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것이 아름답다 ♣
- 2017년 4, 5, 6월에 정성 주신 분들 -
<퇴임교사>
김시영 김승래 권나무 박유희 전주연 임선남 김정화 문경주
<동문>
강계형 장호영 김홍근 김명성 박경희
<현직교사>
양현철 한상배 안대준 이원섭 이형복 홍미영 이미정 양희원
김영하 차희경 임춘희 김치헌 김은선 박진만 이석화 남상욱
<후원회원>
이명숙 김선애 이종숙 공희천 김현자 김재호 임재연 김세영 성논산
이화순 홍성훤 손인주 손태성 신명기 이철민 조광연 이복희
서준영 이화영 김종규
♣ 훈훈한 새물내 인정 ♣
가을 편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황홀하게 초지일관 무르익은 가을이
수미산 산자락에 기립해 있는 날
황홀할 수 없는 내 사랑 노여워
그대 향해 열린 문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문이 있어
마음의 문은 닫지 못했습니다
작별하는 가을의 뒷모습이
수묵색 눈물비에 젖어 있는 날
작별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
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
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
길을 끊고 문을 닫아도
문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
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
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
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
풀밭 한벌판으로 흔들리는 그대여
그 위에 해와 달 멈출 수 없으매
나는 다시 길 하나 내야 하나 봅니다
나는 다시 문 하나 열어야 하나 봅니다
-고정희-
**********************************
사랑하는 님들!
곧 한여름이 다가오는데 웬 가을편지냐고요?
하하...
덥잖아요.
무더위가 다른 때보다 일찍 찾아왔잖아요.
하늘 높고 바람 시원한 가을 생각하며 더위 잊으라고요.
그리고
그리고
나이가 드니까
세월의 강 마구마구 흐르니까
여름에도 그리워지잖아요.
그리움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건
주름질수록 감성이 더 자극받아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자꾸자꾸 주책없어지는 걸까요?
하하...
이런 저런 까닭으로
길을 끊고 문을 닫았어도
문을 닫고 가지를 잘랐어도
그래요.
괜찮아요.
다시 길 하나 내어 봐요.
문 하나 다시 열어 봐요.
걱정도 없어요.
큰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이해 못 할 일도 없어요.
그러니
그러니
다시 해 봐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하하...
<고맙습니다! 훈훈한 새물내 인정 1>
*양희원, 이석화 님!
“그대가 한밤에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어둠이 되어(안도현)-
그 누군가에게, 그 어딘가에 손 내밀어 보듬어 주는 걸 말로는 익숙하게 하고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정말 마음으로 눈으로 온몸으로 실천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과 이웃에서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오랜 세월 구불구불 흐르는 긴 강을 한길로 가고 있는 동부를 위해 기꺼이 어둠이 되어 주시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석화 님, 양희원 님! 고맙습니다.
*목소리가 참으로 정겨웠습니다. 공희천 선배님!
토요일 이른 아침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우와~ 세상에~
들려온 목소리는 참으로 정겨웠고 따뜻했습니다.
특별한 일이나 할 얘기가 있어서 사무적인 전화를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지나고 삶의 이런 저런 굴곡 있는 환경으로 인해 서로 만나지 못했지만
그저 생각이 나서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해주신 분!
사실 저도 모처럼 여유롭고 홀가분한 시간을 보낼 때면 그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그런 느낌을 갖곤 했는데 먼저 전화로 안부를 물어 주셔서 얼마나 황송했는지요.
훈훈한 웃음과 후배들을 다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한 품으로 모든 동료에게 좋은 영양분을 주셨던 공희천 선배님!
아주 오래 전부터 동부에 손길을 내밀어 주셨고 그 손길은 지금도 한결 같지요.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가을이나 겨울에 따뜻한 모습 꼭 뵙기를 바랍니다.
전화 통화하면서 함께 얘기 나눈 그동안 인연 맺었던 사람들에게도 꼭 안부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는 훈훈한 새물내 인정 2>
닳고 닳은 추억담
새 정부 고위공직자 후보를 옹호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내로남불'의 졸렬함을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민주화 30년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기득권화한 지 30년이라는 뜻이기도 하니, 그들이 극우세력과 '생활 양식'면에서 그리 다르지 않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재확인한 것, 즉 나와 그들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야말로 청문회의 중요한 사회적 소득일 것이다. 새 정권과 관련하여 여전히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이 풍경이 나를 도리없이 비위 상한 게 해준 건 내로남불이 아니라 후보와의 옛 인연을 들먹이는 추억담들이었다. 순수, 열정, 온화, 소탈 따위 상투어들이 난무하는, 그 후보나 옹호자나 그런 것들을 잃은 지 매우 오래임을 강조하는 걸 유일한 소임으로 하는, 닳고닳은 민주 아재들의 추억담.
시민의 기본
'내가 지지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가 당선되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니 나는 권력을 견제하는 냉정한 비판자로 돌아가겠다.' 이게 성숙한 민주 시민의 기본이며, 내가 지지한 대통령을 위해서도 최선의 태도이다.
피로 파괴
피로파괴(fatigue fracture)라는 게 있다. 금속에 반복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피로가 누적되고 결국 부서져버리는 현상이다. 피로파괴는 다리를 붕괴시키고 비행기 천정을 날려버리며 달리는 자전거 프레임을 동강내기도 한다. 반복된 스트레스는 말 그대로 '쇠도 못버티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물론 사람은 쇠와 달리 부서지기 전에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부서짐을 의미한다. 인생이란 누군가의 파괴 요인이 되는 일의 연속이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새로운 파시스트들
민주주의를 진전시킨다는 건 우리만 옳다 믿는 사람들이 지배하던 세상을 옳은 것은 하나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바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만 옳다고 생각하는 극우 정권을 우리만 옳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정권으로 교체하는 걸 민주주의의 진전이라 맹신하는 사람들이 준동하고 있다. 오늘 민주주의의 적이자 새로운 파시스트들.
연기
불교 사상의 핵심은 연기론(緣起論),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연기론은 불교의 범주를 넘어 여하한 종교의 신앙에도 기본적 사고틀이 된다. 연기적이지 않은 신앙은 제아무리 크고 휘황해도 해방이나 구원과는 무관한 미신일 뿐이다. 신앙을 갖는다는 건 먼저 나와 온 우주만물이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 존재가 우주만물의 미미한 일부일 뿐이라는 절대 겸손이자, 내 신념에 우주만물의 힘이 개입한다는 절대 용기이다.
부끄러움
부끄러운 짓을 해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을 개탄하며 부끄러워할 것을 촉구하는 건 사실 소용없는 일이다. 부끄러움도 공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공부함으로서 비로소 짐승과 구별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런 건 아니다.
발광
민주화 이후 운동 이력 팔아 정치인도 되고 운동 추억 팔아 작가도 되고 노선을 바꾸어 교수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안면몰수하고 강남 학원 원장도 되어 극우 기득권 세력과 정권을 놓고 경쟁하는 리버럴 기득권 세력이 된 386.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사회 문화 전분야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을 법제화하고 삼성공화국을 만들어 헬조선을 기초함으로써 인민의 신망을 잃고 정권을 넘겨준 그들은 요행히도 최순실과 박근혜의 패악질 덕에 제 세상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눈이 돌아갈 수밖에. 어젯밤 그들의 발광이 또 한번 시작된 모양이다. 오래 전 그들의 친구였던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부끄럽다.
수행정진
몇십일 기간을 정해놓고 새벽에 일어나 8시간씩 연습하는 연주자 이야기를 듣다가 며칠 전 우연히 본 영상에서 공병호의 말 '열심히 노력해서 더 많은 성취를 만들어내는 삶이 왜 자기착취인가?'가 떠올랐다. 수행정진과 자기계발의 차이를 생각했다. 나를 덮은 온갖 더께를 걷어내고 진짜 나를 찾는 일과 나를 더 바람직한 다른 나로 교체하는 일. 후기 자본주의가 부여하는 고통이란 결국 삶의 결이 어떤 수준에서든 수행정진 지향에서 자기계발 지향으로 바뀌어버린 데 기인하는지도.
존중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한다.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든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혹은 혐오해 마지않는 후보를 비난할 순 있다. 그러나 그런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은 내 입 안에 머물러야 한다.
교감능력
언제부턴가 교감능력이 가장 중요한 인간적, 사회적 덕목으로 부각되고 관련한 말들도 넘쳐난다. 꽤 많은 사람에게 세계는 마치 교감능력이 있는 선인과 교감능력이 없는 악인의 대결장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물론 인간은 교감능력 없이 살 수 없다. 교감능력은 인간과 인간의 정서적 차원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냉정한 대면과 실천적 연대를 만들어낸다. 교감능력은 변혁의 동인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에게 교감능력처럼 상투화하기 쉬운 것도 없다. 교감능력은 종종 입에 발린 말, 좋은 사람 행세, 감상적 태도 등으로 대체되며 변혁의 '선한' 방어막으로 돌변한다.
부활절
예수의 부활이 단지 육체의 부활이라면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류 최고의 마술사일 뿐이다. 우리는 마술사에 감탄하지만 존경하거나 신앙하진 않는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함께 십자가를 질 것을 요청하면서, 즉 수난과 육체적 죽음까지 불사할 것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온세상을 얻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예수는 진정한 목숨이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예수의 질문은 사회가 요구하는 자아상으로 내 자아를 교체하여 살아가고, 그 성공적 교체를 인생의 성공이라 여기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부활절이 그 질문을 묵상하고 스스로에게 되묻는 날이면 좋을 것이다. '나는 정말 살아 있는가?'
어려운 사람에게 해야 할 행동
“잘될 거라는 막연한 낙관도, 그깟 취직 좀 늦어지면 어떠냐는 무책임한 위로도, 왜 이 정도 스펙밖에 갖지 못했냐는 흔한 질타도 하지 않았다. 준비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고,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술을 사주었다.”
아무래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문학성 논란이 있던데 이 소설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용한 구절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에게 당시 남자친구가 하는 행동을 묘사한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가까운 사람에게 해야 할 행동’을 잘 정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첫 문장에 열거된 세가지 행동(막연한 낙관, 무책임한 위로, 흔한 질타)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미화되거나 권장되는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기 객관화
뇌과학자들은 인간 두뇌의 최고 단계를 자기객관화 능력이라고 하던데, 깊이 동감한다. 성인이 된다는 건 결국 자기 객관화 능력을 키우는 일이고, 자기객관화 능력이 높을수록 성숙한 인간이다. 사회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지간히 자기객관화를 할줄 아는 인간들에 의해 유지되거나 개선되어간다. 아예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인간은 그 자체로 흉기가 된다. 어제 말한 우병우를 비롯하여 김우중, 전두환, 김기춘 등 근래 쏟아져 나오는 '역사의 피해자들'은 그 쉬운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는 아저씨들에게만 해당하진 않는다. 제 욕망과 성취감, 혹은 재미와 호기심을 쫓느라 누군가의 삶을 갉아먹는 인간은 도처에 있다. 사실 대개의 우리는 조금씩은 그렇다.
나쁜 머리
우병우 같은 사람을 보며 최고로 좋은 머리를 갖고 저런 짓을 하는가 개탄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머리란 고작 그런 건가. 인간의 머리가 여느 동물과 다르게 취급되는 이유는 단지 기능적으로 나아서인가. 사유하고 성찰하기 때문이다. 우병우 같은 사람이 한 짓을 보면, 그러고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걸 보면 오히려 최고로 나쁜 머리가 아닌가.
♣ 재미있는 우리말글 ♣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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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새물내 재미있는 우리말글은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로 시작해 봅니다.
이 시는 예쁜 우리말로 쓴 사랑시 당선작 10선에 뽑힌 시입니다.
이번에 발행되는 동부밑거름학교 새물내 ‘재미있는 우리말글’에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쉼표, 마침표>와 한글문화운동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한글 아리아리>에 실려 있는 글을 옮겨 왔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많이 생각하면서 우리말글을 더 아끼고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름 무더위 시원하게 잘 이겨내고 의미 있는 일들 많이 만들어 내면서
언제나 건강하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늘 응원합니다.
◆ 우리말 이야기 ◆
<1>
천정인가, 천장인가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당국의 발표는 장바구니를 든 서민들에게는 언제나 공중에 뜬 허언이다. 특히 집값과 사교육비는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물가 인상폭이 큰 것을 두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고 한다. 이때의 천정부지는 ‘천정을 알지 못하고’라는 뜻으로 쓴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정’은 ‘天井’[텐죠오]라는 일본말의 한자음이다. 우리말은 ‘천정’이 아니라 ‘천장’이라 해야 맞다. ‘천정부지’를 굳어진 말로 보아 국어사전에 올려놓기는 하였지만, 당장 ‘천장부지’로 옮기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라면 아예 우리말로 바꿔서 “물건 값이 천장을 모르고 올라간다.”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집집마다 있는 ‘장롱’도 받아쓰기를 해보면 자주 틀리는 말이다. ‘장롱’의 ‘롱’을 ‘농’으로 잘못 쓰는 사례가 많다. ‘장’은 ‘옷장’이나 ‘이불장, 찬장, 책장’과 같이 물건을 넣어두는 가구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고, 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그릇을 ‘궤’라 하는데, 이 궤를 여러 층으로 포개 놓도록 된 옛날식 가구를 ‘농’이라 한다. 이 ‘장’과 ‘농’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장롱’인데, 이때 ‘농’의 표기가 ‘롱’으로 바뀌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또, 자전거를 탈 때, 바퀴로부터 튀어 오르는 흙을 막기 위해 바퀴 위에 덮어 대는 장치를 흔히 ‘흙받이’라고 부르고 있다. 자동차 바퀴에도 이러한 장치가 있다. 그러나 표준말은 ‘흙받이’가 아니라 ‘흙받기’가 맞다. 쓰레기를 받아내는 기구가 ‘쓰레받이’가 아니라 ‘쓰레받기’인 것과 마찬가지 경우가 되겠다.
<2>
기억과 생각의 차이
‘기억’이란 한자말을 흔히 “초등학교 때 친구가 기억난다.”라든지, “할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이 잘 안 난다.”와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문장들에서는 ‘기억’이란 낱말이 바르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이때에는 ‘기억’이 아니라 ‘생각’을 써서 “초등학교 때 친구가 생각난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생각이 잘 안 난다.”로 고쳐 써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한자말 ‘기억’은 “어떤 일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이란 뜻이므로 ‘기억하다’라고는 쓸 수 있어도 ‘기억나다’라고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앞에서 예를 든 문장에서처럼 “도로 생각해낸다”는 뜻으로는 ‘생각난다’로 해야 문맥이 통하고 어색하지 않다. 곧 어떤 일이나 지식을 머리에 담아두는 일은 ‘기억’이라 하고, 기억된 것을 꺼내는 일은 ‘생각나다’로 구별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열흘쯤 뒤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7주년이 된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전쟁의 참상이 언뜻언뜻 생각난다.”라 할 수 있고, 우리 모두 이때의 비극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말자고 할 때에 “한국전쟁을 기억하자.”고 할 수 있다. 또, 광복절을 맞아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기억한다.”, “일제의 잔혹한 만행이 생각난다.”처럼 구별하여 말하면 된다. “기억이 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들과 같은 말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3>
‘부치다’와 ‘붙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부치다’는 “어떤 물건을 상대에게 보내다.” 또는 “어떤 문제를 다른 기회로 넘겨 맡기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반면에 ‘붙이다’는 “맞닿아 떨어지지 않게 하다.”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부치다’는 무언가를 보내거나 맡긴다는 뜻이고, ‘붙이다’는 달라붙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마당에 안건을 맡길 때에는 ‘토론에 부치다’라 해야 하고, 한쪽으로 상대를 몰아붙일 때에는 ‘밀어붙이다’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 막상 ‘붙이다’나 ‘부치다’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에는 여러 곳에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가령, “그는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그렇게 몰아부치지 마세요.”처럼, 많은 사람들이 ‘걷어부치다’, ‘몰아부치다’처럼 쓰고 있다. 또, “그녀는 내게 날카롭게 쏘아부쳤다.”라든지, “무조건 밀어부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와 같이 ‘쏘아부치다’, ‘밀어부치다’처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말들은 모두 ‘걷어붙이다’, ‘몰아붙이다’, ‘쏘아붙이다’, ‘밀어붙이다’라고 써야 한다.
‘걷어붙이다’, ‘몰아붙이다’, ‘쏘아붙이다’, ‘밀어붙이다’ 들은 한결같이 무언가에 힘을 가해 한쪽으로 붙여 놓는다는 느낌을 주는 말들이기 때문에 (‘부치다’가 아닌) ‘붙이다’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옷을 벗어부치고 싸움에 뛰어들었다.”라는 문장에서는 ‘벗어부치다’가 바른 표기이다. ‘팔을 걷어붙이다’와 ‘옷을 벗어부치다’의 표기가 다르다는 것에 주의해야 하겠다.
-성기지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출처: http://www.urimal.org/1354 [한글문화연대 새 누리집]
◆ 한글 사랑해 ◆
<1>
'한글', 이름은 주시경이!!
주시경은 1896년에 배재학당 학생으로서 우리나라 첫 순한글 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의 간행에 참여하였고, 그 뒤로 국어연구회(1907)에 참여하여 국어문법과 맞춤법을 연구했다. 조선의 운명이 기울자 우리말 문법과 한글을 가르치는 조선어 강습소, 배달말글모둠, 한글모 등을 만들어 교육과 연구에 모든 힘을 쏟았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당시까지도 ‘암클’이니, ‘언문’이라고 부르던 우리 고유의 문자에 ‘위대하고 큰 하나의 글’이라는 뜻으로 붙인 새 이름으로서, '한국모죽보기(연표)'에 따르자면 주시경이 회장을 맡아 1913년에 만든 '한글모'의 이름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 뒤 1927년에 나온 조선어학 동인지 <한글>을 통해 훈민정음의 새 이름은 '한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주시경의 제자들이 조선어연구의 맥을 이은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해방 뒤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며 오늘까지 이어진다.
<2>
한글날 첫 이름은 '가갸날' 1926년부터 기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반포한 1446년 이후 여덟 번째 회갑, 즉 480돌이 된 1926년에 처음으로 한글날을 기렸다. 조선어연구회(지금의 한글학회)와 신민사가 공동 주최하여 '식도원'이라는 요리집에서 식을 치렀다. 당시 기념식에는 수백 명이 참석하는 꽤 성대하였다고 한다. 기념식을 거행하는 중에 이날을 부를 이름을 '가갸날'로 결정하였다. 이후 주시경이 이름 붙인 '한글'이 알려지고 퍼지면서 1928년부터 한글날로 부르게 되었다.
첫 기념식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에는 양력 10월 9일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력을 환산하여 기렸다고 한다. 10월 9일에 공개적으로 한글날을 기리게 된 건 1945년의 일이다.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혜례본)의 정인지 서문에 '9월 상한'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에 따라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했던 것이다. 미 군정 시기부터 한글날은 공휴일이었고, 1949년부터는 대한민국의 공식 공휴일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 지위는 기념일이었다. 이렇게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념하는 우리와 달리 북쪽에서는 창제한 날인 음력 1443년 12월을 헤아려 양력 1월 15일을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로 기린다.
1991년부터 노태우 정부는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 버렸다. 하지만 문화가 경제 성장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인식이 2000년대 들어 널리 퍼지면서 2005년에 한글날은 국경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소규모로 전개되던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운동은 2012년에서야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연합'이라는 조직 결성과 함께 대규모 국민운동으로 전개되어 2012년 12월 24일에 열매를 맺었다. 22년 만에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한글문화연대는 범국민연합의 사무국을 맡아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가장 앞장섰다.
출처: http://www.urimal.org/1341 [한글문화연대 새 누리집]
◆ 다채로운 우리말 ◆
<밥과 관련된 우리말>
*감투밥 : 그릇 위까지 수북하게 담은 밥
*대궁 : 먹다가 그릇에 남긴 밥
*곱삶이 : 두 번 삶아 짓는 밥
*아침동자 : 아침밥을 짓는 일 또는 그 아침밥
*첫국밥 : 아이를 낳은 뒤에 산모가 처음으로 먹는 국과 밥
<색깔과 관련된 우리말>
*아기의 뺨이 발그레하다
☞ 발그레하다 : 엷게 발그스름하다
*복숭아가 빨긋빨긋 익었다
☞ 빨긋빨긋 : 군데군데 빨그스름하다
*대추가 볼그대대하다
☞ 볼그대대하다 : 산뜻하지 못하고 조금 볼그스름하다
*바닷물이 파르스름하다
☞ 파르스름하다 : 조금 파랗다
*오이가 푸르뎅뎅하다
☞ 푸르뎅뎅하다 : 고르지 않게 푸르스름하다
*5월의 녹음이 짙푸르다
☞ 짙푸르다 : 짙게 푸르다
<잠과 관련된 우리말>
*돌꼇잠 : 누운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자는 잠
*꽃잠 :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
*다방골잠 : 늦잠 자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잠 : 봄날에 노곤하게 자는 잠
*자리끼 : 밤에 자다가 마시기 위하여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
◆ 단어장 ◆
1. ‘덩굴’과 ‘덩쿨’ 중 바른 표기는?
*(덩굴/덩쿨)이 이웃집 담벼락을 뒤덮었다.
‘덩굴’이 맞습니다. ‘덩굴’은 ‘길게 뻗어 나가면서 다른 물건을 감기도 하고 땅바닥에 퍼지기도 하는 식물의 줄기’를 가리키며, ‘넝쿨’과 동의어입니다.
2. ‘쩨쩨하다’와 ‘째째하다’ 중 바른 표기는?
*돈 몇 푼 때문에 (쩨쩨하게/째째하게) 그러기냐?
‘쩨쩨하다’가 맞습니다. ‘쩨쩨하다’는 ‘너무 적거나 하찮아서 시시하고 신통치 않다’, ‘사람이 잘고 인색하다’를 뜻합니다.
3. ‘괘념치’와 ‘괘념지’ 중 바른 표기는?
*허황된 소문에 (괘념치/괘념지) 마십시오.
‘괘념치’가 맞습니다. ‘괘념하지’가 줄어들 적에는 ‘괘념치’로 적습니다. ‘괘념하지’에서 어간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남은 ‘ㅎ’이 다음 음절의 ‘ㅈ’과 어울리면서 거센소리가 되므로 ‘괘념치’로 표기합니다.
4. ‘맛보기’와 ‘맛배기’ 중 바른 표현은?
*과일 장수는 (맛보기/맛배기)로 수박 한 쪽씩 주었다.
‘맛보기’가 맞습니다. ‘맛을 보도록 조금 내놓은 음식’이라는 뜻을 가진 말은 ‘맛보기’입니다.
5. ‘살코기’와 ‘살고기’ 중 바른 표기는?
*뼈를 바르고 (살코기/살고기)만 먹었다.
‘살코기’가 표준어입니다. ‘살코기’는 ‘기름기나 힘줄, 뼈 따위를 발라낸, 순살로만 된 고기’라는 뜻으로, 한글맞춤법 제31항 ‘두 말이 어울릴 적에 ‘ㅂ’ 소리나 ‘ㅎ’ 소리가 덧나는 것은 소리대로 적는다’에 따라 ‘살코기(살ㅎ고기)’로 적습니다.
6. ‘개비’와 ‘가치’ 중 바른 표현은?
*초에 불을 붙이려고 성냥 한 (개비/가치)를 그었다.
‘개비’가 맞습니다. ‘가늘게 쪼갠 나무토막이나 기름한 토막의 낱개’ 또는 ‘가늘고 짤막하게 쪼갠 토막을 세는 단위’를 뜻하는 명사는 ‘개비’입니다. ‘가치’는 ‘개비’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7. ‘호의호식’과 ‘호위호식’ 중 바른 표기는?
*언제쯤 (호의호식/호위호식)을 누려 볼까?
‘호의호식’이 맞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음’의 의미로 쓰이는 말은 ‘호의호식(好衣好食)’입니다.
8. ‘금니’와 ‘금이’ 중 바른 표기는?
*웃을 때마다 (금니/금이)가 반짝였다.
‘금니’가 맞습니다. ‘이[齒, 虱]’가 합성어나 이에 준하는 말에서 ‘니’로 소리 날 때에는 ‘니’로 표기합니다.(한글맞춤법 제27항)
9. ‘힘듦’과 ‘힘듬’ 중 바른 표기는?
*육아의 (힘듦/힘듬)을 토로했다.
‘힘듦’이 맞습니다. ‘힘들다’는 어간의 받침이 ‘ㄹ’로 끝나므로 어미 ‘-ㅁ’이 결합합니다. 이때 어간의 받침 ‘ㄹ’은 탈락하지 않습니다. ‘살다/알다/받들다’ 등도 어간의 받침이 ‘ㄹ’로 끝났으므로 ‘삶/앎/받듦’과 같이 표기해야 합니다.
10. ‘늘그막’과 ‘늙으막’ 중 바른 표기는?
*그는 (늘그막/늙으막)에 귀한 딸을 얻었다.
‘늘그막’이 맞습니다. ‘늙어 가는 무렵’을 뜻하는 말은 ‘늘그막’입니다. 어간에 ‘-이’나 ‘-음’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품사로 바뀐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않습니다.(한글맞춤법 제19항) ‘늘그막’은 ‘늙다’의 어간 ‘늙-’에 접미사 ‘-으막’이 결합된 형태이므로 그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인 ‘늘그막’으로 표기합니다.
◆ 우리말 달인 ◆
밑줄 친 부분의 표기는 바르게 되었을까요?
1. 깎은 과일을 넙적한 접시에 담았다.
2. 환자를 자리에 뉘어 쉬게 했다.
3. 내 아이인 것마냥 사랑스럽다.
4. 제가 어쭙잖게 누구를 가르치겠습니까?
5. 아기에게 잼잼을 가르쳤다.
6. 전 재산은 통틀어 백만 원뿐이었다.
7.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이 뿌얘.
8. 멋드러진 몸놀림으로 잽싸게 움직였다.
9. 손을 내밀기가 쑥스러웠다.
10. 세계 일주는 내 소망 목록 중 하나이다.
<정답 확인>
1. X ‘넓적한’이 맞습니다. ‘펀펀하고 얇으면서 꽤 넓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넓적하다’로 표기해야 합니다. 반면 ‘넙적하다’는 ‘말대답을 하거나 무엇을 받아먹을 때 입을 닁큼 벌렸다가 닫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2. O ‘눕다’의 사동사인 ‘누이다’의 준말은 ‘뉘다’입니다.
3. X ‘것처럼’이 맞습니다. 조사 ‘처럼’의 자리에 쓰이는 ‘마냥’은 비표준어입니다. ‘마냥’은 ‘언제까지나 줄곧’, ‘부족함이 없이 실컷’, ‘보통의 정도를 넘어 몹시’라는 뜻의 부사로 ‘친구를 마냥 기다렸다/마냥 웃고 떠들었다/성격이 마냥 좋기만 하다’ 등과 같이 쓰입니다.
4. O ‘비웃음을 살 만큼 언행이 분수에 넘치는 데가 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은 ‘어쭙잖다’입니다.
5. X ‘죔죔’이 맞습니다. ‘죔죔’은 ‘죄암죄암’의 준말로, ‘젖먹이에게 죄암질을 하라는 뜻으로 내는 소리’ 또는 ‘젖먹이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을 뜻합니다.
6. O ‘있는 대로 모두 합하여’라는 뜻의 부사는 ‘통틀어’입니다.
7. X ‘뿌예’가 맞습니다. ‘연기나 안개가 낀 것처럼 선명하지 못하고 좀 허옇다’는 의미의 형용사 ‘뿌옇다’는 ‘뿌예’, ‘뿌여니’, ‘뿌옇소’ 등으로 활용합니다.
8. X ‘멋들어진’이 맞습니다. ‘아주 멋있다’는 뜻의 형용사는 ‘멋들어지다’입니다.
9. O ‘하는 짓이나 모양이 자연스럽지 못하여 우습고 싱거운 데가 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은 ‘쑥스럽다’입니다.
10. O 국립국어원의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에서는 ‘버킷 리스트’의 다듬은 말로 ‘소망 목록’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 우리말친구들 ◆
업무 중엔 남한 말, 집에선 북한 말
“통일돼서 북한 오시면 평양말 쓰실 거잖아요.”
이 채 연
2009년 함경북도 온성에서 내려온 이채연 씨는 새내기 결혼설계사이다.
고객들이 주로 주말에 결혼식을 치르기 때문에 쉬는 날이 많지 않아, ‘3개월만 견뎌 보자.’ 한 것이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이채연 씨에게서 지난 8년간 남한에서 겪은 ‘말’과 관련된 일화들을 들어보았다.
“멍게가 뭐예요? 헤어드라이어가 뭐예요?”
중국 대사관에 잠시 머물다 남한에 혼자 온 채연 씨는 초기 탈북민들에게 지원되는 생활 보조금을 받지 않고 곧바로 직장을 다녔다. 북한에 남은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오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참고로 직장을 구하면 생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해산물을 취급하는 한 식당이었다. 남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부르고 ‘낙지’를 ‘오징어’라고 부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일을 해 보니 모르는 말들이 많았다.
“북한 청진 쪽으로 가면 마른 낙지(남한의 오징어)를 파는 데가 있어요. 저는 많이 돌아다니는 일을 했기 때문에 기차역을 지나다가 먹어본 적이 있어요. 그 외에 임연수나 동태를 먹긴 하는데 북한에선 꽃게나 멍게, 해삼 같은 걸 못 봤거든요. “멍게 가져와, 명란 가져 와.”라고 하시는데 첨엔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죠. 메뉴판에 나온 사진들을 보고 이름을 익혔다니까요.(웃음)”
이후 아는 사람 소개로 명동의 한 미용실에서 일하게 됐고, 남들보다 한두 시간 이른 6~7시쯤 출근했다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 문을 잠그고 귀가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열심히 한 만큼 남들보다 승진이 빨랐지만 남모를 어려움도 많았다.
“롤판(파마 도구)이 뭔지 몰라서 아이롱(파마 도구)을 갖다 주기도 했고 헤어드라이어를 가져오라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그게 뭐냐고 되물어보기도 했어요. 스트레이트, 쇼트커트, 그런 외래어들이 특히 낯설었죠. 같은 조선말이라도 북한에서는 ‘땋은 머리’를 ‘양태머리’ 혹은 ‘쌍태머리’라고 하거든요. 다른 말들이 참 많아요.”
이젠 영어도 술술, 하지만 함경도 사투리 억양은 그대로 남아
채연 씨는 미용실에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가족들과 재회했다. 엄마와 동생이 남한으로 오면서 더는 북한에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되자 채연 씨는 공부에 매진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수강 신청을 하거나 과제, 발표 등 매 순간이 ‘산 넘어 산’이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즐겁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이미 제가 북한에서 왔고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어요. 북한에서 왔다고 해도 친구들은 “그래서? 뭐가 문젠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 줬거든요.”
채연 씨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해외에서 어학원 매니저 일을 한 덕분에 영어 회화도 곧잘 했다. ‘ABC’부터 배웠다는 그녀는 원어민과 영어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지금도 외국인 친구들과 계속 만나면서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런 채연 씨라도 끝내 고쳐지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억양이다. 한때는 일기예보 진행자의 말투를 따라서도 해보고 때론 핸드폰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면서 북한 억양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엄마와 함께 살면서 도로 북한 억양을 쓰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우리 사람들(탈북민)을 만나면 그렇게 돼요. 천천히 말할 땐 괜찮은데 급하게 이야기하면 꼭 함경도 사투리가 나오더라고요. ‘금방’을 ‘굼방’으로, ‘빨리 갈게’를 ‘인차 갈게’라고 하고요. 표준어는 끝을 올리는데 북한 말은 내리는 것도 차이점이고, 대체로 북한말이 더 센 것 같아요.”
함경도 사투리 문제 될 것 없지만, 업무 중엔 표준어 사용
채연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온 사실이나 사투리 사용을 숨기지 않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설계사로서 고객들을 대할 때는 표준어를 사용하려 노력한다. 그 이유는 채연 씨 스스로 사투리보다 표준어가 고객들에게 더 신뢰감을 주는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비 신랑 신부님과 상담을 할 때 사투리가 나올까 봐 긴장을 하곤 해요. 가급적 고객들과 같은 말투를 쓰려고 노력하죠. 처음 본 사람인데도 습관적으로 고향을 물어보시는 분들께는 일일이 설명하기 곤란해서 강원도라고 둘러댈 때도 있지만요. 솔직히 서울에 가면 서울말을 쓰고, 부산에 가면 나도 모르게 부산 말 쓰는 거잖아요. 남한 사람들도 통일돼서 평양 가면 평양말 쓸 거고요. 북한 말도 존중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막 남한에 온 탈북 후배들이 남한 말에 쉽게 적응하는 방법을 물어 올 때가 있는데, 채연 씨는 ‘책 읽기’, ‘남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주로 추천한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 말을 따라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책을 읽으라고 권해 주고 싶어요. 어려운 책 말고 학생용 도서, 혹은 만화책 같은 거요. 그런 책은 활자도 크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거든요. 남한 문화나 남한 말 적응에 훨씬 더 도움이 돼요.”
또 이왕 남한 말을 배울 거면 남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고, 가끔 “그건 북한 말이야.”라고 지적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북한 말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배우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한에서는 ‘가르쳐 줄게’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배워 줄게’라고 하거든요. 사투리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걸 적절히 지적해 줄 남한 친구가 있다면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듯해요.”
채연 씨가 선택한 길은 결혼설계사이다. 결혼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예물 및 드레스 선택, 사진 촬영 등 결혼에 이르는 전 과정을 돕는 일을 한다. 채연 씨는 특히 결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예비부부들이 성공적으로 결혼식을 치를 때 더없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또 올 3월 승진 시험에 합격해서 3급 결혼설계사가 되고, 나중에는 2급까지 꼭 승진하고 싶다고 했다. 20대 초반에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영업을 하기에 인맥이 넓지 않다는 약점은 있지만,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 볼 계획이라며 밝게 웃었다.
붙임 |
| 2016년 추가 표준어·표준형 목록 |
ㅇ 추가 표준어(4항목)
추가 표준어 | 현재 표준어 | 뜻 차이 |
걸판지다 | 거방지다 | 걸판지다 [형용사] ① 매우 푸지다. ¶ 술상이 걸판지다 / 마침 눈먼 돈이 생긴 것도 있으니 오늘 저녁은 내가 걸판지게 사지. ② 동작이나 모양이 크고 어수선하다. ¶ 싸움판은 자못 걸판져서 구경거리였다. / 소리판은 옛날이 걸판지고 소리할 맛이 났었지. |
거방지다 [형용사] ① 몸집이 크다. ② 하는 짓이 점잖고 무게가 있다. ③ =걸판지다①. | ||
겉울음 | 건울음 | 겉울음 [명사] ① 드러내 놓고 우는 울음. ¶ 꼭꼭 참고만 있다 보면 간혹 속울음이 겉울음으로 터질 때가 있다. ② 마음에도 없이 겉으로만 우는 울음. ¶ 눈물도 안 나면서 슬픈 척 겉울음 울지 마. |
건울음 [명사] =강울음. 강울음 [명사] 눈물 없이 우는 울음, 또는 억지로 우는 울음. | ||
까탈스럽다 | 까다롭다 | 까탈스럽다 [형용사] ① 조건, 규정 따위가 복잡하고 엄격하여 적응하거나 적용하기에 어려운 데가 있다. ‘가탈스럽다①’보다 센 느낌을 준다. ¶ 까탈스러운 공정을 거치다 / 규정을 까탈스럽게 정하다 / 가스레인지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지루하고 까탈스러운 숯 굽기 작업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비칠 수도 있겠다. ② 성미나 취향 따위가 원만하지 않고 별스러워 맞춰 주기에 어려운 데가 있다. ‘가탈스럽다②’보다 센 느낌을 준다. ¶ 까탈스러운 입맛 / 성격이 까탈스럽다 / 딸아이는 사 준 옷이 맘에 안 든다고 까탈스럽게 굴었다. ※ 같은 계열의 ‘가탈스럽다’도 표준어로 인정함. |
까다롭다 [형용사] ① 조건 따위가 복잡하거나 엄격하여 다루기에 순탄하지 않다. ② 성미나 취향 따위가 원만하지 않고 별스럽게 까탈이 많다. | ||
실뭉치 | 실몽당이 | 실뭉치 [명사] 실을 한데 뭉치거나 감은 덩이. ¶ 뒤엉킨 실뭉치 / 실뭉치를 풀다 / 그의 머릿속은 엉클어진 실뭉치같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
실몽당이 [명사] 실을 풀기 좋게 공 모양으로 감은 뭉치. |
ㅇ 추가 표준형(2항목)
추가 표준형 | 현재 표준형 | 비고 |
엘랑 | 에는 | ㅇ 표준어 규정 제25항에서 ‘에는’의 비표준형으로 규정해 온 ‘엘랑’을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엘랑’ 외에도 ‘ㄹ랑’에 조사 또는 어미가 결합한 ‘에설랑, 설랑, -고설랑, -어설랑, -질랑’도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엘랑, -고설랑’ 등은 단순한 조사/어미 결합형이므로 사전 표제어로는 다루지 않음. (예문)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교실에설랑 떠들지 마라. 나를 앞에 앉혀놓고설랑 자기 아들 자랑만 하더라. |
주책이다 | 주책없다 | ㅇ 표준어 규정 제25항에 따라 ‘주책없다’의 비표준형으로 규정해 온 ‘주책이다’를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주책이다’는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을 뜻하는 ‘주책’에 서술격조사 ‘이다’가 붙은 말로 봄. ㅇ ‘주책이다’는 단순한 명사+조사 결합형이므로 사전 표제어로는 다루지 않음. (예문) 이제 와서 오래 전에 헤어진 그녀를 떠올리는 나 자신을 보며 ‘나도 참 주책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