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맛을 찾아서](5)경기 이천 부래미 우렁마을 | |
마을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앞에는 일제 때 만들어졌다는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다. 그 사이에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지어진 듯한 오래된 농가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30가구에 70여명의 주민들 대부분이 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이 평범한 시골 마을은 그러나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목말라하는 것들을 지니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과 먹거리들, 그리고 어머니의 넉넉한 손맛이다. ‘부래미(富來美)’라는 마을이름처럼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 모두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가져갈 수 있는 곳. 농림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과 하이트맥주에서 공모한 ‘꿈의 마을’에 이어 경기도의 ‘슬로푸드 마을’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부래미 마을에서 나는 먹거리들은 모두 환경친화농법으로 재배되는 것들이다. 화학비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벌레가 먹어서 구멍이 쑹쑹 뚫린 채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을에는 또 축사가 없다. 수질 오염을 우려한 마을 사람들이 20여년 전부터 축사를 짓지 않았고 축사를 지으려는 외지인에게도 땅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 저수지에 엄지손가락보다 큰 우렁이가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도 마을의 청정환경 덕분이다. 우렁이는 최근 그 효능이 알려지면서 고칼슘·저지방의 대표적인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예부터 산삼·해삼·가시오가피·까마귀와 함께 오삼(五蔘)으로 불릴 정도로 효능을 인정받아왔다. 다른 어패류보다 10배나 많은 칼슘과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황달, 위궤양, 악성종양, 노인성 백내장, 버거스병 등에 탁월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약 오염으로 인해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우렁이는 20·30년 전만 해도 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물이었다. 물론 부래미 마을에선 지금도 우렁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것이다. 마을 이장인 이기열씨(59)는 “저수지를 손으로 훑으면 우렁이가 한움큼씩 잡힐 정도로 대량 번식하고 있다”면서 “저수지가 깨끗해서 우렁이가 딴 데보다 굵고 맛있다”고 말했다. 우렁된장·우렁쌈밥·우렁무침·우렁죽 등 우렁이 요리들은 모두 마을 저수지에 서식하고 있는 우렁이로 만든 것들. 양식이나 수입산이 아니다. 부래미 마을에선 오래전부터 우렁이를 주민들의 건강식으로 활용해왔다고 한다. 손님이 오면 내놓던 것도 우렁된장이나 우렁무침이었다. 지난해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고 나서 마을을 찾은 손님들에게 내놓으면서 입소문을 많이 탔다. 우렁이 요리에 사용되는 다른 재료들도 대부분 마을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마을에서 재배한 콩으로 만든 토종된장을 풀어 우렁된장을 만들고 밭고랑에 난 미나리를 그냥 따서 우렁무침에 넣는 식이다. 마을에서 마련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직접 딴 고추나 옥수수, 직접 캐낸 감자를 그날 점심상에서 맛볼 수도 있다. 마을 뒷산에서 직접 주운 도토리로 만든 도토리묵도 별미다. 모두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우렁무침을 한 입 먹어보면 청정 야채의 싱싱한 맛과 우렁이의 쫄깃쫄깃한 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김영국씨(43)는 “재료들 대부분이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것들”이라며 “딴 데서 사올 수도 있지만 100% 책임지지 못하면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슬로푸드’라는 게 별 거 있겠는가. 우리 농촌에서 정성껏 기르고 만든 음식이 바로 ‘슬로푸드’ 아닌가. 부래미 마을의 ‘시골밥상’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달 방한한 자코모 모욜리 슬로푸드 국제본부 부회장은 “슬로푸드 운동은 몸에 좋은 음식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문명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것을 지향한다”고 했다. 부래미 마을에서의 하루는 바로 그 슬로푸드 정신을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다. 〈이천/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사진제공/경기도청〉 -신선한 놀거리-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부래미 마을은 자연과 농심(農心)과 문화가 결합된 농촌 체험형 관광마을이다. 농사 체험과 생태 체험은 물론 전통문화 체험까지 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봄이면 냉이 등 봄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감자 캐기와 고추·옥수수 따기를 하는 식이다. 가을에는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도토리·밤 줍기를 하고 벼와 과일을 함께 수확할 수도 있다. 겨울에는 인절미·순두부 만들기, 장 담그기 행사에 참가하고 짚풀공예·널뛰기·썰매타기·연날리기 등을 한다. 농촌 체험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마을 뒷산에는 1시간 거리의 등산로가 마련돼 있어 가족들과 산책을 할 수 있다. 마을 뒤쪽에 조성중인 생태공원을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꿩·청둥오리·소쩍새는 물론 너구리나 고라니까지 볼 수 있다. 근처 저수지에서는 우렁이를 잡을 수도 있고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마을에선 도자기·염색·풍물교실도 열고 있다. 김영국씨가 운영하는 부래미 미술관에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고 김씨의 부인 남재분씨에게 황토 염색을 배울 수도 있다. 마을회관 근처 창고에는 궁글통·질마·씨아 등 전통 농기구가 전시돼 있다. 3인 기준 2만4천원에 농가에서 민박을 할 수 있고 단돈 4,000원에 전통 시골밥상을 맛볼 수 있다. 마을에서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간장 등을 사서 농가 장독에 넣어 땅에 묻어둘 수 있고, 배나무를 분양받을 수도 있다. 부래미 마을은 서울에서 1시간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중부고속도로 일죽IC에서 빠져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장호원 방향으로 간다. 약 8㎞ 정도 가서 383번 지방도로를 타고 율면 쪽으로 간다. 율면초·중·고등학교를 지나 3분 정도 가면 좌측에 ‘부래미 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031)643-3233 -순수한 먹거리- ◇직접재배…시골밥상 부래미 마을 ‘시골밥상’의 원칙은 직접 재배해서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밥상에 오르는 쌀밥은 마을에서 생산된 이천쌀. 시금치·취나물·두릅 등 나물무침도 그날 뜯어서 바로 만들어 내온 것이다. 너무 맛있어서 쌈장만 밥에 비벼 먹기도 한다는 우렁쌈밥도 마찬가지. 마을에서 만든 토종된장에 청양고추·마늘·파·들기름 등을 넣고 끓인 뒤 우렁이 살을 넣고 다시 끓여서 쌈장을 완성한다. 인공조미료는 조금도 넣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쌈장을 마을에서 생산된 쌀로 만든 기름진 밥에 얹어 역시 마을에서 재배한 상추·시금치·열무·배추·쑥갓·참나물 등에 싸서 먹는다. 우렁무침은 일단 우렁이를 통째로 뜨거운 물에 데쳐서 살을 빼낸다. 미나리·쑥갓·오이·당근·양파·마늘·파 등과 함께 고추장·설탕·참기름·생강·식초를 넣고 버무리면 된다. ‘손맛’이 더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농가에서 제공하는 시골밥상은 간단하다. 반찬은 5가지 정도. 인근 마을에서 생산한 돼지고기로 만든 볶음요리나 생선구이가 첫째. 여기에 마을 야산에서 캐낸 산나물로 만든 산나물무침, 오이무침, 김치 등이 따라붙는다. 어묵조림이나 계란말이, 마늘 장아찌나 고추 장아찌도 나온다. 국은 시금치·배추·근대 등을 넣은 된장국이다. 4,000원이면 맛볼 수 있다. 우렁무침이나 우렁쌈밥은 1만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