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만 있으면 집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그 친구에게 한국은 주소만 보고 집을 찾을 수
있는 인간은 우편배달부와 택배기사뿐이라고 설명을 해주어도 안 믿는 눈치
지나다니는 주민에게 물어도 역시나 어리둥절. 이제야 내 말을 믿는다. 다음 Host에게
전화를 하니 바로 근처 복수초등학교에서 튀어나와 그 친구를 인계해주고 돌아왔다.
삼일간 그냥 아무런 이야기나 서로 마구 해 대었다. 살인적인 실업률로 분노에 치를 떠는
프랑스 젊은이들. 독일이나 영국보다 심해서 거의 절망적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살인적인 세금 때문에 프랑스 회사들이 전부 외국으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의 이슬람 난민, 스리랑카의 타밀 문제, 인류문명, 베르나르 베르베르, 까뮈, 쌩뎅쥐베리,
장그르니에 등을 이야기 했던 것 같다.
현재 유럽은 종교는 단지 역사적 전통이나 유물일 뿐 오래전부터 형식만 남게 된 빈 껍데기뿐으로
일반 시민은 대부분 무종교인에 가깝다. 그가 체험한 남방 불교 승려들도 인생 살이에서 별로 할 짓이
없는 인간들이 머리를 깎고 승복만 둘렀을 뿐 백수를 면하는 직업에 불과할 뿐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있어 스님이 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냥 되고 싶어면 되고 말고 싶으면 말고.....
한 가지 그가 들려준 인상적인 이야기는 네팔과 티베트의 깊고 깊은 사찰과 승려들의 생활도
세속과 매한가지로, 승려들이 밤마다 페이스북 계정 같은 걸 만들어 놓고 밤새도록 단체로 채팅하는
걸 보고서 자기도 좀 충격을 받았다는........그들의 내밀한 생활도 세속과 똑같아져 있다는.
고로 어쩌면 수행이니 명상이니 운운하는 인간들도 어쩌면 이 세계의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나는 그의 가족 내력을 알고 싶어 아부지와 어무이가 어떤 사람이고 뭐하냐고 물었고 그의 가족
비사 한 가지를 들었다. 그의 행복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아름다운 누이가 정말이지 아무런
뚜렷한 이유를 지금도 찾아내기 어려운데, 꽃다운 열여덟 나이에 어느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그의 가족이 받은 충격. 그리고 이 친구가 세계를 전전하고 돌아다니는 까닭에는 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한 순간에 존재가 사라질수도 있는 것과 조금이나마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백인의 노랑머리와 파란 눈, 얍실한 입술에 호감과 관심을 기울이듯 이 친구의 눈에 동양 여자가 신기하게
보이는가 보다. 자기 눈에는 상당히 예쁘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씩 꼬들겨서 뭔가를 실토하게 하였는데
자기도 사랑하고 그녀도 그를 사랑하는 독일인 여인이 있는데 언젠가 그가 독일로 돌아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나
보다. 스물 둘이라고 한다. 또 은근히 살살 꼬셔 어딘가 숨겨 놓은 사진도 보여주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돌아 가지 않으려나 물었다. 자기는 절대로 가지 않을 작정이라고. 왜 그렇게 마음을 모질게
새겨 먹는 것이냐고....그 친구의 대답 왈. 이 세계 속의 여자는 민족과 나라를 불문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똑 같은 점이 한 가지 있는데 여자들의 사랑이란 사랑하므로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옹기종기 살고 싶어하고
많은 쾌락과 기쁨을 남자에게 주는데 그것이 나중에는 전부 두카로 변하는 것이라.
자기는 즐거움 보다는 오히려 고통 속에 남더라도 하나의 자유로운 바람, 정처없는 나그네, 머물지
않는 민들레 꽃씨처럼 사는 것이 그에게 진정한 행복을 준다고.
그래서 수도원이나 절로 들어가 승려가 되는 최적의 길을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어쩌면 채식, 절식, 수행, 자비수련 이 모든 게 그것을 예비하는, 그 모든 걸 감내하기 위한 자기나름대로의
훈련인 것 같다. 내가 그걸 보고서 어떻게 참고 있을 수 있는가? 파괴해 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게 또한 나의
천성이자 즐거움이라서.
해가 딱 넘어가고 나면 절대로 입안에 뭘 집어 넣지 않는 이 친구의 규칙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바로 고안해 내었다. 내가 피곤하고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디 김밥이나 국수라도 먹어야 당장 걷고
너가 머물 집을 찾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당연히 그가 자기는 괜찮으니 너는 사먹어라고 한다.
바로 걸려 들었다. 나는 내가 뭘 먹고 있는데 친구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내가 먹는 걸 빤히 쳐다 보면
목구멍으로 밥 한 톨 씹어 삼키기 어려운 사람이고 고백했다. 거짓말로 점심도 바빠서 안 먹었다.
너가 안 먹는 다면 나도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허기가 져 고틍스럽다.
한참 고민을 무지막지하게 하는 얼굴을 바라보고 속으로 킥킥 웃기는 했지만 국수나무집에 들어가
난 우동, 그는 메밀 소바를 시키고, 감자 고로케도 한 그릇 더 시켰다. 나를 처음 만나 엉겹결에
해물파전을 밤에 먹었던 것도 정말 큰일날 일인데 나때문에 소바를 먹게 되었다고.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처음과 끝은 본래 똑같은 것 아닌가 하는 농담을 했다.
그런데 은근히 그가 먹는 걸 보니, 너무너무 맛있게 먹는다. 무우즙과 와사비가 입맛을 댕기게 했는지.
어쨌든 그는 나를 만나 두 번씩이나 파계를 하고 말았는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파계할 수 있는지 그 요령 만큼은 타고 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