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주의 날 아침을 맞이합니다.
주님과 함께 눈을 감고 함께 눈을 뜰 수 있는 것이 감사요 은혜입니다.
만물 안에서 썩어 없어질 존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나를 강한 주의 손으로 장악하여 주소서.
수시로 이 마음이 변하여 주와 세상을 왔다갔다하는 것은 정함이 없는 증거이오니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거기에 치심하는 나는 두 마음을 품어 과연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공동체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주일에 하늘의 영광의 빛이 심령마다 가득 채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 하루도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벧전 1:10-21
제목 :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될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나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나의 묵상
결국 사라지고 없어질 금이라도 불에 연단되어 정금이 되듯 성도들의 시련 역시 아무 가치가 없는 것 아니라 더욱 귀한 성도의 믿음으로 연단되는 것이다.
그 믿음의 시련은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연단이라는 도키모스를 통하여 믿음의 열매이다.
성도들은 비록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였지만 그를 사랑하고 믿으며 나아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이 임할 것인데 그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다.
한편 신약의 성도들의 구원에 대하여 구약의 선지자들도 연구하고 살폈던 것이다.
선지자들은 자신들 속에 계시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예언하신 것이 누구를 그리고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알기 위하여 상고하였다.
그 결과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예언 사역이 그들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신약 시대의 때를 위함이라는 것을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약의 성도들은 이제 성취된 구원에 대하여 성령을 힘입은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서 전해 듣고 있다.
심지어 신약 성도들의 구원의 신비에 대해서는 하늘의 천사들도 살펴보기 원할 정도이다.
따라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성도에게 임할 은혜를 소망할 것이다.
성도는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이전에 무지하였을 때처럼 육신의 사욕을 좇아서는 안 된다.
성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레위기 11:44절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대로 성도를 부르신 거룩하신 분을 닮아 모든 행실에 거룩할 것이다.
성도는 사람의 외모가 아닌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이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지낼 때 경건한 두려움으로 살 것이다.
무엇보다 성도는 죄로부터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이다.
그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망령된 행실로부터 구속받은 것인데 그 구속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보배 피를 값으로 주고 행하신 것이다.
이제 성도는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둔 자이다.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계셨던 분인데 이 마지막 때에 성도를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셨다.
따라서 성도는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둔 자들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증거(벧전 1:10-12)와 종말에 나타나실 그리스도 사이에 위치한다(벧전 1:7, 13).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약속한 대로 오셨고(히 1:1-2; 롬 1:2) 그를 믿음으로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
이 구원은 선지자들이나 심지어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하늘에 간직한 산 소망이다.
그렇다면 장차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받을 최종적인 구원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것이겠는가?
그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에 확실히 보증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미리 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다.
설령 고난과 시험이 와도 이것은 도리어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연단을 이루는 것이기에 넉넉히 견딜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곧 인간의 언어능력과 표현 능력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천상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벧전 1:8).
우리는 어떠한 것으로도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는 확실한 보증된 구원을 받았기에 그 구원을 불완전한 이 세상 곧 만물 안에서도 누릴 수 있다.
그 구원의 확실함은 다름 아니라 금이나 은 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로 인함이다.
그의 피는 이미 창세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기로 작정되어 그 때가 되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보배로운 피이다.
그렇게 죽으신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가운데 올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소망을 당신 안에 두셨다.
우리의 구원은 현재적이지만 또한 미래적이다.
현재 구원을 받았으며 미래에 완성될 구원이다.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은 자로서 그 구원을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육신의 몸은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몸은 속량을 기다리고 있다.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은 썩어지게 되어 있다.
구원 받은 우리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이 재림하기 전에 죽은 자들은 그 몸이 썩어질 것이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죽지 않은 자들은 주님의 재림과 함께 홀연히 거룩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이 이루시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어제 ‘그 날(One day)’이라는 찬양을 하루 종일 불렀다.
그 날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을 말한다.
그 가사는 이렇다.
그 날 모두 변화되리 예수. 모든 상처 치유되리.
이전 것은 지나가리라 그날에.
그 날 모두 알게 되리 예수. 모든 답을 알게 되리.
모든 걱정 사라지리 그날에.
그 날 주의 얼굴 뵈리 예수. 주의 은혜 알게 되리.
또 홀연히 변화되리라 그날에.
그 날에 자유케 되리라 예수. 모든 고통은 끝나리.
찬란한 주 영광 보리라 그 날에.
그 날에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 주와 나누리.
주의 얼굴을 뵐 때에 승리의 노래 부르리.
이 땅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을 겪을지라도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은 그 고난과 아픔이 다 사라질 것을 믿는다.
이전에 있던 모든 세상은 지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의문으로 남았던 모든 것들도 알게 될 것이며 그 답을 알게 될 것을 믿는다.
날마다 걱정 근심을 꾹꾹 눌러 담고 살았던 우리의 인생이 이제는 참 자유를 누리며 근심 걱정에서 자유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엔 우리가 홀연히 변화될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가장 적확한 모습으로 말이다.
물론 그 날이 오기까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과 역사를 살아내야만 한다.
우리에게 주신 이 인생과 역사를 염세주의로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이 오시기까지는 끊임없이 고난과 아픔이 계속된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요 선물임을 알아 그것을 해결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용하여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주의 말씀의 실재이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시대성에 매몰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 것이다.
무상성(無常性)이 아닌 항상성으로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금과 은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석이지만, 그것 역시 이 땅에 있을 때만 필요한 것들이므로 영원한 것이 아니다.
삶의 질을 판가름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런 금과 은과 같은 보석이 아니다.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겨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던 자가 바로 나였다.
신앙생활을 하고 목사가 되어서도 그런 나의 가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 많이 가질 때 마음도 부요해졌다.
금이나 은을 소유할 때 마음이 든든하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그렇게 마음이 부요할 정도로 많이 가져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나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일희일비하였다.
그런 나에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시련이 닥쳤다.
그 시련으로 인하여 나는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 끝없는 나락이 바로 주님이 주신 무덤이었음을 후에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복음을 알지 못하고 그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만을 꿈꾸며 살았던 나를 공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다.
그 심판을 통하여 내가 들어간 심판의 무덤이 바로 우리 주님의 품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나 혼자 외로이 감당하는 고난인 줄 알았는데 이미 주님께서 그 무덤에 와 계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품어주셨다.
그 은혜 앞에서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항복하였다.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없음’과 ‘티끌’ ‘먼지’임을 고백하였다.
그것이 나의 실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주님 앞에서 먼지와 티끌로 있을 뿐이다.
내가 무엇을 하여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행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좋은 일은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별로 좋지 않은 일일지라도 그것조차 주님이 하셨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면 나의 책임은 사라지고 진정한 평안이 임할 뿐이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영원에 잇댄 하나님 나라임을 고백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신앙생활을 하고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던 나의 인식의 수준은 이 땅 곧 만물 안이 전부였습니다.
여기서 잘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으로 자단(自斷)하였습니다.
그런데 만물 안인 이 땅에서의 삶은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쓴다할지라도 내 맘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태반이었습니다.
실은 그것이 은혜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 판단 기준으로 정하려 했던 우매한 자였습니다.
그런 내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깊은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 깊은 무덤은 나 홀로 들어간 무덤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무덤이었습니다.
그 안에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고난을 감당하였는데 이미 우리 주님께서 그 모든 고난을 져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나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지시고 나를 쉬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통하여 나의 영안은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올라갔습니다.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이 은혜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