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코린 15,20-27ㄱ; 루카 1,39-56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승천과는 다른데요, 예수님의 승천은 라틴어로 ascentio 라고 하며 능동적 의미인데 비해, 성모님의 승천은 assumptio 라고 하며 수동적 의미를 지닙니다. 들어 올림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입을 몽’, ‘부를 소’ 즉 부르심을 입으셔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의미입니다. 잘못 발음해서 ‘몸소승천’이라고 하면 정반대의 뜻이 됩니다.
성모승천 교의는 1950년에 반포되었는데, 어떤 분들은 이 교의를 반포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공연히 개신교인들과 논쟁거리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모승천에 대한 전승은 20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4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기도문(Sub tuum praesidium)에 이미 암시되어 있습니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라는 기도인데요, 지금은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로 이 기도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성모님은 하늘에 들어 올림 받으셔서 하늘에 계시다는 믿음이 확고히 자리하고 있었고, 동방교회에는 성모님의 임종을 사도들이 지켰는데, 3일 뒤에 승천하시는 성모님의 허리띠를 토마스 사도가 받았고, 이어서 다른 사도들이 성모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님의 무류성 교의가 반포되어 논란이 많았는데, 이는 ‘교황이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고수해야 할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 그의 임무에 의하여 교도권의 무류성을 지닌다’는 원칙으로, 무류성이 적용된 유일한 예가 성모승천 교의입니다. 하지만 성모승천 교의는 비오 12세 교황님께서 일방적으로 반포하신 것이 아니라, 800만 명 이상의 신자들이 서명한 ‘성모승천 교의 반포 청원’에 대한 교황청의 사목적 응답이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무서운 절망과 인간성에 대한 회의를 경험한 많은 신자들은, 우리를 희망으로 초대하는 이 교의를 반포해 줄 것을 간절히 청했습니다.
우리는 성모승천을 통하여 성모님께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영원한 친교 안에 계심을, 성모님께서 구원의 완성에 도달하셨음을 고백하며, 우리도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새롭게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두 단어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는 ‘행복한’입니다. 엘리사벳이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고 외치고, 성모님께서는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라고 노래하십니다. 과연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라고 온 세상 가톨릭 신자들이 수십 번 노래하게 되니, 이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행복한’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축복이나 행복을 뜻하는 ‘마카리오스’인데,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행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행복하여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로 시작하는 진복팔단을 말씀하실 때 반복해서 쓰신 단어가 ‘마카리오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진복팔단을 살아가신 분이십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다”고 노래하시는데, 이는 단순히 겸손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비천하다는 뜻으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에서 노래하신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 즉 ‘아나빔’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나빔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 표현되는데요, 이들은 재물도, 권력도, 재주도 없었고 의지할 곳이라고는 오로지 하느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모님의 노래는 성모님 개인의 노래가 아니라 교회의 노래이고, 하느님께 목마른 사람들, 하느님의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길에 끝까지 함께 하셨던 성모님 생애의 결론은 슬픔과 회한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인한, 그리고 당신 자신께서 예수님의 승천에 참여하시는 ‘들어 올림 받으심’으로 인한 영원한 기쁨입니다.
성모님을 주보로 모시는 우리나라가 성모승천 대축일에 해방을 맞이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권력으로 박해하던 통치자들이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고 부유한 자들이 빈손으로 내쳐지고,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이 높임을 받는 일이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해방의 역사가 참다운 꽃을 피우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인간 세상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을 전해 줍니다. 그러나 이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는 성모님의 자기 희생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십자가를 주님께 대한 믿음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으로 함께 꼬옥 끌어안자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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