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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1-1편]
본래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 | 본유금유(本有今有) (33:11)
보통 우리들에게는
머릿속에 항상 무의식의 흐름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가 온전하게 깨어서 살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팎의 나의 생각 감정과
또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온전히 깨어서 다 볼 수 있는 힘이 지금은 없어요,
가려져 있어요.
가려져 있는 핵심은
그러니까, 여러분, 내가 지금 무엇에 가려져 있는가?
왜 내 눈이 모든 걸 다 못 보고 있는가?
모든 걸 다 보는 것은 천안(天眼)이라 그러잖아요.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千手天眼) 그러잖아요.
천안이라는 말은 안팎에서 일어나는 걸 다 본다는
그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다 보면 다 대응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톨레가 무의식 상태가 아니라
내가 의식상태다 하는 말이나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이다.'
눈이 천 개라서 다 보고
그리고 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손이 가서 도와주고.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
인간이 자기가 타고난 성품을 온전히 쓰고 사는 상태일 텐데
보통 우리들은 눈이 장막에 가려 있다.
톨레가 '장막'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래서 화두 들고 집중하는 화두 집중수행을 하잖아요?
그때 제가 자주 쓰는 말씀드리는 게
'이 집중의 힘을 가지고 이 정신적인 벽, 정신적인 장막을 뚫어서
본성을 한번 봐야 됩니다.'
이렇게 제가 표현하잖아요.
그때 집중하라고 제가 하잖아요,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집중하라고.
그러니까 저의 경험도
집중했을 때 그걸 한번 뚫었다는 거예요.
그걸 장막을 뚫었다하든지
아니면 무의식의 흐름이 한번 끊어졌다고 하든지,
하여튼 그 본성을 찾아서 가다 보면
자기가 지금 눈이 장막에 가려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한번 알아채는 거죠.
그 장막,
우리 눈을, 심안을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100% 다 못 보게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있는 우리 안에서 흐르고 있는 무의식의 흐름,
그 내용은 뭐냐면
정확히 말하면 분별심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장막이라는 것은 가린다는 거잖아요.
여러분께서 자기를 한번 돌아보세요.
지금 내가 어떤 느낌이냐면
'내가 이렇게 있고, 이 세계가 있다.'
그런 느낌이 있으면
나와 세계 사이에 장막에 있는 거예요.
그 장막이 뚫려 버리면 (나와 세계 사이에)~
이 분별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여러분, 분별이라고 하는 말은
나와 세계 사이를 나누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 나누는 것이 벽이라는 거예요.
벽 혹은 장막
그거를 우리들이 가지고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일반인들은!
그걸 한번,
분별심을 극복하는 것,
그리고 분별심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무명(無明)이에요.
무명의 내용은 분별심.
분별심이 미혹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불교에서는 무명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창세기에 선악과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예요.
3:49
그분이 유대교를 소개하면서
그분 이야기 중에 에덴동산에 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하나는 본질인 생명의 나무였고
하나는 현상인 이 분별, 분별의 나무였는데
그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현상계로 떨어진 거죠.
근데
기독교에서는 이거를 원죄라고 보지만
유대교에서는 이걸 죄라고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건 인간의 선택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공부도
본질을 깨닫는 것을 무심(無心)이라고 하고
그 입장에서 이 현상을 잘 살아가는 것,
천수천안을 가지고 잘 살아가는 평상심이라고 할 때,
선에서는 무심도 한 겹이 막혀 있다,
한 겹을 더 뚫고 나가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본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그 지혜를 가지고 현상에 나와서
현상에서 보살행을 하면서 남을 도와주면서 잘 살아가는 것,
그게 평상심입니다.
그래서 '무심보다도 평상심이 한 수 더 위다.'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이 본질을 깨닫자고 하는 이유는
본질을 깨달아서 본질의 입장에서 살자가 아니고,
'그 본질의 힘을 가지고 현상에서 똑바로 깨어서
안팎의 내외가 명철하게 안과 밖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든 일에 아주 명(明), 의식적으로 깨어서 다 잘 살펴서
일을 잘 처리하는 그런 삶을 살자.'
하는 게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본질에 가서 머무는 게 아니라 돌아 나와서 현상에서 잘 살자.'
이거거든요.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도와주면서.
그러니까 그렇게 본다면
그 분별 자체가 문제가 꼭 나쁜 건 아닌데
문제는 무심을 거쳐서 평상심을 해야 되는데
지금 우리는 무심은 잃어버린 상태라는 거죠.
본질을 잃어버리고 현상계에 떨어져서
현상계에서 이 벽, 분별의 벽,
여러분! 분별한다는 것은 나눈다는 말이고
나누면 그 사이에 벽이 있다는 거예요.
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나와 남, 좋은 거 나쁜 거,
크고 작은 거, 남자 여자, 뭐 우리나라 다른 나라,
온갖 이 분별의 벽이 우리는 습관화되어서
우리의 머릿속에 이 습관이 되어 있는 거, 분별심,
그래서 그 분별하기 때문에 분별해 놓고 좋다 나쁘다 하니까
좋은 것에 홀려 가지고 그걸 집착하다 보니까
현상계에 떨어져서
집을 나와서 헤매고 있는 '집 나간 거지' 같은 상황,
그게 지금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것의 내용이다~ 이거죠.
이걸 바로 잡는 게 지금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7:01
그래서 하여튼
톨레의 경험과 저의 경험하고 이런 걸 다 비춰보면
결국에는 핵심은 뭐냐 하면
'지금 이 순간 내 정신이 나가 있는가? 정신 차려 있는가?'
이거 하나인 거예요.
'정신 차려 있다!'
이 말은 내가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식이 깨어나 있어서 다 살펴서 처리를 하고 있다는 거고,
'깨어있지 못하다!' 하는 것은 무의식 상태로서
일어나긴 일어나는데 그냥 끌려가는 거,
경계가 나타나면
그냥 가서 마음이 그냥 붙어버리는 미혹되는 거,
이 분별심과 미혹, 그게 지금 무명이다. 이거죠.
여러분, 무명상태라면 이 상태가 반복되겠어요?
아니면 한 번으로 끝나겠어요?
반복되겠죠.
무명상태에서 반복되는 것이 행(行)이라는 거죠.
그래서 반복이 되면 행은 항상 업(業)이 같이 붙거든요.
행업(行業)
무명상태가 반복되니까 업이 되는 것이 무명!
행!
행업이 계속 반복된다. 습관화된다.
그래서 이 분별심의 주체인 이것이 에고라는 것이
'식'(識)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에고를 말한다.
그래서 분별심에 의해서 미혹되어서~ 계속
미혹된다는 말은 우리 마음이 '좋다, 나쁘다'라고 갈라놓고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려고 취사를 계속한다
이 말입니다.
그게 반복되니까 그 습관이 굳어 가지고
'식'이라고 하는 이거는 에고죠. 에고!
식중에서 칠식(七識)을 에고라고, 칠식이 핵심이니까,
식에서는!
팔식(八識)은 에고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고,
그 정보를 쓰는 건 에고라서 칠식
그러니까 식이 에고를 이야기하고
에고는 이 식은 말하자면 돼지 눈 같아서
돼지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게 명색(名色)이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께 기회에 있을 때마다 계속 반복해서
앞으로도 12연기를 말할 거예요.
무명에서 행이 일어나고, 행이 식을 에고를 만들고,
에고는 에고의 눈에 비치는 세계,
이 세계를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 이거죠.
그래서 그 핵심은
이름을 모든 사물에다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우리가 이 세계를 볼 때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에고가 이름 붙인 대로 본다는 거죠.
이때 '이름 붙인다' 이 말은 관념이에요.
고정관념으로 비춘 상태에서 본다.
그래서 식(識)이 명색(名色)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것두 굉장히 중요해요. 여러분!
우리 마음이 이 세계를 비춰내고 있는 것!
우리 마음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이 세계가 물들어 있는 세계로 지금 보인다.
그게 명으로 물들어 있는 색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10:17
그러니까 12연기에서 요 네 가지 단계가 아주 핵심이고.
이 말은 뭡니까 여러분!
내가 지금 이런 상태다 이 말이에요.
내가 지금 이 세상을 흔쾌히 100% 통쾌하게
유쾌, 상쾌, 통쾌하게 못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막혀 있다 이거죠. 막혀 있다.
그 막혀 있는 내용이 지금
부처님께서는 무명(無明) - 행(行) - 식(識) - 명색(名色).
요 상태로 지금 막혀 있다.
그러면 식과 명색 사이에 인간한테는 6입(六入)이 있어서
6가지 감각기관이 안, 이, 비, 설, 신, 의 6입이 있어서
6입을 통해서 식과 명색이 촉(觸), 접촉을 하고
접촉하자마자, 수(受), 수는 받아들이는 건데 뭐가 생기느냐?
좋다 나쁘다가 생깁니다.
접촉하자마자 모든 경계에서 좋다, 나쁘다가 생긴다.
왜 생겨요?
분별심에 쩔어 있기 때문에, 보자마자 좋다 나쁘다가 즉각 생긴다.
좋다, 나쁘다가 생기면
애증이, 수는 애증,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을 낳고
애증은 취사, 취하고 버리는 것을 낳고
그러면 그 취하고 버리는 이 갈등의 주체인 유(有)가 확립되어서
그 '유'가
내가 태어났다 생(生), 노(老) 내가 늙는다, 병(病) 병든다, 죽는다(死)
하는 고통을 다 고스란히 받고 있는
그 12연기를 계속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게
지금 일반적인 고해라고 하는
고해를 살아가는 중생의 삶의 모습이다.
이거 바로 잡자.
이게 가르침의 핵심이잖아요.
12:08
여러분, 이 가르침이 저는 고마워요.
한 분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이 지금도 새로운 거예요.
지금도 고스란히 모든 인류가 고해에 있고
어떤 식으로 고해에 빠져 있는가를
자기를 잘 돌아볼 수 있게 설명을 해 놓고
또 이제 무명을 명으로 바꾸는 거죠.
무명을 명으로 바꾼다.
무명은 분별심이잖아요.
분별심을 극복하는 것은
나의 본질이 하나인, 나눌 수 없는 의식이라는 걸
깨닫는 겁니다.
이게 지금 핵심이라는 거죠.
깨달음이 왜 중요하냐?
분별심을 치유하는 약이 깨달음이라는 거죠.
내가 누구인지를 못 깨달으면 천상 이 몸을 나라고 하고
몸하고 이 세계하고 분별하고.
이 첫 번째 분별로 안 끝난다 이거죠.
나도 내 안에서 또 분별하고
밖에도 계속 좋은 거 나쁜 걸 계속 분별해 가지고
지금은 완전히 파편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상황.
이 분별의 어떤 장막,
분별이라는 말은 이것과 저것을 나눈다는 말이잖아요.
그건 나눈다는 고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 되어 가지고
모든 것을 분별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게 습관화되어 있다.
어떻게 그것을 타파할 것인가?
이 세상이 나는 몸이 아니고 의식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의식은 분별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 점이 확실해질수록
이 분별심이 극복이 되어가는 그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무명을 명으로 바꾸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거기서 무명이 명으로 바꿔지면 무명의 습관은
이제 그만, 이 업은 그만둘 거 아니에요?
이 업이 그만두면 에고라고 하는 것도 이제는 바뀌어진다.
전식득지(轉識得智)
이 식이라는 것이 지혜로 바뀐다는 거죠.
< 전식득지(轉識得智). 두산백과.
번뇌를 바꾸어 열반에 이르는 것을 뜻하는 불교용어.
중생이 미혹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번뇌와 잡념을 없애고 열반을 얻는다는 의미 >
지금 식은 하나하나 나눈다는 말이에요.
지혜라는 말은 모든 것이 연기로 이어져 있다는
그런 뜻인 거죠.
12연기가 하나하나 바뀌어 가지고
우리가 정상적인 있는 그대로 모든 사물을 대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상황으로 바뀌는 것.
그게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모습인데
톨레의 이야기는
지금 새삼스럽게 12연기를 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여튼 지금 저희 입장에서는 어차피 한국인으로서
또 불교와 깨달음의 세계를 알고 있는데,
외국인 톨레가 자기 나름대로 깨닫고 하는 이야기가
매칭이 잘 되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톨레의 가르침이 조금도 모순 안 나고
서로 간에 잘 연결되고 있는
그렇게 읽는 것이 저한테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은 참고하세요.
저는 제 입장에서 그렇게 봐지니까
여러분은 참고하셔서 여러분 나름대로 보셔야죠.
여러분 나름대로 잘 소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15:37
그러면 조금 더 읽어보겠습니다.
< 연필이나 빈병 따위를 하나씩 집어 들고 들여다보면
그 활기찬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
저 같은 경우는 그래 가지고 그렇게 도서관에 있다가
결국은 이제 집에 가려고 나왔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와 가지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보도블록이 깨졌더라고.
그냥 돌멩이도 아니고 보도블록이 깨졌는데,
그게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 그랜드 캐년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장엄할 수가 없어.
여러분,
그랜드 캐년의 특징은 뭐냐 하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크기.
지금 여러분,
우리 서울 사람한테는 도시 그러면 서울이 하나의 표준이에요.
근데 제가 뉴욕 갔을 때
서울의 이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제가 뉴욕 갔을 때
뉴욕에서 록펠러 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그런 백몇십 층 되는 거
거기 꼭대기에 딱 올라가서 보면
그런 식의 건물이 수천 개가 딱 펼쳐져 있으면,
지금 서울을 보던 도시 사이즈 개념하고
뉴욕 가면 이게 백몇십 층짜리가 그냥 쫙 펼쳐져 가지고 압도당해요.
그 스케일에.
그러니까 그럴 때 보면 한 번 깨지는 느낌이 오거든요.
기존의 관념이 깨지는 느낌.
그러니까 그랜드 캐년 가보면 그 스케일이 압도된다는 거예요.
기존에 있던 모든 사고방식이 깨지는 느낌이 온다 이거죠.
그러니까 그런 식의 체험이다 이거죠.
돌멩이 하나에서도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적처럼 이게 대단한 일인가 하는 느낌이
이럴 때 이제 오더라.
그러니까 저 같으면 그랬어요.
근데 지금 똑같은 이야기를 톨레도 하고 있어 가지고
신비로운 거예요.
17:51
< 그날 나는 시내 곳곳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지상의 삶 전체가
내 눈에는 온통 기적으로 보였습니다. >
갓 태어난 아기, 또 다른 비유가 아까 같은 경우에는
누에고치 속에서 막 나온 나비, 이해되나요?
갓 태어난 아기 혹은 인두껍,
이 몸을 나라고 하는 이 인두껍을 벗고 나온 자이언트,
혹은 누에고치 속에서 성충이 되어서 드디어 나온 그 나비가
날개를 쫙 펴가지고 파르르 떨면서 날아오를 때의 그 느낌,
그런 것이 표현은 다양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그 후 5개월 동안은
흔들림 없는 평화와 기쁨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는 차츰 그 강도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이미 품고 있는 본래의 성품에
그 무엇도 더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
톨레는 좀 크게 깨어났어요. 사실은.
우울증에 바닥을 쳤기 때문에 그래서 이 사람은 완전히 변했어요.
여기서 근데 저 같은 경우는
논문 쓰다가 그 체험을 했기 때문에 계속 논문을 썼죠.
그러고 석사학위를 받고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같은 주제로 계속 박사 논문을 계속 썼어요.
그러니까 비슷한 주제로 계속했는데
문제는
톨레는 완전히 기존 생활은 다 버려버리고,
2년간 런던의 하이드 파크입니까?
그 런던의 공원에서 노숙자 생활했다는 거예요.
그 삶 자체가 지금 바뀐 거죠.
저는 그렇게는 안 되더라고요
어떤 경험의 강도 같은 것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뭐 순탄하게 그 뒤로 결혼도 했고
유학 가서 뭐 학위를 다 밟았고 돌아오고.
근데 한 가지 끝내 잊을 수 없는 것은 뭐냐면
툴레도 지금 제목이 "The Power of Now" 잖아요
'지금 현재의 힘'이잖아요.
저도 똑같은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어떻게 하면 그때 그 상태로 돌아갈까?' 하는 것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것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저도 있었다 이거예요.
그때가 너무나 진짜 신선한 난생처음 맛봤던
그런 어떤 순수한 절대 체험인데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알겠더라고요.
절대가 뭔지 알겠더라고,
모르지만 알겠더라고!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아 이거구나!', '이 체험을 말하는구나.' 하고
확실히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다 이해되더라고요.
그때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선어록이 읽히더라고요.
그때 선어록 보면 무슨 말인가 알겠더라고요.
그런 하여튼 변화는 있었어요.
근데 그 뒤에 문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흐지부지 될 거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다시 순수한 그걸 회복할까, 돌이킬 수 있을까 하는
그 마음이 있었고
저는 저도 모르게 터득을 한 게 있어요.
터득한 게 뭐냐면
의식을 항상 지금 현재로만 돌이키면 다시 그 상태가 되는 거예요.
저절로 그게 터득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알고 봤더니
인문학의 주제는 항상 '지금 현재'라고 하는 시간이다.
그 뒤로 계속, 왜냐면
제가 석사 논문에서 안 끝나고 박사 논문을 발전을 했으니까
결국 인문학의 주제는 시간과 존재.
시간은 현상이고 존재는 본질이에요.
현상과 본질이 인문학의 주제예요.
근데 그중에서 우리가 어떻게 존재 체험을 하는가
모든 인문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거예요. 줄이면!
존재 체험이 중요한데
존재 체험의 문은 현재라는 거예요.
우리가 의식이 산만하게 돌아다니다가
현재라고 하는 이 순간에 정말로 제대로 계합이라고 하는 것
현재라고 하는 거하고 딱 맞을 때 존재로 싹 들어간다는
현재가 존재의 문이다.
'시간은 존재의 문이다.'
이런 거는 하이데거 철학은 '존재와 시간'이라는 주저(主著)
대표작이 있잖아요,
이거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철학이든 문학이든 또 그 외에 인문학이든
인문학의 주제는 '존재를 어떻게 체험하는가 인간이?'
그때 존재 체험하는 그 문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는 '시간'이라는 '현재'라고 하는 것!
그래서 항상 의식을 현재로만 딱 가져와서
현재하고만 딱 맞으면 그때의 느낌이 쫙 살아나는 거예요.
근데 그게 하나 터득한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포인트가 결국은 우리가 본질을 체험할 때
그 본질에 들어가는 문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는
그래서 산만하게 과거 미래로 떠돌아다니던 우리 의식이
딱 현재에 한번 딱 초점이 현재에 딱 맞을 때
쑥 들어가면서
'별세계'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열리는
존재를 체험하는, 절대를 체험하는
그런 것을
지금 툴레도 계속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저도 그 체험은 똑같이 가지고 있어서
그런 점을 우리가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참고로 하세요.
항상 현재로만 돌이키면 생각이 끊어지는 거예요.
그게 핵심이에요.
현재로만 돌이키면 생각이 끊어진다.
24:34
툴레 같은 경우는 체험은 왔지만 뭐가 뭔지 몰랐다가
< 영혼에 대한 다른 책들을 읽고
또 영적인 교사들과 숱한 밤을 함께 지낸 다음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던 그 깨달음(돈오)이라는 것이,
나 자신에게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그날 밤 고통이 극도에 달하자
나 자신을 불행과 두려움의 대명사처럼 여겼던 가짜 나는,
(에고지요?)
에고는 고통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난 것입니다.
(악몽에서 깬 거다, 이거예요. 악몽에서 깬 것이다.)
모두가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속아 왔지만,
고통이 심해지자 거짓된 나는 물러나지 않을 수 없고,
그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올린 거짓된 성이
일시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기 이전의 본래 순수한 내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입니다. >
그러니까 지금 요 라인이 무너졌다는 거예요.
'무명, 행, 식, 명색' 요 라인이 이때 무너졌다.
왜냐하면 그 압박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에고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그런 시련이 왔기 때문에
에고가 그걸 못 견디고 무너지는 거다.
이렇게 자기는 지금 해석을 했다.
그랬더니 에고가 무너지니까 ‘무명’에서 ‘명’으로 바뀌는.
‘명’이라는 말은,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의식’이에요.
‘무명’이라는 말은 ‘무의식’.
그냥 딱, 톨레 식으로 말하면,
‘무명’은 ‘무의식’이고 따라서 ‘명’은 ‘의식’이다, 이거예요.
깨달음이란 것은, 지금 의식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거죠.
자기의식이!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는 깨달음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누구나 다 의식을 가지고 이미 쓰고 있기 때문에!
‘아, 이거구나!’ 하고 발견하는 거예요.
‘아, 이거구나!’ 하고.
26:56
의식이 뭐냐, 자, 여러분!
처음 오신 분도 계시고 하니까 바로 직지해 봅시다.
‘직지’라는 말은, ‘이거다!’라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 여기에, 지금 바로, 이 순간,
여기 인사동 선방에서 여러분이 앉아 계시지요.
그런 지금 이 공간에 육체를 포함해서 물질들이 있죠.
물질이 없나요? 있죠, 그죠! 분명히 있죠, 그죠!
지금 요 공간에 물질이 이렇게 있잖아요.
내 몸도 물질이에요, 그죠? 이렇게 물질이 있어요.
여러분, 물질만 있나요? 지금 요 공간에?
물질만 있어요?
아니면 물질이 있다는 걸 아는 무언가가 있어요?
신령스러운 무언가가 있어요, 없어요?
있잖아요! 그거예요.
그러니까 이 의식을 알아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이렇게 직지, 딱 이거라고 일러드리니까.
자기 몸이 있습니다, 그죠?
근데 몸만 있나요?
지금 이걸 의식이라고 하건, 정신이라고 하건,
정신 있지요? 정신없어요? 여러분! 정신 놀러 갔어요?
지금 있지요?
그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게.
언제나 이거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반드시 여러분, 깨달음은 반드시
그러니까 중요한 거,
28:51
따라 해 보세요. '본유금유(本有今有)'
마조는 6조 혜능의 손상자예요. 손자예요.
마조는 8조에요. 마조의 이야기예요.
이게 뭐냐면, 본래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
자, 다시, 본유금유!
본래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
요게 지금 깨달음의 기준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이 의식이 지금 의식 있어요, 없어요?
있죠? 물질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이렇게 지금 신령스럽게 깨어있는 것이 이렇게 있잖아요.
요게, 지금 있는 거예요? 과거에도 있었던 거예요?
있었잖아요! 본래 있는 거죠? 본래 있었던 거지요!
또, 나만 있어요? 다 같이 가지고 있어요?
다 같이 가지고 있죠!
요거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고, '중중(重重)'.
여러분의 이 정신,
이 의식하고 저의 의식하고, 지금,
있는 사람들마다 그만큼 의식이 있잖아요?
요것이 중중,
서로 겹쳐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 지금 형광등이 여러 개 있죠, 지금 여기에.
형광등이 여러 개 있어도 이 빛이 중중무진이다.
겹쳐도 서로 방해되지 않고,
마치 하나의 빛인 것처럼 지금 같이 있죠.
그거랑 같이 비슷하게
우리들의 의식도 하나하나가 완벽하지만,
완벽한 것이 또 이렇게 중중무진,
- 중중은 이중삼중 할 때 중(重), 겹치고 겹쳐서 무진(無盡) -
끝이 없이 많다.
왜냐?
무한은 무한히 많아요.
그게 무한의 생존 전략이에요.
그러니까 개체가 죽어도 생명은,
자, 온 생명의 생존전략은,
- 온 생명은 뭐냐면
모든 생명이 다 한 개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 -
근데 낱 생명이 있잖아요. 개인 개인의 생명!
그러니까
온 생명하고 낱 생명의 관계가 중중무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낱 생명이 자꾸 나고 죽으면서
온 생명은 자기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말도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개인의 나고 죽음은
온 생명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낱 생명이면서 온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거예요.
낱 생명이면서 온 생명이다.
낱 의식이면서 온 의식이다.
나는 누구냐?
그러니까 결국에는 온 의식인 거예요.
온 의식이면서 또 낱 의식이야.
공즉시색 색즉시공 이런 식으로
개체와 전체가 완전히 호환되는 그런 관계다, 우리가.
이걸 연기라고 한다 이거예요.
부처님은 이 연기를 깨달으셨다.
이런 말들이 이렇게 소화가 되는 겁니다.
32:11
자, 그러면 방금 제가 왜 이 말을 했는가?
부처님이 그렇고 톨레가 그렇고 뭐 저도 마찬가지고,
결국은 깨닫는다는 것은
지금 깨어 있는 '이거' 깨닫는 거다 이거예요.
깨닫고 보니까 허무한 게, 처음부터 있었다.
처음부터 있는 게 지금도 있다.
그리고 여러분, 여기에
이 자기의식을 지금 우리가 새삼 알아차렸다고 해서
의식이 커집니까? 새롭습니까? 어떻게 변합니까?
새로 얻은 거예요?
본래 있는 거잖아요, 새로 얻은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거 잃어버릴 수 있어요? 없잖아요.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잃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
이미 이렇게 갖춰져 있잖아요.
그래야만 진리예요.
이게
시간적으로도 보편이고, 공간적으로도 보편이고,
개체한테도 다 보편인 것!
그래야 진리예요.
그리고 잃어버릴 수도 없잖아요, 앞으로도.
그래야지, 아니면 지금 새로 얻었다?
그건 경계예요. 이해되세요?
새로 얻은 것은 반드시 또 사라진다 이거예요.
그러면 톨레나 이런 사람이 지금 경험했잖아요.
경험을 했을 때,
다이아몬드처럼 신선했고, 깨끗했고,
모든 것이 빛났고, 또 뭐 장엄했고,
이런 것들은 다 지나간다 이거예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은 다 경계 현상이다.
세월이 흐르면 다 지나간다.
34:00
그래서 정말 지금 의식화한다는 건 뭐냐?
결국 내가 체험한 것은,
지금 이 말짱한, 너무 당연한, 이 의식을 깨닫는 거다 이거예요.
그래야지 이것이 영원히 유지되는 거지,
그게 아니라,
그 어떤 경험이 났을 때 그때 어떤 특별하게 좋았던 것,
막 환희심도 넘치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는 경계다 이거예요.
그래서 지금 가닥을 잘 잡으셔야 될 게,
그걸 잡아버리면 깨달았는데 놓쳤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해되세요? 그러면 안 된다.
그게 아니라,
그 정말 깨달음의 내용은 의식이 되어야지.
여러분, 의식은 크기가 있어요, 없어요?
모양이 있어요, 없어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분별이 의식한테는 해당되지 않아서
내가 의식이 진짜 정말 확실히 깨어날 때,
내가 의식이란 걸 알 때,
이 분별심이, 이 무명이 여기서 무너진다.
내가 의식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자기가 확인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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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녹취 >
시작 ~ 5분 무소
5분 1초 ~ 10분 무비
10분 1초 ~ 15분 신비
15분 1초 ~ 20분 무척
20분 1초 ~ 25분 완전한영광
25분 1초 ~ 30분 진리의빛
30분 1초 ~ 35분 무지
함께 수고해 주신 기조실 보조교사님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부족한 제게도 깨달음을 주신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보통 우리들에게는
머릿속에 항상 무의식의 흐름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가 온전하게 깨어서 살지 못하는 거예요. >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흔쾌히 100% 통쾌하게
유쾌, 상쾌, 통쾌하게 못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막혀 있다 이거죠. 막혀 있다. >
<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던 그 깨달음(돈오)이라는 것이 ,
나 자신에게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
< 산만하게 과거 미래로 떠돌아다니던 우리 의식이
딱 현재에 한번 딱 초점이 현재에 딱 맞을 때
쑥 들어가면서
'별세계'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열리는
존재를 체험하는, 절대를 체험하는
그런 것을
지금 툴레도 계속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저도 그 체험은 똑같이 가지고 있어서
그런 점을 우리가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실제로 우리가 이 본질을 깨닫자고 하는 이유는
본질을 깨달아서 본질의 입장에서 살자가 아니고,
'그 본질의 힘을 가지고 현상에서 똑바로 깨어서
안팎의 내외가 명철하게 안과 밖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든 일에 아주 명(明), 의식적으로 깨어서 다 잘 살펴서
일을 잘 처리하는 그런 삶을 살자.'
하는 게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아멘~!
머릿속에 항상 무의식의 흐름이 자리 잡고 있었던 저는
그냥 사는 것이 다 그런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그런 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눈이 밝아졌습니다.(천수천안?)
톨레가 경험한 그 깨달음(돈오)이란 게
제게도 일어났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한 상식, 지식이 없었으니
모든 사람이 추구한 그 세계를 상상도 못 해봤습니다.
아버지의 크신 은총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가장 탁월한 방법인 거내영으로
시간의 주인이신 존재를 체험하며
아니
존재와 사랑에 빠져 존재와 계합하여
산만하게 과거 미래로 떠돌아다니던 저의 의식이
현재에 초점이 맞춰졌고, 위로부터 태어나
그야말로
'별세계', '차원이 다른 세계'로 쑥 들어갔습니다.
지금 이 세상을 흔쾌히 100% 통쾌하게 살면서 보니
그전의 삶은 완전 무명의 꽉 막힌 삶이었네요.
이제,
사랑으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본래부터 존재해 계셨던 그분, 온 생명과
아무것도 아닌 이 낱 생명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하나임을 깨달으며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 자녀 되어 하느님과 하나 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거내영을 통한
저의 본유금유와 중중무진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 안에서 활짝 기지개를 켜시며
부족한 저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아버지 본질의 힘을 갖고
지금 이 순간을 현상에서 똑바로 깨어
안팎의 내외가 명철하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깨어서
다 잘 살피고 하느님 뜻대로 일을 잘 처리하는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드러낼 일만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을 통하여 모든 이들이 깨달음을 얻고
평상심으로 유쾌, 상쾌, 통쾌한 깨달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무화.보조.고문단(SG)
[ "깨달음" 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 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많은 똑똑한 사람들도
지금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모든 시간을 "생각" 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바보같은 우리들은
★모든 시간을 화살기도로 "생각 없이" 주님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
[ 우리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 하느님"을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하느님"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뒤집어 입고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공간(영과 육)을 "하느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
[ 하느님 안의 삶을 사는 이는
이미 "무한 속에 들어와 사는 것" 입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무한 속에,,,
有限한 시간이 끝나는 그때까지,,,, ] - 지도사제 -
[ 이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요, ‘섭리’요, 거룩하신 당신의 ‘계획’이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의 모든 사람 안에서 이루어질 때,
그때 새 하늘 새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먼저 이 땅 즉, 내 안에 건설해야 한다. ]
- 창화살 제3부 10 -
참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명에서 행이 일어나고, 행이 식을 에고를 만들고,
에고는 에고의 눈에 비치는 세계,
이 세계를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 이거죠.
그래서 그 핵심은
이름을 모든 사물에다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우리가 이 세계를 볼 때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에고가 이름 붙인 대로 본다는 거죠.
이때 '이름 붙인다' 이 말은 관념이에요.
고정관념으로 비춘 상태에서 본다.
그래서 식(識)이 명색(名色)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이 세계를 비춰내고 있는 것!
우리 마음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이 세계가 물들어 있는 세계로 지금 보인다.
그게 명으로 물들어 있는 색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만들었던 남이 만들어 넣어줬던
고정되고 틀에 박혀버린 제 분별심이 아버지의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군요.ㅜ
조직적으로 생각하는 머리가 세상을 잘 살아가는 지혜인 줄만 알고
돼먹지 못한 논리로 눈가리개를 쓰고 마구 들이박고 덤벼들며 살았습니다.
돼지 눈을 하고 이기심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라보았으니
오직 제 뜻과 제 에고에 가려 아버지를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도 사제의 복된 병으로 부족하고 모자란 저도 거내영을 알고 배워
내맡긴 삶에로의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
저의 복됨은 하늘을 차지합니다.
내맡기되 이제는 이원론을 벗어나
온전히 아버지 앞에 벌거벗고 서 있을 수 있어야 함도
함께 배우고 또 배웁니다.
반드시 기필코 기어이 그 길을 저희 모두가 가야만 하기에
지도 사제의 목은 아프고 피가 납니다.ㅠ
<낱 생명이면서 온 생명이다.
낱 의식이면서 온 의식이다.>
<'본유금유(本有今有)'
'중중무진(重重無盡)'>
지금 여기에만 계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 안에 제가 있고 제 안에 아버지 계심이 확실함을 확인합니다.
제 에고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하나 되고
이웃들이 아버지 안에서 또 하나 되어 색으로 물들지 않은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확장되기를 아버지 뜻 안에서 갈망합니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흔쾌히 100% 통쾌하게
유쾌, 상쾌, 통쾌하게 못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막혀 있다 이거죠. 막혀 있다.>
부족한 저와 구원하고자 하신 모든 영혼을 100% 다 내맡겨 드리오니
부디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대로 이끄시어 하나되게 하소서.
@무뇌어린양.보조.회장단
아버지기도와 무형 성전의 은혜로 아버지와 막힘없이
만사가 형통하는 땅을 밟는 천국을 살아가오리다.
거내영과 모든 사제와 내맡긴 영혼들의
유쾌, 상쾌, 통쾌한 삶을 통하여
아버지 홀로 마음껏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의 존재를 이제야 절절히 깨닫게 해 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본래부터 있던 분은 오직 아버지뿐이십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 본질을 깨닫자고 하는 이유는
본질을 깨달아서 본질의 입장에서 살자가 아니고,
'그 본질의 힘을 가지고 현상에서 똑바로 깨어서
안팎의 내외가 명철하게 안과 밖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든 일에 아주 명(明), 의식적으로 깨어서 다 잘 살펴서
일을 잘 처리하는 그런 삶을 살자.'
하는 게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저는 위의 글을 다르게 보았습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점이라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창조주 아버지께서 계시기에
본질이신 아버지를 알고 사랑함으로 내 뜻 등 모든 것을 내맡겨 드려
아버지의 힘을 가지고 아버지 뜻대로 살아가는 기존의 삶이 아니라(아버지 뜻대로의 삶)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사시도록
내 뜻의 죽음,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아버지 뜻이 되고 신적 행위가 되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시고 창조 목적이 회복되는
그리하여 에덴 동산이 지금 여기서부터 이루어지는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당연히 받아야 할 영광과 사랑과 흠숭을 바쳐 드리는
새 하늘, 새 땅 프로젝트, 창조.구원.성화가 온전히 완성되는
거대하고 위대한 삶(아버지 뜻 안의 삶)임을 믿습니다.
그 방법은
<그때 집중하라고 제가 하잖아요,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집중하라고.>
머리로 짜내고 여러 유형의 기도와 방법들이 아닌,
내가 찾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 아닌
오히려 <생각>을 없애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을 없애고 집중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 의식해서 찾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아버지기도>에 집중물입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참으로 제 영혼을 울리고 기뻐 용약하게 됩니다.
그러면 일어나는 현상에 분별하지도, 미혹되어 끌려 다니지도 않고
오직 지금 여기서 유유자적하며
아버지 뜻의 바람과 파도도 고요히 머물며 흘러감을 목도하게 됩니다.
<존재 체험하는 그 문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는 '시간'이라는 '현재'라고 하는 것!>
아버지를 만나는 문은
과거, 미래가 아니라 나에게 허락된 지금 여기 이 순간입니다.
<모두가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속아 왔지만>
이제야 눈이 열려
@신비.보조.기조실(SG)
<'본유금유(本有今有)' 본래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언제나 처음처럼 제 안에, 온 세상에 늘 계셨던 아버지를 만나
그동안 못 누렸던 참 기쁨과 행복과 자유를 누리며 사는 지금이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던 죄인을 용서하시고
언제나 깨어 아버지 현존 속에서 지상 삶을 사는 내맡긴 영혼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영원히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 내맡김 기도문
무위행( 無爲行 ) = 무위자연( 無爲自然 ) = 내맡김의 삶( 거룩한 위탁 )
지도사제 2009.12.17. 23:19
"하라, 하지 말고 하라!
하지 마라, 네가 하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살라, 삶 없이 살라!
살지 마라, 네가 살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사시게 하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은 ★그냥(자연스레)★ 존재합니다.
그러나
유독 인간만은 스스로(자신의 의지로) 행함으로 존재합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스스로 행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 내맡겨 내가 없어졌고
하느님만이 남아 하느님이 직접 행하십니다.
@신비.보조.기조실(SG)
자신이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자신이 행한다면
하느님께 완전히(100%) 내맡기지 못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갈라티아 2장 20절의 말씀인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의 삶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이 " 하느님께 내맡긴 삶 " 입니다. ]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현재로만 돌이키면 생각이 끊어지는 거예요.
그게 핵심이에요.>
문득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렸던
몇달 전 제가 떠오릅니다.
현재로 생각을 돌릴 수가, 돌리기가 그렇게 어려웠어요.
그래도 마리아처럼에 가입하고
능구3개월을 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던거 같아요.
화살기도를 부르면서 노래에 아버지께 집중도 하구요.
지금은 너무나 달라져 있습니다.
불안도 초조도 사라지고
이렇게 댓글도 힘들지 않게 적을 수 있구요.
현재로만 돌이키면 생각이 끊어진다는 이 말씀
참 와닿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면
든든하고 현재로 돌아와 지는거 같아요.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경험을 했을 때,
다이아몬드처럼 신선했고, 깨끗했고,
모든 것이 빛났고, 또 뭐 장엄했고,
이런 것들은 다 지나간다 이거예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은 다 경계 현상이다.
세월이 흐르면 다 지나간다.
그래서 정말 지금 의식화한다는 건 뭐냐?
결국 내가 체험한 것은,
지금 이 말짱한, 너무 당연한, 이 의식을 깨닫는 거다 이거예요.
그래야지 이것이 영원히 유지되는 거지,
그게 아니라,
그 어떤 경험이 났을 때 그때 어떤 특별하게 좋았던 것,
막 환희심도 넘치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는 경계다 이거예요.>
사랑하는 아버지,
제 안에, 이 세상의 지나가는 것에 착着 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봅니다.
이 경험 또한 아버지께서 허락하셨기에 일어난 일이지요.
제가 이토록
<다이아몬드처럼 신선했고, 깨끗했고,
모든 것이 빛났고, 또 뭐 장엄했고, 환희로운 것>을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인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 안에 저도 모르는 이러한 경계가 있는 줄 오늘에서야
명확히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한 레벨을 완수하여 클리어 하면
아버지께서는 그보다 높은 단계에서 또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이전 레벨보다 더 힘든 과제를 주시면서요.
세탁기 안에서 때를 열심히 빼고 나면
저 속에 묻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던 때가 또 삐죽이 고개를 내밉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 내내 참으로 제 꼬라지가 한심하였습니다.
현세의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온전히 무명을 벗어나지 못한 제가 그 현상에 휘둘리고 있었음을
참담한 심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온전히 다 내맡기지 못한 부분이
아버지 앞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이마저도 아버지와 함께 살아갈 저의 생 안에
아버지의 섭리로 넣어두신 일이 아닌지요!
그러니 저는 이제 자책성 반성을 멈추고
더욱더 아버지만 바라보며 아버지께 내맡겨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허리를 펴고 일어나겠습니다.
@옴니아.보조.기조실
<선에서는 무심도 한 겹이 막혀 있다,
한 겹을 더 뚫고 나가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본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그 지혜를 가지고 현상에 나와서
현상에서 보살행을 하면서 남을 도와주면서 잘 살아가는 것,
그게 평상심입니다.
그래서 '무심보다도 평상심이 한 수 더 위다.'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이 본질을 깨닫자고 하는 이유는
본질을 깨달아서 본질의 입장에서 살자가 아니고,
'그 본질의 힘을 가지고 현상에서 똑바로 깨어서
안팎의 내외가 명철하게 안과 밖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든 일에 아주 명(明), 의식적으로 깨어서 다 잘 살펴서
일을 잘 처리하는 그런 삶을 살자.'
하는 게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아멘아멘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근육을 키우기 위해 무거운 아령의 무게가 필요하듯,
아버지께서 저를 단련시키시기 위하여
아령의 무게와 비례하여 아버지께서 힘 주심을 이제 명확히 압니다.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아버지께 모든것 내맡겨드리오니,
그 어떤 막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돌파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크게 드러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무경계의 삶, 천상적 삶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나와 남, 좋은 거 나쁜 거,
크고 작은 거, 남자 여자, 뭐 우리나라 다른 나라,
온갖 이 분별의 벽이 우리는 습관화되어서
우리의 머릿속에 이 습관이 되어 있는 거, 분별심,
그래서 그 분별하기 때문에 분별해 놓고 좋다 나쁘다 하니까
좋은 것에 홀려 가지고 그걸 집착하다 보니까
현상계에 떨어져서
집을 나와서 헤매고 있는 '집 나간 거지' 같은 상황,
그게 지금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것의 내용이다~ 이거죠.
이걸 바로 잡는 게 지금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 자, 다시, 본유금유!
본래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
요게 지금 깨달음의 기준이에요. >
참된 진리는 본래부터 늘 있는 것이며,
지금 깨닫더라도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 늘 있던 진실을 깨닫는 것일 뿐이란 뜻의
마조(馬祖)의 말, 본유금유(本有今有)가 깊이 다가옵니다.
알파요 오메가인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만나
하느님께 완전히 100%를 내맡김으로, 돌아온 탕아,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집에 들어와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늘 부족하지만 아버지께 모두 내맡기고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며
무소유 고백으로 완성된 충만함으로, 원하는 것을 얻은 것이 아닌
원하는 것이 없는 찐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거내영과 모든 사제와 내맡긴 영혼들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 내맡긴 영혼은 ■
역사는 흘러가며 성장합니다.
moowee 10.07.24 09:48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20세기, 15세기, 7세기, 초세기의 영성을 들이대며
부르스를 추라고 해서 그것에 따른다면,
그 사람은 영적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참으로 이 시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참으로 적합한 영성입니다.
사실 이 "내맡김의 영성"이 모든 영성의 원조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신약의 신앙의 원조인 "마리아"와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에 철저히 내맡기셨던
"내맡김의 영성"의 원조, 본보기입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 신앙의 원조들의 "순교 영성"으로
우리가 2백 수십 년을 살아왔다면,
이제 우리의 후손들은 "내맡김의 영성"으로 신앙을 살아갈 것입니다. ]
[ "내맡김의 영성"은 절대로 "새로운 영성"이 아닙니다.
제가 만들어 낸 영성도 아니요, 어디서 만들어진 영성을 각색한 영성도 아니요,
내맡김의 영성은 "모든 영성의 원조"입니다. ]
[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 완전히 100% 다 내맡긴 영혼 >이 바로,
< 천상적 자녀 >이며 이들은 이땅에서부터 < 천상적 삶 >을 살아갑니다.
< 아버지의 집 >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 안에는 < 나쁜 것 >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신 모든 것이 다 < 좋은 것 >입니다.
좋고 나쁜 모든 경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 무경계의 삶 >입니다.
무경계의 삶이 천상적 삶이며,
천상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천상적 자녀,
< 100% 내맡긴 영혼들 >입니다!] -지도사제-
거내영을 통하여 통쾌한 삶의 비법을 이끌어주신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분별하기 때문에 분별해 놓고 좋다 나쁘다 하니까
좋은 것에 홀려 가지고 그걸 집착하다 보니까
현상계에 떨어져서
집을 나와서 헤매고 있는 '집 나간 거지' 같은 상황,
그게 지금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것의 내용이다~ 이거죠.
이걸 바로 잡는 게 지금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흔쾌히 100% 통쾌하게
유쾌, 상쾌, 통쾌하게 못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막혀 있다 이거죠. >
< 우리가 의식이 산만하게 돌아다니다가
현재라고 하는 이 순간에 정말로 제대로 계합하는 것
현재라고 하는 거하고 딱 맞을 때 존재로 싹 들어간다는
현재가 존재의 문이다. >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김홍근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 이순간을 살며
현재에 집중하는 힘은 무의식에 깔려있는 장막을 뚫고
분별하는 생각과 집착을 끊는 무명을 명으로
바로 잡는 공부가 바로 거룩한 내맡김 영성 핫라인인 것을요!
거내영을 알기 전의 제 삶은 본질을 잃고
사랑하는 아버지 집에서 떠나와 아버지 참자녀의 본분을 잊고서
무의식의 흐름에 잡혀 제 영혼이 갈길 잃고 말았지요.
거내영을 알기 전의 제 삶은 본질을 잃고
사랑하는 아버지 집에서 떠나와 아버지의 참자녀의 본분을 잊고서
무의식의 흐름이 자리잡은 제 영혼이 갈길 잃고 산만하게 방황하다가
4년의 거내영 공부와 거내영 삶을 통하여
남은 세상을 통쾌하게 사는 단순한 비법인
< 아버지기도 >로 깨어 살아가는 복된 영혼입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리지 않아 눈멀고 귀먹어리 삶에서
저의 참주인님이신 본질이신 아버지를 알고 사랑하니 눈과 귀가
열리고 아버지께 단순집중하여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힘이 생겼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제 존재가
사랑 자체임을 느끼며 그 순간 존재의 문으로 쑥 들어가
아버지와 하나되어 제 안에서 사시고 하시도록 내맡겨드립니다.
제 삶의 목표, 제 공부의 목표는
생로병사로 찾아오는 온갖 삶 속에서도 자유로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창조질서와 구원사업에 합하여
제 영혼육을 바쳐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매순간의
은총을 살면 되는 것임을요!
매순간 무의식에 젖어 끌어오르는 제 생각을 끊어버리는
영광의 도구인 < 아버지기도 >는 통쾌한 삶을 열어가는 열쇠입니다.
매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길떠나는 하루살이의 삶!
아버지 뜻대로 사는 존재,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새 하늘, 새 땅으로 다가옵니다.
부족한 제가 거룩한 사도가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사는 것은
현상적인 것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좌정하고 계신
아버지 가슴 팍에 기대어 참기쁨과 행복을 사는 지상천국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아버지 본질의 힘으로 되돌아가는 <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통쾌한 삶을 살아가는 내맡긴 영혼들을 내맡겨드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안에서 살도록 이끌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신 차려 있다!'
이 말은 내가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식이 깨어나 있어서 다 살펴서 처리를 하고 있다는 거고,
'깨어있지 못하다!' 하는 것은 무의식 상태로서
일어나긴 일어나는데 그냥 끌려가는 거,
분별심을 극복하는 것은
나의 본질이 하나인, 나눌 수 없는 의식이라는 걸
깨닫는 겁니다. >
아버지를 저와 같이 살아있는 인격으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기쁨인지요!
잠깐 만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저희 집에 늘 함께 하시고 제 안에서 저를 보고 계시며
모든 일을 결정해 주시는 아버지!
제 마음은 제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의 주인은 아버지이심을 깨달아 아버지께 맡기니
당신께서 이끌어주고 계십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것인 줄 알았던 긴 시간들을 보내고
이제 아버지의 몸으로 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안에서 배우고 익히며 재밌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저의 본질이신 아버지께 더 일치하고 하나 되는 방법은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임을 알기에 제가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는
아버지를 죽도록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본질의 힘으로 현상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분별하기 때문에 분별해 놓고 좋다 나쁘다 하니까
좋은 것에 홀려 가지고 그걸 집착하다 보니까
현상계에 떨어져서
집을 나와서 헤매고 있는 '집 나간 거지' 같은 상황,
그게 지금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것의 내용이다~ 이거죠.
이걸 바로 잡는 게 지금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흔쾌히 100% 통쾌하게
유쾌, 상쾌, 통쾌하게 못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막혀 있다 이거죠. >
< 본질을 깨달아서 본질의 입장에서 살자가 아니고,
'그 본질의 힘을 가지고 현상에서 똑바로 깨어서
안팎의 내외가 명철하게 안과 밖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든 일에 아주 명(明), 의식적으로 깨어서 다 잘 살펴서
일을 잘 처리하는 그런 삶을 살자.'
하는 게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을 알기 전의 제 삶은 본질을 잃고 아버지 집에서 살고는
있었지만 아버지의 참 자녀의 본분을 잊고서
무의식의 흐름이 따라 제 영혼이 갈길 잃고 산만하게 살며
분별을 딱 해 놓고 얼마나 좋고 나쁜 것을 판단을 하며
죄 속에서도 살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이 본질을 깨닫지 못하니
집을 나와서 헤매고 다니는 거지 같은 영혼이 되어
유괘. 상괘.통괘하게 못살던 불쌍한 영혼이 이제는 이 거내영을 알고
저의 본질이신 아버지께 일치하고 하나 되는 방법을 하나하나
사제의 가르침 따라 선배님들의 따라쟁이 되니 일상의 사건 사건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도록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며
살아가는 참된 인간이 되어 본질을 깨달으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힘으로 제 일상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어서 잘 살피고
잘 하는 삶으로 차츰차츰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며
저를 대신 살아주시니 오늘도 감사의 사랑가로 이원론에서
벗어나 비원론적인 삶 안에서
유괘하고 상괘하고 통괘한 마음으로 참 기쁨과 참 자유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지상천국을 살게 하시는
아버지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거내영과 모든 사제와 내맡긴 영혼들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지금여기서 아버지와 하나로 깨어있게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산만하게 과거 미래로 떠돌아다니던 우리 의식이
딱 현재에 한번 딱 초점이 현재에 딱 맞을 때
쑥 들어가면서
'별세계'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열리는
존재를 체험하는, 절대를 체험하는>
사랑하는 신부님과 보조교사님 동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히 잘 시청하였습니다.
현재에 깨어 사는 것이 본질이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거내영의 삶
임을 먼저 알고 듣기에 이해 하기가 참 쉬웠습니다.
반복하고 반복되는 거내영의 가르침이 이제 저의 일부가 되어
매순간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지금여기서 깨어있게 하기에
저의 본질이 아버지이심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제 영이 아버지를 알아볼수 있도록 하는 거내영의 삶이 저의
부활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과 부족한 저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쩔어 있던 분별심을 소독하고 말려주시는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분별심에 쩔어 있기 때문에, 보자마자 좋다 나쁘다가 즉각 생긴다.
좋다, 나쁘다가 생기면
애증이, 수는 애증,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을 낳고
애증은 취사, 취하고 버리는 것을 낳고
그러면 그 취하고 버리는 이 갈등의 주체인 유(有)가 확립되어서
그 '유'가
내가 태어났다 생(生), 노(老) 내가 늙는다, 병(病) 병든다, 죽는다(死)
하는 고통을 다 고스란히 받고 있는
그 12연기를 계속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게
지금 일반적인 고해라고 하는
고해를 살아가는 중생의 삶의 모습이다.
이거 바로 잡자.
이게 가르침의 핵심이잖아요.
분별심을 극복하는 것은
나의 본질이 하나인, 나눌 수 없는 의식이라는 걸
깨닫는 겁니다.
이게 지금 핵심이라는 거죠.
깨달음이 왜 중요하냐?
분별심을 치유하는 약이 깨달음이라는 거죠.
존재 체험하는 그 문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는 '시간'이라는 '현재'라고 하는 것!
항상 현재로만 돌이키면 생각이 끊어지는 거예요.
그게 핵심이에요.>
취하고 버리는 갈등의 주체,
반복해서 돌고 돌아 완전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던
불쌍한 영혼을 거룩한 내맡김으로 부르시어
그 모든 걸 내맡기고 아버지만을 사랑하면 된다는
핵심 키워드를 박아주신 아버지,
과거의 나도 나이고,
미래의 나도 나인데,
정작 나는 누구인지가 화두였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를 만들어 분별하며
괴로워하고 울부짖었던 늑대와 같았던 저를 양으로 만드시어
어떤 것으로도 나뉠 수 없고,
무엇으로도 만들 수 없는 아버지 안에 저를 꼭 붙드시고
아버지만을 사랑하게 해 주시니
아버지의 거룩한 속성을 양식으로 받아먹으며
아버지께 기쁨이 되는 영혼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오늘로써 두 달간의 요양보호사 교육과 시험이 끝났습니다.
나약한 육은 끊임없이 하기 싫어
몸부림치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이끄심이라 믿었기에 아버지와 함께 해냈습니다.
인간적 목표와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이끄심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 뿌듯하고 기쁨만이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분별하며 살았을 때는 성공한 나, 뽀대나는 나, 남과 다른 나,
얼마나 '나'를 주목하며 불만족이 키워드로 살았습니까!
아빠!
이제 아버지만이 주목받으시길 바라는
애절한 마음만이 가득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 저를 이끌어 가시든
존재로 만족한 지금을 아버지께 오롯이 내어 드리며
죽도록 뜨겁게 아버지만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본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그 지혜를 가지고 현상에 나와서
현상에서 보살행을 하면서 남을 도와주면서 잘 살아가는 것,
그게 평상심입니다. >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에게 늘 새로운 깨우침을 주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근거없는 저 만의 분별심에 사로잡혀
그것이 모든 삶의 기준인양 분별없이, 주제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안에 미움과 불만이 쌓여
정작 중요한 본질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 내맡겨드리고 나니
비로소 제 안에 켜켜이 쌓인 벽들을 허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진정한 사랑을 살라고 하셨는데
이기적이고 위장된 겉치레의 삶을 산 저를 용서하소서!
부족한 저는 저만 기쁘고 평화로운 것에만 취해서
그 사랑이 흘러가도록 하질 못했습니다.
제 안에 성성히 살아계신 아버지의 사랑을
온 마음으로 전하겠습니다.
상황이 좋든 안좋든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겠나이다.
제게 주신 모든 일들이 저를 위한 아버지의 선물임을 믿으며
더 끊임없이 기도하며
사랑하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립니다!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결국에는 핵심은 뭐냐 하면
'지금 이 순간 내 정신이 나가 있는가? 정신 차려 있는가?'
이거 하나인 거예요.
'정신 차려 있다!'
이 말은 내가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식이 깨어나 있어서 다 살펴서 처리를 하고 있다는 거고,
'깨어있지 못하다!' 하는 것은 무의식 상태로서
일어나긴 일어나는데 그냥 끌려가는 거,
깨달음이란 것은, 지금 의식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거죠.
자기의식이! >
사랑하는 아버지,
무의식 속에서 행했던 저의 행위들이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일을 한 기억이 없어
잠시 이게 뭐지 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저의 의식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임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저의 의식은 무의식 속으로 끌려가고 있었음도 깨닫게 되었고
<거내영> 안에 머무르면서 아버지 안에 있음을 지금은 압니다.
<아버지 기도>를 부름으로써 지금 여기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아버지의 시간에 따라 <거내영>으로 이끌어 주셔서
무의식 속에서 헤매이던 저의 의식을 깨어나게 하시어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저의 의식을 깨닫고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사랑으로 거듭나며 지금 여기를 살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요!
무명에서 명으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참으로 귀한 가르침을
<거내영> 안에서 깨우치며 아버지 사랑 안에 푹 잠기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음을, 오직 아버지의 사랑만으로 족함을
깊이 느끼며 아버지께 저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맡겨 드립니다.
부족한 저는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며 따르겠습니다.
제 사랑이신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겹쳐도 서로 방해되지 않고, 마치 하나의 빛인 것처럼>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지금 이 순간' 에 깨어 있을 때,
제 에고를 알아차리고 아버지기도로 깨어 있을 때
제 뜻( 낱 생명)이 죽으면서 아버지 뜻(온 생명) 안에서
<겹쳐도 서로 방해되지 않고, 마치 하나의 빛인 것처럼>
함께 빛 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올라오는 에고의 작동에
휘말리는 순간 상대와 나의 에고가 부딪혀
온유함이 아닌 굳어진 마음이 될 수 있음을
오늘 여러가지 상황들을 통해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겹쳐서 참사랑에 서로 방해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거룩한 장애물 경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띄엄띄엄 있던 하나의 장애물을 넘으면 거리가 좁혀지며
더 다양한 버전으로 다가오는 장애물을 만납니다.
분명 내맡김 이전과는 다르게 즉시 또는 잠시 혹은
조금 더 긴 시간 지나서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그 장애물을 넘었음을 알게 되어집니다.
거룩한 장애물은 아버지께서 제 영혼에 꼭 맞춤으로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영적 성장을 위한 거룩한 디딤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의 이끄심에 부족하고 비천한
제 영혼육 엎디어 감사와 사랑과 영광과 흠숭 올려드립니다.
<겹쳐도 서로 방해되지 않고, 마치 하나의 빛인 것처럼>
되어지는 영혼으로 더더더 거듭 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부족한 저의 모든 것 내맡겨 드리며
아버지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뜨겁게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무명으로 사는 저를 명으로 일깨워 주시는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나와 남, 좋은 거 나쁜 거,
크고 작은 거, 남자 여자, 뭐 우리나라 다른 나라,
온갖 이 분별의 벽이 우리는 습관화되어서
우리의 머릿속에 이 습관이 되어 있는 거, 분별심,
그래서 그 분별하기 때문에 분별해 놓고 좋다 나쁘다 하니까
좋은 것에 홀려 가지고 그걸 집착하다 보니까
현상계에 떨어져서
집을 나와서 헤매고 있는 '집 나간 거지' 같은 상황,
그게 지금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것의 내용이다~ 이거죠.
이걸 바로 잡는 게 지금 우리 공부의 목표예요. >
< 자, 다시, 본유금유!
본래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
요게 지금 깨달음의 기준이에요. >
< 보통 우리들에게는
머릿속에 항상 무의식의 흐름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가 온전하게 깨어서 살지 못하는 거예요. >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흔쾌히 100% 통쾌하게
유쾌, 상쾌, 통쾌하게 못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막혀 있다 이거죠. 막혀 있다. >
사랑하는 아버지,
분별심이 고통의 원인인줄 이제 알았습니다.
어젯밤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아이의 태도에 불쾌감이 생겨
에고가 고개를 쳐드는 순간을 감지하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지되는 순간 아버지기도로 끊임없이 화살을 쏘아대다가 만난
이 글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스럽습니다.
저를 불쾌하게 했던 아이가 참으로 고맙기까지 합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원인이 이 분별심이 근원지였음을 알았고
지도 신부님께서 이원론에서 벗어나라고 목이 터져라 가르쳐 주신 이유를
온몸으로 깨달으니 폐부 깊숙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 거내영 >을 몰랐다면 이 교수님의 강의를 알아들을 수나 있었겠나 싶으니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게 아버지의 사랑임에 백골난망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하느님,
이 생명 다 바쳐 오직 아버지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 거내영 >과 모든 사제들, 무형성전 모든 식구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이룩하시어 아버지 홀로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