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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19분의 러닝타임이 끝났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박수를 칠 수도 없었다. 그냥 먹먹했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했고 총맞은 느낌이었다. 총알이 가슴을 파고들어 등뒤에 '뻥' 하니 큰 구멍을 낸 것 같았다. 얼마전 한 영화시사회에서 본 이창동 감독, 윤정희 주연 영화 '시' 때문이었다.
#강이 흐르는 작은 도시의 낡고 비좁은 연립주택에서 중학생 외손자와 단 둘이 사는 미자. 본명이 '손미자'인 윤정희가 맡은 역이다. 그녀는 생활보호대상자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 거동이 불편한 돈 많은 할아버지를 씻기고 청소해주는 간병도우미로 생게를 꾸리지만 외출할 땐 늘 꽃 장식 모자를 쓰고 화사한 옷을 입고 사뿐거리면 걷는 멋쟁이 할머니다. 어느날 우연히 그녀는 동네 문화원에서 "시" 강좌를 듣게 되면서 난생처음으로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시가 낭만의 화사한 꽃일 뿐, 그토록 처절한 것들의 열매인지 몰랐다.
#그런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진다. 엄마 없이 키우던 외손자가 여학생을 윤간하는 일에 연루된 것이다. 그 여학생은 다리에서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고 유서에 여섯 명의 남학생 이름을 남겼다. 관련 학부형들은 서둘러 돈으로 입막음하려 했다. 예상가 3000만원, 한명당 500만원씩 분담!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선 사람들이 죽으면 돈으로 때우려는 못된 습관이 생겨났다. 거기 미자도 휘말렸다. 하지만 당장 500만원을 구할 길이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은 미자는 뜻밖에 알츠하이머병을 진단을 받는다. 처음엔 명사를, 나중엔 동사를, 그리고최후엔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망각해 버리는 무서운 병. 하지만 서서히 진군해오는 망각의 점령군 앞에서도 미자는 시상(詩想)을 떠올리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물론 좀체 잡히지 않지만! 바람에 날려 다리 아래 강물에 떨어진 하얀 모자, 편쳐든 작은 수첩 위에 뚝뚝 떨어져 번지는 눈물 같은 빗방울만이 말의 꾸밈이 아닌 삶의 생살을 도려내야 비로소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진짜 시상의 두렵고 무서운 존재방식을 예고할 뿐이었다.
#가뜩이나 꼬인 일상 속에 간병하며 씻겨드리던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그날 따리 난데없이 까닭 모를 약을 먹여달라고 조른다. 자기 몸조차 못 가누는 할아버지가 눈의 흰자를 두런두런 돌려가며 단 한번만 자신이 남자임을 느끼게 해 달라고 애걸한다. 그 할아버지가 먹은 약은 비아그라였던 것! 미자는 그의 몸을 닦던 목욕수건을 집어던지고 방을 뛰쳐 나와 버린다.
# 하지만 자살한 여학생의 사진을 보고도 반성의 빛조차 없는 외손자를 보며, 그녀는 윤간당한 후 강물에 몸을 던졌던 그 여중생과 자신을 동일시라도 하듯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제발로 찾아가 비아그라를 먹이고 스스로 그 짓을 당한다. 그 섹스신은 너무나 뜻밖이었고 서글펏지만 또 너무나 사람 같았다. 그직접 대가는 결코 아니었지만 훗날 미자는 어쩔 수 없어 그 할아버지한테 외손자의 합의금 500만원을 받아낸다.
#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얘기 하라는 "시" 수업시간에 미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나 힘들고 슬펏던 순간들이 실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미자는 '시'수업 마지막 시간에 죽은 여중생의 세례명을 딴 '아네스의 노래' 라는 시 한 편을 남긴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네스처럼 강물에 몸을 던졋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는 인생의 가장 처절했던 순간이 곧 시임을 깨달았으리라. 잔인했던 4월을 지나 5월의 첫날이다. 때론 천안함 사건보다도 더 두렵고 무서운 일상이 우리앞에 도사리고 있다. 그 일상을 살아내는 진한 몸부림 자체가 곧 우리 삶의 처절한 시가 아니겠는가. ..........논설위위원/정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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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어느해 오월 첫날 조간신문에 실린 글이다. 이글을 읽고 처절한 삶을 산것도 아니건만 왠지 자신이 처절한 삶을 살고도 시를 지을 수 없는 무능함 때문에 죄의식으로까지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삶의 일부에서 똑 떨어져 나올것같은 시적 언어들 이건만 펜을 잡거나 자판만 잡으면 이미 머릿속은 멍해져 단순 단면의 벽과 만난다.시를짖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위글을 쓴이가 말했듯이 처절한 시간들과 수도 없이 만나며 고통의 시간들을 아낌없이 내어줄줄을 아는 사람들 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와 닿는 신문 스크랩을 하며 자판연습도 할겸 저장해 놓았던 글을 읽으니 새삼스러워서 올려봅니다.
좋은시간 되세요...^^*
혹 오타가 있어도 이해해 주세요 ^^*
![](https://t1.daumcdn.net/cfile/blog/147DC20D4B0B3C2D6A)
첫댓글 리아나님.
한땀 한땀 내려주신 귀한 글 읽으며 위안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슬펐던 순간들이 실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 마음에 새겨둡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_()_
오래전 감동을 받으며 읽었던 순간을
다시 되새김 하는것..
예기치 않던 보너스를 받은 느낌 입니다
집안일로 한동안 바빠 실팍한 감성들과 가벼운 마찰을 일으키며
힘들지만 보람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것은
순간이 주는 이 짜릿한 감성을 받아드리는 마음이 있기에 감사하군요
모두가 경이롭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군요
멋쟁이 프라하님 감사합니다
소중한 가을시간 보내시갈 바랍니다.
리아나님,
앞으로 사이버에서 유령으로 살려고 굳게 마음 먹었는데 이 글을 보고 손가락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귀한 글 옮겨 적느라 수고 하셨고 감동을 주는 군요.
이 영화 보면서 멍 때리고 있었던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 후, 지우들이 열띤 토론으로 이 영화를
합평인지 비평을 할 때도 입 꾹 다물고 있었더랬는데 이 시간 가슴 밑바닥을 치고 오르는 그 무엇,
처절한 시간 속에 떨어져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의 늪을 탈출 하는 법도 알리라.. 감사 ^^
저의 이 자그마한 마음을 이리도 반겨주시니
이미 깊은소리님께선 적선을 하신 겁니다...ㅎ
자그만 미소에도 같이 반응을 해 주므로
바이러스처럼 파안해지며 환한 분위기로 전환되는 소중한 순간을
나궈채어 내안에 받아드리고 싶습니다
어느날은 극중의 인물이 되어 흉내를 내어 보기도 한답니다
그냥 그런대로 사는 것이 아닌 흘러가는 순간 속에서
의미를 새기며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싶군요
소중한계절에 좋은글 부대에 그득 담으시길 기원합니다.
영화 봤지요...그냥 봤습니다....^*^
네...
저는 참 잘 보았답니다...ㅎ
어느날은 밥을 하다가도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에
수첩을 곁에 두기도 했답니다
그러다가 맞아 윤정희씨도 그녀가 직접지은것은 아니잖아?
하면서 위안을 받은적이 있답니다ㅋ
잘 읽었습니다.....
주렁주렁 감나무는 시골에서 산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해마다 무언가 뭉클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가을엔 열매가 주는 풍성함 때문에
농부들이 힘든 시간을 날려 보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뭉클이란 단어가 제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