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하안의 새벽 출정 소영의 말은 정연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조룡에 관한 한 나에게 맡기시 오." 군호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말했다. "과연 그러하오" "어찌 감히 소대협의 뜻을 거역하겠습니까? 그저 부끄럽기만 하오이다." 상대해는 얼굴을 붉히고 말꼬리를 흐렸다. 마문비는 호탕하게 웃으며 소영에게 말했다. "소대협, 백화산장파를 제외한 무림동도는 한결같이 소대협을 아끼고 존경하는 터인즉 어찌 오 해를 하겠소이까?" 그는 소영이 무림의 영웅임을 다시 강조하고는 다시 군호들에게 말했다. "소대협과 여러 형제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으니 형제 모두 양세(兩世)의 위인(偉人)이라 축 배나 드는 것이 어떻겠소?" 좌중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총타주, 나는 술을 하지 못하오. 핫, 하, 하!" 소영도 즐거웠다. "각자의 주량대로, 그런데 소대협께서 술을 못하시니 안 되었소...... 자, 술상을 차려라!" 이곳은 황량한 곳이었으나 산해의 진미(珍味)가 가득 찬 곳이라 풍요한 술상이 올랐다. 둥근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마문비, 소영, 무위도장, 백리빙, 두구, 신전건곤의 당원기, 삼양신탄의 육괴장, 의형문의 동공성, 남태극문의 석봉선, 거기에 절름발이 협객 상대해, 그리고 당노부인 모 두 열한 사람이 둘러 앉았다. 마문비는 여러 군호들에게 차례로 술잔을 돌리고 나서, "조금 전, 주조룡의 말을 들었으므로 백화산장파의 음모가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며 말머리를 꺼내 놓았다. 심목풍의 거사를 막아 내기 위하여 그들에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 을 세우는 것이 중요했다. 동공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호에서 많은 문파가 이미 심목풍의 독수에 걸려 망하고 말았습니다. 남태극문의 석봉선도 그 중의 한 사람이올시다. 우리는 하루 속히 심목풍의 흉계를 각 문파에 알려 불의의 화를 면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뜻은 어떻습니까?" 동공성은 자기의 뜻을 밝히고 좌중 군호들을 바라 보았다. 이것은 각 문파를 살리는 가장 중요 한 일이라, 누구보다 가슴을 태우고 있는 사람은 마문비였다. "주조룡은 석 달 안에 거사를 할 것이라 했는데 그 안에 무슨 수로 각문파에게 알릴 수 있단 말 이오? 지금 형편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매우 어려울 것 같으니 어찌 하면 좋겠소? 그들의 음모를 알리지 못하면 필시 참화를 면치 못할 것이오." 군호들로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석봉선이,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수수방관하고 있을 순 없소. 각자 임무를 나누어 맡는 것이 어떻 겠소?" 석봉선이 심목풍의 흉계를 각 문파에 알리는 일을 여러 사람이 갈라서 맡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무위도장의 생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강호의 각 문파들은 거의 심목풍에게 짓눌려 숨도 크게 못 쉬고 그의 명 령에 따르고 있는 형편이라 그들은 불이 발등에 떨어지기 전에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며, 또 우리 가 심목풍의 흉계를 알려 준다 해도 곧이 듣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문비의 생각도 이와 같았다. 지금 강호에 흩어져 있는 각 문파는 뿔뿔이 갈라 서서 일관된 지 조를 잃고 있었다. 무위도장의 생각으로는, 심목풍의 흉계를 그들에게 알리는 것보다 그들의 무절제함이 더욱 걱정 이 되었다. "강호에 변갈이 일어날 때마다. 그 원인은 모두 각 문파의 절제없는 난립에 있었소. 만약 몇몇 문파가 좀 일찍, 힘을 합쳐 정의신장(正義伸張)을 하였던들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이며 심목풍의 세력도 이렇게 팽배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하며 장탄식을 했다. "강호의 각 문파가 정립하며 형세의 귀추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일을 빚어 내게 했다는 마총타주의 말씀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지나간 이야기를 되풀이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두가 우리 불찰에서 온 소치이니, 앞으로는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소대협께서 심목풍에 항거했던 사실이 강호에 알려졌 습니다. 대부분의 무림동도들이 소대협을 존경하고 있으니 심목풍의 음모를 소대협의 이름으로 각 문파 장문인에게 상세한 서장(書狀)을 전하여 알리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서장의 전사(專使)가 직접 장문인을 만나 다시 자세한 내정(內情)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첩자의 암약도 미리 막아 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문비도 이 생각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오... 소대협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좋은 의견이오마는 내 성망(聲望)이 미급(未及)하니 혹시 무림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렵 소." 그러자 무위도장이 나서서 소영을 추켜세웠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게 없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무림에서 소대협의 명망은 마치 중천 의 해와 같은 것이오." 그는 소영에게 서장의 전사를 누구로 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물었다. "무위도장의 의견이 정 그렇다면 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겠소." 도장은 좌중을 향해 말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 나의 목필이 가히 흉하지 않다고 하신다면 내 곧 서장을 써 볼까 하오. 연 후 소대협께서 필명(筆名)을 하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마문비와 소영, 그리고 여러 군호들은 무위도장에게 서장의 작성을 일임했다. "잠깐만, 내 한 가지 의논할 일이 있소." 여러 사람들은 무위도장으로부터 소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심목풍은 그 재기가 뛰어나 일대의 효웅이기는 하나, 그 용맹함에 못지 않게 간악하기가 비길 데 없소. 그는 십만하산(十萬河山)에 첩자를 밀파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강호의 각 문파 내에 일 단 싸움을 벌였을 때 내응할 밀정을 두었으니 그는 이불 속에 누워 있어도 우리들의 일거 일동을 거울을 들여다 보듯 휜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문비는 걸상에서 일어나 어둠 속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우리의 비밀이 백화산장으로 흘러 들어 간 것은 사실이오. 그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입 은 화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만일 심목풍의 이목이 되고 있는 첩자들의 명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이로움이 어디 있 겠습니까? 심목풍의 귀와 눈을 없애 버리면 백화산장은 자연 괴멸될 것이 아니겠소? 그러나 그 명단은 심목풍이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소?" "우매한 생각이나마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떤 방법입니까? 여러 사람들은 소영에게 시선을 모았다. "다름이 아니라, 백화산장파를 닥치는대로 죽이는 것입니다.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은 한 놈도 남 기지 말고 말입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그놈들을 모조리 죽여 없앤다?" "그런데 피를 보고 피를 흘리게 되면 살기 위해서 심목풍을 배반하는 놈이 있을 것이오. 우선 그와 같은 놈들을 찾는 것이오. 자기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백화산장의 비밀을 가지고 우리에게 투항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 놈이 많을수록 우리에게 유리하오." 술자리를 벌인 끝이라 거나하게 취해 있던 군호들은 귀가 번쩍했다. 마문비는 무릎을 쳤다. "그것 참 좋은 방법이오. 내 여러 가지 궁리를 해 보았으나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소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밖에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오." "선후책을 숙의하여 즉시 행동으로 옮깁시다." "암, 주저할 때가 아니고 말고!" 군호들은 저마다 찬성의 뜻을 표했다. 소영은 계속했다. "우리가 전력을 다한다면, 심목풍의 조직을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취소한 백화산 장의 세력을 지금의 반 이하로 꺾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방법이긴 하오마는, 심목풍이 그 중과 만난 뒤 그들의 계획을 앞질러 실행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오? 석달이라는 여유는 그 중을 만나기 이전의 계획인 줄로 알고 있 소." 상대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심목풍이 손가락이 하나 없다는 그 중과 만나면 그들의 계획이 달 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계획이 변경되면 시일이 앞당겨지는 것이다. 마문비가 무위도장에게 말하며 서장을 쓰도록 했다. "도장께서 속히 서장을 작성하여 날이 새기 전에 각 문파에 전사를 보내야 하오." 그런데 소영이 또 입을 열었다. "무당 장문인께서는 문장에 조예가 깊어, 그 달필은 가히 각 문파의 장문인으로 하여금 서장의 내용을 믿게 할 것은 틀림 없으나 시일은 임박한데 갈 길이 머니, 때를 맞추지 못한다면 모두가 허사로 돌아 가게 되오. 전사가 도착하기 전에 각 문파가 심목풍의 간계에 걸려 든다면, 우리 십 대 고수가 죽었다 깨어나는 재주를 부려도 그들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오." 소영은 서장을 가지고 가는 전사가 중도에서 변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각 문파에 도착할 수 있 는 방법을 마문비와 의논했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군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을 택하여 백화산장으로 보내어 심목풍과 싸우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동도가 심목풍을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전사가 무사 히 도착할 수 있을 때까지 그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총타주의 의견은 어떻습니 까?" "소대협의 호담한 성품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나 나의 생각으로는 아직은 그 시기가 이르다고 생 각하오. 우리에게 백화산장파와 정면 대적할 힘이 아직은 없는 것으로 생각되오." "아니오. 그것은 마총타주께서 모르는 말씀이오. 백화산장에서 지금 장사(張沙)에 와 있는 자들 은, 열을 갖다 놓아도 우리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하는 무력한(無力漢)들이니 일심합력으로 힘을 기 울이면 반드시 그놈들을 몰살시킬 수 있소." 마문비는 조심성이 많고 계획이 치밀한 데 비해 소영은 적극적인 행동을 주장했다. 그런데 석봉 선이 또, "만약 심목풍 자신이 장사에 와 있을 경우를 생각해 보았소?" 하며 신중론을 펴는 마문비에 가세하였다. 석봉선은 마문비와는 달리 심목풍에 겁이 났던 것이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곧 비겁한이다. 소영은 그것이 못마땅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심목풍이 강호에서 오늘날과 같은 세력을 백리 밖까지 펴게 된 것은 그의 지 력과 무공이 뛰어나다는 데도 원인이 있겠으나 전적으로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그는 각처 와 각문에 밀정을 배치하여 귀와 눈을 밝히는 손과 발로 썼으며, 묘약(妙藥)을 이용하여 수하들을 짐승부리듯 하며 기반을 굳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목풍이 악랄하게 세력을 뻗게 된 큰 원인 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무림동지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고 심목풍의 심자만 들어도 겁부터 집어 먹으니 실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영은 석봉선과 여러 군호들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즉. 결과적으로 본다면 우리 무림 동지들이 백화산장파의 힘을 길러 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심목풍이 우리에게 대비하여 모든 태세를 마칠 때까지 우리 무림의 손을 쓰지 않고 그저 방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영의 음성은 점점 열을 띠어 마치 훈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미 형세가 결정된 이 마당에 무림의 정기로서 싸워 죽거나, 잡혀 죽거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소영의 말은 군호들의 투지를 불러일으켰으며, 메마른 황야에 단비를 내린 것과 같았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장사의 출전을 맹세하고 나섰다. "소대협께선 어떻게 하시렵니까? 우리는 모두 대협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각오가 섰으면 싸움이 끝날 때까지 투지를 굽히지 말기 바랍니다." "그럼 준비를 어떻게......?" 마문비가 행동을 개시할 자세한 계획을 물었다. "백운판에는 아직도 한 패의 심목풍의 부하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강호에 배치해 놓은 그 의 밀정망(密偵網)부터 두드려 부수어야 할 것이니, 무위도장과 나는 장사에 펼쳐 놓은 백화산장 파를 제거할 작정입니다. 장사에는 그밖에 두 곳의 거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백운관이고, 또 하나 는 칠택다원(七澤茶園)입니다. 이것이 첫째, 공격 목표입니다. 우리는 이 거점들을 분쇄한 연후에 백운산장의 본거지를 습격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의 대사가 성공하여 심목풍을 죽이든가 쫓아 버리면 강호는 다시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좋소. 즉시 행동을 개시합시다." 마문비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 자, 출진을!" 군호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소영이 이를 막고 나섰다. "여러분이 모두 다 갈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동지 다섯 사람과 갈 터이니 마총타주께서는 이곳 에 남아 후진을 지키는 게 좋겠소." 다섯 사람의 행동자로 누구를 뽑느냐? 처음에는 모두 가겠노라 우르르 나섰으나 막상 인원이 다 섯 사람으로 한정되자 아무도 성큼 나서지를 않았다. 소영은 답답하여 백리빙과 두구, 마문비에게 우선 두 사람만 추천해 보도록 이야기를 하는데 당노부인이 앞으로 나왔다. "이 늙은 몸이 따르고 싶소. 무림을 위해서 미약한 힘이나마 바쳐 속죄하고 싶으니 소대협께서 내 청을 받아 들여 주기 바라오." 소영은 웃으며 노부인을 달래듯이 말했다. "당치도 않는 말씀을. 이번 출진은 적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야음 기습을 가하는 것이 니, 당노부인께서는 이번 일이 성취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에 금화부 인이 반드시 심목풍의 해약(解藥)을 훔쳐 올 것이니, 노부인께서는 몸의 기독(奇毒)을 풀어 내신 다음, 마지막 결전을 할때 같이 싸우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소영이 당노부인의 동행을 만류하고 있는데 그 때까지도 사람을 선출하지 못한 마문비가 물었 다. "소대협까지 모두 다섯 사람이면 족하겠소?" "모두 다섯이면 족합니다. 독(毒)엔 독으로 맞서야 하니까요." "신전건곤 당원기와 삼양신탄 육괴장은 각자 절기(絶技)가 있으니 소대협을 동행하면 많은 힘이 되리라 믿소." "그러나 당형과 육형께서 나와 동행하기를 원하겠는지요?" 소영이 당원기와 육괴장을 바라 보자, 두 사람은 일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대협께서 우리들의 동행을 응낙하여 주신다면 다시 없는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마총타주의 뜻이 그렇고 두 분께서 나와의 동행을 원하니 지금 곧 떠나도록 합시다." "네, 그럼 제가 도강(渡江)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하며 당원기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럼, 우리도 곧 떠나야 하겠소." 소영은 마총타주 이하 여러 군호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백리빙과 두구, 육괴장 등을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문비의 뒤를 따라 나온 여러 사람들은 저마다 장도에 오르는 이들의 성 공을 빌었다. "소대협, 몸조심하시오." "무운을 빕니다." 여러 군호들은 이들을 전송하며 애석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맙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들 가십시오." 소대협 일행이 강기슭에 이르니 당원기가 이미 배 한 척을 강둑에 대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배 위에 오른 소영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금 이미 사경(四更)이 지났으니 새벽녘에야 백운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오." 하며 먼 노정을 걱정했다. 야음 기습은 칠흑같은 밤을 택해야 한다. 날이 밝으면 중과부적이라 도저히 적과 정면으로 싸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육괴장은 기왕에 때가 늦을 바에는 하루를 더 연장하여 다음날 밤에 기습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고 소영에게 물었다. "그러니 우선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 피로도 풀겸 다음날 밤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떻소?" 소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과히 걱정 마시오. 심야암중(深夜暗中)이 아니라도 날이 새기 전에 기습을 가하면 되는 것이오. 적들이 곤히 잠들고 있을 때라 오히려 새벽이 더 좋소." "새벽 기습은 사전에 탄로될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소대협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원기가 물었다. "복면을 하면 그들의 눈을 가릴 수 있소." 배 위에서 이런 말이 오고 가는 동안 배는 어느새 강기슭에 다다랐다. 소대협 일행은 백운관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어둠을 헤치고 달리는 이들의 몸은 마치 나는 화살과도 같아, 날이 새기 전 에 백운관을 바라 보는 언덕받이에 이르렀다. 소영이 사방을 돌아 보고 형세를 살핀 다음 나직이 말했다. 저 동북쪽에 있는 과원(跨院)이 백화산장파들이 거처하는 곳이오. 지금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지 는 잘 알 수 없으나......" 그리고 당원기와 육괴장에게 지시했다. "두 분께서는 저 과원지붕 위로 올라가 숨으시오. 그리고 반드시 암기(暗奇)를 쓰시오." 당원기와 육괴장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소영은 다시 두구와 백리빙에게 말했다. "두형과 빙아, 우리 세 사람은 복면을 하고 과원을 습격하여 닥치는대로 죽이는 거요. 빙아, 알 겠지?" 백리빙은 지금까지 소영의 곁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따라 다녔다. 죽거나 살거나 그것은 생 각 밖의 일이었다. 백리빙은 검은 보자기를 꺼내어 복면을 했다. 샛별같은 눈이 반짝거렸다. "그럼, 오빠께서 위주선공(爲主先攻)하십시오. 우리 두 사람은 위보상조(爲輔相助)할 터이니..... 이 생각이 어때요, 오빠?" 소영은 백리빙이 용기백배한 모습을 보고 그녀를 치켜주기로 했다. "이번에 네가 위주선공해 보아라. 자신이 있느냐?" 소영의 말이 떨어지자, 백리빙은 대답 대신 장검을 쑥 뽑아 들고 두구에게 말했다. "우선 과원으로 쳐들어 갑시다." 두구는 철필(鐵筆)과 은권(銀圈)을 꺼내 들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가 복면 변장을 해도 이 철필과 은권을 보면 내가 누구인지 다 알 수 있을 걸." "왜? 겁이 납니까?" "천만의 말씀." 두구는 과원을 향해 바람과 같이 치달렸다. 이어 백리빙이 뒤따랐다. 그 뒤를 소영이 쫓았다. 먼동이 트기 시작할 무럽, 세 개의 그림자는 과원으로 들어 섰다. 찰나, 검은 그림자가 앞을 막 았다. 건장한 체구의 경장 무사였다. 이때 돌연 활시위 소리가 울리더니 한 개의 화살이 바람을 뚫고 날아 왔다. 그 화살은 흑의의 사나이의 미간을 꿰뚫고, 과원 기둥에 박혔다. 순간, 과원의 왼쪽 방문이 덜컥 열리며 작딸막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세 사람은 은행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빙아, 저 늙은이가 바로 신삼괴란 자다. 무예가 절륜하니 조심해야 한다." 소영은 단단히 일렀다. 이때 또 시위소리가 나더니, 과원 지붕에서 화살이 날아 갔다. 화살은 신삼괴의 목을 겨누었으 나. 일순 그 화살은 신삼괴의 오른손에 잡혀 있었다. 이 화살은 과원 지붕 위에 숨어 있던 당원기가 쏜 것인데, 그의 궁술은 천하가 다 아는 것으로 시위를 당기는 팔힘이 워낙 강한지라, 한 번 겨냥을 받으면 살아나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이 무슨 괴변인가. 신삼괴는 자기의 목을 정통으로 겨누고 날아 오는 화살을 마치 바람 에 날려 오는 나뭇잎을 잡듯이 거뜬하게 한 손으로 받아 낸 것이다. 이때 백리빙과 두구는 은행나무 뒤에서 몸을 드러내고 신삼괴 앞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 화살을 받아 든 신삼괴는 형형한 안광으로 백리빙과 두구를 번갈아 훑어 보았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백리빙에게 말했다. "감히 이 과원에 들어 올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어찌 복면을 하고 왔소?" 신삼괴의 말이 과원에 퍼지니 이 방 저 방의 방문들이 열리며, 저마다 무기를 손에 잡은 팔, 구 명의 거한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그들 가운데는 공상(孔湘)의 얼굴도 보였다. 소영은 신삼괴와 공상이 아직 과원에 있는 것으로 보아 백화산장파는 주조룡이 당한 일을 까마 득히 모르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이때 두구가 소리쳤다. "과원의 여러분들!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고 살 길을 택하시오. 여러분들의 살 길은 무기를 버리 고 백화산장의 노예로부터 몸을 빼는 일이오. 만약 이 두구의 말을 듣지 않으면 피를 뿌리고 죽 게 될 것이오." 지붕 위에 숨어 있던 두구가 나타나자 신삼괴는 두구에게 말했다. "노인장이 바로 중주이고(中州二賈) 중의 두노이(杜老二)시오?" "그러하오. 이분이 바로 두노이시오." 백리빙이 대답했다. 해가 뜨기 전의 미명이라 더욱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를 눈으로 가리기는 어려운 것을 신삼괴는 백화의 정기로 알아 내는 것이었다. 더욱 백리빙의 음성을 듣고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신삼괴는 백리빙의 정체를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당신의 목을 가지러 온 사람이오." 백리빙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손을 휘둘렀다. 두 개의 한빙침(寒氷針)이 전광처럼 펼쳐 나갔 다. 그러자 신삼괴는 내력(內力)을 모아 백리빙의 독침을 내리 쳐서 땅에 떨어뜨렸다. 소영이 형세를 바라 보니 적은 이미 사방을 둘러 싸고 포위진을 좁혀드는 것이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우리의 뜻을 펴지도 못할 뿐더러 만약의 경우 적중을 빠져 나가기가 매우 힘 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우선 앞장 선 한, 두 놈의 적을 죽여 포위진을 무너뜨리려 했다. 소영이 오른손을 들어 두 번 손가락을 튕기니 두 줄기의 세찬 바람이 일어났다. 소림파의 탄지 신공이었다. 경풍이 일어나자 포위한 정면 좌우 양쪽에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리며 거구의 두 사나이가 쓰 러졌다. 적의 진세(陣勢)를 꺾으려고 이 두 사나이의 치명혈도(致命穴道)를 때린 것이었다. 소영의 소림파 탄지신공을 본 신삼괴는 그 비범한 초술(招術)에 놀라 공상에게 말했다. "공형, 맨 뒤에 있는 소년이 무기(武技)가 제일 가는 모양인데, 우리는 합력하여 그자부터 처치 합시다. 그 탄지신공은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소." 신삼괴는 소영을 살려 두는 한 과원의 승산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연거푸 손을 휘두 르며 공상과 합세하여 소영에게 다가갔다. 한편 과원 앞뜰에서는 육, 칠 명의 백화산장파가 서릿발같은 장검을 휘두르며 백리빙과 두구에 게 덤벼들었다. 백리빙의 한빙침과 두구의 은권, 철필이 일곱 자루의 칼과 뒤엉켜 싸우고 있을 때 공상은 연자 창(練子槍)을 휘두르며 소영에게 덤벼들었다. 연자창은 외문(外門)의 무기라 그 창의 길이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것이 자유자재로 되었다. 그러나 소영은 여전히 맨손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무기를 꺼내거나 자리를 옮기는 일이 없 었다. 연자창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홍안의 풋나기에게 조롱당한 공상은 화가 치밀었다. "이 건방진 놈!" 공상은 연자창에 내력을 배가하여 다시 소영에게 덤벼들었다. 소영은 공상의 창술이 어떻다는 것을 대개 짐작하고 있었다. 공상의 창끝이 가슴을 겨누고 날아 들자 그는 날쌔게 몸을 옆으로 피하여 왼손으로 창을 쳐 내렸다. 그는 천년교피장갑을 끼고 있었으므로 제아무리 예리한 창끝이 나 칼날도 쉽게 막아 낼 수 있었다. 공상은 수십 년 동안 강호에 살아 오며 가지가지의 싸움을 치러 결코 진 적이 없는 터였으나 이 번처럼 담이 큰 적수는 만나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공상은 연자창을 휘둘러 다시 찔러 들어 갔 다. 그러나 찔러 오는 공상의 창끝보다 소영의 손이 더 빨랐다. 천년교피를 낀 그의 왼손이 가볍게 움직이자 공상의 창끝은 소영에게 잡히고 말았다. 첫 번째는 창을 쳐 내렸으나 두 번째는 창을 잡아 챈 것이다. 그러나 공상도 만만치 않은 창술의 명인인지라 한두 차례의 경합으로 기가 꺾이지는 않았다. "네가 철사(鐵沙)장갑을 끼고 기공(氣功)을 부린다 해도, 이 연자창의 창날은 당해 내지 못할 것 이다." 공상은 소영에게 잡힌 창을 힘껏 뒤로 잡아 챘다. 소영이 두 팔에 힘을 주어 버티자, 공상은 마 침내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소영이 창대를 움켜 쥔 채 땅 위에 쓰러져 있는 공상을 바라 보고 있는데. 돌연 신삼괴가 비호 처럼 덤벼들었다. 그것은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나꾸어 채듯, 소영을 덮치며 오른손을 펼쳐 태 산압정(泰山壓頂)의 일격을 가했다. 소영은 왼손으로 공상의 창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신삼괴의 초술을 맞받 아 쳐 냈다. 소영의 손이 마주 부딪치며 딱! 하는 소리가 나자, 허공에 튕겨졌던 신삼괴의 몸이 한 바퀴 빙글 돌고는 다섯 자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신삼괴는 공중에 몸이 떠올랐을 때 장풍을 쳐 날렸기 때문에 소영도 한 발 뒤로 밀려났다. 신삼 괴의 장력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공상은 소영에게 잡힌 연자창을 힘껏 잡아챘다. 한 발 뒤로 물러 선 소영이 그 기미를 알고 쥐었던 창끝을 갑자기 놓자 공상은 제 힘에 밀려 비 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 화가 치민 신삼괴가 소영에게 외켰다. "무림도상에는 오늘날까지 나의 장풍을 받아 낸 사람은 거의 없었거늘 소공이 끝내 허리를 굽히 지 않는다면 당장에....." 신삼괴가 왼손을 번쩍 들자, "알아 모시겠습니다." 소영은 이 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 좌우쌍장(左右雙掌)을 연달아 펴 냈다. 신삼괴도 온 힘을 다 하여 두 손을 휘두르며 소영의 장풍을 맞받아 쳤다. 소영의 장법이 번개같아 첫장을 겨우 받아 낸 신삼괴는 팔장으로 그를 맞받아 쌍장의 팔초환장 (八招環掌)이 세찬 바람을 일으켰다. 신삼괴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 내렸다. "귀공의 초술이 비범하오. 나의 연환팔장을 받아 내다니 매우 훌륭한 솜씨요." 소영이 신삼괴를 조소하듯 말하고 다시 그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쳐 냈다. 신삼괴는 제 일장을 받으면 제 이장을 또 쳐 낼 터인즉, 제 이장부터는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몸을 비켜 첫장을 피했다. 신삼괴에게는 그 이상 더 받아칠 힘이 없었고 그것은 소영이 알고 있었다. "어떻소. 신공! 앞으로 나서시오." "당신은 누구요. 이름을 밝히시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소." 소영은 패색이 완연한 신삼괴에게 개과천선할 것을 권했다.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 내가 누구이건 나는 당신에게 한 번 기회를 주겠소. 이 기회는 당신 이 백화산장에서 떠나는 기회요. 지금 백운관은 장사에 모여든 천하고수들에게 둘러 싸여 있소. 당신의 무예가 너무 아까와 당신에게 살아날 수 있는 길을 한 번 더 줄 터이니 곧 백화산장에서 발을 빼시오. 그후의 목숨은 내가 보장하겠소." 신삼괴는 소영의 권유를 일소에 붙였다. "심대장주께서 원래 덕망이 높으시고 마음이 어지시어 함부로 죽이지 아니하며, 너희들에게 이 렇게 화평한 세월을 누리게 한 것은 오로지 너희가 모든 것을 뉘우치고 대세를 정시하여 백화산 장으로 돌아 올 여유를 주려 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대장주의 대은을 저버리고 반기를 들다 니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만약 심대장주께서 백운관의 난동을 아신다면 크게 노하시어 석 달이라는 당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닷새 안에 대변(大變)을 일으켜, 강호의 각 문파를 전멸시킬 것 이며 따라서 너희들 시체를 묻을 곳도 없어질 것이다." 오히려 소영에게 백화산장에 투항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허풍에 마음이 동할 소영이 아 니었다. "당신은 과연 호담한 사람이오. 함부로 당신네들 장주의 이름을 팔다니. 심목풍은 아직 무림에 변란을 일으키겠노라 자신의 입으로 말한 바가 없거늘 어찌 그와 같은 망언을 함부로 하오?" 소영이 자기의 속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음을 알게 되자, 다시 눈살을 지푸리며 딴전을 부렸다.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소영과 신삼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계속되고 있었 다. 칼과 칼이 부딪쳐서 불꽃이 튀겨졌고 피가 마당에 얼룩졌다. "으악!" 흑의경장의 한 거한이 백리빙의 칼에 맞아 쓰러졌다. 한편 신삼괴의 도움으로 소영과의 대결에서 물러난 공상은 자기의 수하들을 종횡무진으로 무찌 르는 백리빙의 초술을 보고 혀를 찼다. '이래선 전멸하겠다. 내가 직접!' 이렇게 생각한 공상은 연자창을 휘두르며 달려 들었다. 백리빙과 두구 모두 무서운 적이었으나 자기의 창술에 자신이 있었는지라, 맨처음 백리빙을 가 슴을 겨누어 일격을 가했다. 백리빙은 장검으로 연자창을 막아 내긴 했으나, 신기(神技)와 같은 창술(槍術)에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백리빙과 두구가 여러 수하들과 합세하여 쳐들어 오는 공상과 싸우고 있는 것을 바라 보던 소영 은 공상의 창술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터이니 그 사이에 신삼괴부터 먼 저 처치하기로 결심했다. 소영은 한 발 두 발 앞으로 다가 서며 신삼괴에게 말했다. "내 이미 말로 귀공을 타일러 봤으나 끝내 듣지 아니하니, 자기의 무덤을 스스로 파려는 자와는 이야기하기 싫소. 당장에 황천으로 보내 주겠소." 신삼괴는 뒤로 물러섰다. "당신은 누구요? 이름을 말하시오." "원이라면 가르쳐 주마. 나는 소영이다." "뭐! 소영!" "그렇다. 어서 나서라!" "소영? 음, 알았다. 싸우고 싶다면 싸워 주겠다. 그러나 장권(掌券)에선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이 번에 장력으로 겨룸이 어떤가?" "좋다." 소영은 몸을 날려 일장을 내 쳤다. 신삼괴가 재빨리 이를 받아, 쌍방은 거센 바람을 날리며 숨막 히는 대결을 전개했다. 소영은 내력을 발휘하여 단숨에 연 이십 초를 쳐 냈다. 그러나 이것은 빙 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그의 전력은 무한한 것이었다. 신삼괴는 오래 전부터 소영의 위명을 알고 있었는지라, 사력을 다하였다. 이번 싸움에서 죽어도 억울하려니와 살아서 패자가 되어도 고수의 명예가 꺾이는 것이라, 되도록 오래 끌어 무승부로 끝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공격을 포기하고 수세에서 몸을 보호하며 마지못할 경우에만 소영의 장력을 맞받아 쳤 을 뿐 되도록 장력을 피해다녔다. 쌍방은 순식간에 오십여 초를 쳐 냈다. 소영의 기개는 마치 요원의 불길과 같아 숨돌릴 사이를 주지 않고 연이어 장을 쳐 내었다. "신삼괴! 조심하라!" 왼손으로 천외내운(天外來雲)의 일격을 내려 치며,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퉁겨서 탄지 (彈指)를 퍼부었다. 이 탄지의 지풍이 신삼괴의 오른쪽 팔꿈치에 명중했다. "핫!" 신삼괴는 연달아 쳐들어 오는 소영의 장세를 막으려 오른팔을 올린 순간 소영의 지풍이 명증된 것이다. 그는 팔꿈치가 저려 올렸던 팔을 힘없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소영의 탄지신공은 소림칠십이절기(少林七十二絶技) 중의 하나인만큼, 그 공력을 연마하면 허공 을 가르거나, 혈도를 막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는 팔꿈치가 으스러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한쪽 팔을 못 쓰는 신삼괴는 소영의 장풍 을 피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펑!" 또다시 소영의 장풍이 신삼괴의 왼쪽 어깨를 명중시켰다. "윽!" 신삼괴는 짤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서 몇 발자국 뒤로 비틀거 리며 물러섰다. 이번에 쳐 낸 장풍은 대단한 것이어서, 단 일격에 그의 왼쪽 어깨를 부수어 버린 것이었다. 이때 소영이 연공을 가한다면 그의 목을 끊을 수 있었으나 그는 잠시 장세를 늦추고 신삼괴에게 말을 던졌다. "신삼괴! 숨돌릴 기회를 주겠다. 잠시 쉬어라." 신삼괴는 왼쪽 어깨뼈가 부스러지고 오른쪽 팔꿈치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즉시 손을 쓰고 영 약을 먹는다 해도 한 달 안에는 싸움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공력이 범상치 않 은 위인이라 진기를 모으더니 돌연 몸을 날려 두 길 가량 뛰어 지붕 위로 올랐다. 그가 지붕 위 로 몸을 피하자 이미 활시위소리가 울리며 화살이 바람을 끊었다. 화살을 피한 신삼괴는 발끝으로 지붕을 차자 다시 몸을 날려 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두 번째의 화살이 뒤쫓았으나 퍽! 하고 기왓장에 박히고 말았다. 소영은 신삼괴가 도망치는 것을 쫓지 않았다. 이때 두 개의 그림자가 과원 마당으로 뛰어 내렸다. 당원기와 육괴장이었다. 한편 공상은 여러 수하들과 합세하여 백리빙과 두구를 몰아 세우고 있었으나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아 초조한 가운데 새로운 공세를 취하려는데, 소영에게 쫓긴 신삼괴가 지붕으로 날아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공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과원의 제일 고수가 소영과의 싸움에 역불급(力不及)으로 도망을 쳤고 그 위에 두 사람의 적수 가 새로 나타났으니 더 이상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당에 뛰어 내린 당원기와 육괴장은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고 백리빙과 두구에게 달려 갔다. 그러자 등뒤에서 소영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두 분께선 수고 안하셔도 염려 없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펑!" 소리와 함께 백리빙에게 덤비려던 건장한 사나이가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어 두구의 철필 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소영의 지풍이 연달아 쳐 나가고, 또 백리빙의 장건과 두구의 철필, 은권이 그들을 둘러 싼 흑의 의 경장들을 모두 쓰러뜨려 이제 남은건 연자창을 휘두르는 공상뿐이었다. 공상이 마당 한구석에 몰려 발악을 하는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은 소영이 비호처럼 몸을 날려 왼손으로 연자창을 나꿔채면서, 껑충 뛰어 공상의 턱을 힘껏 걷어 찼다. 공상은 썩은 기둥 넘어지듯 쿵! 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신삼괴가 너보다 못하여 도망갔느냐? 아직도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겠느냐?" 소영이 그를 죽이지 않으니 공상은 감격해 마지 않았다. 과원의 사람 가운데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자기 혼자뿐 신삼괴는 도망치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소대협, 이렇듯 죄 많은 사람을 용서하여 주시니 이 은혜에 어찌 보답하오리까? 그리고 소인 무슨 염치로 강호에 다시 얼굴을 내놓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그는 품에서 비수를 꺼내 들고 가슴을 찌르려 했다. 비수를 본 소영이 재빨리 오른 손을 들어 손가락을 퉁기니 비수는 떨어지고 말았다. "공형께서 이미 잘못을 뉘우치셨는데 무엇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시오? 천하엔 산고수 려한 명소가 많으니 공형께서는 조용한 곳을 찾아 여생을 편안히 보내는 것이 어떠하오?" 소영은 공상의 동정을 살피며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공형께서 새사람이 되어 강호에서 함께 살고 싶다면, 내가 천하의 호걸들에게 공형을 반겨 주 도록 힘을 써 보겠소." 소영의 말을 들은 공상, 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천만 감사한 말씀이오. 그러나 여명을 부지한들 며칠 가지 못할 것이오." "기어코 죽겠단 말이오?" "그게 아니오. 실은 칠 일 후가 되면 기독(奇毒)이 온 몸에 퍼져 경맥이 뒤틀려 죽게 되오." "다시 백화산장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소?" 공상은 고개를 저었다. "소생 이미 심목풍의 극악무도함을 알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그리고는 침통한 표정으로 소영을 바라 보았다. "소생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 소대협의 후은에 보답치 못하는 것이 여한이오." 그는 한 손을 들어 천령요혈(天靈要穴)을 쳐서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소영의 무공으로는 이와 같은 자결을 미리 막아 목숨을 건져 줄 수도 있었으나, 공상 자신이 죄 를 뉘우쳐 죽기를 원했고 또 기독의 발작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가 깨끗하게 죽는 것을 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원수도 없고 동지도 없는 법이다. 공상의 죽은 모습을 바라 보던 두구가 소영에게 말했다. "큰형님, 이 과원의 사람들은 모두 백화산장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심목풍의 부하가 되었으니, 그들의 시체를 묻어 주는 것이 어떻겠소?" "그리 하오. 그럼 두 분께서 묘중도사(廟中道士)에게 금 한 덩어리를 주고 그들의 시체를 묻어 주도록 부탁하시오. 우리는 묘문(廟門) 밖에서 기다리겠소." 소영이 백리빙을 데리고 묘문에 이르니 두구는 일을 마치고 벌써 와 있었다. 당원기가 물었다. "소대협, 앞으로 남은 일은 무엇이오?" "칠택다원이오. 그러나 그곳은 경계가 엄하니, 적당한 곳을 찾아 숨어서 좀 쉬다가 밤이 오길 기 다려 야습을 하는 것이 상책이오." 칠택다원에 이른 것은 삼경에 가까울 무렵이었다. 그러나 다원 문앞에 가 보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문 위에 팻말이 하나 붙어 있었다. 그 팻말에는 잠정영업(暫停營業)이라는 네 글자가 씌어 있었다. 소영은 담을 타고 넘어 갔다. 백리빙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라곤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알아 차리고 몸을 피했는가? 방을 모두 뒤져 봐도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칠택다원을 빠져 나왔다. 이 다원은 심목풍이 장사에 배치해 놓은 밀정의 소굴인데 어찌된 일인지 개미새끼 하나 눈에 띄 지 않았다. 이 다원 이외에 몇 군데 있기는 한데, 그곳이 어디 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이때 당원기가 과원을 괴멸시킨 것만도 큰 성공이니 돌아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 마총타주께서 걱정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돌아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오. 소대협 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럼 우리 곧 돌아 가도록 합시다." 소영은 이때 갑자기 상팔의 생각이 나 두구에게 물었다. "두형, 상형께서는 지금 수중사주(水中沙州)로 갔겠지요?" "아마 안 갔을 겁니다." "어째서?" "상형은 큰형님을 위해 물건을 지키고 있소." "물건을 지킨다? 그 상자 말이오?" "네, 그 상자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였소." "그럼 상형은 아직도 그곳에 계신단 말이오?" "아니오 그는 벌써 그곳을 떠났소." 소영은 당원기와 육괴장에게 곧 수중사주로 돌아 갈 것을 당부했다. "당형과 육형은 먼저 가시오. 나는 오늘 저녁 아니면 내일 저녁에 돌아가겠소." 당원기와 육괴장은 포권을 하고 허리를 굽힌 뒤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원기와 육괴장이 돌아간 다음 두구에게 물었다. "상형이 있는 데가 어디오?" "네, 제가 길을 안내 하겠소." 소영과 백리빙이 두구의 뒤를 따랐다.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햘설 시인님의 좋은글 "[와룡생] 금검지 159"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웃음과 행복으로 힘차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