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첫 원동자의 개념을 받아들여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감독들 중에서는 근원적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인 신이 그리스도인에게 알려졌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방 교회 감독들에게는 성경에 나타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인의 불변하는 창조적 힘으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신학은 양립하고 있었는데 테르툴리아누스가 서방을 대표할 만한 신학자라면 동방을 대표할 만한 신학자는 클레멘트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상업의 중심지가 되도록 건립된 도시였지만 곧 지식인들의 도시로 유명해졌다.
이 도시는 그리스 철학과 고대 이집트 사상 그리고 동방의 종교와 유대교 등이 엇갈리는 교차점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부유한 도시들 중 하나가 되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을 갖춘 학문의 도시로서 면모를 뽐냈다.
또한 예수 당시를 전후해서 필로를 포함한 몇 지식인이 알렉산드리아를 유대교 신학과 그리스 철학 사이에 대화가 가능한 곳으로 만들었다.
언제 누가 이 도시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교는 벌써부터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의심 없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 높은 신학을 소개해야 했다.
그래서 판타이누스(Pantaenus)는 160년경 지식인들을 위한 교리문답학교를 세웠다.
판타이누스가 인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는 호기심을 끄는 보도 외에는 그에 관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클레멘트의 저서에 판타이누스에 관한 기록의 일부가 남아 있어 당시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2세기가 끝날 무렵 이 학교는 놀랄 만한 성장을 했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모체가 되었다.
아테네에서 태어난 클레멘트는 철학을 수학한 후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판타이누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판타이누스의 뒤를 이어 마흔 살에 교리문답학교 교장이 된 클레멘트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선두자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철학적 사변이 강했고, 신학을 학문으로 연구했으며, 철학용어를 많이 구사한 것이 다른 학파들과 달랐다.
알렉산드리아 지식인들은 플라톤보다는 스토아 철학으로부터 더욱 영향을 받은 클레멘트의 그리스도론에 대해 별로 호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클레멘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현존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 인류의 교사로 정의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율법으로 나타난 것처럼 그리스인에게는 철학으로 나타났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철학은 특정한 철학이 아니라 일반적 의미로서의 철학이었다.
이렇게 그의 이론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의 개념이 발견되는 것은 그가 철학의 논리로 신학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인생만이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했다.
그에게 믿음이란 열정과 희망이 있는 새 인생이었으며 그리스도는 믿음과 사랑의 세계에 속한 분이자 교회에 속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요 신학은 클레멘트에 의해서 발전되었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제자 오리게네스에 의해서였다.
클레멘트의 신학은 저서 『그리스인에게 주는 권면 Admonition to the Greeks』, 『교사 Instructor』, 『잡문집 Miscellanies』에 나타나 있다.
그는 징계와 벌, 훈계와 교훈을 통한 교육을 강조하며 인간의 교육은 일찍이 최종적이고 권위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한 바 있는 로고스에 의해서 성취되었다고 했다.
또한 그리스도교가 출현하기 전에는 예비적 단계가 필요한데 이 기간 동안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현시된 동일한 로고스가 사람에게 교육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했다.
로고스가 그리스인에게는 철학으로 유대인에게는 율법으로 선포된 것처럼 예비적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클레멘트는 3세기 초 그리스어로 여덟 권에 이르는 저서 『스트로마타 Stromata』 (카펫carpets이라는 뜻이다)에서 신앙과 그리스 철학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저서에서 그는 하나님이 그리스인에게 철학을 주어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비하도록 했듯이 유대인에게도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어 그리스도를 예비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클레멘트에게서는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로고스(또는 그리스도)의 씨앗을 그리스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가 이 땅에 오기 전 철학이 그리스인에게 의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해 주었다.
이제 철학은 진정한 종교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모든 훌륭한 것들의 근원으로서 구약과 신약성경을 통해 직접적인 방법으로 일부 나타나고 철학을 통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일부 나타나기도 한다.
클레멘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첫 원동자(the unmoved mover)의 개념을 받아들여 첫 원동자를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으로 보았다.
첫 원동자는 하나인 동시에 무한한 것으로 측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차원과 경계가 없고 형상과 이름도 없다.
신에게 명칭을 붙일 수는 없지만 만일 붙인다면 유일한 분, 선, 정신, 최고의 존재자, 성부, 하나님, 창조주, 또는 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명칭들을 모두 합할지라도 신의 전지전능함이 설명되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유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클레멘트는 그리스 신화를 냉소했는데 유스티누스와 달리 유머를 사용해서 비판을 가했다.
『그리스인에게 권고 2 Exhortation to the Greeks 2』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해학적으로 시위했다.
당신이 묘사하는 것은 영웅적인 제우스이다.
선량한 사람이여, 당신이 제우스로 하여금 여자의 속옷을 힐끔 훔쳐보도록 한다면 제우스는 몸을 드러내면서 수줍어 할 것이다.
지나치게 철학에 의존한다는 말을 듣자 클레멘트는 “어린이들이 가면을 보고 놀라듯이 그리스 철학에 놀라는” 허다한 그리스도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면서 말했다.
진리의 길은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시냇물이 사방으로부터 흘러 내려 하나의 커다란 큰 강을 이루듯이 모든 것이 한 진리로 유입된다.
많은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이 클레멘트로부터 수학했는데 그는 부유함을 과대하게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너는 너의 부유함을 무시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너로 하여금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는 인색한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