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신 영 이
아파트 저층에서 살다 이사를 왔다. 지금이야 꼭대기 층에 적응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엔 떨어질 것만 같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무섭고 겁이 나서 베란다 근처를 잘 가지도 않았다. 뒤에는 북봉산이고 앞에는 주택가라서 앞을 막고 있는 어떤 건물도 없었다. 비가 온 다음 화창한 날에는 금오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너무도 조용한 동네였다.
첫여름 창문을 열고 자는데 소음이 들린다.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꿈인가 싶어 살며시 눈을 뜨면 소리가 들리지 않고, 다시 자려고 하면 밖에선 굉음이 연달아 다시 들려온다. 우리 동네는 계획구역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밤이면 뻥 뚫린 직선 도로를 오토바이들이 내달리기 쉬웠다. 그 당시만 해도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들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경찰들이 순찰하지만, 새벽에 딱히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것 가지고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은 자다 깬 나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하소연하면 밑에 소리가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여름 지나 문 닫으면 괜찮다는 야속한 소리만 한다. 여름 한 철이라 참긴 하지만 ‘어이구 저것들이 잠도 안 자고 왜 나와서 난리야.’ 하면서 얇은 이불을 끌어와 귀를 덮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렇게 익숙해지면서 여름의 소음들은 지나갔다.
해를 거듭해도 여름 새벽은 변함이 없었다. 신경을 곤두서게 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넘기며 지냈다. 아파트며 상가들이 들어오고 사람도 많아지면서 차들도 늘어났다. 유독 어느 날 새벽, ‘끼이익’ 하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동네의 정적을 깼다. 해마다 내가 모르는 잦은 사고들도 있었을 것이다. 부스스하게 눈을 뜨고 나가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다. 사고라도 난 건가 싶어 목을 빼고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은근히 오토바이 탄 사람이 걱정되었다. 분명 폭주족 안에 어린 학생도 있을 건데……, 어수선한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혼 전 병원에 근무하면서 젊은 아이들이 사고로 머리를 다쳐 뇌 수술하게 되는 걸 자주 보아 왔다. 대부분 오토바이 사고였다. 그 당시에는 병원 일에 치여 환자로만 볼 뿐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저렇게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는 아이를 보는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그 굉음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 수술 중환자실에 있다가 호전되면 내가 있는 신경외과 병동으로 온다. 젊어서 전반적으로 빠른 호전은 보이지만 어지러움, 어눌한 발음, 전과 다른 몸의 감각 등 후유증도 많이 있다.
한 여자아이가 오토바이 뒤에 탔다가 사고가 났다. 그 아이처럼 십 분 만에 바로 수술에 들어갔던 운 좋은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의료파업으로 인해 수술 의사가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었고, 마침 병원 앞에서 사고가 나 바로 데려온 것이다. 그 아이는 후유증도 없이 퇴원했던 거로 기억한다. 하지만 새벽에 주로 발생하는 사고는 여러 여건상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는 때가 많다. 그러면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밖에 나가 보면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는 아이들 대부분이 학생이다. 오토바이는 살짝 넘어져도 뜻밖의 사고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사고가 날 수 있는 오토바이를 아이들은 쉽게 타고 다닌다.
어느 날 아이 두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데 뒷좌석에는 또 다른 친구도 타고 있었다. 세 명의 아이는 아무 보호 장구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잠시 서 있을 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다가갔다. 점점 더 거칠어지고 어른을 위협하는 아이들도 있다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고 작심하고 말을 건넸다.
“너희들이 오토바이 타는 것 가지고 말하지는 않겠는데, 안 타면 더 좋겠지만. 헬멧을 쓰고 타면 어떻겠니? 아줌마가 병원에 있어 봐서 아는데, 오토바이 사고로 위험해져서 오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아. 친구들 중에도 그런 아이들 있을 거야. 타더라도 제발 헬멧 쓰면 안 되겠니?” 아이들 눈빛이 부드럽게 사그라든다. “아, 네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진심을 전하는 어른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게 고마웠다. 휑하니 그 자리를 떠나는 아이들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일탈을 시도해 보고 싶어 하고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려서 그런 것이라 한편으로 이해도 되지만 생명과 연관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좀 더 멀리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오토바이를 타는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지인이 있어 선뜻 마음을 내어 오지랖을 떤 것인지도 모른다.
오토바이에 대한 도로교통법이 강화되어서인지, 아이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학생들이 새벽에 요란히 오토바이를 타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여름밤은 길고 잠이 안 올 때도 있지만 폭주족들의 굉음은 많이 사라졌다. 그만큼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니 이래저래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