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관한 시모음 19)
바다이미지5 /권갑하
-일출
아득
어둠 밑바닥
창세의 바람이 일고
뜨거운 불길을 삭혀
피워 놀리는 피빛 구름
이제 막
열리는 광야
산맥들도 불려 나오고.
또 한 겹 베일 벗기면
너는 하늘
나는 바다
절로 가슴 떨리는
갈매빛 당신 앞에
왁자한
빛살의 하객
밤새 달려온 섬.
눈 감으면 저 마법의 눈
마침내 빗장 풀고
푸드득
새가 날듯
깊은 침묵 깨고 오는
피돌아
눈부신 생성
아! 찰라의 황홀.
아주 큰 바다로 /이향아
-사친가(思親歌)-8-
군산공원 배울 것도 많던 야외 교실
사변통에 학교를 잃고
질정 못할 바람 위에
허무의 연을 띄워 보냈었죠
먼 바다로 가거라
아주 큰 바다로 가거라
나는 커서 무엇이 되나
이 담에 이 담에
월명산 민둥산 중대가리 산
덜렁한 석탑에 등을 기대면
외로와라 넓은 세상
언제나 나는 크나
무엇이 되나
이 담에 이 담에
숱한 약속을 했어요.
새끼손가락 매듭 휘도록 맹세했어요
우리 선생님은 믿을 수 없어
해장국집에 앉아 숙제를 적어 보내던 선생님
매일 장취 울먹이던 나쁜 선생님
점례랑 명옥이랑 고무신 공장에 취직되어 가던 날
가거라, 가거라
추석에 이쁜 옷도 해입고 운동화도 사신어라
명옥이 점례 헤프던 웃음
쓰린 바람으로 부딪혀 오는가
헤살지으며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가요
바다재회 /공석진
너울만 보다 왔습니다
허구한 세월 기다림도 헛되이
밤새도록 광풍을 몰아쳐
재회를 방해하는
하늘의 시샘을 원망했습니다
잠 못 이룬 밤을 곱새기며
방파제 모퉁이에 걸터앉아
흰 이빨 드러내는 해파를 바라보며
턱 괴고 하염없이
오지않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가뭇가뭇 색 바랜 하늘도
거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주위를 기웃거리다
더 그리워 더 아파하라고
이별을 재촉하는 비를 뿌려댑니다
그따위 시샘이 당신을 자극하여
본의 아닌 생떼를 부려
은밀히 다가오는 흔적조차
몇 겁의 파도줄기로 밀어낼수록
더욱 지독한 그리움으로 다가섭니다
순간의 정사를 꿈꾸는 이방인들의
에로티시즘이 부담스러워
마음에 단단한 장막을 치신다면
망각의 잔으로 취하도록 마셔
굴곡진 수평선을 넘겠습니다
격랑으로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픔을 위로하여
영원한 사랑으로 노도를 치유하는
큐피드의 화살을
당신의 심장 복판에 보내겠습니다.
흑빛바다 /남원용
서툰 날개짓으로 찾아간
해를 삼켜버린 바닷가
하늘에선 누구의 한숨인가
눈물되어 날개위에 놓이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것만 같은
흑빛 바다를 날아본다.
하나 둘 셋....스물
그 만큼의 거리만큼 이라도 함께 하자꾸나.
흑빛바다가 파란물감을 토해낼때
날개에 맺혀있을 이슬을
너의 날개짓으로 바다로 보내주려무나.
파란하늘과 파란바다가 우리를 안아 줄때까지
그 바다에 가고 싶다 /양현근
해종일 제 몸 허물어
그 바다는 자유라 한다
물살은 쉬임없이 제 무게만큼의
노래를 부르고
먼 하늘 돌고 돌아
은비늘 세우는 파도 소리∼
그 바다에 가고 싶다
그 바다가 보고 싶다
온천지 출렁임으로 숨가쁜
가슴 귀퉁이를 지긋이 잡아당기면
모래언덕엔 온통 부음뜬 조개들의
헛기침만 사각대고
아, 파도소리 쉰 바람소리만
팔락파락-파도파도
파파파∼ 도
바다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일까.
밤 바다 /오정방
문우들과 뒷풀이로 찾아간 밤 바다
비릿한 바닷내음 코끝을 자극한다
춤추는 밤파도를 보고자 하였으나
바다도 잠들었는지 잠잠하기만 하다
등대도 꾸벅 꾸벅 졸고 았는 한 밤중
밤을 잊은 낚시꾼들 물고기와 씨름하고
못다한 이야기 꽃 다 피우지 못한 채
달 빛을 등에 지고 여사로 돌아 선다
바다 그 푸른 함성소리 /장기연
짙은 남빛 풀어내며 출렁이는
몸부림치듯 태동하는 여명의 바다
바다는 그의 깊고 넓은 가슴 다 열어두고
들어 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생명의 원천이며 삶의 숨결이 일렁이는 곳
바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달려오는 그리움 그 외침소리가 있고
쉬 임 없는 파도의 무수한 몸짓들이 담겨 있다
비워도 비워내도 또 다시 채워지는 바다
부서져 내리는 물살의 균열 진 사연
거듭 삼키고 또 뱉어내어도 바다는
그 깊은 속내 좀채 들어 내지 않고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시퍼렇게 멍든 가슴만
긴 한숨으로 토해 낼뿐이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공해와 오염의 귀착지로 변해갈 그 아픔에
소리 없이 통곡하는 바다
정녕 그 고통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는지
가늠 할 수 없는 바다의 마음을
끝나지 않을 그 깊은 헤아림을
귀 기우려 담아 두어야만 하리라
그리하여 떠나가지 않고 침몰하지 않는
다시 소생하는 바다를 꿈꾸며
청정한 바다 그 투명한 물빛 소리를 기억하리라
아침 빛살에 퍼덕이는 심연의 바다
그 푸른 함성 소리를...
바다 일기 /박명용
바다가
비에 젖는다
마구 뛰어든 황톳물에
거대한 바다
깜짝 놀라 온몸을 일으켜
거품까지 물고
밀물로도 밀어내 보지만
산비탈을 거칠게 내달려온
억지의 힘에 맥없이 무너져
벌겋게 정복 당하고 있는
이 해괴한 현상
바다가 아니다
세상이 아니다
멈추지 않는 빗줄기
우산을 뚫고
내 머리 위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변하는 바다 색깔
농도가 얼마인가
셈하는 순간
벌써 황톳물
가슴을 침범하여
전신을 압박한다
‘무너짐’에 대한
의식의 긴장
비 속의 바다를 헤집고 있다
다시 바다에 가서 /강계순
다시 바다에 갔지
막막한 어둠이 내리덮인 지평의 끝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던 그 바다를
만나러 갔지
극소량의 독물을 마시고 스산한 비를 맞으며
감미로운 파괴를 거듭하면서 철철
피 흘리고 달려와 깨어지던 그리운
그 바다를 만나러 갔지.
긴 긴 후회의 울음조차 낮게 가라앉아 버린 바다
오래전 이미 굳게 닫혀 버린 한 세계의 문 앞에는
유실된 기억들로 가득 찬 적적한 어둠
아득히 들리는 해조음만 세상 밖에선 듯
낮게 흔들리고 있었지, 그 곁에
쓸쓸히 작별의 말을 묻어 두고
작게 흐르는 바람으로 등을 식히며
먼 바다에 갔다 왔지,
오래전에 떠나 버린 눈먼 새의
빈 꿈을 배웅하면서
바다에 갔다 왔지.
바다 /이지영
때로 바다는 물개가 되고
상어떼가 된다
태양을 만들어 띄우다가
수평선 밑으로 가라 앉히고
장군의 늠름한 용모와 기상이 되다가
시의 리듬과 미술의 조화처럼
파도를 일깨워 세운다
오늘은 다시
바다 끝으로부터 온 화음和音의
환희와 박수를 들으려는가
바다를 아는 아이는
바다가 무섭지 않아
바다로 걸어가
결고운 소라 껍질을 줍고
모래성을 쌓는다
바다 판각기행 /문정영
내가 그간 그녀에게 새긴 것은 평면이었다
문자를 읽지 못하는 바다였다
깊어서 평면으로 눕고 평평하게 말하기를 바랐다
바다는 산소를 만드는 식물성 플랑크톤으로 산다고, 내가 알던 그녀는 붉은
입술로 아주 사소한 것들을 기억했다
눈으로 읽은 것들은 기억을 덮으면 사라지듯
바다의 눈꺼풀을 덮으면 수평선이 사라졌다
바다는 오래 살아 있는 것들을 밀물판화에 새겼다
그녀와 내가 살았던 어제는 짜디짠 판각이었다
누군가 들여다보아도 거둘 것이 없는,
찍어도 찍혀 나올 것이 없는, 사랑같이
바다는 자꾸 지금까지의 여행을 지워가고 있다
바다는 이제 먹을 갈 깊이가 없다
썰물이 밀려가야 할 이유를 새길 때까지 판각을 다듬는, 눈꺼풀로 바다를
내렸다 올리는 우리는 이번 생의 초보자일 뿐이다.
구만리 바다 /손택수
- 임성원 형에게
시집간 여자가 산다는 바닷가 마을을
한번은 무심히 스쳐 지날 일이 있었지
바다로 난 언덕 위에 올라
까끌하게 출렁이는 보리밭 물결과
구만리 너머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
등대 앞 풍력발전기 날개에 감기는 바람 소리만 듣다가
어느 집 빨랫줄에 걸린 기저귀가
돛처럼 부푸는 걸 보고
그물질 나간 목선을 향해
밥때가 되었다고,
손짓하는 저녁연기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온 날이 있었지
한 백 년쯤 지나서 나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살도 뼈도 다 벗어버린 어느 날
아무런 고통도 슬픔도 없이
보리밭 이랑을 넘어가는 저녁 해,
등대 앞 발전기를 돌리는 바람 소리나 되어
바람 부는 바람 부는
가슴에 수평선 하나 걸어놓으면
다만 잔잔한 물결이 되어 출렁이는 바닷가
바다가 그리워 /권승주
저 시퍼런
끝없는
바다
파도가 되어
하얀 뱀처럼
몸을 비틀며
육지로 오르려 하얀 거품을
뱉고 있다
내 심장 뛰는 소리
희미해져
너에게 안길 수 없다
하늘을 찌를듯한 절벽아래
파도는
온종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네가
머물러야 할 운명이기에
바다가 육지를 그리워하 듯이
나는 바다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 바다로 /안택상
술,
취하고 싶어
힘들지 않고 싶어
그렇게
독하게 마셨다
잠은 안 오고
별은 무너지는데
난 바다로 간다
깊은 밤 삭여
안으로
타들어 가는
천년의 기다림
슬픈 영혼
가슴 속
내려앉는 애절함
나,
가고 싶다
간절히
간절히
너 머문 그 바다로......
미명의 바다 /홍경애
아스라한
미명의 아침이
망망한 대해에 펼쳐진다
거센 파도에
출렁이는 대망은
바다 위에 넘실댄다
어설픈 웃음에
덧없이 지나가는 세월은
역사의 성을 쌓는다
연륜의 체바퀴 속에서
바다의 풍경은
마냥 대망의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