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일 연중 제13주간 (월) 복음 묵상 (마태 8,18-22) (이근상 신부)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8,19-20)
보금자리, 참 아득한 개념이다. 희랍어는 카타노스케시스, 좀 긴데, 매일 매일 곁에 있는, 그런 장소를 뜻한다. 포근하다. 사실 우리 삶의 목적은 어쩌면 보금자리를 찾는 것같다. 쉴 곳을 찾는 것. 두 발을 뻗는 곳. 아무런 걱정이 없는 바로 그 곳.
재미있는 것은 주님께서 그 곳을 찾을 수 없었다는 고백. 그에게 그런 곳이 없다니... 의아하다. 마음으로... 그러니까 마음의 평화 속에서 그런 분들은 장소와 상관없이 늘 평온하고, 늘 다리를 뻗을 수 있으리라 여기기 십상인데... 아닌가 보다.
그렇다 복음은 적나라하다. 그 분에게 그런 보금자리는 없다. 그러니까 성당이든 또 다른 어디든, 그게 종교적인 장소든 아니든 그런 보금자리는 예수에게도 없다. 그에게 희망을 두는 이들에게도 미안하지만 그런 보금자리는 없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파견하는 자도 못 누린 자리를 파견받은 자가 무슨 수로 누리랴.
여정, 순례, 예수와 함께 하는 길이란 보금자리랑은 좀 다르다는게 분명하다. 그러니 좀 속은 느낌이 아쉽기는 하지만, 여기서 선택을 하기는 해야한다. 계속 따를지 방향을 바꿀지. 예수의 길은 보금자리, 그러니까 살만한 자리. 늘 살려고 추구해왔던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조차 불편한 자리일터이니...
사실 이게 복음이기는 하다. 그냥 딱 지금 우리의 마음이 예수가 계속 걸어온 길이고, 우리와 함께 할 길이라는 확인이니... 이슈는 길이 아니라 그 길위에 선 자의 마음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vuxZh4myZp3xMnusU4LbPQ7SiegCTZicheyYUELcsWW7xMf2ZLBeK9Ra6EsaXpoz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