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성화와 거룩함에 대한 성경적 용어
1. 구약 성경
‘거룩하게 하다’라는 구약 성경적 용어는 카다쉬로 니팔, 피엘, 히필, 힛파엘의 형태로 사용된 동사이다. 명사형은 코데쉬며 형용사형은 카도쉬이다. 동사 형태는 명사형과 형용사형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들의 원래 의미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학자들은 ‘카다쉬’는 ‘비춘다’는 의미의 ‘차다쉬’와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경적인 거룩함의 개념의 특질, 즉 순결의 개념과 조화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가 ‘자르다’란 의미의 ‘카드’란 어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더 높은 개연성이 있다. 이는 분리의 개념이 원래의 의미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초연, 분리, 장임을 나타낸다. ‘성화’ ‘거룩함’이라는 단어들의 이러한 의미는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개념이었음에 틀림없다. 거들스톤(Girdlestone)은 ‘성화’ ‘거룩함’이라는 용어는 지금은 도덕적 영적 특성을 나타내는 말로 빈번히 사용되어, 하나님과 그에게 봉헌된 어떤 사람이나 사물과의 ‘위치 혹은 관계’라는 개념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이 단어의 실제의 의미이다. 이와 유사하게 크레머 -쾨겔은 거룩함의 개념에는 분리의 개념이 가장 근본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거룩함은 관계적 개념이다.” 동시에 거룩함과 분리의 두 개념은 혼합되지도 않고 어느 하나에 흡수되는 개념도 아니며, 거룩함은 분리의 개념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2. 신약 성경
(1) 동사 하기아조와 다양한 의미들.
‘하기아조’라는 동사는 히브리어 ‘카도쉬’와 같이 먼저 분리의 개념을 표현하는 '하기오스'의 파생어이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이는 몇가지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이는 인간이나 사물의 정신적 의미로 사용된다(마 6:9; 눅 11:2; 벧전 3:15). 이러한 경우 이는 "어떤 대상을 거룩하게 여기다", "그것에 거룩함을 귀속시키다", "말이나 행동으로 거룩함을 인정하다"라는 의미이다. ② 종종 이 단어는 예식적인 의미로, 즉 "신성한 목적을 위해 일반적인 것들과 구별된다" 혹은 "일정한 직책을 위해 따로 구별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마 23:17 19: 요 10:36: 딤후 2:21). ③ 또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인간 안에 거룩함의 주관적 속성을 야기시키는 사역을 나타내실 때 사용된다(요 17:17:행 20:32:26:18: 고전 1:2; 살전 5:23). ④ 마지막으로, 히브리서에서는 속죄적 의미로 사용되었고, 바울의 디카이오오와 연관된 의미로 사용된다(히 9:13: 10:10, 29: 13:12).
(2) 거룩함을 나타내는 형용사들
① 히에로스: 가장 적게 사용되고 가장 희미한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가 히에로스이다.
이는 고전 9:13: 딤후 3:15에서만 발견되고,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게 사용된다. 이는 도덕적 우월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연유된 사물의 신성 불가침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영어 단어로는 sacred (신성한)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다.
② 호시오스: 호시오스라는 단어는 자주 사용된다. 이는 행 2:27:13:34, 35: 딤전 2:8: 딛 1:8: 히 7:26:계 15:4; 16:5에서 나타나고, 사물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 이는 인격이나 사물이 불결이나 사악이 없고, 보다 능동적으로는 종교적으로 모든 도덕적 의미를 성취함을 서술한다.
③ 하그노스: 하그노스라는 단어는 고후 7:11; 11:2; 빌 4:8; 딤전 5:22: 약 3:17: 벧전 3:2: 요일 3:3에 나온다. 이 단어의 근본적인 개념은, 윤리적 의미에서 불순과 불결이 없는 것이다.
④ 하기오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가장 특유한 단어는 하기오스이다. 본래의 의미는, 성별되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봉헌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하나님을 위해 세상에서 따로 구별된 것은 세상의 오욕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해야 하며 하나님의 순수함에 참여해야 된다는 개념이 나타난다. 이는 하기오스가 윤리적인 의미를 신속하게 획득하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a) 이 단어는 외부적인 공적 관계, 즉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일반적인 목적과는 구별된 존재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면, "거룩한 선지자들"(눅 1:70), "거룩한 사도들" (엡 3:5),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벧후 1:21). (b) 하지만 이 단어는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을 기꺼이 섬기기 위한 특질을 나타내는 윤리적 의미로 더 빈번하게 사용된다(엡 1:4: 5:27: 골 1:22: 벧전 1:15, 16). 성화의 가르침에 있어서 우리는 이 단어를 우선 후자의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성화와 관련해서 거룩함을 언급할 때 우리는 외부적 관계와 주관적인 내적 특징 양자를 고려한다.
(3) 성화와 거룩함을 나타내는 명사들.
성화에 대한 신약 성경적 용어는 하기아스모스이다. 이는 10번 출현한다(롬 6:19. 22: 고전 1:30: 살전 4:3, 4, 7: 살후2:13: 딤전 2:15: 히 12:14: 벧전 1:2). 이 단어가 윤리적 순결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분리의 개념 즉 "모든 불순하고 타락된 것으로부터의 영의 분리와, 육신과 마음의 욕망이 우리에게 초래하는 모든 죄를 포기함"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하기아스모스가 성화의 사역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이 과정의 결과를 나타내는 두 가지 다른 단어, 즉 '하기오테스'와 '하기오네'가 있다. 전자는 고전 1:30, 히 12:10에서 발견되며, 후자는 롬 1:4; 고후 7:1: 살전 3:13에서 발견된다. 이 구절들은 거룩함의 특질 즉 오염과 불순의 전무함이 하나님에게 본질적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분여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B. 성화의 역사
1. 종교 개혁 이전.
성화론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서 교회는 우선 다음 세 가지 문제들에 관심을 둔다: (1)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칭의와의 관계 (2) 성화와 칭의의 관계 (3) 현세에서의 성화의 정도. 초대 교부들의 문헌들은 성화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이 구원을 위해 신앙과 선행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도덕주의의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세례 전에 지은 죄는 세례시 씻겨지지만 세례 이후에 지은 죄는 속죄와 선행이 필요하다. 그는 미덕의 삶을 영위해서 주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스코트는 「니케아 신학」 (The Nicene Theology)에서, "이러한 이원론은 성화의 영역을 그리스도의 구속과 간접적으로만 연결시키게 했다. 이는 본래 죄에 대한 불완전한 개념, 율법주의, 성례주의, 사제적 정략(priestcraft), 과도한 수도사적 헌신 등이 성장하는 온상이 된다"고 말한다. 금욕주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는 경향도 있다. 어거스틴은 성화에 대한 다소 명확한 개념을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로, 그의 견해는 중세 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칭의와 성화를 명확히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성화가 칭의 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타락에 의한 인간 본성의 전적 부패를 신봉하므로, 성화를 신적 생명의 새로운 초자연적 분여 즉 교회의 영역 안에서 성례를 통해 역사하는 새로운 에너지의 주입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사랑이 성화의 구성적 요소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화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했다. 즉 그는 성화를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예치물 (deposit)로 이해했다. 그는 구속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지속적으로 몰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
어거스틴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은 중세시대의 신학에서 결실되어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칭의와 성화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칭의는 인간 영혼에 있어 본질적인 신적 은혜의 주입을 포함하게 된다. 이 은혜는 일종의 부가적 선물(donium superadditum)로, 인간이 새로운 수준 즉 보다 고차적인 존재의 질서로 상승하여 하나님을 인식하고 소유하고 향유하는 천상적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한다. 은혜는 영원히 소진되지 않는 그리스도의 공로의 보고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성례에 의해 신자들에게 분여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영혼 안의 이 성화적 은혜는 원죄의 용서를 보증하며, 본래적 의의 영원한 성향을 분여하고, 발전과 완성을 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생활이 모든 미덕과 함께 전개된다. 선행은 중죄에 의해 무효화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 하지만 세례 이후 범한 허물은 가벼운 죄일 경우는 성체성사(성찬)에 의해 제거되며, 중죄의 경우에는 고해성사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신앙의 초자연적 행위들은 하나님 앞에서 공로가 되어 은혜의 증대를 보증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지속적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과정의 결과는 성화보다는 칭의로 이해된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의롭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사상들은 트렌트 공의회의 신조와 교칙에 구체화되어 있다.
2. 종교 개혁 이후.
종교 개혁자들은 성화를 언급함에 있어서 자연과 초자연의 대립보다는 죄와 구속의 대립을 강조한다. 이들은 칭의와 성화를 명확히 구분하고, 칭의는 신적 은혜의 법적 행위로서 인간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며, 성화는 도덕적 재창조적 사역으로서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들은 양자를 조심스럽게 구분하면서도 양자의 불가분의 성격을 강조한다. 인간이 신앙으로만 칭의받는다고 깊이 확신하면서도 이들은 칭의받는 신앙이 홀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칭의받는 순간 이들의 심령에 아들의 영, 즉 성화의 영을 보내주시므로 즉시 성화를 수반하게 된다. 이들은 성화의 은혜를 성례를 통해 인간 안에 주입되는 초자연적 본질이 아니라 먼저는 말씀, 그 후에는 성례를 통한 성령의 초자연적이며 자비로운 사역으로 이해했다. 말씀과 성례로 인해 성령은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점진적으로 해방시키며 우리가 선행을 행할 수 있도록 한다. 종교 개혁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칭의와 성화를 혼동시키지 않으면서도, 행위의 의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값없고 용서하는 은혜가 강하게 강조되는 칭의와 인간의 협력을 요청하는 성화간에 가능한 한 밀접한 관련을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경건주의와 감리교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지속적 교제가 성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크게 강조된다. 칭의를 희생시킬 정도로 성화를 고양시킴으로써 이들은 자기 의의 위험을 완전히 회피하지는 못한다. 웨슬리는 칭의와 성화를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를 분리시키고, 성화 전체를 첫번째 은혜인 이신칭의 이후 조만간 오게 되는 두번째 은혜라고 언급했다.
도덕주의적 영향으로 인하여 정화는 죄인을 갱신하는 성령의 자연적 사역으로 간주되지 않게 되었으며, 인간의 자연적 능력에 의한 도덕적 개선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슐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 성화는, 우리 안에 단순히 감각적이고 도덕적으로 결여된 세계의 의식에 대한 신(神)의식의 점진적인 지배에 불과하다. 그리고 리츨에게 있어서 성화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소명을 성취할 때 획득되는 기독교적 삶의 도덕적 완성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 성화란 일반적으로 고차적 자아의 지배에 의한 인간의 하위적 자아의 점진적인 구속에 불과하다. 성품에 의한 회복이 오늘날의 표어이며, '성화'라는 용어는 단순한 도덕적 개선을 의미하게 되었다.
출처
벌코프 조직신학(합본)
루이스 벌코프,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789-7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