 요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이런 식의 소소한 디테일과 ‘꽝’과 ‘수’의 만남부터 이별 아닌 이별까지를 쉬운 한글로 침착하게 썼다.
이런 식으로 시치미를 뚝 떼고서 전혀 다른 주제로 쓴 다음 소설이 정말이지 무척 궁금해진다.
2. 손창현 작가의 <꿈>
첫 문장 때문에 끝까지 읽은 작품이다.
혹시 SF로 넘어가는가 싶은 의심을 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문장도 깔끔하고, 작가의 삶에 대한 진정성과 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노숙자, IMF, 새아버지, 무료급식 등의 키워드는 작품을 다 읽기도 전에 낡았다는 합리적 의심에 빠지게 하는 요소였다. 작가는 그것을 꿈을 통한 현실과의 화해로 피했다.
주인공 K씨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인 우리가 아닐까.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몸뚱이밖에는 없었던 K씨는 결국 식물을 몸 안에 심기로 결정”했던 K씨의 여윈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9쪽과 10쪽에서는 장문을 단문으로 바꾸거나, 조사를 조금 바꿔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3. 김해수 작가의 <홀로세(稅) 부부세(稅)>
작가는 하고 싶은 얘기를 첫 문장에서 하고 있다.
“국회는 2025년 새해 벽두부터 ‘홀로세’와 ‘부부세’라는 세법을 제정하고 가결시켰다.”라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보다시피 법정 문제가 나오는데, 남자 주인공 이름은 ‘형소’이고 여주인공 이름은 ‘민사’이다. 형사소송과 민사재판의 세법을 다투는 이야기는 너무 뻔하다.
고심 끝에 수상작으로 올린 이유는, 이 작가의 열정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많은 한문과 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순우리말을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거추없다, 백중사리, 던적스럽다, 시쁘둥, 주렴, 오연한, 헌거로운, 등등. 작가의 나이를 보면 분명히 쉬운 한글로 쓸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은 이야기여야 하고, 쉬운 한글로 써서 독서에 방해를 주지 않아야 독자가 읽을 수 있다. 그런 다음에 비유나 은유가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이나 평론가들도 모두 독자이다.
이런 단점을 넘어서는 작가의 열정과 단단한 문장, 그리고 뚜렷한 주제의식은 칭찬하고 싶다. 주제의식과 작가의 꼿꼿한 열정이 큰 소설을 쓸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문장에서 느껴지는 힘은 노력이나 기술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내면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한지수
첫댓글 <꿈 / 손창현> 이 작품은 취소돼야 하지 않나요?
제16회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2020. 2. 15 ~ 4. 20일 발표 20. 5. 11)에서 '뿌리(根)'라는 제목으로 신인상(본상 백만 원)을 받은 작품이네요.
http://cafe.daum.net/chinaunbag/ScSf/6
이걸 그대로 2020 포천38문학상 공모(20. 5. 1~ 5. 20일 발표 20. 6. 25)에 응모해서 대학부 최우수상(백만 원) 수상
https://moneys.mt.co.kr/news/mwView.php?no=2020062513568084659&outlink=1
그리고 다시 이걸 그대로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응모기간 20. 8. 3일~10. 2일 발표 20. 10. 19일)에 내서 '뿌리(根)'라는 제목으로 가작(사십만 원)을 받았고,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9888
그리고 양심에 찔렸는지 제목을 <꿈>으로 바꿔서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요강(20.12. 31까지 접수)에 응모했군요. 한 작품을 네 군데나 내서 헐~~ 근데... 참, 진짜 배짱 하나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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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대박이네요. 당선작을 읽는데 어디서 읽은 적이 있어서 찾아봤더니 처음엔 경북일보 가작에서 읽었는데 약력에 김장생 신인문학상이 있길래 카페에서 검색해보니 이번엔 거기서도 같은 작품...ㅎ 한 작품을 이렇게 사랑하는 소설가는 처음 봅니다.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1.13 19:4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1.13 20:01
헐! 진짜네요.
같은 작품으로 몇 군 데나 냈다는 말이네요?
날짜가 다 다르네요. 울랄라님 댓글 보니까요.
글 쓰는 분들이 양심을 좀 지키고 살아갔으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김장생 신인상에서 저도 읽고 여기서 또 읽으니 황당 그 자체 입니다.
상금이 중요한 건지 작품활동이 중요한 건지...
상금도 작품도 중요하겠지만 글쓰는 이들은 최소한의 양심은 지켰으면 좋겠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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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점은 포천38문학상은 대학부에서 수상했고, 공군대위로 전역한 게 2017년인데 50세 이상 응모 가능한 글로리시니어는 어떻게 응모했는지 그것도 이상하네요. 더구나 이런 사람이 선관위 공정선거 지원단으로 활동했다고 약력에 넣는 것도 코미디죠.
모르긴해도 사이버대학이나 방송대를 다니고 있지 않을까요? 나이제한없는 늦깎이 대학생인지도.
저작권자이신 작가님께서 소송하신다네요.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황당합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가 안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