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예진이와 여름 방학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돌아왔습니다.
대구 못 가게 할 것이라고 바깥에서 엘리베이터 버턴을 계속 누르며 웃지만,
약간의 분위기만 만들어도 눈물을 쏟을 눈입니다.
조손의 깊은 정이 믿음의 유산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초여름의 시작되는 6월입니다.
오늘은 연합회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한 마음으로 걷는 시간을 통해 복음으로 교제를 할 수 있게 하옵소서.
피곤한 몸을 흔들어 깨워주시니
일어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본문 주해)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기록한 서신이다. 수신자는 소아시아 전역에 있는 교회와 신자들이다. 서신의 기록 연대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시기인 AD. 64년 전후로 본다.
베드로는 서신을 통해 박해를 당하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종말론적 소망에 근거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적인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1~2절 : 베드로는 지금의 터키 땅 여러 곳에 흩어져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라고 부르며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인사를 한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사는 자라는 말씀이다.
이들은 비록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이방인, 나그네로 살지만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부르시고 성도의 삶을 살게 하신 자들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미리 아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 주셔서, 여러분은 순종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가 더욱 가득 차기를 빕니다.”(2절, 새번역)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님으로 인해 순종하게 하시고,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임할 은혜와 평강을 말하며 첫인사를 한다.
‘피 뿌림’의 표현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체결할 때 모세가 언약의 피를 뿌린 사건을 반영한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8)
3~6절 : 이러한 인사를 하는 베드로에게 찬송이 터져 나온다.
그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도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다.
그 하나님께서 산 소망 주신 것을 찬송한다.
산 소망이란 곧 하늘의 소망이다.
인간은 늘 썩어지고 더럽혀지고 쇠하여질 땅의 것들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 아들의 피로 구속하시고 하늘에 소망을 가지게 하신 것이다.
하늘의 소망은 복음(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 얻은 새 생명이 소멸하지 않는 유산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최종 구원을 얻기까지 그의 능력으로 성도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도의 지상적 삶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근심한다. 하지만 최종 구원의 날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돌보심을 받기 때문에 성도들은 어떤 시험 중에 있어도 크게 기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6절, 새번역)
그 기쁨의 이유가 7절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셔서,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7절, 새번역)
환난을 인내함으로써 빚어지는 함량 100%의 믿음이다. 인격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믿음이다.
‘믿음의 연단’(순전한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화인 금보다 더 가치가 있다. 금은 한시적으로 가치가 있으나, 믿음의 연단은 영원히 가치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기 때문이다.
8~9절 :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까지 직접 보았다.
하지만 이후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직접 본 일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복음을 믿고 새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늘에 간직한 유산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그것만으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로서, 믿음의 목표인 영혼 구원을 받은 증거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을 읽고 주해를 보고 묵상하니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본문이 짧다고 쉽게 묵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지만, 오늘이 바로 그런 벅찬 경우이다.
복음을 알기 전, 나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왔었다.
그런데 복음은 내가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알게 해 주었다.
이곳에서 나그네라면 나의 본향은 어디인가? 바로 하늘나라이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은 나의 결심이나, 반복하여 되뇌임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알게 하시고, 자연스럽게 품게 하시는 소망인 것이다.
그러니 내 손에 잔뜩 힘을 주어 잡았던 세상 것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다.
내가 두 손으로 십자가를 잡아야 하니, 다른 것들은 나도 모르게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세상 것들이란 다 썩어질 것들이요, 허망한 것들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둔다. 이 소망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나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심에 있다.
그런데 육체로 이 땅을 살아가는 자에게 시험이 없을 수 없다.
나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당하는 시험도 있고, 상황과 환경 속에서 애매한 고난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역시 주님께서 확실히 보호하시며, 그 일을 통해 나의 믿음이 연단되어지는 것임을 알 때 새로운 기쁨이 주어진다.
바로 이 땅의 괴로움을 다 삼키고도 남는 하늘의 기쁨인 것이다.
나는 이 하늘의 기쁨을 매일 말씀을 통해 누린다.
영원전 나를 택하신 하나님, 내게 영생을 주시고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믿어지는 것, 나의 거룩함과 순종(나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이 단어들을 황송하게 받는다.)은 내 힘과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라는 것, 세상 것을 붙든 손이 십자가를 붙잡게 되는 것, 이 땅에서 시험은 계속되나 이는 믿음의 연단을 이루는 것, 그것을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것, 결국 나의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에 대한 확신.....
이 모든 것을 매일 말씀 안에서 보고 또 보며, 듣고 또 듣는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점점 더 잘 알아가는 중이니 내 안에 주님이 생생하게 살아계심을 느낀다.
나는 지금 영생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영생을 누리며, 하늘의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나의 주님을 찬양하는 아침이다.
(묵상 기도)
주님,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게 베푸신 새 생명의 기쁨이 육체의 피곤함을 이깁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다 소화하진 못해도
주님께 고백할 말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듬더듬, 횡설수설하지만
이 고백에 기쁨이 있고, 진심이 담긴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부족하지만 지금의 믿음의 분량을 감사합니다.
또한 도키모스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인도하심을 사모합니다.
나그네로 이 땅을 살지만
거룩함과 순종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