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태(12·서울 백석초 6)군은 아버지 권오근(43·서울 강서구)씨와 수학 문제를 풀 때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은 ‘절친(절실한 친구)’ 사이다. 수학 문제 빨리 풀기 시합을 하고, 풀이 과정을 비교하며 서로 자기 방법이 맞는다며 우기기도 한다. 권군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수학놀이를 할 때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권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수학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래 친구들이 어려워하는 창의적 문제를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척척 풀어냈죠.” 권씨는 평소 아들과 함께 수학 문제를 풀고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서교육청 영재학급에서 교육 중인 권군은 올해 IMC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아 영재성을 인정받았다.
고양시교육청 영재교육원 발명영재반 수업을 받고 있는 황석현(11·고양 문촌초 5)군도 어려서부터 엄마와 과학실험을 자주 했다. 황군의 방은 과학실험실이 부럽지 않다. 어지간한 실험도구는 다 준비돼 있다. 어머니 정광희(35·경기도 고양시 서구)씨는 “실험시간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다. TV를 보거나 과학 잡지를 읽다가 집에서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간단한 실험은 틈나는 대로 자주 했고, 1년에 한 번은 중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황군이 2학년 때는 음식물 쓰레기로 친환경 퇴비를 만들어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재배하기도 했다. 황군은 “실험 주제를 정하는 데만 2개월가량 걸렸고, 총기간도 5개월이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전국과학탐구토론대회에 고양시 대표로 출전했다.
기태 형제는 아빠와 수학놀이를 하며 사고력을 키웠다. [황정옥 기자]
‘생활 속 소재’로 흥미 갖도록 권씨와 정씨는 자녀가 좋아하는 책을 통해 아이들의 관심거리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재밌어 하는 것을 읽도록 내버려뒀다. 독서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아쉬운 점도 있다. 권씨는 “수학이나 과학 책만 편중해 읽다 보니 사고가 다양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정씨도 황군이 너무 ‘사실’ 위주로만 생각하려고 해 지금은 여러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단다.
권씨 부자가 접근하는 수학 문제는 학과 공부와는 거리가 있다. 권씨는 수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생활 속 소재를 찾는다. “요즘은 월드컵 대진표를 짜보면서 골득실에 따라 어떤 것이 유리하고 불리한지 확률 계산을 해봅니다.” 취학 전과 초등 저학년 때는 수학 관련 동화책이나 교구를 활용해 입체도형 익히기를 많이 했다. 고학년이 된 후에는 다양한 수학 문제를 접하게 해 사고의 가짓수를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씨는 “석현이가 네 살 무렵 인체 관련 책이 해질 정도로 보는 것을 알게 된 후 과학 재능이 있다는 확신이 섰다”고 설명했다. 실험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자 생활 속에서 실험 소재를 찾았다. 황군은 지난해 위가 약한 아버지를 보며 소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음식물 상태에 따른 소화의 차이’에 대해 3개월 넘게 실험했다. 요즘은 편식을 하는 동생 황유나(문촌초 3)양 때문에 새로운 실험을 준비 중이다. 정씨는 “과학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책이 많이 나와 있어 활용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을 위한 과학 잡지도 그가 자주 이용하는 교재다.
박정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아이 능력 높아지면서 함께 공부 “요즘 수학 문제는 국어만큼 지문이 길죠. 옛날식 수학에 익숙한 저는 종종 풀이 과정에서 하나씩을 놓쳐 기태에게 질 때가 있어요.” 권씨는 아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고 수학영재 교육까지 받다 보니 가끔 지도하기가 힘에 부친다.
권군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달라고 들고 오면 개념 설명부터 보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 그래서 아이가 공부하는 수학책을 몰래 펴보기도 한다. 정씨 역시 마찬가지. 영재교육원에 다녀온 황군이 과학 용어로 설명을 하면 몰라도 아는 척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씨는 아들과의 대화를 위해 식물도감을 읽을 정도로 열심이다. 두 사람 모두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가고 수준이 높아지면서 부모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전문 교육기관의 교육을 잘 따라가는 것이 어려서부터 부모가 충분히 흥미를 유발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수학 문제를 풀고, 과학 실험을 하면서 ‘소통의 길’도 열렸다. 권씨는 “평소 일 때문에 바빠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데 이 시간을 이용해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이와 함께 얘기를 하며 과학 실험을 할 때 엄마인 내가 더 재밌다”며 “내가 즐기지 못했다면 계속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