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동창매표소

[파란우산]

겨울비에 젖은 20번국도 길을 타고 청도읍으로 달렸습니다.

겨울비에 젖은 도로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에도 겨울이

일찍이 드리워있습니다.

도로 옆 아담한 돌담너머 앙상한 가지에는 아직 빨갛게 익은

감이 서너 개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마치 자신들끼리 가을노래라도 부르는 것 처럼요..

아마도 까치들에게 줄 사람들의 배려이겠죠..

길은 제법 가파르고 구불구불 옛길에 풍경들도 하나같이 2011년의

시간에서 훨씬 멀어진 듯한 과거의 모습들이 박물관처럼 남아있습니다.

5월 입하를 넘어 산에 눈꽃 같은 아카시아 꽃이 연록 빛 사이로

빼 꼼 히 고개를 내밀 무렵이면 이곳 청도의 들판에는 향긋한 복숭아가

모진 겨울 살 이를 이겨내고 나뭇가지에서 하나둘 꿈틀거리며

여름을 준비합니다.

여름에는 복숭아가 익어가고..

따사로운 가을햇살에는 감이 익어가는 따스한 고향의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

그곳은 경북 청도입니다.

금천면 동곡리를 지나 창녕으로 이어진 20번국도와 밀양,김해로 이어진

58번 국도가 갈라지는 작은 삼거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삼거리 너머 옹기종기 상가들과 우체국이 나오는 이곳은

경북 청도군 매전면입니다.

여전히 가랑비가 흩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 작은 시골마을은

차분하게 겨울비속에 겨울 살 이에 들어가 있는 듯 합니다.

삼거리 부근에 구멍가게를 겸한 버스매표소가 보이 길래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곳 20번국도 길로 노란 시내버스와 산내-남부정류장을 오가는

직행버스가 지나는 곳이지요..

매표소 이름은 -동창매표소-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에 소재하고 있는 이곳 면소재지에 머무는

버스들의 간이 터미널입니다.

이곳 마을 뒤편으로 흐르는 동창천의 이름을 따와서 동창매표소로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가는 인적도 없는 도로가에 지나온 시간을 얼핏

알 수 있게 하는듯한 빛바랜 매표소 건물..

버스가 머무는 곳이지만 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좁은 20번 국도로 차들만이 사람보다 더 많이

지나갈 뿐입니다.

경남 밀양시 상동면의 옛이름 유천면으로 가는

직행버스는 하루4번 머물고..

대구로 가는 직행버스도 하루 4번 머무네요..

노란청도시내버스도 이곳에서는 청도방면과 동곡방면

유천방면 노선이 정차하는데 버스운행횟수도 각 지역 모두

하루 8~9회가 전부입니다.

나는 주저하다가 매표소 문을 열고 들어서려니 문이

잠겨있습니다.

그러자 매표소 안을 홀로 지키시던 주인 할머님이 문을

열어주십니다.

‘무슨 일로 왔노?’

할머니는 낯선 타지인 이 찾아오자 다소 놀라신  듯한 표정으로

제게 묻습니다.

‘안녕 하세요 할머니, 저는 지금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여기 옛날 버스정류장이 보여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나는 할머님께 꾸벅 인사를 드리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문을 활짝 열어주시며 내게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래 여 뭐 그래 찍을 거라도 있나? 자 여 한번 찍어 봐라

  저 짝에 자리 한번 찍어보고, 저 밖에 나무도 한번 찍어 보거라,

할머니는 내게 손수 작은 가게 안 겸 매표소안을 안내해 주시면서

마치 낯 설은 사람이 아닌 가족 손자를 대하듯 살갑게 대해주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처음의 서먹함은 이내 사라지고, 나도 나의 고향집에 온 듯

훈훈한 온기가 도는 할머니의 공간인 매표소안을 두루두루 둘러보며

시골버스 간이 대합실의 정취를 사진에 담고 어릴 적 시골버스를 타고

갔던 추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하루 뜸하게 다니는 버스가 아주 잠시 머물다

떠나는 간이 매표소이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소박한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대합실이 있습니다.

벽시계 아래 붙여진 청도군 관광안내 지도를 할머니께서는

소중히 여기시며 제게 이것도 사진에 담아보라고 하십니다.

매표소안 곳곳에 할머니의 살가운 손길의 흔적이 담겨있습니다.

작은 의자 뒤로 어릴 적 학교문구점밖에 있던

앉은뱅이 오락기도 보이네요..

문구점 바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셀로판지 세 개로 화면에

붙인 흑백화면의 20원,30원 넣고 하던 그 추억의 게임기..

그 앉은뱅이 게임기가 이곳 매표소 안에도 세대가 나란히

대합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항상 게임기 주변에는 코흘리개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게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죠..

그러다가 엄마한테 걸린 애들은 그 자리에서 무지하게

얻어터지고 집으로 강제 소환되어가던 녀석들도 있었고..

텅 빈 매표소안 오락기는 침묵에 빠져있습니다.

더 이상 찾아올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쓸쓸한 도로가를 지키는 동창매표소 주인이신

할머니는 도로가 풍경만큼이나 홀로 텅 빈 가게 겸 대합실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가게를 겸하고 있지만 가게 안에 파는 물건들도

과자와 초콜릿 소시지, 담배가 전부입니다. 
초콜릿 옆에 추억의 과자가 되어버린

입에 넣으며 볼이 한가득 부풀어 오르는 눈깔사탕도 보이네요..

주인 할머님의 상석 자리 겸 일과를 보시는 책상 앞에

앉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내가 여서 표를 판지가 30년이 지났어,30년 동안 한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어 그때는 참 버스 타러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여 마을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다고..

  그런데 인자는 사람들도 다 떠나고, 버스 타러 오는 사람도 없고

  버스는 요새 맨날 텅텅 비어서 다니지..,

할머니는 텅 빈 대합실을 바라보시며 30년 전 추억을 꺼내어 들려주십니다.

그 시절에는 매표소앞 도로는 흙먼지 풀풀 날리던 비포장 길이었을 것이고...

평일 아침과 오후에는 학교로 가는 학생들로 장날이 서는 날에는

마을사람들이 짐을 이고지고 이곳 매표소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버스를 기다렸겠지요..

마을의 사랑방과도 같던 그 시절의 대합실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상상해 봅니다.

마을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내고 지켜온 이곳 동창매표소는 바로

할머님의 모든 것의 삶이었습니다.

‘할머니 그러면 여기서는 어떤 표를 파세요?’

그러고 보니 간이매표소에서 끊어주는 승차권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아 그래 표도 참 보여줘야지 표는 저기에 있다.’

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에

다가가시는데 바로 승차권을 보관하고 있는 금고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었네요..

냉장고속에는 꽁꽁 언 아이스크림들 대신 오래된 나무상자에

담긴 연한 하늘색 색지 승차권 뭉치들을 담아둔 표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니 할머니 냉장고에 승차권이 있어요!’

‘그래 여서 승차권 넣어두고 판다,

할머니는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조심조심 표가 담긴 나무상자들을

하나씩 꺼내서 보여주십니다.

검정색 고무줄로 둘둘 묶여진 승차권뭉치들..

빛바랜 색지승차권은 이곳 매표소의 보물 1호입니다.

하늘색 색지 승차권에는 이제는 추억으로 사라진 성남여객

버스회사명도 보입니다.

판매소 직인이 찍혀있는 색지승차권들은 각 구간별로 요금이

찍혀있습니다.

저 많은 승차권들을 들고 이곳 매표소를 거쳐 간 수많은

마을사람들의 추억과 그리움들이 담겨있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거쳐 간 30년의 세월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람들에게 갔을 승차권들...

그리고 그 승차권이 담긴 마을 앞을 오가던 버스들..

30년이 흐른 지금의 매표소에는 하루에 찾아오는 사람보다

텅 빈 채 시간을 보내는 날이 더 많다고 하십니다.

30년..

그 긴 시간동안 저 색지 승차권을 들고 버스를 타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나요..

‘인자 표를 사러올 사람도 없고, 저는 교통카드가

  들어와서 버스는 카드로 탄다,

이곳 지역 시내버스도 대도시처럼 교통카드가 도입되어

시골버스에서도 교통카드로 승차하는 시절이 왔습니다.

그 때문에 색지승차권도 앞으로 언제까지 존재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런 생각이 듭니다.

그 우려스러움을 할머니도 아시는 듯 책상 위 한 켠 에 놓인

교통카드 충전기를 내게 보여주십니다.

아직 할머니가 파셔야할 승차권은 저리도 많은데..

승객도 줄어들고..

설상가상으로 교통카드까지 들어오면서 추억의 옛 승차권의

자리도 설 곳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바깥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매표소안에서 기약 없는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승차권들..

언제쯤이면 저 승차권들이 승객들의 손을 거쳐 버스 안

요금 통으로 들어 갈수 있을까요..

30년의 세월동안 저 색지 승차권을 손에 들고서

버스에 오르던 사람들의 저마다의 숱한 사연들 이야기들이

아련한 추억이 되어 이제는 홀로 할머니가 지키고 있는

매표소안 곳곳에 빛바랜 승차권처럼 묻어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다 떠나고..

하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 한자리에서

마을 버스매표소를 지키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동창매표소 주인 장 겸 이곳 버스들을 지키는

등대지기입니다.

삶의 대부분을 오직 이곳 매표소에서 보내신

주인 할머니..

앞으로도 할머니는 변함없이 동창매표소를 지키고 계실 것입니다.

사람들도 떠나고..

무심한 세월도 떠나버렸지만..

할머니는 영원히 이곳 매표소를 지키고 계실 겁니다.

떠나기 전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의 영원한 터전인

매표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드렸습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동창매표소 할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아직 가야할

청도읍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마침 동곡리로 가는

노란 시내버스가 동창매표소 앞을 지나갑니다.

아쉽게도 승객이 없는지 그냥 버스는 휑하니 떠나가 버립니다.. 
 

[바퀴자국]

예전에 대구MBC에서 방영했던 0번 버스 이야기에 나오던 그 정류소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은 교통카드가 들어온 지역에선 매표소에서 교통카드 충전을 해 주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영천 신녕도 그렇고 경산 자인도 그렇구요.. 구미 장천도 구미 마이비 충전이 가능합니다. (대경은 안돼요~~) 표 안 끊고 탄다고 뭐라 하려다가도 만원 내면서 카드 충전좀 해주세요 하면 눈매가 싹 바뀌던데요 ㅎㅎ

[파란우산]

그러게 나도 기억이 가믈하지만 아마도 대천정류소였던가? 개발로 사라지기 직전의 간이 정류소의 매표소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노부부 이야기가 생각나네..

[파란우산]

이젠 시골에서도 승차권 보기가 어려워지겠구먼..앞으로 계속 교통카드를 도입하는 농어촌 버스가 늘어날테고..
그런데 마이비카드 하니깐 갑자기 경산시내버스가 생각나네..경북에서 가장먼저 도입했으나 지금은 거의 멸종되다시피한 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