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명량”이라는 영화가 한반도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아마 오늘 일요일 오전에는 1000만 관객을 최단시간에 돌파할 모양이다.
왜 이렇게 열광할까?
성웅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무장의 일대기중 해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라는 것도 있었고
최민식이라는 카리스마의 주인공의 역할도 한 몫 했을 것이고
“참으면 윤일병 터지면 임병장”이라는 황당한 군대 문화의 희생자들 때문에 기분도 꿀꿀하였고
한국인들에는 영원히 일본놈, 중국놈 때려잡는 것만 나오면 무조건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빙혼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광판이라도 구해서 꼭 보고 싶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니 좋은 글들이 있어 짜깁기해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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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구전(先勝求戰)
미리 이겨 놓고 싸운다
이 영화 “명량”에서 보여주는 장군의 전술은"선승구전(先勝求戰) "이였습니다.
12척의 배로 300여척이 넘는 대규모 왜군 함대와 맞서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울들목”의 조류를 사전에 정확히 파악해서 300여척의 왜군을 유인하여
“명량해협”의 좁은 물목으로 전투장소를 선택한 것도 중요한 판단이였구요
* 이 정도 상황에서는 애국이고 뭐고 무조건 열심히 도망을 가야 정상인데 이런 악조건에서도
지형을 이용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이다.
병졸 12명을 데리고 간신히 고지를 지키고 있는데 300명의 적군이 쳐 들어온다고 하면
참으로 환장하겠지만 이순신 장군은 불리한 상황을 가지고서도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적군을 물리칠 수 있는 전력과 용기는 중소기업이 본받아야 할 일인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 되었을 당시 조선 수군은 완전히 궤멸 상태였죠.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병력, 무기, 식량도 없는 개 털신세인 해군 사령관에 임명한 셈이지요.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최악의 악 조건 속에서도
신하된 자의 도리를 다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자 임금에게 글을 올립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으므로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면
왜군들의 진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싸울 수 있는 전선의 수가 적고, 미미한 신하에 불과하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왜군이 우리를 얕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면 죽는다"라는
비장한 자세와 각오를 강조했고
* 말이 그렇지 무능한 오너 밑에서 이렇게 일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런 유능한 지도자가 그 이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한민국에 슬플 뿐이다.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
“한 사나이가 길목을 지키면 천명을 두렵게 만든다”라는 말로
부하장수들의 사기를 높여주면서 분발을 촉구 했습니다.
국가에 충성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며
부하 장수들에게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언제나 가장 앞선 자리에서 “말”아닌 “행동”을 보여주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인물이기에
부하들은 그를 믿고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이상적인 지도자”였다.
* 권력을 잡은 후에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대는 위정자. 정치자금을 뽑기 위한 정치 놀음꾼.
들켜도 음해라고 소리를 치면서 떳떳한 모습. 다음에 또 나오면 또 표를 주는 우매한 인간들.
백성들은 그런 위정자를 믿고 대한민국 세월호에 올라탔는데 때가되면 정치꾼들은 도망가겠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칠천량해전 이후 충무공이 다시 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고 수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 120명이 다였다.
그러자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밀지가 떨어졌고,
충무공은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조정에 강력히 건의하였던 말이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勿令妄動 靜重如山)
(1592년 5월 7일.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경상좌우도 수군과 육군의 패배 소식으로 긴장하고 당황한 군사들에게
공포심과 전쟁경험 부족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여유와 냉철함을 가지라며)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生卽死 死必卽生)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9월 15일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나타내며.)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아무리 좌수사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나라의 물건을 마음대로 자를 수는 없다.”
(전라 좌수사가 객사에 사람을 보내어 거문고를 만들 오동나무를 찍어 오라고
고흥지방의 만호인 이순신에게 청하자 이렇게 말하고 거절했다고 한다. )
“장부가 세상에 나서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을 바칠 것이요,
만일 쓰이지 않으면 물러가 밭가는 농부가 된다 해도 또한 족할 것이다.”
* 적어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서 자질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깝도다. 이순신 장군을 복제하여 이 나라에 다시 내 놓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순신 장군이 군사 혁명을 일으킨다면 빙혼도 필부로서 무엇을 하더라도
혁명에 참여를 하여 대한민국을 확 바꾸어 버리고 싶다.
그래서 나쁜 놈/년들에게는 지옥을 보게 할 것이고 착한 사람들에게는 천국을 보여주고 싶다.
죽기 전에 그런 세상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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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1545∼1598)
조선 중기 무신. 발포수군만호를 거쳐 건원보권관, 훈련원참군 등을 지내고 사복시주부로 활약
임진왜란 발발중 1598년 노량해전에서 명나라 제독 진인(陳璘)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던 도중
유탄에 맞아 전사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생과 인연을 끊기 1분전...)
<이순신 함대 1차 출전 전과>
참전 전함 : 조선 - 27척
일본 - 옥포 35척, 합포 5척, 적진포 13척 등 총 53척
격침 : 조선 - 없음
일본 - 총 42척
전사자 : 조선 - 없음
일본 - 6.920여 명
부상자 : 조선 - 2명
일본 - 멀쩡한 왜놈이 별루 없을 정도?????
<이순신 함대 2차 출전 전과(당항포 해전 및 율포해전)>
격침 : 조선 - 없음
일본 - 총 69척(나포3척은 보너스)
전사자 : 조선 - 11명
일본 - 10,120여 명
부상자 : 조선 - 50여명(이순신 장군도 어깨를 다침)
일본 - 파악 불가능
<이순신 함대 제3차 출전(한산도 대첩)>
격침 : 조선 - 역시 없음
일본 - 주력전함 35척 포함 총59척
전사자 : 조선 - 약간명
일본 - 8,980여명 (400여명 한산도로 도망하였으나 결국 190명만 살아서 돌아감)
부상자 : 조선 - 약간명
일본 - 역시 세기 어렵다고 함.
<제4차 출전 연합함대>
격침 : 조선 - 없음
일본 - 100여척
전사자 : 조선 - 6명
일본 - 3,800명
부상자 : 조선 - 역대 가장 많은 25명
일본 - 역대 가장 많다고 함.
<통합> 조선의 격침 함대 0
일본의 격침 함대 359
출전 함대는 대략 조선 1 : 일본 7 의 비율
조선 해군은 이순신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남해안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임진년 5월 4일, 제 1차 출전 이래 총 4차에 걸쳐 17회의 크고 작은 해전을 전개하여
적선의 격침, 나포가 207척이었고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한 적선은 152척이었다.
또 왜병 33,780명을 격살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 해군은 단 한 척의 전선 손실도 없었고,
인명 손실은 전상, 전사자를 모두 합하여 243명에 그쳤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의 어떤 전쟁에서도 특히 해전에서는 이런 기록이 없었다.
적선 격침 및 대파 359대 0, 사상자 33,780 대 243.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조선 해군의 대제독 이순신의 이 불멸의 기록은 세계 해전사에 영원히 신화로 남을 것이다
그는 36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함대를 괴멸시킨 일본의 해군 영웅 도고 헤이마치로가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했을 뿐더러 세계적으로도 크게 인정받는 해군 제독이
바로 이순신 장군님이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등으로 워낙 친숙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님과 그 유명한 학익진 전법,
거북선을 모르는 분은 없겠지만 우리가 단순히 ‘임진왜란 때 왜구를 몰아내셨다!’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위대하시고 세계적 인물들로부터도 크게 인정받는 이순신 장군을
알리고 싶었네요.
게다가 세계 각국의 해군사관학교에서 이순신장군님의 전법과 전술을 배운다고 하네요
“나를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것은 몰라도 이순신과 비교하는 것은 황공한 일이다.
넬슨 제독이나 나는 국가의 전폭적인 뒷받침을 받아 결전에 임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런 지원 없이 홀로 고독하게 싸운 장수다.“
(도고 헤이하치로)
영국의 넬슨 제독(1785~1805)과 비교하여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도고는
"넬슨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가지고 싸워서 이겼다.
그러나 나와 나의 함대는 러시아 발틱 함대의 3분의 1규모로서 이겼다 ”며
결국 자신이 넬슨보다 더 위대하다고 답변하였으나 이어서 다른 기자가 그러면
조선의 이순신 제독하고 비교하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이순신에 비하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이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순신 제독이 얼마나 대단한 용장이셨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 준다
* 일본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
(러일전쟁 당시 함대를 포위하는 형태의 새로운 전술 방식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고
러시아함대를 괴멸시킨 주인공, 일본역사상 최고의 해군 제독 1848.1.27 ~ 1934.5.30)
* 전에 KBS1 역사 스페셜에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 장군 탄생 때 온다는거....
와키자카가 이순신장군을 알게된 건 한산도대첩 때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 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 건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튼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 명예를 중요시 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랄까 그런 묘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 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 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 중에 명장입니다.
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 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 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일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 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 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 번 이순신 장군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 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장군 탄생일 때 오는 가 봅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만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 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 번 싸워 스물 세 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 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빙혼>
이 시를 누구 썼는지는 모르겠다.
이순신 장군이 썼다고 하여도 아니면 어느 누군가가 썼어도 글을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저절로 숙연해지고 현실에 대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개새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말조차 형언한다는 것이 죄스러울 뿐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또는 자기 나라를 지켜 온 수많은 무인들이 있었다.
양만춘, 연개소문, 을지문덕, 계백, 강감찬, 임경업, 권율, 곽재우, 김시민 등
기타 수많은 무인이 있으나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는 무인 중에서 이순신 장군이
으뜸인 이유는 온갖 음해를 받고 악조건 속에서도 23전 23승을 이루었다는 데 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으면 일본은 순조롭게 조선까지 먹었을 터이고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들이 엄청 들어와 조선 반도를 니뽄의 부속국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 시방 한반도의 사람들은 벤또에 라멘을 담아 다니면서 단무지 엄청 씹어 먹고
와리바시로 이를 쑤시고 쓰메끼리로 머리를 앞머리 밀고 살지도 모를 터인데
목숨을 바치면서 구한 조선의 후신 대한민국은 훌륭하신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영도력으로
윤일병과 임병장을 만들어내는 업적을 열심히 쌓아 고위직으로 진급도 하는 나라가 되었다.
충무공이 다시 이 땅에 오신다면 단칼에 정신 나간 군바리들을 싹뚝..
첫댓글 현재도 그런 장군들이 있겠지요 너무 안된 부분만 조명하다 보니 그렇지요 ㅎㅎ우리나라의 실상이 칭찬에 약하다 보니 그런거 아니겠나요 ㅎ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제가 로또를 사는 이유가 <행복신문>이라는 언론사를 만들기 위함이지요.
더럽고 추하고 나쁘고 혐오스러운 기사보다는
기쁘고 신나고 즐겁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용기를 가지고 삶을 이겨내는
그런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행복신문"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