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피해 1천억대 육박
최근 2년 9,463건 발생… 대포통장 등 처벌규정 마련 절실
대부분 대포폰·대포통장 사용… 현실적으로 대책마련 한계
피해예방 홍보강화·발신자 조작 전화차단시스템 도입 절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 피싱)에 대한 검찰과 경찰, 금융당국의 근절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범죄가 갈수록 지능화 경향을 보이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행 형사사법시스템으로는 늘고 있는 보이스 피싱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가 어렵다는 지적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이에따라 전문가들은 대포통장 거래행위에 대한 처벌 외에도 범행에 이용되고 있는 대포폰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하는 등 법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 전화발신지가 중국과 대만 등 해외임에도 국내 번호로 조작되는 경우가 많은 범죄의 특성상 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발신자 조작 국제전화 차단 시스템’ 및 신속한 피해회복을 위한 제도 도입, 통합신고 전화센터 설립, 피해예방을 위한 홍보활동강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가짜 법무부 공문서까지 등장, 진화하는 보이스 피싱= 보이스피싱(Voice Pishing)은 음성(voice), 개인정보(private data), 낚시(fishing)를 합성한 신조어로 전화를 통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빼내 범죄에 사용하는 신종범죄다.
주로 보험료 환급, 신용카드 명의도용, 수사기관 또는 법원을 사칭한 출석요구 등으로 피해자를 속여 은행 현금자동지급기(ATM) 앞으로 유인하고 금융보안코드 입력 등을 빙자해 계좌이체를 유도한 후 즉시 이를 인출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2006년 6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범죄가 발생했다. 초기에는 국세청이나 연금관리공단, 법원·검찰,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해 돈을 송금하도록 해 이를 받아 가로채는 수법을 썼다.
이후 우체국을 사칭해 택배·등기·신용카드 반송 등의 이유를 들어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현금 등을 이체받는 사례가 발생하는가 하면, 가족관계까지 파악해 자녀납치나 유괴, 군입대자 사고 등을 가장해 돈을 가로채는 등 그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2007년 6월에는 당시 모 지방법원장이 아들이 납치됐다는 말에 6,000만원을 송금해 피해를 당하기도 했으며, 지난해 8월과 연말에는 각각 법무부 검사를 사칭한 범죄와 법무부장관의 직인까지 찍힌 가짜 공문서를 이용한 수법도 등장했다.
◇ 피해건수 9,463건, 피해액 940억원 달해= 최근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민생경제침해범죄의 실태와 대책(연구진 이천현 형사법연구센터장, 김지영·임정호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2006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모두 9,463건의 보이스 피싱 범죄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한 피해액은 무려 9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고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동안 고검민원실에 접수된 검찰사칭전화 상담건수는 무려 3만8,694건에 달했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보이스 피싱 피해신고 및 상담전화가 폭주해 민원상담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고 말했다.
◇ 현행 법체계로는 사전통제 불가능= 보이스 피싱 범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개인이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현재의 형사사법체계로는 적절한 대처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이 적발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형법상 사기죄와 보이스 피싱 범죄에 이용되는 ‘대포통장’ 거래행위 등을 처벌하는 전자금융거래법 정도다. 이에따라 홍보 강화 외에는 적절한 대처 방법이 없다는 푸념 섞인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실정으로는 국내에 있는 인출책이나 모집책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 외에 뚜렷한 단속방안이 없다”며 “그나마 이들이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사용하고 있어 단속에도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 개개인이 보이스 피싱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 통합신고센터 설립, 대포폰 처벌규정 마련해야= 이에따라 통합신고센터를 설립해 피해접수창구를 일원화하고, 대포폰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서울고검에서 ‘전화금융사기의 실태 및 대책’을 연구했던 김영문 대구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장검사는 “각 기관별로 분산되어 있는 신고전화를 통합해 접수창구를 일원화하는 등 통일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신고접수와 상담은 물론 범죄에 사용된 전화번호나 통장을 관계기관에 통보해 사용을 정지시키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는 특히 “대포통장 거래행위를 처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이유없는 전화양도행위에 대한 처벌규정마련도 시급하다”며 “대포폰은 보이스피싱 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에도 광범위하게 악용되고 있는만큼 처벌규정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외국에서 발신된 전화가 국내번호로 조작된 경우 이를 선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발신번호 변경전화임을 미리 경고하는 ‘발신자 조작 국제전화 차단시스템’도입, ATM을 통한 현금인출시 안면노출제도 시행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산적 피해를 신속히 회복할 수 있는 방안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천현 형사정책연구원 형사법연구센터장 등 연구진은 “현재 운용되고 있는 사기자금지급정지제도는 피해자가 사기범에게 속아 돈을 송금한 경우 인지 즉시 긴급하게 입금된 상대은행에 피해자금의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지만 피해자의 재산적 피해회복에는 한계가 있다”며 “일본의 ‘입금사기구제법’ 같이 피해자의 재산적 피해를 신속히 회복할 수 있는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이 보이스피싱 등에 의해 자금이 불입된 계좌를 동결하고 계좌명의인의 권리소멸절차를 거친 후, 피해자로부터 지불신청을 받아들여 피해회복분배금을 지불하는 방안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와함께 새로운 수법이 발생할때마다 사법기관과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홍보활동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