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도서 후보 중 꼭 해보고 싶었던 책이라 토론대상으로 선정되진 않았지만 따로 읽어보았습니다.
예상했던 논리로 조선의 쇠망 원인을 정리했습니다. 다만, 예상보다 조선이 너무 심하게 무능했고 부패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가지 말씀드리면...
1. 조선의 건국세력은 고려의 호족/장군으로서 실제 지배층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배세력은 신분제를
공고화하는데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그 과정에 노비라는 신분이 있었는데 노비 신분이 세습되는 (부모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인) 나라는 다른 데는 없었다고 합니다. 양반들은 노비가 사유재산인만큼 노비 여자가 타 집안으로 출가하는 것을 막았으며 (그 자식이 남의 집안 소유가 되므로) 오히려 그냥 자기 집안에 있으며 사생아를 낳도록 묵인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상업이 성행하면 상인계급의 성장으로 신분제의 균열이 일어날까 두려워 상업활동을 엄금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물건을 싸게 사서 이윤을 붙여 파는 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해 처벌했다고 합니다.
2. 성리학은 본래 총론격인 리(理)와 각론격인 기(氣)로 이루어져 있는대 조선에서 가져온 것은 총론인 리(理)에만
국한되어 실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별 역할을 못했다고 합니다.(예를 들자면, 왕도정치에 대해서 매일 왕과 신하들이 경연이라 하여 토론을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정치에 구현할 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직전만 해도 이황.이이.유성룡,이덕형,이항복 등 훌륭한 학자들이 많았지만 막상 전쟁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당하게 되었습니다.
3. 조선은 왕권과 신권이 견제와 균형을 이룬 모범적인 체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조선에서는 오히려 부작용으로 작용했습니다.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반과 사림들은 그들의 권력을 일반 백성에게 마음대로 휘둘러댈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조용조 삼정의 문란을 일으키고 백성들은 피폐한 삶을 살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마을공동체의 선량한 협동활동이라고 알고 있는 "두레"도 지방의 향약에서 양반들이 상민들에게 공동노역을 하게 하는 제도였다고 합니다.
4. 이런 상황에서 관리들은 나라를 제대로 이끌 역량이 부족하고 의욕도 없었으며 조선의 농업생산량(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은 당시 일본의 60%, 중국의 50%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도 보고 중국도 가 보았으나 조선은 왜이렇게 가난하냐고 안쓰러워 했다고 합니다.
5. 토지나 호구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지방관리들은 갖은 방법으로 세금을 거둬들였으며 그중 많은 부분은 조정에 가지도 않고 그들의 사용했다고 합니다. (명분으로 삼을 만한 것은, 조정에서도 먹고 살만한 녹봉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녹봉'을 풀어쓰면 3개월에 한번 주는 것이 녹이고 1개월에 한번 주는 것이 봉이랍니다.)
토지조사가 제대로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글을 모르는 농민들을 속이고 압박하여 거의 모든 토지가 관청이나 양반계급이 소유하게 되니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에 가보니 70%가 소작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작농은 5:5로 생산물을 지주와 배분하는데 나중에는 종자/세금 등도 소작농이 부담하느라 실제는 소출의 20%정도밖에 가져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6. 조선은 국방을 중국에 의존하고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건 책에 없는 내용입니다만) 임진왜란시 용인전투(1592년)에서 조선군 8만명(10만명이라고도 함)은 왜군 1600명에게 패했으며 병자호란 때 쌍령전투(경기도 광주) 조선군 4만명은 300여명의 청나라 기병대에 거의 몰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김훈의 소설 흑산도에 보면 청군이 남하하는데 막아서는 조선군은 없었다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책을 읽어 보니 내용도 다양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라든가 의식체계의 근간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이지만 가장 근접하게 제목을 붙인다면 [조선의 사회/경제사]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저자는 노동부 차관까지 한 정통관료이면서도 경제학 박사까지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답지 않게) 여러가지 실증적인 자료와 경제이론까지 동원해 조선의 실체를 밝히려 노력한 점이 돋보이는 저작입니다. 대신에 정통 학자가 아닌 만큼 너무 전문적이거나 읽기 어렵진 않습니다.
이 책도 조선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이겠지만 일본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의견을 이해할 수도 있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유의할 만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만 일부만 설명드렸으며 북두런 님들의 필독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첫댓글 읽어보고픈 책이군요~~
읽을 책이 한 권 늘었네요. 책 추천과 독후감 감사합니다.
우왕 진정한 지식욕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