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지오의 관리]
1. 모든 관리 기관에 적용되는 사항
1. 레지오의 관리는 해당 평의회가 담당한다. 평의회가 관할 지역 내에서 수행하는 임무는 레지오 마리애의 일치를 확립하고 본래의 이념을 수호하며, 레지오 마리애의 공인 교본에 명시되어 있는 레지오의 정신과 규칙 및 관례를 보존하고 조직을 확장하는 일이다.
레지오의 발전은 해당 평의회가 얼마만큼 노력을 쏟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2. 모든 평의회는 정기적인 회합을 가져야 하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의를 열어야 한다.
3. 평의회의 기도문, 제대 차림 및 회합 순서는 쁘레시디움의 경우와 동일하다. 다만 평의회는
(가) 회의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고
(나) 상훈 낭독이 없으며
(다) 비밀 주머니 헌금은 임의로 결정한다.
4. 평의회의 으뜸가는 의무는 바로 위 상급 평의회에 충성을 바치는 일이다.
5. 어떠한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도 해당 상급 평의회 또는 꼰칠리움 레지오니스의 정식 허가와 관할 교구장의 인가 없이는 설립할 수 없다.
6. 관할 교구장 및 꼰칠리움 레지오니스는 기존 쁘레시디움 또는 평의회를 해체할 수 있는 권한을 공동으로 보유한다. 해체된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는 그 순간부터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일부분이 아니다.
7. 각 평의회는 관할 교구장이 임명하는 영적 지도자가 있어야 하며, 그 임기는 임명권자의 재량에 따른다. 영적 지도자는 평의회에서 제기된 도덕이나 신앙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해서 결정할 권한을 지니며, 또한 임명권자의 재가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모든 의결 사항에 대한 승인을 유보할 수 있다.
영적 지도자는 평의회의 간부이다. 따라서 그는 레지오의 모든 정당한 권위를 옹호해야 한다.
8. 각 평의회는 또한 단장, 부단장, 서기, 회계를 두어야 하며, 바로 위 상급 평의회가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경우에는 다른 보조 간부를 둘 수 있다. 간부는 3년을 임기로 선출하는데, 동일 직책에 한해 재선출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동일 직책을 연이어 6년을 초과하여 맡을 수는 없다. 간부가 어떠한 이유로든지 첫 번 3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퇴임하는 경우, 그는 퇴임하는 날로써 3년의 임기를 마친 것이 된다. 그가 퇴임한 첫 3년 임기 중의 남아 있는 기간 동안 동일 직책에 다시 선출되는 경우, 그는 두 번째 3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 된다. 연임한 간부가 그의 두 번째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퇴임하는 경우, 그는 퇴임하는 날로써 두 번째 3년 임기를 마친 것이 된다.연임한 간부는 반드시 3년이 지난 후라야 동일 평의회의 동일 직책에 선출될 자격을 갖게 된다. 동일 평의회의 다른 직책이나 다른 평의회에서 간부로 선출되는 경우에는 이 3년의 간격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 평의회의 간부는 반드시 쁘레시디움의 행동단원이어야 하며, 상훈을 준수해야 한다.
9. 평의회가 승격되더라도(이를테면, 꾸리아에서 꼬미씨움으로 승격되는 경우라도) 기존 간부의 임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10. 평의회의 간부는 해당 평의회의 월례회의에서 평의회 의원들(즉, 직속 쁘레시디움 간부, 직속 평의회 간부 및 해당 평의회 간부들)이 선출한다. 모든 레지오의 행동단원은 소속 평의회의 간부로 선출될 자격이 있다. 해당 평의회의 의원이 아닌 단원이 간부로 선출되면, 그는 직권에 의한 의원이 된다. 선거의 결과는 바로 위 상급 평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일단 선출된 단원은 승인을 받을 때까지 간부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11. 평의회는 의원들에게 선거의 실시와 후보자 추천에 대해서 반드시 사전에 알려야 하며, 가능하면 그 전 회합에서 알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후보자가 반드시 해당 직무를 확실히 알고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2. 후보자가 적절하다는 의견을(물론 조심스럽게) 발표하는 것은 허용된다. 또한 평의회의 간부들이 특정 후보자가 적절하다고 의견 일치를 보았을 경우에는 그를 공천한다고 발표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공천이 다른 후보자의 추천을 막거나 선거를 올바로 실시하는 데 나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13. 선거의 방법은 비밀 투표이며 그 진행 절차는 다음과 같다.
선거는 직책 순위대로 각기 별도로 실시한다. 각 후보자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동의(動議)가 있어야 하며 재청(再請)이 뒤따라야 한다. 후보자가 한 명인 경우에는 물론 투표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 두 명 이상의 후보가 동의되고 재청이 있을 경우에는 투표를 실시 한다. 평의회 출석 의원 중 투표권을 가진 의원(영적 지도자 포함)에게 투표 용지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평의회 의원에게만 투표권이 있으므로 자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각 의원은 마음속으로 정한 후보의 이름을 투표 용지에 기입한 후, 잘 접어서 선거 관리 위원이 걷도록 한다. 투표 용지에 투표한 의원의 이름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
집계 결과 후보자 중 한 사람이 절대 다수 표를 얻은 것으로 밝혀지면 그 후보자가 당선되었음을 선언한다. 절대 다수 표란 다른 후보자들이 얻은 표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표수를 말한다. 그러나 절대 다수 표를 얻은 후보자가 없으면, 집계 결과를 발표한 후, 같은 후보자들을 놓고 재투표를 실시한다. 재투표 집계 결과 역시 절대 다수 표를 얻은 후보가 없는 경우에는, 표를 가장 적게 얻은 후보자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자들을 놓고 다시 한 번 투표를 실시한다. 만일 이 세 번째 투표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못한 경우, 최소 득표자를 차례로 제외시키면서 투표를 거듭 실시하여, 한 후보자가 절대 다수 표를 얻을 때까지 계속한다.
영신적 단체의 간부를 뽑는 선거라고 해서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선거는 엄격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실시해야 하며 투표지의 비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평의회 회의록에는 간부별 선거 실시 상황을 충실히 기록하여 상급 평의회가 간부 승인 신청서를 검토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거 실시 기록에는 (후보자가 단일 후보가 아닌 경우) 후보자별 동의자 및 재청자의 이름과 득표 수를 기재해야 한다.
14. 평의회에 보내는 쁘레시디움의 대표는 간부들이며, 바로 위 상급 평의회에 보내는 평의회의 대표 역시 그 평의회의 간부들이다.
15. 경험에 따르면, 상급 평의회는 먼 거리에 있는 소속 평의회에 대한 감독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통신원을 임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통신원은 담당 평의회와 주기적으로 접촉하며 매월 접수하는 보고서를 토대로 필요한 때에 상급 평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통신원은 상급 평의회 회합에 참석하여 의사 진행에 참여할 수는 있으나, 해당 상급 평의회의 의원이 아니므로 투표권은 없다.
16. 단원 또는 단원이 아닌 사람들도 평의회의 허가를 얻어 회합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으나 투표권은 없다. 참관인은 회합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17. 레지오의 평의회는 꾸리아, 꼬미씨움, 레지아, 세나뚜스 그리고 꼰칠리움 레지오니스가 있다.
18. 각종 평의회의 라틴어 명칭은 해당 평의회가 수행하는 기능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성모님은 레지오의 모후이시다. 성모님은 당신의 레지오의 용사들을 영광스러운 싸움터로 불러 모아 싸움을 지휘 격려하시며 몸소 진두에 서서 승리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모후께서 당신의 특별한 평의회, 이른바 레지오 마리애의 세계 평의회인 꼰칠리움이 현실적으로 당신을 대표하고 당신의 권한을 대행하게 하여 다른 모든 레지오 관리기관을 감독하도록 마련하신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조치이다.
지역 평의회는 실질적인 대표 기관이며, 평의회가 상급으로 갈수록 대표성이 약해진다. 그 이유는 광범한 지역의 대표로 구성되는 중앙 평의회의 정기 회합에 평의원들이 전원 참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꾸리아, 꼬미씨움, 레지아 및 세나뚜스라는 명칭은 각 조직체별 특성과 지위를 나타내며, 각기 관할하는 지역의 크기를 알맞게 표현하고 있다.
19. 상급 평의회는 자체의 고유 기능과 더불어 하급 평의회의 기능을 병행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세나뚜스는 꾸리아로서의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두 평의회의 기능을 병행시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대개 같은 단원들이 상급 평의회와 지역 평의회 양쪽을 관리하는 일에 관계하고 있다. 따라서 한 번 회합으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게 된다면 그만큼 단원의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다.
(나)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상급 평의회 의원들은 흩어져 있는 넓은 지역의 대표자들이므로 상급 평의회가 반드시 정기적으로 열어야 하는 월례회의에 항상 전원 참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 결과, 소수의 열심한 단원들이 무거운 책임과 많은 업무를 떠맡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업무가 무성의하게 다루어지거나 아예 다루어지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로써 레지오는 중대한 손상을 입고 만다.상급 평의회의 기능을 하급 평의회의 기능과 합치게 되면 항상 높은 평의원 출석률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하급 평의회의 평의원들은 하급 평의회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할 뿐 아니라 상급 평의회의 업무에도 흥미를 갖고 배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레지오의 관리, 확장, 행정 업무 등 상급 평의회의 중요한 제반 분야에 그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이 방법은 작은 지역 평의회에 불과한 조직체에 그보다 훨씬 큰 지역의 레지오 조직을 관리하도록 맡기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반론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오해일 따름이다. 지역 평의회는 그 지역을 관할하는 상급 평의회의 핵심이며, 모든 평의회의 간부들은 상급 평의회의 월례회의에 참석할 의무가 있고 또한 최선을 다하여 이 의무를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상급 평의회를 연간 네 번 정도의 회합만으로 별도 운영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로써 평의원들의 높은 출석률을 보장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또한 이 대안이 평의회 관리에 유익하다고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월례회의 간격이 길어지면 평의회는 다만 명목상으로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의원들은 얼마 안 가서 책임 의식이 무디어지고 평의회 업무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된다.
더구나 띄엄띄엄 드물게 회합을 열게 되면 평의회의 월례회의라기 보다는 하나의 행사처럼 되어 버려 지속적인 관리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사업의 운영과 문제점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으로 가까이 느끼는 것이 관리 능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20. 레지오 단원은 누구라도 자신이 속한 꾸리아나 또는 어느 상급 평의회와도 개인적으로 통신을 교환할 수 있다. 평의회는 이러한 통신 사항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며,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하급 평의회의 입장과 권리를 존중하면서 처리해야 마땅하다. 단원은 자신이 속한 조직체, 곧 쁘레시디움이나 또는 꾸리아를 통하여 상급 평의회와 통신하는 것이 정상적인 계통이므로 이를 벗어나는 것은 신의 없는 행위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간부들이 상급 평의회에 보고해야 할 사항을 때때로 움켜쥐고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통신 수단이 열려 있지 않는 한 해당 상급 평의회는 알아야 할 일을 알지 못하게 된다. 각급 평의회는 관할 지역 내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알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 없이는 평의회를 적절히 운영할 수 없다. 따라서 상급 평의회의 이 '알 권리'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21. 레지오의 모든 기관은 바로 위 상급 기관에 헌금할 의무가 있다. 이에 관하여는 제34장 [쁘레시디움 간부들의 임무]와 제35장 [자금]을 참조하기 바란다.
22. 레지오 평의회의 본질은 그 업무와 문제들에 대하여 솔직하고 자유롭게 토의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평의회는 단순히 감독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라 간부들을 교육하는 학교이다. 그런데 만일 아무것도 논의하지 않거나 레지오의 원리나 이상 등에 관계되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육이 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러한 논의는 모든 의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떠한 평의회도 불과 몇 명의 배우가 말없이 쳐다만 보는 관객을 상대로 흥행을 하는 극장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평의회는 참석한 평의원 전원이 기여를 할 때에만 그 기능을 온전하게 발휘한다. 그러므로 평의원이 평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몫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평의원은 평의회의 발전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의회에서 남의 발언을 들으면 얻는 것은 있겠지만, 막상 자신이 평의회에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매사에 적극성을 잃으면 기억력마저 무디어진다는 심리학적인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평의회에서 남의 말을 듣기만 하는 평의원은 아마도 마음이 텅 빈 상태로 돌아갈는지도 모른다. 평의회에서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것이 습관화된 평의원은 사람의 뇌나 몸 안의 활성화되지 못한 세포와 같아서, 인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대주지 못하고 존재 목적을 거부하여 결국 생명마저 위태롭게 하는 세포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레지오의 기관을 그러한 위험에 떨어지게 한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퇴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퇴보의 현상은 즉시 번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평의원도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평의원은 단순히 출석해서 남의 발언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발표하여 조직체가 활성화되도록 힘껏 공헌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평의원은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발언해야 한다. 이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불필요한 생각들의 방해로 발언하려는 마음이 꺾이고 만다. 그러나 이런 주저하는 마음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며, 레지오가 단원들에게 어떠한 경우에나 요구하고 있는 용기가 바로 이때에 그 일부나마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즉, 모든 평의원들이 발언하면 회합 시간이 모자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실제 상황에 부딪쳤을 때 해결하면 된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그 반대편에 있다. 이를테면 몇 안 되는 목소리 큰 평의원들만 발언하고 대다수의 다른 평의원들은 토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의 침묵이 때때로 소수의 웅변에 의하여 가려지고 만다. 더구나 단장이 발언을 지나치게 독차지함으로써 다른 평의원들의 발언을 억눌러 버리는 일이 너무 잦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발언을 하여 다른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도록 만드는 현상을 크게 경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어떤 단장은 자기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죽은 듯한 침묵만 흐르게 될 것이라고 변명한다. 아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침묵의 순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침묵이야말로 평의원들로 하여금 자신도 이제 무언가 발언을 해서 평의회에 활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 침묵의 순간은 다소 소심한 평의원들로 하여금 입을 열어야 할 때이며, 무엇을 이야기한다 해도 결코 다른 사람의 발언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시켜 주는 순간이 된다.
단장 자신은 단 한마디라도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고한 신조로 삼아야 한다. 단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이 어떻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23. 회의가 잘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발적인 발언을 삼가야 한다. 무턱대고 질문을 하지 말고 답변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면서 질문해야 한다. 또한 어려운 문제를 제기할 때에는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함께 보여야 한다.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되어 있는 발언은 파괴적인 침묵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24. 어떤 레지오 회합에서나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충분한 토의를 거쳐 찬성을 얻어내야 하며, 당장 표결에 부쳐 결판을 내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을 성급하게 결정하면 소수의 진 편과 다수의 이긴 편으로 갈라지게 되고 반감이 생겨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굳어 버리고 만다. 이와는 반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검토하고 충분한 의견 교환을 거쳐 일을 결정하면 모든 이가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신으로 일이 처리될 때, 진 편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끼며 이긴 편 역시 승리와 함께 잃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의견의 차이가 드러났을 때, 틀림없이 다수 편에 든다고 생각되는 평의원들은 끝까지 인내심을 보여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으며, 따라서 표결에 의한 성급한 결정이 중대한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다음 회합 때까지 그 결정을 미루고, 또한 미룰 수 있는 한 최대로 미루어서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평의원들로 하여금 기도를 통해서 해답을 구하고 모든 각도에서 검토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승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건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겸손하게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만 처리한다면 대개의 경우 만장 일치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25. 의견 차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쁘레시디움에서조차 조화를 이루도록 조심해야 한다면, 평의회에서는 얼마나 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하겠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평의원들은 대개 서로 가깝게 일해 본 경험이 없으므로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나) 의견의 차이는 늘 있는 일이며, 그것을 조정하는 역할이 바로 평의회에 주어진 주된 임무 중의 하나이다. 새로운 사업을 검토하고 단원의 수준을 높이는 일 또는 규율에 관련된 제반 사항이나 개선해야 할 점 등을 다루는 모든 안건은 불가피하게 의견 차이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으며 또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다.
(다) 평의회의 의원 수가 많다 보면, 일은 훌륭하게 잘해 내지만 '고집쟁이'로 불릴 만한 평의원들이 얼마간 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런 평의원들은 회합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들은 웬만큼 능력이 있으므로 추종자도 거느리고 있다. 그들은 회의 도중에 불쾌한 논쟁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상호 우애의 정신을 실천하고 모든 업무를 질서 있게 처리하여 산하 조직체에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평의회가 오히려 나쁜 표본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결과 인체의 심장과도 같은 평의회가 치명적인 독(毒)을 뿜어 내어 전체 레지오의 혈관에 흘려 보내게 되는 것이다.
(라) 그릇된 충성심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이웃 평의회나 상급 평의회가 권한을 남용한다든지 또는 일 처리가 올바르지 못하다는 식의 공격적인 발언이 그것이다(이런 종류의 공격 거리를 만들어 내어 남의 공감을 얻어내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마)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각 개인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격정이나 고집, 자만심, 불신감 등이 불타오르듯 강렬해져서 모임의 한 구성 요소처럼 되어 버린다. 신자들만의 종교적 집회에서조차도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면 얼마 안 가서 인간 본연의 약점을 드러내고 만다. 그리하여 그들이 보여 주는 정신이나 행위, 발언하고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등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지녀야 할 순박함이나 솔직함과는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영성 학자들이 말하는 '세속'이며, 우리가 이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이다. 이런 세속적인 모습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신분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민족, 직업, 평신도, 성직자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인간 집단이나 파벌 안에 드러나 있다."(뉴만 / Newman : 세속의 모습) 이 글은 참으로 놀랍긴 하지만 매우 깊은 사상가에게서 나온 말이다.
나지안스의 그레고리오 성인(St. Gregory Nazianzen)도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 성인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된다. 즉, '세속'에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 우리가 지닌 사랑은 약하다. 이렇게 강하지 못한 사랑은 소수의 사람들 안에서는 연고 관계, 친밀성, 우정 등으로 어느 정도 메울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 수가 많아지고 비판과 의견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우리가 지닌 허약한 사랑은 지극히 불행한 결과를 맞는다. 베르나르도 성인(St. Bernard)도 "하느님과 사랑은 오직 하나이며 동일체이다. 사랑이 깃들지 않은 곳은 육신의 격정과 욕정이 지배한다. 사랑의 불로 타오르지 않는 믿음의 횃불은 우리가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되는 순간까지 계속 타오르지 못할 것이다. …… 사랑이 없는 참된 덕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레지오 단원들이 위에 인용한 성인들의 경고를 읽고 나서, '그런 일이 우리들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해도 그 효력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회합에 참석한 단원들이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고 초자연적인 믿음의 정신이 약해지면 그러한 일은 항상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코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보면, 로마 군단은 장거리 진군을 할 때 천막을 치고 참호를 파고 용의주도하게 경계 태세를 갖추지 않고서는 결코 야영하지 않았다. 단지 하룻밤만을 야영할 때에도, 설사 적의 진지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라도, 심지어는 평화시에도 치밀하게 대비했다. 레지오 마리애도 이처럼 엄격한 규율을 확립하여 '세속' 정신이라는 위험한 적이 레지오이 진지(회합)를 침략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랑을 해치는 말씨나 태도를 몰아내고, 기도의 정신과 레지오의 신심으로 가득한 회합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적의 침략을 막는 방법이다.
"은총의 세계에도 자연 본성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애정이 있다. 즉, 은총은 초자연적인 사랑과 열성과 희망과 기쁨과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인간 본성적 삶보다는 은총에 의한 삶을 살아가신 성모님께는 언제나 이러한 은총의 '느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은총의 삶 속에 잠겨 있다기 보다는 단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신자들과는 달리 동정 성모님은 한평생 늘 은총 속에 계셨다. 아니, 은총 속에 계셨다기 보다는 은총의 삶을 살아가시면서 이 세상에 사셨던 동안 그 삶을 완성하는 가운데 서 계셨다."(지비외프 / Gibieuf : 십자가 밑에서 고통받는 성모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