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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2015년) 한국판 맹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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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
2015년 한국영화
각본, 감독 : 박훈정
출연 : 최민식, 정만식, 김상호, 성유빈
정석원, 오스기 렌, 김홍파, 라미란
이은우, 현승민, 우정국, 박인수
'대호'는 역대 한국영화 최다관객 동원영화인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이 차기작으로
출연한 작품입니다. 최민식, 정만식, 김상호 등의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사실상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호랑이 입니다.
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꽤 높고 연기도 괜찮은 영화로 당연히 개봉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려야 하지만 3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 영화개봉 스케줄에서 정말 '빠가머리'나
이해할 수 있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했는데 '내부자들' 개봉 이후 무려 3주간이나 이렇다할
한국영화 빅흥행 예상작이 개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가 '히말라야' '대호'
'스타워즈'가 함께 개봉하면서 관객 나눠먹기를 하고 있으니 차례로 개봉하여 흥행 1위를
번갈아 차지해야 할 상황에 빅3 영화가 같이 개봉하여 경쟁하는 모양새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되지요. '대호'가 11월 25일이나 12월 3일에 개봉했다면
박스오피스 1위를 노릴만 했고, '희말라야'나 '스타워즈'가 개봉하기 전까지 넉넉히
흥행 1, 2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가끔 보면 이해안될 개봉스케줄이
발생합니다.
연타석 1,000만관객 동원영화 출연배우인 대세 황정민이나, 전설의 귀환 스타워즈에
밀려 박스오피스 3위로 출발하고 있지만, 그정도 흥행에 그치기에는 꽤 아까운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영화입니다.
'대호'는 보기 드물게 오락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한국영화 수작입니다. 원래 이런
맹수 영화는 맹수를 등장시켜서 무시무시한 분위기만 연출해도 중간은 가게 마련
입니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발 킬머 주연의 '고스트 앤 다크니스'에서는 사자의
무서움이 충분히 표현되었고, 한국영화 '차우'에서는 살인 멧돼지의 흉폭함을
흥미롭게 표현했습니다. '대호'에서는 영물 호랑이의 신출귀몰한 무서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맹수 영화 치고는 주인공 격인 호랑이의 등장이 뜸들이지 않고 꽤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상어의 습격을 다룬 영화 '죠스'에서 상어가 제대로 등장하는 장면이
1시간이 더 지나서였고, '킹콩'에서도 킹콩이 비로소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가
시작되고 꽤 지나서입니다 '고스트 앤 다크니스'에서 사자의 감질나는 등장을
생각해 보세요. '대호'는 부족하지 않게 호랑이를 실컷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톡톡한 팬서비스죠.
약간 만화같은 설정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총 여러방 맞아도 쉽게 안죽는 건
영웅본색2의 주윤발만이 아니더군요) 이런 소재의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
관대해질 필요는 있습니다. 뜸들이지 않고 자주 나타나는 호랑이를 통해서 충분한
재미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고, 호랑이와 유일하게 뭔가 통하는 포수
천만덕(최민식)을 통해서 동물과의 교감과 뭉클함, 그리고 신파까지 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런게 싫은 관객들은 그냥 호랑이의 무협을 재미있게 감상하면 되고
뭔가 심오함이 필요한 사람은 이런 시나리오를 즐기면 됩니다. 어느 정도 다각도의
관객을 흡수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다만 2015년 개봉한 한국 영화중에서 가장
개봉시기를 황당하게 잘 못 잡은 영화입니다. 어떻게 하면 망할 수 있나를 꽤
연구해서 개봉한게 아니라면...... 아니면 대세배우 황정민이나 전설 스타워즈를 한 번
멋지게 이겨보려는 만용이었거나.
호랑이라는 동물은 한국을 상징하는 부분도 있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호랑이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나름 의미있다고 봅니다. 호랑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과거 TV 문학관에서 '폭군'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적 있는데(기억이
맞다면 제목이 '폭군'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포수 김성겸이 거대한 호랑이를
찾아 사냥을 하려는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서로 생사를 건 대결을 벌여야 할
숙명의 관계지만 서로 존중하는 미묘한 관계이기도 했던 그 내용은 꽤 인상적
이었는데 (TV 드라마 화면에 호랑이가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 '대호'는
이 TV 문학관의 '확장 버전'같은 느낌입니다.
1920년대를 배경을 한 영화입니다. 그 시기는 일제 강점기죠. 당연히 일본군이
등장합니다. 영화속에서 일본어로 연기하고 자막이 흐르는 부분도 많습니다.
일본군의 고관대작은 지리산에 생존하는 일명 '산군'이라 부르는 외눈박이
호랑이를 잡으라는 명을 내리고 한국인이지만 일본군에 들어가 일본인 행세를
하는 류(정석원)는 명포수들을 동원하여 대호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이 호랑이가 보통 호랑이가 아닙니다. 머리도 좋고 신출귀몰하고 또한
자기 영역에서는 거의 무적입니다. '고스트 앤 다크니스'에서 천막을 습격하는
사자나 '엘리게이터'에서 파티장을 습격하는 악어나 '차우'에서 연회장을 습격하는
멧돼지나 모두 일종의 무방비 상태의 인간들을 습격하는 것인데, 이 호랑이는
그냥 잡을테면 잡아봐 하고 당당히 나타나서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을 무차별
포획합니다.
CG의 발달로 이제 동물도 사람처럼 연기하는 것이 가능한데, '쥬만지'에서 시도된
CG만을 이용한 동물은 그때만해도 다소 어색해 보였지만(그래도 쥬만지는 굉장한
신기원을 이룬 작품입니다.) 이후 21세기 들어서 '라이프 앤 파이'라는 영화로
거의 실물처럼 느껴지는 동물 CG가 가능한 것을 보여주었고, '대호'에서는 이제
한국에서도 이런 CG 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과거 '디 워'라는
허접한 괴수영화를 만든 심형래 감독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겁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신세계'로 이름을 알린 박훈정 감독은 아예 '할테면 제대로 해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듯 합니다. '대호'의 CG는 이제 한국영화의 특수효과도
꽤 볼만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걱정했던 부분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완성도는 있고 시나리오도
괜찮지만 혹시나 호랑이가 굉장히 뜸들이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였습니다.
호랑이를 등장시킨 오락성보다는 뭔가 지루한 철학적 메세지가 강한 영화일까봐.
그러나 그런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날아갑니다. 호랑이는 정말 실컷
볼 수 있으니까요. 거의 주인공 최민식만큼 나옵니다.
최민식은 이 영화에서 오히려 '명량'의 이순신보다 더 적역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늦장가를 가서 늦둥이를 본 은둔포수 역으로 잘 어울렸는데, 종반부에 호랑이와
마주선 그의 포스는 꽤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다소 오버스런 연기가 특징이긴
하지만 '올드보이'를 비롯해서 '루시'의 악역까지 이렇게 꾸준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도 드뭅니다. '대호'는 최민식에게 꽤 어울렸던 작품입니다.
정적이 흐르는 긴장감 속에서 '크르르르...'하고 깔리는 호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본격적인 포효.... 큰 화면과 극장의 사운드를 통해서 울리는 긴장감이 대단합니다.
'대호'는 확실히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만약 3D로 만들었다면 훨씬
분위기가 살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워낙 요즘 인공적인 SF CG
액션에 질렸는데 똑같은 CG이긴 하지만 지리산이라는 자연공간 산악무대에서
자연미가 느껴지는 호랑이 한마리가 보여주는 긴장감과 속도감은 현란한 CG영화에
비해서 훨씬 큰 무게감과 묵직한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최민식을 비롯해서 정만식,
김상호 그리고 최민식의 아들로 출연한 성유빈, 반쪽일본인 악역인 정석원 등 배우들이
모두 좋은 연기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역할은
호랑이 입니다. 이 한마리 호랑이가 주는 비중과 역할은 엄청납니다. '대호'는
식상한 소재속에서 발견된 한국적인 정서와 오락액션, 그리고 지리산이라는
자연공간까지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ps1 : 한국 전래동화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내용이 꽤 많죠. 정말 이제야 호랑이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다만 안 만든게 아니라
못 만든 것이겠죠. 호랑이가 연기를 할 수 없으니.
ps2 : 호랑이 CG도 실감나지만 늑대떼들의 등장도 꽤 자연스럽습니다. 20세기
헐리웃 '쥬만지'보다 21세기 한국영화 '대호'가 기술적으로는 훨씬
발전했지요.
ps3 : 실제로 호랑이는 얼마나 빠를까요? 아마도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총을 들었다고 해도 호랑이를 제대로 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화면으로
봐도 무서운데.
ps4 : 얼마전 개봉한 '타이거 마운틴' 에서 호랑이와 사람간의 생사를 건 대결이
정말 스릴있게 보여졌는데 그 동영상 자체가 꽤 유명했지요. 영화보다
그 장면만 많이 알려졌습니다.
ps5 : 실제로는 남한에서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1년에 대덕산에서 발견된 것이
공식 기록이랍니다. 이 영화는 192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허구적인
내용이지요. 한국에서 호랑이는 멸종된 동물이지만 지금같은 문명시대에
야생동물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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