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싫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하지만 20미터 밖에 안되는 요 조그만 워터슬라이드는 만만할 것 같이 보이네요. 두려운 마음을 감추고 큰마음 먹고 타보니 딱 좋아요. 짧은 길이에 잠시만 눈을 질끈 감으면 금세 수영장 바닥으로 내려앉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 가평으로 올 때면 이 슬라이드를 꼭 한두 번씩 타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여우는 더 이상 슬라이드를 타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슬라이드가 무척 마음에 든 여우는 이 슬라이드를 사게 되었죠. 그리곤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워터슬라이드가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고~ 한번 탈 때마다 500원씩 받으면서 말이죠. 장사는 무척 잘 됐고 사람들은 계속해 슬라이드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여우는 무척 바빠졌어요. 줄을 서는 사람이 많을수록 여우는 더 바빠졌지요. 손님이 오기 전 워터슬라이드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아야 했고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위해 이곳저곳에 안전 표지판을 붙여야 했지요. 손님이 많아 매표소도 만들고 손님들이 오시면 길게 줄을 세워야 했지요. 해가 진 늦은 저녁 무렵 여우는 다시 워터슬라이드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내일도 분명히 많은 손님들이 오실 테니까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러려고 이걸 산 게 아닌데...." 마지막으로 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한번 다시 타볼까?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워터슬라이드만 닦고 있습니다. 달빛이 워터슬라이드를 닦고 있는 여우 모습만 처량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FUN FUN 한 워터슬라이드
가끔 본래의 뜻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것에 푹 빠져 버립니다. 즐거운 것이 일이 되어버리면 즐길 수 없는 법일까요? 천직인듯 즐겁게 일하시는 고수님들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존경을 보냅니다.
가평에서 펜션&글램핑 여우가달을사랑할때를 운영하면서 그저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그림 한 컷과 짧은 이야기로 써보려고 합니다.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블로그로 들어오시면 그동안 여우이야기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otmtech/221041947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