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애지시선 57권. 부산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 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을 통해 등단한 뒤, 시집으로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당나귀와 베토벤> 등을 상재한 바 있는 송유미 시인의 시집. 송유미의 이번 시집은 '기억의 현상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억은 인간 내면의 성서이며, 현존하는 신비한 체험의 영상이다.
출판사 서평
애지시선에서 송유미 시인의 신작 시집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가 2014년 12월 5일 발간되었다. 송유미 시인은 서울 신당동 출생이며, 부산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 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을 통해 등단한 뒤, 시집으로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당나귀와 베토벤』 『노도에서의 하룻밤(공저)』 등을 상재한 바 있다.
송유미의 이번 시집은 “기억의 현상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억은 인간 내면의 성서(聖書)이며, 현존하는 신비한 체험의 영상(映像)이다. 이러한 기억의 끄트머리까지 파고들면 누구나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어둠, 외로움, 그리움, 가난, 슬픔 등의 현현(epiphany)이 존재한다. 그렇다. 송유미의 시편들은 우리네 기억의 기저나 원점, 무의식의 원형, 선험적 세계를, 인간자체의, 사물 자체의 존재 증명(證明)으로 되돌려 놓는 시의 형식을 취한다. 즉, 세계의 모든 딱딱한 것들을 융해시켜 일체를 이루려는 태도를 취한다. 하여 불편하고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 속으로 안내하면서도 그 속에서 신산한 생명과 달빛 같은 환상을 동화적인 세계로 이미지화 낸다. 해서 그의 시편들은 슬프지만 아름답고 아프지만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이런 미덕은 [미군부대 옆 염색 공장 지붕 위로 날아간 까마귀― 1947년 12월 8일생], [1958년 3월 8일생―쥐똥나무], [1948년 4월 13일생―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등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그녀는 6. 25의 간접체험(이산가족 3세로서)들을 19-23 행 짧은 시행 속에,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러운 면면을 대하드라마처럼 담아내고 있다. 이는 치밀한 구성과 이미지 등 능숙한 시적 문법에 있다. [연산동 심우도], [중앙동 13번 출구의 사람들], [그 섬, 파고다], [석남꽃잠 대합실―꽃거지 아재] 등에서는 대상(사물)에 시인의 감정을 주입시키는 감정이입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내력과 원형을 돌려주는, 활물론(活物論)적인 수사 방식이다. 이 점이 이번 시집의 아름다운 특장이다. 한마디로 송유미 시인의 이번 시집의 밑그림은 우리네 삶의 실존적 연대이며 “통일에의 기원”에의 묵시록이다. 이러한 총체적 시적 개념 속에서, 나를 ‘나-너’ 따로 없는 우리네의 총체적인 ‘서정(정서)’의 토대를 건축한, 송유미의 시세계는 우리 시사의 진경의 한 면목을 잘 보여준다.
송유미 신간 시집은 두 갈래로 파악된다. 첫째 기억의 원형을 찾아내어 현재의 삶을 성찰한다. 둘째, 사회의 밑바닥 현상(인물) 등을 구사하는데 있어서, 풍부한 상상력에 의한 영상기법 사용이다. 해서 괴력과 같은 흡인력이 있다.
송유미의 시는 ‘시인’과 ‘화자’와 ‘대상(객체)’이 확연하지 않다. 즉 시적 자아와 세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이러한 세계내의 융화의 시관(詩觀)으로 우리네(변두리)의 이야기들을 산문적(동화적) 줄거리로 진행시킨다. 이에 서정성이 짙은 신선한 감각을 영상기법(혹 시나리오 기법)으로 이미지화한다. 이점이 송유미 시의 미덕이다.
그럼 한 편 읽어 보자. 왕래가 많은 지하철 역 주변 절 담장에 그려진 심우도(心牛圖)를 소재로 한 [연산동 심우도]의 경우, 나와 남, 중생과 부처가 그대로 하나가 되는 그 입전수수의 경지에 아주 자연스레 들어서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구걸하는 걸인이 시인인지 걸인인지 모를 정도로 하나가 되어 있다. 이는 시인의 몸 안으로 삭히려 했던 의지의 흔적이자, 이를 해소시켜서 대상에 대한 철저한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몸짓에의 탐색이다
송유미 시인의 동료, 김동원 시인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석간이요. 외치는 앉은뱅이 [유클리드의 산보-오늘도 소월의 비는 초량동 외국인 거리에 내린다]”의 경우, 비 젖은 삶의 비애와 몸 파는 “눈 푸른 러시아 여자”앞에 “가랑비처럼 서성거리는”남성들의 뒤틀린 성욕은 그녀의 애조 띤 대화 속에서 서정시 형태에서는 볼 수 없는 영상기법의 묘한 매력에 젖게 한다. (중략) 빌딩 처마 밑에서 환전하는 아줌마의 지나가는 행인1, 행인 2……에 조명”이 옮겨지는 시각의 이동과 카드 대출을 권하는 “아줌마 2에서 조명”이 잠시 꺼지다, “동동동 그들의 찻잔 속으로 떠오르는 은행잎 갚은 지폐 몇 장에 조명”이 다시 오프 되는 시각이미지의 다양성 추구는 한국 현대시가 빠뜨린 시나리오 시작법 형태의 전범으로 남을만하다.“
이러한 영상 기법의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가 슬픔도 유희의 공간으로 전환시켜준다. 슬픔이나 비애 따위가 지난한 삶을 위무하는 역발상적인 에너지로 환원된다. 이것이 이번 송유미 이번 시집의 흡인력을 높이는 촉매라 하겠다.
? 송유미 시에 대하여
도시 속에 유배된 타인의 예각과 울음을 먼저, 깊이 느낄 수밖에 없는 송유미는, 도시를 짜 맞춘 상징적 네트워크의 틈과 구멍들을 누구보다 먼저 느낀다. 그것은 시인이 스스로를 먼저 비웠기 때문이고, 바로 그 무게 없음의 역설적 무게가 지닌 체질적 물매로써 거부할 수 없이 거기에 다가서기 때문이다.
_김영민(철학자)
송유미 시인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된 이전부터 시를 써왔고, 여러 갈래의 실험적 글쓰기를 해왔던 시인에게 ‘시’란 과연 무엇일까.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시는 비논리의 세계입니다.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시 읽기에는 독자의 상상력이 시의 완성이지 않을까요.” 그렇다. 독자의 상상력은, 각자가 지니는 것이겠지만 ‘시’로써 촉발된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촉박하게 하는 시가 좋은 시이며, 송유미 시인 또한 이 점을 강조한다. 상상이 부족한 시대에 상상을 주문하는 상업자본의 광고논리와는 다른 독자의 상상력은 시인의 언어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낸다. 문화란 시인의 수가 늘어나고, 이에 수요가 급증하면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사람의 진정한 독자라도 있어서, 그의 삶이, 시를 감상하면서 터득한 세계에 대한 형안이 생길 때 문화의 불씨는 되살아나겠다.
_정훈(문학평론가)
송유미 시인의 시집에서 ‘슬픔’을 애써 끄집어낸다면 그 집(시집)은 서까래가 무너질 것이다. 서까래가 무너진 그 집에서 유리창이라도 깨진다면 대들보가 주저앉고 말 것이다. ‘살찐 슬픔’의 정서에 익숙해지다 보니 면역력이 생겨 세상사는 일, 또한 그리 힘들지 않게 여겨진다. 송유미 시인의 시편들의 미덕이 바로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는데 있지 않을까. 올올이 섬세한 언어가 뿜어내는 괴력이 위로가 된다. 퍼내고 퍼내도 슬픔이 마르지 않을 시인의 시의 우물에서 목을 축인다. 영상미를 갖춘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가 슬픔도 유희의 공간으로 전환시켜준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동안 내내 즐겁다.
_주경림(시인)
삶에 대한 완벽한 증언으로 이루어진 시편을 읽다보면 그녀는 혼탁한 세상을 밝히는 천 개의 월인(月印)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_이윤길 선장(시인, 소설가)
송유미의 ?유클리드의 산보?오늘도 소월의 비는 초량동 외국인 거리에 내린다?는 창작자의 시적 태도와 사유의 배경이 체험적이며, ‘관찰’과 시각적 이미지의 특징이 살아 있다. 시각이미지의 다양성 추구는 한국 현대시가 빠뜨린 시나리오 시작법 형태의 전범으로 남을 만하다.
_김동원(시인)
송유미 시인의 시들은 언어라는 역사적 이름들을 성찰하고 기록하는 동시에 이를 자신만의 시공간적 괘에 놓고 다룬다. 언어가 바로 사물이 되어왔던 것이 아니라 사물화되었던 과정을 탐색한다면 언어일 일종의 좌표처럼 기하학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시공간이 엮여진다. 그래서 그가 기하학적인 모델, 즉 새로운 시작(詩作) 방식을 통해 시공간의 산보(散步)를 감행하는 것은 기실 좌표만을 가지고 넓이를 가지지 않는 지표란 것이 사물로는 존재하지 않기에 모순적인 행위가 된다. 그러나 언어는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사물에 대해서 항상 그러한 ‘추상(抽象)’작용을 해왔다. 이미 추상화된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추상화 해왔던 시공간의 지점에서 출발한다면 모든 모순들을 껴안고 읽어내야 하는 새로운 ‘삶/시’의 방식을 살피고, 시인의 초대를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_김말남(문학평론가)
송유미의 이번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시집은 강한 흡인력이 있다. 기억의 끄트머리까지 파고들면 이런 부류의 어둠과 외로움과 슬픔이 똬리 틀고 있음에 공감케 하는 힘이 있다. 가령, 어둠은 내리는데 굴을 따러 갔다거나, 장에 나간 엄마가 안 돌아올 때 집에 혼자 남은 아이가 느끼는 감정. 우리네의 원초적 감성(영혼)을 잘 짜인 구성과 이미지 등 능숙한 시적 문법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 해서 이번 시집은 감성의 원형을 찾아 나서는 동화로 읽힐 수 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적확한 이미지들이 그런 탐색의 길을 깜박이며 비추고 있다. 감성적 동화이면서도 우리네 삶과 사회의 실존적 깊이와 휴머니즘적 넓이를 지니고 있다.
김종길 시인은 송유미의 시에 대해 “자연과학자나 분석철학자한테서 볼 수 있는 치밀함과 엄밀성으로 시를 빈틈없이 다정다감하게 짜나가는 시인이다.”고 평한 바 있다. 시인이자 연출가인 이윤택은 그녀의 시는 “손바느질로 촘촘히 뜬 파스텔 톤의 조각보”로 이야기했다. 최재봉 한겨레신문 문학전문기자는 송시인의 시의 바탕은 ‘울음’으로 보았다. (중략) 송유미 시인은 기억 속의 그 조개탄을 찾아가 다이아몬드 등 아름다운 보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조개탄은 “눈송이를 머리에 이고 달리는 화차”에서 흘러내린 것이다. 눈송이의 하얀색과 차가운 촉감의 이미지와 대비돼 조개탄의 까만색과 따뜻한 이미지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달리는 화차’의 이미지는 이 시 맨 처음에 드러난 “엄마의 재봉틀은 밤기차예요. 달달달 내 잠 속으로……”에서 볼 수 있듯 엄마의 재봉틀 소리에서 빚어진 것이다. 어린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 밤새도록 달달달 재봉틀을 돌리는 소리가 화차 이미지로 변용된 것이다. 이같이 적확한 이미지 창출과 변용이 어둡고 슬픈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현상해내면서도 보석처럼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_이경철(시인, 문학평론가)
? 시인의 말
“몇 가닥 푸른 물이 바위 앞으로 흘러가는가,
한 조각 흰 구름이 강물 위로 떠오네.”
고난과 절망의 시대를 살아오시면서도
늘 아궁이의 불씨를 다독이셨던
외할머님과 어머님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14년 초겨울 오동엽梧桐葉에서
송유미
목차
시인의 말
제1부_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
꽈리 피리 부는 날/ 1948년 4월 13일생/ 포플러나무집/ 잘가라, 검정고무신/ 항해/ 검은 염색공장 아이의 일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 땀방울 흐르는 말의 연애편지/ 미군부대 옆 염색 공장 지붕 위로 날아간 까마귀/ 돌 속으로 가라앉은 집 한 채/ 1958년 3월 8일생/ 메콩다방/ 유칼리 숲 물리치료실 2
제2부_ 개와 늑대의 시간
탱자의 편지/ 여섯 손가락의 자화상/ 석남꽃잠 대합실/ 중앙역 13번 계단 사람들/ 성냥개비 우물/ 그 섬, 파고다에서/ 물의 감옥/ 적천사 흰둥이 붓다/ 125…/ 성수역 뗏목/ 모텔 선인장에는 선인장이 없다/ 격포/ 개와 늑대의 시간
제3부_ 야곱의 사다리
까뮈의 우물/ 연산동 심우도/ 나비넥타이 맨 낙타/ 햇빛 얼레빗/ 송광사 수녀나무/ 눈 내리는 우파니샤드 숲/ 풀등/ 야곱의 사다리/ 새의 말을 하는 여자/ 유클리드의 산보/ 물 위의 집/ 물구나무 산보
제4부_ 나비의 땅
시가 되는 저녁/ 레바논 삼나무 숲에서/ 청계천, 푸른 달을 마시다/ 나비의 땅/ 땀방울 흐르는 말의 연애편지 2/ 밤에는 소일을 하고 오늘은 사람을 그린다/ 돌 속에 처음부터 부처가 있었네/ 1971년 9월 18일생/ 백담사에서 메콩강 물소리 듣다/ 정동극장 가는 길/ 빈터에게 전화를 걸 때
작가 소개
송유미
글작가
서울 중구 신당동新堂洞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소설전문가과정)을 졸업했다. [경향신문], [평화신문], [부산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시조, 아동극)에 당선되었다. 시집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당나귀와 베토벤』,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등을 펴냈다. ‘수주문학상’, ‘김민부 문학상’, ‘김만중문학상’, ‘김장생문학상’(아동문학) 등을 받았다. 계간 [시와 사상], [예술부산], [게릴라-관점21] 창간 편집장 외 [해운대 푸른신문] 편집위원 등을 역임, 현재 스토리텔러로 활동하면서, 시업에 몰두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